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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 명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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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지어
  • 성균관대학교 명륜당
  • Seonggyungwan Myeongnyundang (Lecture hall)
    분류
  • 여행/오락 > 여행지
    주소
  • 서울 종로구 명륜동3가 53
  • 거리 [서울](로/으로)부터 3.9km
고려에서 조선을 아우르는 최고 교육기관 젊은 세대에게 성균관은 대학로에 있는 대학이름이지만 옛 사람들에겐 조선 최고의교육기관이었다. 그 이름은 무수한 시간을 거슬러오른다. 성균(成均)이라는 이름이 처음 사용된 것은고려 충렬왕(1289년) 때다. 국자감(國子監)의 이름을성균으로 바꿨고 충선왕(1308년) 때부터 성균관이라는지금의 호칭을 사용했다. 공민왕 때 다시 잠깐국자감이라는 이름을 사용했지만 1362년부터 다시성균관으로 돌아왔다. 조선 왕조는 개국 초기 이례적으로 고려의 성균관을존속했다. 태학(太學)으로도 불렸으며, 과거제도의초시인 생원시와 진사시에 합격한 유생에게 우선적인입학을 허락했다. ‘성균관 유생’이란 말은 그런 뜻을담고 있다. 성균관은 크게 북쪽과 남쪽으로명륜당(明倫堂)과 대성전(大聖殿)이 자리한다.신삼문으로 들어서면 대성전이 나오고, 대성전의북장문을 지나 명륜당으로 이어진다. 선비들의 글 읽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 명륜당(明倫堂)은 대성전(大聖殿)과 함께 보물제141호로 서울 문묘를 이룬다. 태조 7년(1398년) 동시에건립됐다. 대성전은 문묘의 정전으로 공자 등 성현에게제사를 지내는 춘기석전대제 등이 이뤄졌고, 대성전뒤편에 있는 명륜당은 성균관의 강의실이었다.임진왜란 때 불탔으나 선조 39년(1606년)에 중건했다. 그이름은 지방 향교의 강당을 일컫는 총칭이기도 하다.두 공간을 중심으로 한 문묘는 유교를 숭상했던 조선의정책에 가장 잘 반영된 장소다. 그 가운데 명륜당은 중앙에 정면 3칸, 측면 3칸의강당을 기준으로 좌우에 정면 3칸 반, 측면 2칸의협실(夾室)을 뒀다. 장대석 기단에 높고 넓은월대(月臺)가 있고 돌계단을 놓았는데, 월대에올라서면 선비들이 글 읽는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오는듯하다. 지붕의 바깥은 겹처마에 맞배지붕이고 안쪽은연등천장으로 돼 있다. 마당에는 천연기념물 제59호로지정된 은행나무 고목이 공터의 절반쯤을 차지할 만큼큰 그늘을 드리운다. 성균관은 갑오개혁 이후 그 기능이 변화하여 전통유학과 도덕을 지켜나가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오늘날우리나라 유교의 상징이 남아 있으며, 당시 유생들의생활상을 엿보게 한다. 하지만 교육기관으로서 그역할마저 상실하지는 않았다. 성균관은 1946년성균관대학교의 건립으로 부활했다. 그리고 명륜당은성균관대학교 내에서 그 태초의 강의실로 후손들의배움터를 굽어보고 있다. * 명륜당은 중앙 강당을 기준으로 좌우에 협실(夾室)을 두었다.* 수령이 약 500년에 달하는 서울 문묘(명륜당 앞)의 은행나무* 성균관은 고려 시대 생겨난 교육기관으로 조선 시대까지 존속했다. 현재는 성균관대학교 내에 있다.* 임금이 직접 참여해 지켜보던 조선 시대의 알성과거 시험이 성균관대 명륜당에서 재현되기도 한다.* 공자를 비롯한 유교 성인들의 덕을 기리는 석전대제(釋奠大祭)가 성균관대학교 명륜당에서 열려 행사에 참가한 학생들이 팔일무를 추고 있다.* 신삼문에서 바라본 대성전 전경* 장대석 기단 위에 세워진 명륜당 모습* 유생들의 기숙사로 쓰였던 서재(西齋) 쪽 방 안이 살짝 들여다보인다.* 명륜당 좌우에 위치한 동재(東齋)와 서재(西齋)는 총 28개방 48칸으로 이뤄져 있다.공간개요 성균관은 고려에서 조선까지 이어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교육기관이다. 고려 충렬왕(1289년) 때부터 현재의 성균관대학교까지 그 가치가 이어져 오고 있다. 명륜당은 조선 건국 초 1398년에 대성전과 함께 지어진 성균관의 대표 건물로 유생들의 강의실 역할을 했다.주차시설 성균관대학교 주차장 30분 1500원 일일이용권 1만원한국어 안내 춘기석전대제 예절캠프 인성교실 선비학당 서원 스테이 프로그램 외외국인참여프로그램 서원 스테이 프로그램유적지 지정 보물 제141호지정 내역 명륜당은 태조 7년(1398)에 건립되었으나 선조 25년(1592)에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선조 39년(1606)에 중건(重建)하였다. 한편 영조(英祖) 36년(1760)에 임금이 알성(謁聖)하려고 할 때, 호조(戶曹)가 명륜당이 기울고 퇴락하였음을 보고하여 선혜청사(宣惠廳舍)를 건축하고 남은 자재로 보수하였다는 기록이 있다.관리기관 문화재청관광팁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성균관 내에 있는 유생들의 기숙사였다. 문묘의 정전과 강당, 기숙사가 한자리에 모인 것만 보아도 유교 교육의 중요성을 엿볼 수 있다. 장방형 건물로 동재와 서재를 합쳐 총 28개방의 48칸으로 이뤄져 있다. 춘기석전대제, 예절캠프, 인성교실, 서원스테이, 선비학당 춘기석전대제 명륜당 정면의 대성전은 문묘의 정전이다. 대성전에서는 봄과 가을에 석전대제(釋奠大祭)가 행해진다. 공자를 비롯한 우리나라와 중국의 성현(聖賢)에게 지내는 제사다. 전국 234개의 향교에서 동시에 열린다. 중요무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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