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남도 남쪽에 위치해 있는 군. 북부는 정평군(定平郡)과 요덕군(耀德郡), 북서부는 요덕군, 서부는 수동구(水洞區), 남부는 고원군(高原郡), 강원도 천내군(川內郡)과 접해 있으며 동부는 동해에 면해 있다. 동서(연동리~문하리)의 길이는 41km이고, 남북(호도리~청백리)의 길이는 34km이며, 면적은 652.5㎢로서 도 면적의 3.5%를 차지한다. 현재 행정구역은 1읍 4구 50리로 되어 있으며 군 소재지는 금야읍이다.
벌방에서 ‘검은 금’인 석탄이 많이 산출되고 황금이삭이 물결치는 기름진 밭을 낀 살기 좋은 고장이라는 뜻에서 금야군이라 하였다.
금야군 지역의 소라리에서 청동기시대의 유적유물들이 발굴된 것은 적어도 이때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문헌기록에 의하면 금야군 지역은 남옥저에 속해 있었고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판도로 되어 장령진(長嶺鎭)이라 하였으며 후에 신라의 지배하에 있었다. 신라문무왕 9년 발해국 개국에 이르러 발해 남경남해부(南京南海府)에 소속되었다. 발해가 패망한 후 금야군 지역은 오랫동안 여진족의 손아귀에 들어 있었다. 그러다가 고려가 건립되면서 금야군 지역은 고려의 영역으로 되어 화주(和州)로 개칭되었다.
995년(성종 14년)에 화주안변도호부(和州安邊都護府)로 개편되었다가 1018년(현종 9년)에 화주방어사(和州防禦使)로 강등되었고 13세기 중엽에는 원나라가 화주에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를 두고 금야군 지역을 지배하였다. 1356년(공민왕 5년)에 다시 고려의 판도로 수복되었고 1369년(공민왕 18년)에 화령부(和寧府)로 승격되었다. 조선왕조가 들어서면서 1393년(태조 2년)에 이곳에 이성계의 외할아버지의 고향 영흥진이 있다 하여 영흥부로 고쳤다.
1416년(태종 16년) 함길도의 관찰사영을 함흥으로 이전하면서 화주목으로 개칭하였다가 1426년(세종 26년)에 영흥대도호부로 승격되었으며 1470년(성종 1년) 이시애란으로 함길도 관찰사영을 영흥으로 다시 이전하고 영흥부로 고쳤다. 그 후 1509년(중종 4년)에 관찰사영을 다시 함흥으로 이전하고 영흥대도호부를 설치하였다.
1895년 지방행정구역 개편 시에 부군제를 실시하면서 함흥부 영흥군으로 되었다가 그 이듬해인 1896년에 13도제를 실시하면서 함경남도 영흥군으로 되어 홍인사(洪仁社), 복흥사(復興社), 순녕사(順寧社), 억기사(憶岐社), 진평사(鎭坪社), 영인사(寧仁社), 인흥사(仁興社), 덕흥사(德興社), 장흥사(長興社), 선흥사(宣興社), 요덕사(耀德社), 횡천사(橫川社), 운곡사(雲谷社) 등 13개 사를 관할하였다.
조선 말에 사 전체가 면으로 개편되면서 운곡면이 고원군에 이관되었고, 1910년대 초에 영인면이 고녕면(古寧面)과 호도면(虎島面)으로 분리되었으며, 1935년에 흥인면이 영흥면(永興面)으로 개칭되었다. 1943년에 영흥면이 읍으로 승격되면서 복흥면 전체를 흡수하였고 광복 후에 다시 면으로 강등되어 당시 군 산하에 11개 면이 있었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에 따라 전 영흥군의 덕흥면, 고녕면, 호도면의 전체 리와 인흥면의 30개 리, 순녕면의 1개 리, 진평면의 13개 리를 신설되는 인흥군(仁興郡)에 편입하였고, 선흥면·요덕면의 전체 리와 횡천면의 23개 리는 신설되는 요덕군(耀德郡)에 편입하였다.
1953년에 해중리의 일부가 인흥군 광덕리에, 진흥리 일부가 인흥군 진수리에, 중양리 일부가 인흥군 금풍리에 각각 편입되었고, 1954년에 구룡리 일부가 인흥군 용산리에 편입되었으며, 1972년에 갈전리가 노동자구로 승격되었다.
1974년 1월에 인흥군이 폐지되면서 인흥군의 인흥읍(仁興邑), 가진노동자구(加津勞動者區), 금풍리(金豊里), 청동리(淸洞里), 풍동리(豊洞里), 백산리(白山里), 동흥리(東興里), 지인리(智仁里), 작동리(芍東里), 온정리(溫井里), 송재리(松~里), 범포리(范浦里), 대응리(大鷹里), 삼봉리(三峯里), 왕장리(旺場里), 중동리(中東里), 신당리(薪塘里), 진수리(鎭岫里), 용산리(龍山里), 광덕리(廣德里), 독구미리(獨九味里), 원평리(原平里), 안동리(安東里), 연동리(蓮洞里), 청백리(靑白里)·호도리(虎島里) 등 1읍 1구 24리 전체가 영흥군에 흡수되었고, 인흥읍이 노동자구로 격하되어 군 산하에 1읍 3구 48리를 두고 관할하였다. 1977년 3월에 영흥군이 금야군(金野郡)으로 개칭되면서 영흥읍이 금야읍(金野邑)으로, 용흥리가 비단리(緋緞里)로, 순안리가 긴재리로, 중양리가 솔밭리로, 용강리가 새동리로 각각 개칭되었다.
1986년 5월에 요덕군의 용남리(龍南里), 용암리(龍岩里), 용천리(龍川里), 용상리(龍上里)가 흡수되었고 1991년에 왕장리가 금사리(金沙里)로 개칭되었으며, 1995년에 풍동리가 풍성리(豊城里)로 개칭되었다. 2001년에 독구미리 일부, 해중리 일부와 원평리를 통합하여 광명성노동자구를 신설하고 독구미리의 나머지부분은 안동리에 편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