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바오 2024-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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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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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2-120
1234
    현지어
  • 봉황각
  • bonghwanggak
    분류
  • 여행/오락 > 여행지
    주소
  • 서울 강북구 우이동 254 (삼양로173길 107-12)
  • 거리 [서울](로/으로)부터 11.9km
봉황이 깃들어 사는 집 의창수도원(義彰修道院)을 마주한다. 봉황각에 앞서 만나는 뜻밖의 선물이다. 얼핏 바로크 양식을 따른 듯하나 딱히 규정지을 수 없는 근대건축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어딘가 많이 낯이 익다. 안국역에 있는 천도교중앙대교당과 비슷한 양식이다. 실제로 의창수도원은 천도교중앙대교회당에 있었다. 지난 1969년 천도교 중앙총부청사를 지으며 그 자리에 있던 옛 건물을 지금의 위치에 이전 복원했다. 봉황각은 의창수도원의 뒤편 서쪽에 자리한다. 천도교의 3대 교주인 의암 손병희 선생이 1912년에 지은 천도교의 교육기관이다. 천도교의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해 설립했지만 그 이면에는 독립운동의 일꾼을 키워내겠다는 의지가 작용했다. 이름도 ‘봉황이 깃들어 사는 집’이란 뜻으로 큰 인물을 길러내겠다는 그의 바람이 잘 드러난다. 그리고 그 포부는 실제로 독립운동사에 큰 성과를 맺었다. 봉황각에서 3년간 483명을 수련시켰는데 3·1운동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15명을 배출했다. 33인의 민족대표 가운데 약 40%에 달하는 수다. 그러니 3.1운동의 숨은 산실이라는 말이 괜스럽지 않다 천도교 궁을사상에 따른 내부 봉황각은 을(乙)'자형 평면으로 지은 겹처마에 팔작지붕의 한옥이다. 그 모양새에 우주만물의 순환과 활동을 뜻하는 천도교의 궁을(弓乙) 사상이 담겼다. 집채는 정면 5칸에 측면 2칸으로 이뤄져 있다. 가운데에 대청을 두고 우측에는 측면 2칸의 누마루를 만들어 멋스러움을 더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한옥인 듯하나 궁궐의 한옥 양식을 본떠 지었다. 힘차게 뻗어나간 처마 끝에 손병희 선생의 강직한 성품이 묻어나는 듯하다. 봉황각의 현판은 독립운동가 오세창이 안진경, 회소, 미불 등 중국 명필의 서체를 본떠서 썼다. 그는 성북동에 있는 한용운 선생의 심우장 현판을 쓴 인물로 손병희 선생과 함께 3.1운동을 주도했다. 봉황각과 함께 지은 뒤쪽 살림채는 광복 이후 손병희 선생의 부인 주옥경 여사가 기거했다. 봉황각은 지난 1969년 서울시의 유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됐다. 1958년부터는 의창수도원으로 천도교의 교육기관 역할을 이어왔다. 현재는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이전한 건물을 의창수도원이라 부르기도 하고 봉황각과 하나로 아울러 그리 부르기도 한다. 그 동안은 아쉽게도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근래 들어 3.1운동 재현 행사를 갖고 체험학습을 위해 찾아드는 학생들도 늘어나며 중요한 역사 공간으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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