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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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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2-774-1784
1234
    현지어
  • 명동성당
  • myeongdongseongdang
    분류
  • 기관/단체/종교 > 종교
    주소
  • 서울 중구 명동2가 1번지
  • 거리 [서울](로/으로)부터 1.5km
한국 천주교의 상징한국 천주교 서울대교구 본당 건물인 명동성당은우리나라 최초의 본당이며 한국 천주교회의 상징이다.고종 29년(1892)에 착공, 광무 2년(1898)에 준공되었다.성당이 자리한 곳은 조선 정조 때 역관 김범우의집터다. 당시 명동 일대는 지난날 명례방으로 불리던곳으로, 정조 8년(1784)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전래된직후부터 천주교 신자들의 신앙공동체가 이루어졌던곳이다. 또한 이 일대는 1830년대 이후 선교사들이은거하며 비밀리에 신앙을 전파하는 선교의중심지였다. 1845년 조선에 돌아온 우리나라 최초의사제 김대건 신부가 활동하던 곳도 바로 명동성당에이웃한 석정동이었다.고종 19년(1882) 한미수호조약이 체결되면서 종교의자유가 어느 정도 허용되자 당시 교구장이던 블랑(Blanc)주교가 성당 부지로 이곳을 매입하여 종현 본당을설립, 1887년부터 터 닦기에 들어가는 등 성당 건립을추진하였다. 그 뒤 1892년 5월 8일 정초식을 가졌으며,1898년 5월 29일 준공하여 축성식을 가졌다.명동성당은 우리나라 기독교 역사뿐 아니라 정치,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미친 터전이다.110년의 긴 역사 속에 우리 사회와 애환을 함께 나누며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오늘날 한국 사회를 대표하는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개발 독재의 서슬이 퍼렇던1970년대 이후 시대의 요구와 아픔, 민중의 눈물을 품어이 땅에 민주주의를 탄생시킨 모태와도 같은 곳이다.<명동성당 내부, 가상 투어 파노라마>360도 회전 입체 영상으로, 마우스나 키보드의 화살표키를 이용해 확대, 축소가 가능합니다.웅장하고 화려한 고딕 양식‘언덕 위의 뾰족 지붕’이라는 별명을 가진명동성당은 벽돌로 쌓은 우리나라 최초의 교회다.프랑스 신부 코스트가 설계했다. 그는 약현성당, 용산신학교 등도 설계하였는데 명동성당이 대표적이다.내부는 십자형 평면에 공중 회랑과 높은 창, 무지개형상의 궁륭 천장으로 되어 있고, 외부는 고딕 장식을통해 웅장함을 드러내고 있다. 석조로 지어야 할 고딕건물을 붉은 벽돌로 지으면서 고딕 양식의 장식적요소를 배제하고 구조만 고딕으로 본떴다고 한다.벽돌은 우리나라 한간통의 연화소에서 당시 제작한것으로 그 모양이 20여 종에 달할 뿐만 아니라 붉은색과 회색 2종의 벽돌을 구분 요소요소에 배치함으로써조화롭고 아름답게 완성미를 이루었다. 당시 양옥을지을 기능공이 없었으므로 중국에서 벽돌공과 미장이,목수를 데려다 시공을 하였다.명동성당은 건물 외관과 재부도 아름답지만 빼놓지말고 들러 봐야 할 곳은 제단 아래쪽에 있는 지하성당이다. 여기엔 19세기 천주교 박해로 희생당한 성인유해 5위와 일반 순교자 유해 4위를 봉안하고 있다.순교자들의 성스러운 피가 명동성당을 떠받들고 있는셈이다.명동 주변의 많은 남녀 직장인들이 간단한 음료나도시락을 가지고 성당 뒤편 성모동산이나 그늘진벤치에서 휴식을 취한다. 그리고 점심시간에 맞추어피아노 혹은 오르간 연주 발표가 성당 내에서 열린다.파이프 오르간도 명동성당의 명물이다. 성당 주변에는가톨릭회관과 다양한 문화시설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본당이자 한국 교회의 상징인 명동성당* 명동성당 내부 미사 모습* 명동성당 성모 동산 전경* 명동성당은 번잡한 명동에서도 쉬이 그 경건함을 잃지 않는다.