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바오 2024-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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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의병, 윤희순 집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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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지어
  • 여성 의병, 윤희순 집터
    분류
  • 여행/오락 > 역사유적
    주소
  • 강원 춘천시 남면 충효로 1166-47
  • 거리 [서울](로/으로)부터 58.3km
윤희순의 집(시댁)이 자리잡은 곳은 고흥 유씨들이 모여 살던 집성촌이었다. 고흥 유씨 일족들은 춘천 남면 가정리 일대에 터전을 잡고 수 백년 동안 생활해왔다. 이들은 일찍부터 화서학파의 중심세력으로 이항로의 학문 계통을 계승해왔다.
화서 이항로(1792~1868)를 중심으로 형성된 화서학파는 한말 제국주의 세력이 밀려오는 시대 상황 속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하며 큰 영향력을 미쳤던 대표적인 학파이다. 화서학파의 학문은 실천을 전제로 한 의리와 명분을 중요시하였다. 화서학파의 일원 중 절대 다수가 제국주의 침략에 저항하는 항일운동가로 활동한 점은 이런 학문적 특성과 관계가 깊다.
유중교가 1836년부터 이항로의 문하에서 수업을 받기 시작하여 1891년에는 화서학파의 수장격이 되었고, 유인석, 유중악, 유홍석 등 고흥 유씨 인물 다수가 화서학파에서 수학하였다. 이들은 일찍부터 위정척사운동에 합류하여 서양과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을 경계해왔다. 일본과 병자수호조약을 체결하여 개항을 한 시기부터 일본의 침략야욕을 간파하여 조선의 미풍양속을 해치고 조선의 경제가 제국주의의 침략에 그대로 예속될 것이라는 점을 강하게 주장해왔다. 춘천 지역은 이항로의 학통을 이은 화서학파들이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어 의병봉기의 분위기가 일찍부터 성숙되어 있었다.
1895년 8월 일본인에 의해 국모가 시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이어 11월에는 단발령까지 발표되자 춘천 일대의 유생과 민중들은 일제히 봉기하였다. 이들은 1896년 1월 18일 춘천관찰부를 점령하고 일대의 군사와 군수품을 모아 서울공격을 목표로 가평까지 진격하였으나 관군의 반격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유인석 역시 의병활동에 뛰어들었다. 유인석은 1896년 2월 7일 이춘영, 안승우 등과 제천에서 의병을 일으키고 의병장에 추대되었다. 한 때 3,000여 명에 이른 유인석의 제천의병은 제천, 충주, 단양, 원주 등지를 석권하면서 친일 관찰사와 군수 등을 처단하였다.
윤희순의 시아버지인 유홍석 역시 화서학파의 이름난 유림으로 의병봉기에 합류하여 활동을 전개하였다. 윤희순의 의병활동 역시 유홍석의 의병정신이나, 고흥 유씨 일가의 학문적 전통에서 연유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윤희순 뿐만 아니라 유인석의 부인이나 최골댁 등 고흥 유씨 가문의 안사람들이 ‘안사람 의병’으로 적극적인 활동을 벌인 것도 같은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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