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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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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 2-2001- 2781
1234
    현지어
  • 경교장
  • Gyeonggyojang
    분류
  • 여행/오락 > 역사유적
    주소
  • 서울 종로구 평동 108-1
  • 거리 [서울](로/으로)부터 1.4km
역사가 바뀐 순간 우리 민족의 스승, 백범 김구. 그는 일제강점기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을 지냈으며 독립을 위해끊임없이 투쟁했다. 그의 소원은 첫째도, 둘째도,셋째도 대한민국의 자주 독립이었다. 독립 후에는남북으로 갈라진 민족의 대통합을 위해 신명을 바쳤다.가장 복제하고 싶은 사람(1997년 고대신문) 1위나 20세기정신사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 1위(1999년한겨레21), 역사상 가장 훌륭한 인물 1위(2009년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등의 설문조사 결과는 어쩌면너무도 당연한 결과인지 모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백범은 1946년 6월 26일 안두희가 쏜세 발의 총알에 목숨을 잃었다. 대한민국의 역사가바뀌는 순간이었다. 경교장은 이런 백범의 마지막 숨결이 깃든 장소다.일제강점기에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지어진 일본식화강암 석조 건물로 본래 금광재벌 최창학의 집이었다.하지만 해방 후에는 백범의 직무실로 쓰이며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무회의도 개최한 유서 깊은 장소다.1949년 백범이 서거한 후에는 다시 최창학의 집으로,타이완 대사관저로, 미군특수부대의 거처로도 쓰였다.옛 이름은 죽첨장이라 했으나 김구 선생이 집무실로이용한 후에는 경교장이라 불렀다. 1968년 고려병원이인수한 후에는 지금까지 병원으로 사용되고 있다.2001년 비로소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가 그중요성이 재평가되어 2005년 국가 지정문화재(사적)로지정되었다. 백범기념실도 생겨나 조금은 유적다운모습을 갖추게 됐지만 2층 기념실을 제외하고는 지금도강북삼성병원의 일부로 사용되어 아쉬움이 남는다. 백범의 원혼이 잠들다 경교장 1층은 병원 시설이다. 계단을 올라 복도를따라가면 2층 기념실이 나온다. 백범의 집무실을재현한 다다미방이다. 방 한가운데는 책상과백범일지가 놓여 있다. 백범보다 더 대쪽 같았다는백범의 어머니와 백범의 아내 사진도 있다. 방의바깥으로는 복도 형식의 공간이 사방을 두른다.경교장의 모형과 백범 서거 당시, 오열하는 시민들의풍경을 담은 사진이 걸려 있고, 이곳을 지나면 백범이앉았음직한 자그마한 책상과 의자가 보인다. 창가쪽으로는 두 발의 총탄이 지나간 흔적이 선명하다.그저 의미 없이 바라보면 햇볕 좋은 창가일 뿐이지만창가에 서서 총알 자국을 바라보면 왠지 가슴 한쪽이뭉클하다. 자연스레 백정(白丁)과 범부(凡夫)의 자세로독립을 위해 힘쓴 백범의 생이 떠오른다. 20평의기념실로는 가늠할 수 없는 충정이다. 그래서 반세기가지난 지금도 백범은 겨레의 거울이 아닐까. 그의 세가지 소원은 그의 목숨을 앗아간 세 방의 총성보다깊이 우리의 가슴에 자리한다. * 김구 선생 서거 당시의 슬픔을 담은 기록들* 백범 선생의 흉상이 그의 인품을 말해주는 듯하다.* 안두희의 발자국은 창가 김구 선생의 책상을 향해 나 있다.* 안두희가 쏜 총알 세 발 중 두 발은 김구 선생의 얼굴을 관통했다.* 살아생전 김구 선생의 사진* 예스러운 느낌이 풍기는 경교장 외관기념관 | 박물관 | 국가지정문화재 | 백범김구 | 경교장 |공간개요 경교장은 해방 다음해인 1946년부터 백범 김구 선생이 서거한 1949년까지 그의 집무실로 쓰이던 공간이다. 일제강점기에 금광재벌 최창학이 지었으며 일본 공사의 이름을 따 죽첨장이라 불리기도 했다. 삼성강북병원의 전신인 고려병원이 1968년 인수한 후 병원의 본관으로 쓰고 있다. 2001년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가 그 중요성이 재평가되어 2005년 국가 지정문화재(사적)로 지정되었다. 현재 병원의 일부 시설과 2층 백범기념실로 이뤄져 있다. 백범이 안두희에게 암살당한 방에 마련된 기념실에는 당시의 상황을 짐작케 하는 총알의 흔적과 암살의 위치 등이 재현되어 있다.주차시설 강북삼성병원 주차장 이용 가능 226대 차량 주차 가능 주간 (07:00 ~ 22:00) 일반 기본 30분 1500원, 초과 10분당 500원 추가 야간 일반 1시간 1000원유적지 지정 사적 제465호지정 내역 경교장(京橋莊)은 김구(金九)의 개인 사저다. 이화장(梨花莊)·삼청장(三淸莊)과 함께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 건국 활동 3대 명소의 하나로 불린다. 서대문경교장이라고도 한다. 광화문과 서대문 사이에 있던 동양극장 건너편에 있었는데, 지금의 강북삼성병원 자리이다. 최창학 소유의 별장이었던 이 집은 1938년 완공 당시에는 죽첨장(竹添莊)이라 하였으나 김구가 경교장이라 개칭하였다. 1945년 11월 임시정부 국무위원들과 함께 귀국한 김구는 1949년 6월 26일 경교장 집무실에서 육군소위 안두희에게 암살되기까지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건국에 대한 활동 및 반탁, 통일운동을 이끌었다. 당초 2001년 4월 6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나 한국 근현대사에서 동 건물의 중요성 등이 재평가되면서 2005년 6월 13일 국가 지정문화재(사적)로 지정되었다. 현재 동 건물 2층 서쪽에 있는 김구 선생의 옛 집무실이 원형대로 복원되어 백범기념실로 운영되고 있다.관리기관 서울시 문화재청관광팁 경교장의 발자국 경교장 방 한가운데에는 두 개의 발자국이 있다. 안두희가 김구 선생에게 총을 쐈던 위치다. 발자국은 백범의 책상이 있는 창가를 향한다. 아마도 두 발의 총알은 백범의 얼굴을 관통하고 창문을 지났을 것이다. 그 자리에 서면 오늘을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된다. 안내원의 설명, 새문길 박물관 축제(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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