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바오 2024-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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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계정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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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4
    주소
  • 서울 종로구 부암동 
  • 거리 [서울](로/으로)부터 4.0km
** 길이름 유래 : 안평대군은 무릉도원 꿈을 꾼 뒤 그 정취를 안견에게 전해 천하의 명품 ‘몽유도원도’를 세상에 남기게 하는 한편, 자신은 부암동 골짜기에 무계정사(武溪精舍)를 지어 그 꿈을 실현했다. 이제 몽유도원도는 일본 천리대학의 소장품이 되고, 무계정사는 무계정사길이라는 이름으로만 남았다.

** 스토리 : 1447년, 이용은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는 어부였다. 어부는 고기를 잡기 위해서인지 혹은, 무엇엔가 이끌려서인지 강을 거슬러 힘들게 배를 몰았다. 산은 높고 골짜기는 깊었다. 그 골짜기 사이를 흐르는 강은, 마치 세상의 끝과 끝을 이어놓은 선처럼 길게 흘렀다. 한참 노를 젓고 있자니 향기가 어부의 코끝을 찔렀다. 세상 처음 맡아보는 향기는 어찌나 부드러운지 수십 년도 넘게 어부의 손에 똬리를 틀었던 단단한 굳은살까지 녹여낼 것만 같았다. 물 위로 복숭아 꽃잎들이 떠내려 왔다. 어부는 그 향기가 복숭아꽃에서 나는 것임을 깨달았다. 어부는 노를 저었고, 곧 커다란 산이 그의 앞을 막았다. 온 산에는 수십 리를 둘러 복숭아꽃이 만발하였다. 아름다운 풍경과 향기에 어부는 정신이 혼미해짐을 느꼈다. 시간은 복숭아 꽃잎처럼 바람을 타고 흩날리듯 흘렀다. 얼마나 지났을까. 정신을 차린 어부는 산 아래 계곡에서 작은 동굴을 발견했다. 어부는 이끌리듯 동굴 안으로 걸었다. 동굴의 입구는 어른 한 명이 겨우 들어갈 정도로 좁았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조금씩 넓어지다가 갑자기 밝은 빛이 쏟아져 들어오며 너른 세상이 나타났다.

복숭아나무로 둘러싸인 그곳은, 기름진 논밭과 해맑은 표정의 사람들이 어우러진 그림처럼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어부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산 속에 이런 곳이 있다니 정말 신기한 일이구나....’

어부는 호기심에 이끌려 사람들에게로 다가갔다. 살면서 한 번도 본적이 없는 낯선 차림의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의 얼굴에 가득한 미소는 어부의 마음을 두려움보다는 편안함으로 채워주었다.

“저, 말씀 좀 묻겠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산 깊은 곳까지 들어와 살게 되셨습니까?”

어부가 용기 내어 묻자 그들이 친절히 대답했다.

“조상들이 난리를 피해 이곳에 들어와 땅을 일군 후로 우리는 한 번도 이곳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땅을 파면 파는 곳마다 옥수가 흘러나오고 밭을 갈면 씨를 뿌리지 않아도 보리가 자라니 사실 떠날 일도 없었지요. 지금 밖은 어떤 세상입니까? 우리처럼 평화롭습니까?”

어부는 잠시 생각하다가 되물었다.

“평화로운 세상이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비록 풍요롭지는 않으나 주어진 것에 만족할 뿐 더 큰 것을 탐하지 않으니 삶이 저절로 넉넉하고, 내가 죽어도 내 이웃이 산다면 이곳은 사라지지 않을 테니 이곳이야 말로 영원한 평화가 깃든 곳이 아니겠습니까. 밖의 세상도 그러한지 여쭈어 본 것입니다.”

어부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며칠 동안 그곳에 머물며 마을을 구석구석 살폈다. 그곳의 모습을 마음에 단단히 새겨 넣으려는 것처럼. 떠나올 때 어부는 다시 마을을 찾기 위해 돌아오는 길목마다 표시를 했다. 그러나 그 후로 표시를 따라 아무리 헤매어도 마을을 다시 찾을 수는 없었다. 용은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며칠 동안 도원(桃源)을 다시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었던 어부의 안타까운 마음을 느끼며 탄식했다.

