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북도 동부에 위치해 있는 군. 남쪽은 토산군ㆍ금천군ㆍ평산군, 서쪽은 서흥군, 북쪽은 수안군ㆍ곡산군, 동쪽은 강원도 판교군ㆍ이천군과 접해 있다. 동남~서북(중산리~대정리) 간의 길이는 39km이고, 남서~북동(침교리~태을리) 간의 길이는 26km이며, 면적은 721.80㎢로서 도 전체면적의 7.63%를 차지한다. 현재 행정구역은 1읍 27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군 소재지는 신계읍이다.
1396년에 고려시기의 편성된 신은현과 협계현을 통합하여 새롭게 개편되면서 신은현(新恩縣)에서 ‘신’자를 따고 협계현(俠溪縣)에서 ‘계’자를 따서 신계현(新溪縣)이라 하였다. 신은현은 백제 때부터 있던 사소올(沙所兀)이란 고을을 신라시기에 신은현으로 편성하였고, 협계현은 고구려 때 수곡성(水谷城)이란 고을을 고려시기에 협계현으로 개칭하였다.
신계군 지역에서 아직까지 원시시대의 유적유물이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주변 지역에서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의 유적유물들이 다량으로 발굴된 것으로 보아 신계군 지역에서도 인류가 생존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 처음에는 백제의 영역으로 되어 사소올(沙所兀)과 매차홀(買且忽)로 불렸다. 후에 고구려의 판도로 되어 매차홀은 수곡성(水谷城)으로 개칭되었다. 통일신라시대 사소올은 신은현(新恩縣)으로 되었고, 수곡성도 현으로 되었다. 고려시대에 수곡성은 협계현(俠溪縣)으로 개칭되었다. 조선왕조가 들어선 후 1396년에 신은현과 협계현을 통합하면서 신은현에서 ‘신’자를 따고 협계현에서 ‘계’자를 따서 신계현이라 하였다.
1895년에 23부제(府制)를 실시하면서 개성부(開城府) 신계군으로 되어 중부방(中部坊), 동리방(東里坊), 고도산방(孤道山坊), 수회방(水回坊), 다원방(多院坊), 율탄방(栗灘坊), 서리방(西里坊), 마지곡방(麻之谷坊), 여배이방(余背耳坊), 적암방(赤岩坊), 사이곡방(沙伊谷坊), 지파막방(芝坡幕坊), 채촌방(菜村坊) 등 13개 방을 두었고 1896년에 다시 13도제(道制)를 실시하면서 황해도 신계군으로 되어 방을 폐지하고 중면(中面), 동면(東面), 적면(赤面), 여면(余面), 수면(水面), 마면(麻面), 서면(西面), 사면(沙面), 지면(芝面), 고면(古面), 다면(多面), 촌면(村面), 율면(栗面) 등 13개 면을 개편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 시에 토산군(兎山郡) 미원면(美原面)을 흡수하고 중면과 동면을 병합하여 중동면(中東面)으로, 적면과 여면을 병합하여 적여면(赤余面)으로, 수면과 미원면을 병합하여 미수면(美水面)으로, 마면과 서면을 병합하여 마서면(麻西面)으로, 사면과 지면을 병합하여 사지면(沙芝面)으로 각각 개편하였다. 1917년에 중동면을 신계면으로 개칭하였고, 1939년에 다면 일부와 율면을 병합하여 다률면(多栗面)으로, 다면의 나머지 일부와 미수면을 병합하여 다미면(多美面)으로 각각 개편하였다.
1954년 10월에 황해북도 신계군으로 개편되면서 마산리 일부가 왕당리와 백곡리에, 왕당리 일부가 마산리에, 금성리 일부가 중산리에 각각 편입되었고, 1961년 3월 원교리 일부가 능수리에, 침교리 일부가 구락리에 각각 흡수되었다. 1963년 11월에 화성리 일부와 원교리 일부를 분리하여 대성리(大成里)를 신설하였다. 1965년 1월에 대성리 일부가 곡산군 해포리에 편입되고 7월에 곡산군 해포리가 신계군으로 이관되었다. 1967년 10월 대성리 일부로 신흥리(新興里)를 신설하고 능수리 일부가 신계읍, 마산리, 지석리에 각각 편입되었다. 2002년 10월 현재 행정구역은 1읍(신계읍), 27리(가무리, 구락리, 금성리, 대성리, 대정리, 대평리, 능수리, 마산리, 백곡리, 부용리, 사정리, 신성리, 신흥리, 왕당리, 원교리, 은점리, 정봉리, 중산리, 지석리, 천개리, 천곡리, 추천리, 침교리, 태을리, 해포리, 화성리, 화야리)로 구성되어 있다. 신계군 소재지는 신계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