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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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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2-731-0412
1234
    현지어
  • 세검정
  • segeomjeong
    분류
  • 여행/오락 > 역사유적
    주소
  • 서울 종로구 신영동 168-6
  • 거리 [서울](로/으로)부터 5.1km
고즈넉한 세검정의 매력과 유래 서울 시내 한강으로 흘러가는 지류는 모두 14개다. 그가운데 주변에 문화재가 유난히 많은 하천이 바로홍제천. 이곳은 서울 도성과 북한산성을 연결하는탕춘대성의 성문인 홍지문을 시작으로 이광수 별장터와 석파랑, 세검정, 탕춘대 터, 조지서 터 등 물길따라 역사도 유유히 흘러왔음을 말해준다. 홍제천 상류에 자리한 세검정은 인왕산, 북악산으로이어지는 도심 속 트레킹 코스의 종착점이자, 현대와공존하는 조상들의 삶의 흔적이다. 세검정의 명칭 유래에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다.가장 유력한 설은 1623년 인조반정과 관련이 있다. 이귀,김류 등 반정군들이 홍제원에 모여세검입의(洗劍立義·칼을 씻어 정의를 세움)의 맹세를한 후 반정을 모의했다. 그리고 거사가 성공하자 이를기념하기 위해 세검정을 세웠다는 주장이다. 그 모양은정(丁)자형 3칸, 팔작지붕의 정자 형태이다. 기록에의하면 1747년(영조 23)에 재건됐고 1941년 소실되었다가1977년에 복원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전한다. 홍제천이 흐르는 세검정 주변은 북악산 남쪽 기슭백운대에서 이어지는 아름다운 경관으로 유명하다. 근래에는 평창동, 구기동, 홍지동, 부암동 등 세검정주변의 고즈넉한 마을 분위기와 여기에 어울리는 카페,레스토랑들이 들어서면서 새롭게 부상하는 서울의명소가 되고 있다. 풍류를 즐겼던 세검정 세검정의 수려한 자연경관은 옛 조상들의 풍류를즐기는 장소로 이용되었다. 연산군은 이곳 물을이용하여 수각과 탕춘대 등을 짓고 여유를 즐겼을정도다. 하지만 숙종조에는 북한산성, 탕춘대성을 쌓고이 부근을 수도 서울의 북쪽 수어진지로 삼으면서군인들이 쉬었다 가는 장소가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세검정에 끊이지 않았던 것은 시화 소재를찾아 거닐던 시인, 화가들의 행렬이었다. 정조, 순조때의 서민 시인으로 유명한 천수경은 그의 편서<풍요속선>에서 세검정의 아름다운 풍경을 표현했고조선 후기 화가인 겸재 정선의 <세검정도> 역시세검정을 독창적인 시각으로 그려냈다. 세검정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없다. 정자 아래 맑은 물과 주변의 신록은 사계절이아름다운 풍경을 만들고 현대 건물들과 어우러진세검정은 시대를 초월한 매력을 풍기고 있다. 최근에는주변에 아담한 레스토랑도 들어서서 찾는 이들이늘어나고 있다.* 세검정 앞을 흐르는 홍제천 모습* 세검정은 밖에서만 관람할 수 있으며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세검정은 차일암 바위 위에 지어진 것이 특징이다.*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4호로 지정된 세검정은 丁자형 3칸, 팔작지붕의 정자다.* 세검정 차일암은 조선 시대 세초(실록을 편찬한 뒤 그 초고를 없애던 일)를 하던 장소였다.세검정 | 문화재 | 유적지 | 홍지문 | 홍제천 | 탕춘대 |차일암 |공간개요 세검정 네거리의 홍제천 근처에 정(丁)자 모양의 정자, 세검정이 있다. 기록에 의하면 1747년(영조 23) 건립되었으나 1941년에 소실되고 현재의 건물은 1977년에 복원됐다고 한다. 명칭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인조반정 때 이귀, 김류 등이 이곳에 모여 광해군의 폐위를 모의하고, 거사 후 맑은 물로 칼을 씻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부대시설 임시파출소, 안내판, 화장실, 간이주점, 매점 외외국어 안내 종로구청 홈페이지를 통한 관광가이드 영어 서비스 영문 관광자료 제공유적지 지정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4호지정 내역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 때 이귀(李貴), 김류(金瑬) 등이 광해군 폐위 문제를 의논하고 거사 후 칼을 씻은 자리라고 해서 ´세검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또 이곳은 영조 23년(1747)에 북한산성을 쌓은 후 군사들의 휴식처로 세운 것이라 한다.관광팁 세검정 차일암 세검정 앞에 있는 너럭바위를 차일암이라 일컫는다. 이곳은 조선 시대 실록 편찬을 완료한 후 사초나 초고들을 물에 씻어 글씨를 지우고 종이를 재생, 활용하도록 하는 세초를 하던 장소다. 세초는 사초의 유출을 막아 시비의 소지를 예방하기 위해 시행된 제도로 차일암에서 세초가 끝나면 세초연이 베풀어졌다고 한다. 없음 세검정의 다양한 설 연산군은 즉위 12년(1506년) 장의사를 철거하고 이 일대를 놀이터로 만들어 세검정 물길 바로 위에 이궁(離宮)을 짓고 석조(石槽)를 파 음란한 놀이를 했다고 한다. 그곳이 탕춘대(蕩春臺)다. 이에 세검정이 이 시기에 지어졌으리라는 주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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