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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좌진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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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지어
  • 김좌진 생가
  • Kimjwajin birthplace
    분류
  • 여행/오락 > 역사유적
    주소
  • 충남 홍성군 갈산면 백야로546번길 12
  • 거리 [서울](로/으로)부터 113.1km
만주의 흰 호랑이 백야 김좌진, 우리의 독립운동에서 김좌진은 대표적 독립운동가라고 할 수 있다. 흔히 만주에서의 독립운동에 초점을 맞춰, 김좌진을 이해하고 있는데, 만주에서의 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이전, 국내에서도 활발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김좌진 생가는 충청남도 홍성군 갈산면에 있는데, 원래는 현 갈산고등학교가 생가 터라고 하나, 호명학교 건립 후 안동김씨 종택을 개조해 학교로 만들고 지금의 생가 터에 옮겨와 살았다고 한다.

김좌진이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내고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시기는 일본이 우리나라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고, 결국은 식민 지배하던 시기이다. 일본은 운요호 사건을 계기로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시켜 나갔다. 동학농민운동으로 조선이 청에 병력을 요청하자 톈진조약을 구실로 일본군을 파병하고, 이후 청과 전쟁을 하고 경복궁을 점령하여 개혁을 강요하는 등 조선에서 힘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러시아와 전쟁을 기점으로 조선에 대한 배타적 지배권을 강화하면서 마침내 1910년 한ㆍ일병합조약으로 조선의 국권을 강제로 빼앗았다. 1910년대 일본은 조선총독부를 설치하여 헌병경찰을 앞세워 무력으로 통치하는 무단통치를 실시하고 토지조사사업을 실시하여 기한 내 신고하지 않은 토지는 몰수하였다.

이 시기 독립운동은 국내에서는 대한광복회 등의 비밀결사를 중심으로, 만주․연해주 등지의 국외에서는 독립운동기지 건설 등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1919년 일제의 무단통치에 저항하는 3․1 운동과 국제여론의 악화 등의 영향으로 일제는 문화통치를 실시하였다. 이때 상하이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워졌고, 만주에서는 활발한 무장독립운동이 전개되었으며, 국내에서도 실력양성운동 등 꾸준한 독립운동이 전개되었다. 이 시기 독립운동의 어려움에도 중국에서는 임시정부 세력을 중심으로 지속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해 나갔고, 국내에서도 농민운동이나 노동운동, 문자보급운동 등 독립운동의 불길이 사그라지지 않았다.

국내와 만주에서 활발한 독립운동을 전개한 김좌진은 1889년 음력 11월 24일 충청남도 홍성군 고도면(현 갈산면) 행산리에서 태어났다. 홍성은 고려시대부터 서해안권의 행정과 교통의 중심지로서 번성했으며, 고려 말 충신 최영 장군과 사육신 중 한 명인 성삼문, 위정척사운동의 사상적 배경을 제공한 남당 한원진, 홍주의병을 이끈 지산 김복한, 민족대표 33인의 한명인 만해 한용운 등이 태어난 곳이다. 홍성의 원래 지명은 홍주였는데, 1914년 일제 강점기 행정구역 개편으로 홍성으로 바뀌었다. 홍주와 공주의 일본식 발음 비슷해서 ‘홍성’으로 바꾸었다고 하나, 홍주의병이 일어나는 등 홍주의 항일의식이 높아 그 지역의 성격을 없애려고 지명을 바꾸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홍주의병은 1895년에 처음 일어나 항일분위기를 고조시켜 을미의병이 전국적으로 확산하는데 영향을 주었다.

그가 태어난 1890년대는 청, 러시아, 일본 등 강대국 간의 대립 속에 국내․외 정세가 급변하던 시기였다. 그런 과정 속에 일본의 한국에 대한 영향력이 점점 강화되어 국권이 피탈 되었고, 이것을 직접 경험한 김좌진은 일본을 몰아내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게 되었다. 특히 홍주는 일제시대 의병항쟁의 중심지였는데 이런 지역적인 특성도 김좌진의 독립 의지와 방법 등에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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