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바오 2024-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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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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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지어
  • 주흘관
  • Juheulgwan
    분류
  • 여행/오락 > 여행지
    주소
  • 경북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
  • 거리 [서울](로/으로)부터 131.2km
문경새재 제1관문인 주흘관은 고려 태조가 경주를 순행차 고사갈이성을 지날 때 성주 흥달이 세 아들을 차례로 보내어 귀순하였다는 전설이 서려 있다. 주흘관은 영남지방과 서울간의 관문이며 군사적 요새지이다. 삼국시대에는 이보다 동쪽의 계립령(鷄立嶺)이 중요한 곳이 었으나, 고려초부터 이곳 초참(草站)을 혹은 새재라고 하므로 조령(鳥嶺)이라 이름하고 중요한 교통로로 이용하였다. 주흘관은 험한 산세로 이루어진 조령산과 주흘산(主屹山)이 좌우로 펼쳐진 계곡에 위치한 천연의 요새지이다.

조선 선조25년(1592) 임진왜란 때 왜장 고니시 유끼나가가 경주에서 북상해오는 카토오 키요마사의 군사와 이곳 조령에서 합류했을 정도로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점이었다. 이 때 조정에서는 이곳을 지킬것이라 생각했지만 신립장군은 때가 늦었으므로 충주 탄금대로 후퇴해서 배수의 진을 치고 왜군과 최후의 일전을 벌였으나 대패하였다. 그후 충주에서 일어난 의병장 신충원이 오늘날의 제2관문에 성을 쌓고 교통을 차단하여 왜병을 기습하였다. 이곳의 군사적 중요성이 재확인 되자 군사시설을 서둘러 숙종 34년(1708)에 이르러서야 3중의 관문을 완성 하였다. 문경에서 충주로 통하는 제1관문을 주흘관(主屹關), 제2관문을 조동문(鳥東門) 혹은 조곡관(鳥谷關), 제3관문을 조령관(鳥嶺關)이라 이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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