어느 날 안견이 용의 집으로 찾아왔다. 안견은 화공으로, 도화원(圖畵院) 종6품인 선화(善畵)에서 체아직(遞兒職)인 정4품 호군(護軍)으로 승진한 인물이다. 조선시대 화원은 최고 종6품까지 올라가는 것이 규정이었으나 그의 재주는 이러한 규정마저 무력하게 만들었다. 비범한 재주를 남달리 봤던 용은 그와 가까이 지냈다. 안견 역시 용이 소장한 고화(古畵)들을 섭렵할 목적으로 그의 집에 자주 드나들었다.

안견을 맞이한 용은 문득 좋은 생각 하나를 떠올렸다.

“자네, 내가 지난밤에 꾼 꿈을 그림으로 그려볼 수 있겠나?”

꿈을 그리라니. 안견은 갑작스런 용의 제안이 조금은 의외였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오랜 교류를 통해 용이 장난이나 일삼는 인물이 아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붓을 쥔 안견은 용의 설명에 따라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용은 동굴 입구의 풍경부터 설명했다. 수묵화에 능했던 안견은 높은 산과 깊은 계곡, 긴 강과 좁은 동굴을 거침없이 그려나갔다. 설명이 마을에 이르자, 용은 마음속에 각인해놓은 꿈속의 마을을 구석구석 세밀하게 묘사했다. 안견은 꿈에 대한 설명이 그처럼 자세한 것에 놀랐다. 두 사람은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함께 그림을 그려나갔다. 겉으로 보기에 용은 말하고 안견을 그것을 화폭에 옮기는 식이었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수많은 무언의 대화들이 오갔다. 당시의 산수화는 진경(眞景)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심상(心像)을 그리는 것이었기 때문에 안견은 용의 묘사에 따라 어렵지 않게 그림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래도 워낙 공을 들인지라 3일이 걸렸다.

그려놓고 보니 명작이었다. 안견이 그림을 보며 말했다.

“도원이군요.”

“도원?”

“도연명이 말했던 도원경 말입니다.”

“도원경...”

용은 놀라며 그림을 다시 살폈다. 정말 그랬다. 그림은 무릉도원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무릉도원을 꿈꾼 것인가?”

안견은 고개를 끄덕이며 문득 계시라도 받은 듯 말했다.

“그림의 이름은 몽유도원도로 하시지요.”

“몽유도원도?”

용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붓을 들어 그림에 제시(題詩)를 남겼다. 그림과 시가 한 화폭에 담기는 제화시(題畵詩)는 시를 쓰는 선비와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마음의 대화와 같은 것이다. 꿈을 그림으로 그리고 또, 그 그림에 시를 적어 넣은 두 사람은 당연히 심우(心友)가 될 수밖에 없었다.

용은 세종의 셋째 아들로 안평대군이라고도 불리었다. 차남임에도 어릴 적부터 권좌에 대한 야망이 컸던 형 수양대군과는 달리 욕심이 별로 없는 용은 책을 가까이 하고 시, 서, 화에 모두 능하여 삼절(三絶)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의 명망을 받았다. 조선 초기엔 왕자들 간의 왕위다툼을 방지하기 위해 세자가 아닌 왕자는 학문을 익히지 못하도록 되어있었는데, 세종은 아들들이 우애가 좋은 것에 안심하여 세자 외의 왕자들에게도 글을 가르쳤다. 글을 배워 식견이 넓어진 용에겐 오히려 그것이 고뇌의 원천이 되었다. 둘째 형의 지나친 야망에 화를 입을 것을 두려워한 것이다. 그래서 더 시나 그림 등의 풍류에 몸을 맡겼는지도 모른다. 스스로 권좌에는 욕심이 없음을 선언하고자.

“내가 도성 외곽에 집을 하나 지으려고 하네.”

어느 날 다시 찾아온 안견에게 용이 말했다.

“집이라면...”

“꿈에서 본 도원과 같은 그런 집말일세.”

안견은 용의 말에 그만 실소해버렸다.

“허허. 무릉도원은 이 세상에 없기 때문에 무릉도원입니다.”

“아닐세. 내가 꿈속에서 본 도원에서는 사람들이 모두 주어진 것에 만족하며 소박하게 살아가고 있었네. 나는 그런 집을 짓겠다는 걸세.”

용이 사뭇 진지하게 대답하자 안견은 그의 말이 진심임을 알았다.

하늘이 낸 재주는 감추기가 어려운 법이다. 용은 형 수양대군에게 맞서지 않기 위해 노력했으나 세상은 그를 수양대군의 정적으로 만들었다. 언제나 그런 현실에서 달아나고 싶었던 그는 꿈에서 본 도원을 선택했다. 소박하더라고 평화로운 삶을 살겠노라 결심한 것이다.

