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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숙 생가(혁신유림계 독립운동의 선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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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지어
  • 김창숙 생가(혁신유림계 독립운동의 선구자)
  • Simsan Gimchangsuk Birthplace
    분류
  • 여행/오락 > 역사유적
    주소
  • 경북 성주군 대가면 칠봉2길 50-4
  • 거리 [서울](로/으로)부터 215.7km
김창숙 생가(혁신유림계 독립운동의 선구자) ... 김창숙의 본관은 의성이고, 호는 심산(心山)·벽옹(躄翁)이다. 김창숙은 1905년 을사오적을 처형하라는 상소를 올렸다가 8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1907년부터 성주지역 국채보상운동을 이끌었으며, 1908년 11월에는 대한협회 성주지회에 참여하였다. 1910년에는 사립 성명학교를 설립하여 신교육을 통한 국권수호의 길을 모색하였다.
1919년 3․1만세운동이 일어나자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보내는 제1차 유림단 의거를 주도하였다. 그 뒤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기여하였으며, 1923년 국민대표회의에 참여하였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침체에 빠지자 새로운 돌파구를 찾던 김창숙은 만주와 몽골의 접경지대에 황무지를 개간하여 새로운 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 1924년 국내로 들어와 경상도 일원에서 유림을 대상으로 모금 활동을 펼쳤으나 목표로 삼은 금액을 모으지 못했다. 이것이 그가 주도한 2차 유림단 의거이다. 그는 이때 모금한 돈으로 1926년 12월 나석주 의거를 일으켰다.
1925년에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 임시의정원 부의장으로 활약하였다. 1927년 일본총영사관 소속 경찰에게 붙잡혀 14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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