* 명동성당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1970~80년대 민주화의 중심지로 우리 근대사의 산증인이다.* 명동성당 내 성모동산의 전경.공간개요 서울 중구 명동2가에 있으며 종현성당 또는 명동천주교당이라고도 한다. 한국가톨릭교회 공동체가 처음으로 탄생한 곳으로 순교 성인들의 유해를 모시고 있는 한국 가톨릭의 대표 성지다. 우리나라 최초의 고딕 양식으로 사적 제258호인 기념비적인 건축물이다. 110년 동안 한국 근현대사의 영욕을 함께하며 이 땅의 빛과 소금이 되어온 명동성당은 지금도 많은 사람이 즐겨 찾는 영혼의 안식처다.주차시설 가톨릭회관 주차장 (유료) 명동성당 마당 (평일/무료)이용시간 화요일부터 금요일 09:00 ~ 21:00 토요일 09:00 ~ 20:00휴무일 없음장애인 편의 장애인용 화장실유적지 지정 사적 제258호지정 내역 서울 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은 한국가톨릭교회 공동체가 처음으로 탄생한 곳으로 순교 성인들의 유해를 모시고 있는 한국 가톨릭의 대표 성지이며, 우리나라 최초의 고딕 양식으로 사적 제258호인 기념비적인 건축물이다. 명동성당은 1894년에 공사를 시작해 1898년 완성된 것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벽돌조 교회당으로 순수한 고딕 양식 구조로 지어졌다. 군사 정권 시대를 지나면서 민주화 투쟁의 중심지로 더 많이 인식되어왔으나 지하 성당에는 엥베르 주교, 모방 신부, 샤스탕 신부 등 순교자들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는 거룩한 성지다. * 지하 순교자 묘역 1900년 9월 10일 베르뉘(Berneux) 주교 등 병인박해 시 순교하신 순교자들의 유해를 용산신학교로부터 성당 지하 묘소로 안치하였으나 이후 연고지로 옮겨 모셨다. 1926년 기해박해(1839년)와 병인박해(1866년) 시 순교자 79위의 영광스러운 시보식 후 복자들의 유해를 지하 묘소에 모신 후 대성당 좌측 회랑에 복자제대를 설치하고 79위 복자 성화를 모셨다. 1950년 한국전쟁 때 성당이 인민군에 점거되어 지하 묘소에 안치 중인 순교자 유해가 손괴당하기도 하였다. 1991년, 퇴락한 유해의 포장, 부식된 납관 등을 새로 제작, 유해를 안치한 후 봉인하여 석관에 모시고, 이를 새로 말끔히 단장한 현실에 모신 후 각 현실마다 비명을 적은 석판을 세움으로서 마무리하였다. 수시로 순례자들이 참배할 수 있도록 묘역의 입구를 유리문으로 개조 설치하였다. 현재 모셔져 있는 성인 및 치명자의 유해는 기해박해 시 순교하시고 1984년 시성되신 성 엥베르(Imbert) 주교, 성 샤스탕(Chastan) 신부, 성 모방(Maubant) 신부, 성 김성우(안토니오), 성 최경환(프란치스코) 다섯 분의 성인과 병인박해 시 순교하신 파리외방전교회 Pourthie J. Antoine 신부, Petitnicolas M. Alexandre 신부 등 두 분과 무명 치명자 두 분 등 총 아홉 분이다.관광팁 고딕 양식 고딕 양식은 아치와 하늘 높이 솟은 뾰족 탑 등 수직적 효과를 강조한 건축 양식으로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사원과 프랑스의 노트르담 대성당, 독일의 쾰른 성당 등이 있다. 건물의 특징을 살리기 위해 대규모 건물을 건축하고 색채가 풍부하고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로 창문을 장식했다. 명동 성당은 고딕 양식을 볼 수 있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명동성당 문화축제 명동성당 문화축제 싱그러운 5월, 가정의 달과 성모성월(聖母聖月)을 맞아 한국 가톨릭의 중심 명동성당에서 열리는 풍성한 문화축제. 가톨릭 신자뿐만 아니라 관심 있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몇 개의 특별 공연을 제외한 공연은 무료 입장할 수 있다. 문화축제는 5월 한 달간 대성당과 문화관 꼬스트홀, 야외 무대, 전시관 등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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