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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덕광업련합기업소 금골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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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지어
  • 검덕광업련합기업소 금골광산
  • Geomdeok Mining Union Enterprises
    분류
  • 제조/무역/기업 > 금속/광물
    주소
  • 아시아 북한 북한 함경남도 단천시
  • 거리 [서울](로/으로)부터 406.2km
함경남도 단천시의 북대천상류에 있는 기업소. 유색금속광물을 채굴하고 있다. 검덕광업연합기업소는 검덕광상에 매장되어 있는 납-아연광석을 채취하여 여러 가지 희유금속이 들어 있는 납정광과 아연정광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북한 굴지의 대유색금속광물생산기지이다. 이 기업소는 시초 검덕광산으로 출발하여 1982년 3월 검덕광업종합기업소로, 1989년 11월에는 검덕광업연합기업소로 발전하였다.

검덕광업연합기업소가 위치해 있는 검덕골은 처음에 은을 채취하는 조그마한 은점이었는데 조선 초기 개발되어 단천은점, 검의덕은광 등으로 불리면서 계속 발전하였다. 17세기 상품화폐관계의 발전과 대외무역의 확대, 봉건귀족들의 사치스러운 생활 등으로 은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자 이곳에서는 은광개발을 장려하고 해마다 대량의 은을 채취하게 하였다.

조선을 강점한 일제는 1917년 검덕광산개발권을 완전히 독점하고 처음에는 은을 약탈하여 갔다. 1930년대 중엽에 이르러서 급속히 늘어나는 군수물자원료조달을 목적으로 ‘보국대’라는 명목으로 이곳에 천수백 명의 농민들을 강제 이주시켜 도로확장공사와 삭도가설공사, 탐광굴진 등을 진행하고 납, 아연을 대량적으로 약탈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의 자원약탈은 1940년대에 절정에 이르러 1942년부터 1945년 7월까지 납-아연광석을 금속함유량으로 연 7,700여 톤, 아연 32,900여 톤이나 약탈해갔다.

광복 직후 검덕광산은 유망한 광물생산기지로 부상되기 시작하였다. 1953년 7월에 들어서면서 선광장을 완공한데 이어 큰 규모의 통동갱과 여러 개의 사갱, 수직갱들을 건설하여 생산규모를 확대시켰다. 기업소에서는 광산의 기본광체에 대한 세부탐사와 심부탐사, 새로운 개발후보지들에 대한 탐사작업을 강화하는 한편 고속도굴진운동을 힘있게 벌여 5개의 수직갱과 7개의 사갱, 3개의 전차운반갱도 등을 건설하였으며 단기내에 대규모의 제2선광장을 건설(1967년 4월 5일 완공)하였다.

또한 광산의 기술장비를 급속히 개선강화하고 유력한 기술혁신운동을 진행하여 광산작업의 기계화수준을 더 한층 제고하고 생산에서의 혁명적 대고조를 일으켜 제1차 7개년계획(1961~1970년)의 광물생산과제를 2년이나 앞당겨 수행하였다.

1975년 검덕광산은 생산기록을 돌파하고 3대혁명붉은기쟁취운동의 첫 봉화를 들고 사상, 기술, 문화 혁명을 힘있게 벌여 광산설비의 대형화, 현대화, 고속도화와 운반의 다양화 방침관철에서 전국의 본보기단위로 지목받았다. 1975년부터 1980년 7월까지 지하로부터 지상선광상에 이르는 9,000여 m 되는 지하장도벨트컨베이어수송선 제1, 2단계 건설공사가 완공되었고 1982년 6월부터 시작된 년산 1,000만 톤 능력의 제3선광장건설공사가 단 1년이라는 기간내에 완공되었다. 이와 동시에 3선광장까지의 장도벨트컨베이어수송선3단계공사가 진행되었고 대규모의 수직갱과 지하낙광정, 수만m의 갱도건설공사가 진행되었으며 4.5전차갱의 대형화, 현대화가 실현되었다.

이리하여 수십리 상거한 여러 광산과 분광산의 채굴장들에서 생산된 광석들이 컨베이어와 전차에 실려 낙광정과 수직갱에 떨어져 지하장도벨트컨베이어수송선과 4.5전차갱에 집중되어 흐름식으로 선광장들에 공급되었다. 기업소에서는 지하의 굴진막장과 채굴장들에 현대적인 굴진대차와 채굴대차, 고성능착암기, 적재운반차들을 도입하고 중단식채광법을 비롯한 선진적인 기술을 받아들여 광산작업의 종합적 기계화와 현대화, 대형화에 속력을 가하고 있다.

기업소에서는 컨베이어운반계통과 선광장 일부 계통의 자동화를 실현하고 산업텔레비전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갱내지령통신지휘를 보장하고 있다. 1988년부터 생산규모를 확대하고 새로운 광산개발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다. 현재 검덕광업연합기업소는 한해에 천수백만 톤의 광석을 다량낙광, 다량운반, 다량처리할 수 있는 현대적인 대유색금속광물생산기지로 전변되었으며 매년 광석생산량은 광복 전 광석최고생산량의 240여 배에 달한다.

검덕광업연합기업소에는 노은지구, 중토장지구, 검덕지구, 붓골지구 등에 위치한 여러 광산(노은광산, 남풍광산, 검덕산광산, 8월29일광산 등)과 분광산(금골분광산, 7월1일분광산 등), 선광장(1선광장, 2선광장, 3선광장) 등이 있다. 이외 갱건설사업소와 컨베이어사업소, 미광침전지사업소, 4.5전차갱, 주택건설사업소, 공무분공장, 동력직장, 생활필수품공장 등이 설치되어 있으며 기업소의 중심에는 검덕혁명사적관과 검덕광업연합기업소 ‘위대한 수령님 김일성동지의 현지지도사적비’가 있다.

검덕골에는 검덕공업대학과 금골노동자문화회관, 병원, 정양소, 요양소 등 교육문화보건시설들이 설치되어 있으며 여러 개의 농목장과 부업수산사업소, 젖소목장 등 후방공급기지도 있다. 또한 협곡을 따라 광부들의 문화주택이 즐비하게 들어섰고 중심거리에는 무궤도전차가 부설되어 있다. 상업봉사망도 잘 형성되어 검덕골은 아담하고 문화적인 광부도시로 전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