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시베리아 극동 지방이 제2의 전선이 되는 것을 우려한 제정러시아는 일본과 타협하여 한인들의 항일 독립운동을 탄압하였다. 그러나 제정러시아를 무너뜨린 1917년 2월 혁명과 그 뒤를 이은 10월의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자 한인들은 민족적 각성과 혁명적 분위기 속에서 침체하였던 항일 독립운동을 다시 전개하였다. 1917년 5월 21일부터 31일까지 11일 동안 한인대표 1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우스리스크에서 ‘전로한족회 대표자회의’가 개최되었다. 1917년 12월에는 제2차 대표자회의를 우스리스크에서 개최하여 위원장 문창범, 부위원장 김립을 중심으로 전로 한족 중앙총회(고려국민회)를 조직하였다. 우스리스크에 본부를 둔 전로 한족 중앙총회는 연해주 각 지역에 지방회를 설치하였으며 기관지로 《청구신보》를 간행하였다. 이후 볼세비키 혁명에 전폭 가담하는 문제로 내부적 진통이 있었으나 당시 전로 한족 중앙총회는 러시아 한인의 최고자치기관이자 대표적인 항일 독립운동기관이었다. 이후 전로 한족 총회는 1919년 2월 대한국민의회로 확대 개편되며 노령 임시정부를 수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