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의 섬으로 알려진 제주도에는 역사에 이름을 남길 만큼 유명한 인물들이 유배를 왔다. 1907년 민족교육의 산실로 알려진 오산학교를 세운 이승훈도 그 가운데에 포함된다. 더구나 제주도에 온 마지막 유배자로 기록되고 있다.
제주도에 유배 온 사람들을 꼽아보아도 기묘사화 때 조광조에 이에 2인자였던 김정, 효종 때 대명의리론으로 유명한 우암 송시열, 추사체로 유명한 김정희, 온건개화파로 영선사를 이끌고 청나라에 다녀왔던 김윤식, 강화도 조약을 반대하는 상소와 의병으로 유명한 최익현, 급진개화파로 철종의 부마였던 박영효 등이 꼽을 수 있다.
이승훈이 제주도에 유배를 오게 된 것은 이른바 안악사건 또는 안명근 사건에 연루되어 1911년 4월 말이나 5월 초에 제주도에 도착하였는데, 그해 10월 105인 사건 주동자의 한 사람으로 지목되어 서울로 끌려가기까지 약 4개월 동안 제주도에서 유배생활을 하였다.
이승훈이 머물렀던 집의 주인이었던 김희주(金熙胄·1854~1937)는 사헌부 감찰과 강원도 평창군수‧제주군수‧정의군수를 지내며 개화사상가들하고도 어울렸던 인연으로 제주도에 유배 온 박영효와 이승훈에게 거처를 제공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