용은 안견과 함께 도성 주변을 꼼꼼히 둘러본 후에 한양의 북문인 창의문 밖에 집을 지었다. 새로운 집에는 ‘무계정사(武溪精舍)’라는 이름을 붙었다. 명목상으로는 별장 정도의 용도였으나 실제로는 용이 대부분의 시간동안 머물며 평화로운 나날을 보낼 곳이었다.

“이곳이 바로 내가 꿈에서 본 도원이 아니겠느냐.”

용은 집 안에 몽유도원도를 붙여놓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나는 산수를 좋아하고 속세를 좋아하지 않으니 도성에는 들어갈 일이 없구나.”

안견과 그의 몽유도원도가 함께 하는 한 용에게 그곳은 도원이 확실한 듯 했다.

그러나 평화로운 시절도 잠시, 계유년이 다가오자 사태는 오히려 악화되었다. 용이 정치에 뜻이 없음을 선언하고 무계정사로 물러나 앉았던 것이 오히려 화를 부른 것이다.

“이용이 사직을 위태롭게 하기를 꾀하여 무계정사를 방룡이 일어나는 땅에 지었으니, 마땅히 역모를 미리 막아야 합니다.”

수양대군의 측근이 대군에게 비밀리에 보고한 것이다.

식견이 넓은 용은 자신에게 닥칠 화를 미리 내다보았다. 그는 홀로 벽에 걸린 몽유도원도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곳도 도원이 아니었나...”

그는 꿈속에서 마을 사람이 했던 말을 다시 떠올렸다.

‘내가 죽어도 내 이웃이 산다면 이곳은 사라지지 않을 테니 이곳이야 말로 영원한 평화가 깃든 곳이 아니겠습니까.’

“내가 죽어도 네가 산다면...”

용은 되뇌었다.

며칠 후 안견이 다시 집을 찾았다. 용은 종을 불러 그가 중국에서 사온 값비싼 용매먹 한 덩이를 건네주며 은밀히 안견의 도포소매에 넣도록 시켰다. 잠시 후 안견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용은 비싼 용매먹이 없어졌다며 남녀종들을 다그쳤다. 종들은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고 부인하면서 안견에게 혐의를 미루었다. 물론 이것도 모두 용이 미리 지시해놓은 것이었다. 용은 짐짓 안견을 향해 눈을 흘겼다.

“안견아, 정말로 네가 훔쳤느냐?”

“공자께서 저를 위심하다니 그간의 세월이 무상하게 느껴지는군요. 그만 저는 일어서겠습니다!”

안견은 분연히 소매를 떨치며 일어섰다. 그 순간 용매먹이 그의 품속에서 떨어졌다. 용은 평소와 달리 크게 화를 내며 안견을 꾸짖었다.

“네 이놈! 그간 내가 너를 아껴 가까이 두었으나 이제 너의 본 모습을 알았으니 지금 이후로 다시는 집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말거라!”

용의 진짜 의도를 알리가 없었던 안견은 억울함에 눈물을 흘리며 마지막 인사를 하고 물러났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계유년 정난(靖難)에 휘말린 용은 목숨을 잃었다. 무계정사가 폐허가 되기 전 안견은 은밀히 그곳에 있던 몽유도원도를 빼돌렸다. 세상을 떠난 심우와 함께 꿈꾸었던 이상향을 간직하기 위해서였다.

인간은 언제나 이상향을 꿈꾸고 그것을 찾아 헤맨다.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이상향이 아니다. 그러나 이상향은, 세상에는 없어도 우리의 꿈속에는 있다. 용은 심우를 살리고 꿈꾸던 도원으로 떠났다. 이제 몽유도원도는 일본 천리대학의 소장품이 되고, 무계정사는 자리만 남았지만 우리의 꿈은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 무계정사길을 걷는 이들도 함께 꿈꿀 수 있을까.

※ 백호전서는 안견이 화를 면하기 위해 안평대군과 연을 끊고자 일부러 먹을 훔쳤을 거라는 가능성을 제기하지만 이상향을 함께 추구하던 심우가 먹 하나를 훔친 것에 안평대군이 화를 냈다는 것이 이상하다. 심우를 잃지 않기 위해서 안평대군이 스스로 꾸민 일은 아니었을까? 이 이야기는 바로 그 의문에서 시작되었다.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서울4대문 안 길 이름), 2010, 한국콘텐츠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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