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육사가 체포되어 순국했던 장소 ... 이육사(1904~1944)는 경북 안동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백학학원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1924년 일본 유학을 결행하였다. 1927년 중산대학에서 수학하다가 귀국하였는데, ‘장진홍 의거’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렀다. 1932년부터 중국 동북지역과 북경을 오가면서 활동하다가 그해 남경에서 문을 연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제1기생으로 입교하였다. 다음해 7월 국내에 잠입하였다가 체포되었는데 기소유예로 석방되었다.
이육사는 1943년 당시 베이징에서 신문보급소를 경영하던 이상호에 집에 머물고 있었는데, 그해 말 국내로 잠시 들어왔다가 체포되었다. 국내에서 체포된 이육사는 다시 베이징으로 압송되어 북경에 있던 일본총영사관 감옥에 투옥되었다. 그는 폐병으로 원래부터 몸이 약했는데, 투옥되면서 잘 먹지도 못하고 추운 감방에서 고생하느라 병이 심해져 결국 감옥에서 순국하였다.
그가 사망한 장소는 기록에 의하면 ‘북경시 내일구 동창호동 1호(北京市 內一區 東昌胡同 1号)’로 되어 있다. 이곳은 육사보다 일곱 달 전에 조선의용대원으로 활약하다가 순국한 영천 출신 이원대가 1943년 6월 사망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왕부정(王府井)에 위치한 이곳은 구 일본
헌병대 북경본부 부속 형무소였으며, 현재 부근에는 중국사회과학원 근현대사연구소가 위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