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바오 2024-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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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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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지어
  • 대보단
  • Daebodan
    분류
  • 여행/오락 > 역사유적
    주소
  • 서울 종로구 원서동 
  • 거리 [서울](로/으로)부터 3.5km
황단이라고도 하는 대보단 지역의 조경처리기법에 관한 정보

- 대보단은 명나라 신종황제를 제사지내는 장소이다 황단이라고도 하며 단(壇) 즉 제사하는 단이란 뜻이며 잉에 대한 정보임.

대보단은 숙종30년(1704) 12월에 임진왜란 때 조선에 군대를 보내준 명나라 신종(神宗) 황제를 제사지내기 위해 만든 것으로 예조와 공조에 명하여 금원(禁苑)밖 별대영(別隊營)의 고사(庫舍)를 철거하고 대보단을 조성 매년 계춘(季春)이면 제사를 올렸다.
영조25년(1749) 기사(己巳)에 명나라 태조(太祖)와 의종(毅宗)황제를 병사(竝祀)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단(壇)의 제도는 좌의정 이 여의 말에 따라 우리나라 사직의 제도를 모방하여 유(壝)가 있고 장(墻)이 있는데 담장높이는 4척으로서 사직단에 비하여 1 척이 높으며 사방 넓이가 25척이며 네 면에 모두 9단의 층계가 있었다. 유와 장의 네 면은 모두 37척이요 단소(壇所)로부터 외장을 쌓아 행인이 내려다보지 못하게 하였다. 황단이라 하기도 하고 대보단이라 한다.
황단은 황제를 제사하는 단이란 뜻이고 대보단(大報壇)은 큰 은혜에 보답한다는 뜻이다.
대보단은 망한 명나라에 사대하고자 세운 단이 아니다. 청나라에 대한 반감으로 청나라에 대한 멸시의도이며 조선의 주체성을 견지하는 정신적 기둥이 되는 것이다.
대보단에 이르는 것은 요금문을 나가서 판석교 2개를 지나 공복문과 열천문으로 들어가고, 또 조종문을 나가서 석교를 지나 열천문으로 들어가 단에 이른다.
단 내담 안에는 한포기의 나무도 심지 않았다. 단위의 담에는 홍살문이 사방으로 4개나 서있다.
동궐도에서 보면 단 동쪽에 봉실3칸 집이 있는데 삼실(三室)의 위판을 봉안하고 있었다. 이 세 개의 위판은 명의 태조, 의종, 신종 삼실의 위판을 말한다. 대보단의 남행각의 공복문 내에는 제정(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