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바오 2024-04-19
  • 언어선택
한민학교
+
1234
    현지어
  • Ulitsa Amurskaya, 7
    분류
  • 여행/오락 > 역사유적
    주소
  • 아시아 러시아 러시아 Приморский край, Владивосток, в районе дома 7 по улице Хабаровской
  • 거리 [서울](로/으로)부터 746.8km
역사적 의의
1912년 3월 신한촌에 세운 4년제 고등소학ㆍ중등과정의 민족교육기관
연해주 블라디보스톡 하바로브스카야 7번지 일대


설명
1911년 창립된 권업회는 민족주의 교육을 고취하기 위해 먼저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에 있던 한인 학교인 계동 학교를 확대ㆍ개편하여 한민학교를 설립하고 민족주의 교육의 중추기관으로 삼았다. 이 학교는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에 위치한 오랜 한인 거주 구역인 개척리에 있었으나, 개척리를 러시아 당국이 페스트 유행 등의 위생문제를 구실로 시 북쪽 변두리 지역인 아무르만이 내려다보이는 구릉지대에 있는 신한촌으로 강제로 이주시켰다. 신한촌을 러시아식 이름으로 '카레이스카야 스라보카'라 호칭하고 교사(校舍)를 양옥 대건물로 건립하였다. 교사는 권업회 교육부에서 한민회와 공동으로 1912년 3월 신한촌에 크게 신축한 것으로 240명을 수용하는 규모였다. 현관, 정문과 각 실내에는 태극 문양을 새겨 넣어 민족주의 교육이념을 상징하였다. 예산은 총 4,698루블로 이 중 2천 루블은 권업회 부회장인 이종호(李鍾浩)와 일제강점 직후 순국한 이범진(李範晉)이 유언으로 각기 1천 루블씩 기증한 것이었다. 이 학교는 1백 데샤진(약 100일경)이나 되는 개간 경작토지까지 대부받아 그 수익으로 학교경비를 충당하였다. 한민학교는 교장ㆍ교감 이하 교사(敎師) 26명으로 인건비 지출만도 연간 8,580루블에 달하였다. 학생은 모두 기숙사에 수용하였는데, 비용은 연간 1,680루블이었다. 교과목은 성경ㆍ윤리ㆍ국어ㆍ외국어ㆍ수학ㆍ역사ㆍ창가ㆍ체육 등 기초 교양과목과 실업 분야 전공과목을 이수하도록 구성되었다. 1학년은 상업대요ㆍ농업대요ㆍ목축학ㆍ경제학ㆍ비료학ㆍ회사법, 2학년은 부기학ㆍ식물학ㆍ토양학ㆍ동물학ㆍ재배론ㆍ기상학, 3학년은 공업대요ㆍ물리학ㆍ임업대요ㆍ어험범(魚驗法)ㆍ건축공학ㆍ은행론, 4학년은 화폐론ㆍ화학ㆍ광물학ㆍ기계학ㆍ전기학ㆍ해상법(海商法)ㆍ부행양학(附海洋學) 등이었다. 위의 교과 내용으로 보아 학생들은 민족의식 고양과 아울러 근대사회에 필요한 전문지식도 습득하였음을 알 수 있다. 민족의식 고취는 한민학교에서 특히 역점을 둔 교과내용으로 학생들이 배우고 부르던 창가도 「보국가(報國歌」ㆍ「대한혼(大韓魂)」ㆍ「국기가(國旗歌)」ㆍ「운동가」ㆍ「국민가」ㆍ「소년건국가」ㆍ「한반도가」 등으로 모두 이러한 취지에 따라 불렸다. 러시아혁명 내전 기간 자료들이 불타 없어져 1910년대의 주소를 파악하기 어렵다. 학교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으며 현재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주변뉴스
< 1/2 >
주변포토
< 1/2 >
동종 정보 [내위치에서 746.8km]
실시간 관심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