• 온바오 2024-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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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신참변의 참화현장 - 장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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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지어
  • 庚申惨变獐岩洞惨案遗址
  • gēng shēn cǎn biàn zhāng yán dòng cǎn àn yí zhǐ
    분류
  • 여행/오락 > 역사유적
    주소
  • 지린 옌볜 조선족자치주 허룽시 东城镇 东明村
  • 거리 [서울](로/으로)부터 610.5km
■ 경신참변의 참화현장 : 장암동 獐巖洞

◎ 옛주소 : 연길현 延吉縣 장암동 獐巖洞
◎ 현주소 : 용정시 龍井市 동성진 東盛鎭 동명촌 東明村
◎ 사적지 : 만주지역에 대한 일본의 대표적인 한인 학살지

◆ 1920년 말 연해주로부터 침입한 일본군 제14사단 15연대 제3대 대장 대강융구大岡隆久가 인솔하는 77명의 병력이 용정촌 동북 25Km 지점에 위치한 한인 기독교 마을인 장암동을 포위하여 전 주민을 기독교 교회 내에 집결시킨 후 40대 이상의 남자 33명을 포박지어 꿀어앉힌 다음 아직 타작하지도 않은 조 집단으로 교회당 안을 채워 넣고 석유를 부어 불을 질렀다. 교회당은 즉시 화염이 충천하였다. 일본군 대장은 불속에서 뛰쳐나오는 사람을 모두 찔러 죽여 결국 몰살시켰다. 가족들은 넋을 잃고 울부짖다가 일본군이 돌아간 뒤 숯덩이 같이 된 아버지와 남편, 아들의 시체를 찾아 겨우 옷을 입혀서 장사지냈다.

◆ 그런데 유족들의 비통함이 채 가시기도 전인 5·6일 후에 일본군이 다시 그 마을을 습격해와 모든 유족들을 모아 놓고 무덤을 파 시체를 한곳에 모으라고 강요하였다. 이에 유족들은 살기 위하여 언 땅을 다시 파 시체를 모아 놓자 일본군은 조 집단을 시체위에 쌓아 놓고 석유를 부어 불을 질러 시체를 뒤적거리며 재가 되도록 태워버렸다. 이렇게 이중으로 학살당한 이 시체들은 유족들이 재를 갖고 33인의 합장 무덤을 만들어 분묘를 만들었다. 현재 「장안동참안유지獐巖洞慘案遺址」라는 표식이 설치되어 있는 곳에서 현장은 산속으로 좀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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