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바오 2024-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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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제 상회와 저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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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 여행/오락 > 기타
    주소
  • 캘리포니아 리들리 93654 7th St
  • 거리 [서울](로/으로)부터 9,312.3km
◆ 상태 : I St.와 7th(Reedley Ave.와 Reedley Beach 방향)가 만나는 삼거리의 281번지(김형순 저택) I St.와 7th(Reedley Ave.와 Reedley Beach 방향)가 만나는 삼거리의 755번지(김호 저택) I St.와 7th(Reedley Ave.와 Reedley Beach 방향)가 만나는 삼거리(김형제상회)
◆ 관련사항 : 김형순 저택 : 金衡珣(1886~1977)과 그의 부인 한덕세가 살던 집 김호 저택 : 金乎와 그의 부인 이숙종이 살던 집 김형제 상회 : 김호의 집에서 길 건너 약 100 미터 거리에 위치해 있으며 김형순과 김호가 운영하던 회사
◆ 관련자료 : 홍선표,「재미한족연합위원회연구(1941∼1945)」, 한양대학교 박사 학위논문, 2002.
◆ 내용 : 김호 집은 김형순의 집에서 약 100 미터 거리에 위치해 있다. 金乎(일명 金廷鎭)는 서울에서 출생하였고, 1914년 유학을 목적으로 渡美하였다. 1919년 3·1운동시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의 특파원에 임명되어 3월 17일부터 5월 23일까지 63일간 미국의 10개 州 63개 지방을 순회하면서 독립의연금 1만여달러를 모금하였다. 또한 국제적 외교활동을 위해 勞動社會改進黨을 조직 , 중심인물로 활약했다. 그는 1920년부터 농업에 종사하면서 중가주의 리들리 지방에서 김형순과 함께 김형제회사(Kim Brothers Company)를 설립하였고, 특히 복숭아재배에 성공하여 르 그란드(Le Grand)와 선 그란드(Sun Grand)라는 새 품종을 개발해 부자가 되었다. 1930년 3월 중가주 한인공동회를 설립해 白一圭와 함께 미주한인연합회를 결성하였고, 북미 대한인국민회의 총회장 제도가 위원장제로 바뀐 첫 해인 1937년부터 38년까지, 그리고 1945년에 중앙집행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44년 한시대로 바뀌기까지 집행부 초대 위원장으로 활동하였고, 해방후 귀국하여 남한과도입법의원과 적산분과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김형순은 김호와 함께 복숭아 넥타린을 개발해 이를 미군에 군납함으로써 이 회사를 크게 성공시켰다. 이후 김형제 상회는 리들리 한인사회를 비롯하여 북미 대한인국민회의 독립운동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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