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개인 사업자들이 고객 확충에 한 발 앞서가는 추세가 계속되자, 아예 국영으로 세워진 건물을 돈주들에게 임대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국영경제가 사경제에 의존하는 현상까지 등장한 것이다. 청진 화학섬유공장 건물 한 편에도 ‘수지·늄(알루미늄)창제작’이란 간판이 들어섰다. 개인이 수지창과 알루미늄 창을 제작하는 기업소를 공장 건물을 임대해 운영하는 것이다.
국가 소유의 건물을 돈주들이 운영하는 기업소에 빌려주는 ‘임대업’은 김정은 정권 들어 특히 성행하는 추세다. 돈주들은 신규 부지를 승인 받아 새 건물을 지어 기업을 운영하는 데 비해 시간과 돈을 절약할 수 있고, 당국으로서도 ‘파리 날리던’ 건물을 빌려주고 대가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셈이다.
소식통은 “돈주들이 당 간부들에게 일정 금액을 바치고 국영 건물을 임시로 빌려 자신들의 기업소를 운영하고 있다”면서 “국영 건물 임대는 공식적으로는 불법이지만, 돈벌이가 시원치 않은 당 간부들은 건물을 빌리겠다는 돈주가 나타나면 발 벗고 나설 정도”라고 말했다. 소식통은 이어 “건물 임대료는 지급할 돈이 달러인지 내화(북한 돈)인지, 그리고 지급 시기는 언제로 할 것인지에 따라 달라진다”고 덧붙였다.
이렇듯 북한 시장화는 2002년 7·1경제관리개선조치 전후로 당국의 제한적 허용 하에 전개되는 듯 보였지만, 지금 오히려 국영경제가 사경제를 뒤따라가는 형국이다. 시장화가 당국의 통제를 벗어난 데 이어, 이제는 국영경제 역시 사실상 사경제를 통해 유지되는 역설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주민들 사이에서도 ‘시장의 원리’에 따라 장사가 이뤄지는 문화가 더욱 급속히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정권으로선 결코 달갑지 않은 일이지만, 국영경제가 사경제에 편승해 유지되는 상황까지 온 이상 섣불리 시장 단속 및 통제에 나서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대해 소식통은 “이전까지는 대형 건설 사업이나 편의 봉사는 국가적 사업으로 취급됐지만, 지금은 이런 분야에까지 시장 원리가 작동하고 있다”면서 “국가 자체를 개조한다는 마음을 먹지 않는 이상 이런 구조를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돈주의 권력이 지나치게 비대해지거나 주민들이 ‘당(黨)’ 대신 ‘돈’을 중시하는 추세가 체제 균열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시범겜(본보기)’ 차원에서 돈주나 장사꾼들을 대상으로 매를 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