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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병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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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4
    현지어
  • 세병관
  • Sebyeonggwan
    분류
  • 여행/오락 > 역사유적
    주소
  • 경남 통영시 문화동 62-1
  • 거리 [서울](로/으로)부터 328.1km
‘하늘의 은하수를 가져다 피 묻은 병장기를 닦아낸다’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세병관은 임진왜란이 끝나고 한산도에 있던 삼도수군통제영이 육지인 통영으로 옮겨오면서 지어진 객사건물이다. 세병관이란 이름은 당나라 시인인 두보의 시 「세병마」에서 가져온 것으로, 성인 남자의 키보다도 더 큰 현판의 글씨를 보고 있자면 더 이상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당시 사람들의 마음을 느끼게 된다.

임진왜란 이전에는 경상, 전라, 충청도에 각각 수군절도사를 두어 지휘하게 하였으나, 전쟁이 일어나고 지휘체계를 일원화하기 위해 삼도수군통제영을 설치하고 삼도수군통제사로 하여금 조선의 수군을 담당하게 하는데 처음으로 임명된 이가 바로 충무공 이순신이다. 전쟁 후에 여러 곳으로 옮겨 다니던 통제영이 통영에 자리 잡은 것은 선조 36년(1603년)으로, 6대 통제사인 이경준에 의하여 세병관을 비롯한 건물들이 지어졌다. 그 이후 통영은 삼도수군의 중심지로 통제영의 시대를 열어가는데 지금도 통영하면 떠오르는 유명한 나전칠기는 그때 통제영에 물건을 댈 요량으로 만들어졌던 12공방 중 한 곳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망일루를 거쳐 삼문인 지과문을 지나면 세병관이 나온다. 여수의 진남관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그래도 목조 건물로 작지 않은 크기를 자랑한다. 바깥으로 통로가 만들어져 있고 안으로는 분합문이 들려져 있다. 들여다보면 내부에 한층 더 높이 만들어진 작은 방을 볼 수 있는데, 임금의 궐패를 모시고 있는 곳으로 이곳에서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을 향하여 예를 올렸다고 한다.

지과문 옆의 2층 정자인 수항루는 통영시내에 있던 것이었으나 근래에 이곳으로 옮겨온 건물로 이름 그대로 왜장에게 항복문서를 받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세병관 앞으로 이경준의 치적을 담은 두룡포기사비를 비롯해 이곳을 거쳐간 통제사들의 공덕비가 세워져 있다. 현재 세병관 주위로 옛 통제영지를 복원하기 위한 공사가 한창이다. 세병관을 둘러본 후에는 바로 앞에 있는 통영 향토역사관을 관람해보자. 통제영 시기의 통영에 관한 내용과 함께 일제 때 통영해저터널을 만든 내용들이 전시되어 있어 통영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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