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 4일 낮 1시 서울 명동 거리. 화장품 가게 곳곳에서 점원이 나와 중국어와 일본어로 호객을 하고 있다. 하지만 가게 안쪽은 대체로 한산하다. 립스틱을 짙게 바른 점원 김모(26)씨는 “관광객 발길 자체가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2년 전 명동 거리를 가득 채웠던 일본인은 보기 힘들고 그나마 유커(旅客)가 가끔 지나다니면서 명동 거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댄다. 주변 백화점도 사정은 비슷하다.







# 같은 시각 도쿄 긴자(銀座)에는 백화점마다 유커가 넘쳐난다. 이들은 닥치는 대로 쇼핑에 나선다. 명품에는 가격표가 붙어 있어서 굳이 긴 말이 필요없다. 폭풍쇼핑으로 불리는 ‘바구카이(暴買い)’로 매장을 휩쓸고 다니는 데 현금을 턱턱 내놓는다. 지난해 10월부터 면세 대상이 화장품·식품 등으로 추가 확대되면서 일반 가게도 유커로 북적댄다. 최근 일본 언론이 시시각각 전하는 일본의 풍경이다.







958만명 대 1448만명-. ‘굴뚝 없는 산업’으로 불리는 관광산업에서 올 1~9월 한·일 양국의 성적표다. 한국은 2009년 이후 지난해까지 6년 연속 외국인 관광객 유치 실적에서 일본을 압도했다. 그 사이 어떤 일이 있어서 이런 결과가 빚어졌을까. 통상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가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을 끊어놓고 엔저(低)가 진공청소기처럼 외국인을 일본으로 빨아들인 탓이라고 분석한다.







관광산업이 미래의 먹거리로 떠오르자 최근 열린 한·중·일 3개국 정상회담에서는 2020년까지 3국간 인적 교류를 3000만 명으로 늘리기로 합의했다. 이를 위해 3국 정상은 동아시아 역내 관광을 촉진하기 위해 ‘동아시아 방문 캠페인’(Visit East Asia Campaign) 같은 공동 마케팅도 추진하기로 했다. 한국은 이 캠페인에서 과연 실속을 차릴 수 있을까. 현재 국내 관광산업의 현주소로는 그럴 것 같지 않다. 오히려 현재 상태로는 관광객을 일본에 다 빼앗길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아베노믹스’의 관광산업진흥 정책을 보면 짐작이 간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2013년 6월 일본재흥전략에서 관광을 성장전략의 핵심 기둥 가운데 하나로 내세우면서 2030년 외국인 관광객 3000만 명 유치 계획을 세웠다. 처음엔 회의론이 비등했다. 1000만 명도 안 되는 외국인 관광객을 어떻게 3000만 명으로 늘릴 수 있겠느냐는 반문이었다.







그러나 아베의 계획은 이듬해부터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2013년 사상 처음 1000만 명을 돌파하면서 외국인 관광객이 늘더니 올 1~9월에는 한국을 앞질렀다. 이런 추세라면 연말에는 2000만 명 기록을 조기에 달성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아베의 ‘관광입국’ 정책은 지난 2분기 외국인 소비액이 사상 최대를 기록하면서 수치로 성과가 확인됐다. 일본 관광청에 따르면 4∼6월 방일 외국인 소비액은 전년동기대비 82.5% 급증한 8887억 엔(8조3170억 원)이었다. 반면 한국은 올 1~9월 외국인 관광객이 전년 동기에 비해 10.3% 줄어든 958만여 명에 그쳤다. 한·일간 관광산업 역전의 표면적 이유는 일본의 엔화 약세, 한국의 메르스 같은 특수요인이 꼽힌다.







그러나 이게 전부가 아니다. 과감한 규제 개혁이 일본의 관광산업 경쟁력을 단숨에 높였다. 관광객 입국을 위해 공항과 항만을 신속하게 확충하고 숙박시설의 외국인 유치 환경을 개선했다. 그러면서 아베는 쇼핑투어리즘을 내걸고 관광객이 일본에서 지갑을 열면서도 즐거운 여행이 되게 만들었다. 이를 위해 소비세 면제 품목을 과감하게 확대해 2012년 4173개였던 면세점이 올 4월 1만8779개로 급증했다. 카지노도 과감하게 허용한다는 방침이다. 마치 덩샤오핑이 자본주의를 도입하면서 ‘흑묘백묘론’(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뜻으로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상관없이 중국 인민을 잘 살게 하면 그것이 제일이라는 의미)을 내세웠던 것처럼 아베도 굴뚝없는 관광산업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키우고 나선 것이다.







규제 개혁은 일본 관광산업의 내부 경쟁력과 맞물리면서 힘을 발휘했다. 다섯 가지만 추려본다. ①엔저(低)=일본 여행 경비가 싸지면서 관광객 크게 늘어나는 것은 사실이다. ②매력=일본 관광의 매력은 오모테나시(おもてなし) 정신에서 나온다. 고객에 대해서는 한치의 소홀함도 없이 접대해야 한다는 고객 모시기 문화가 뿌리깊다. 료칸에 가면 저녁에 가이세키 요리가 나올 때는 기모노를 입은 종업원이 문지방부터 무릎을 꿇고 들어와 그날 요리의 개념 설명하는 곳이 적지 않다. ③음식=일본은 미슐랭 별(우수 식당에 별점 3개가 최고)이 세계 최대다. 뒷골목 우동집도 회사원이 500엔도 안 되는 돈으로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반면 미식도 가능해초밥 1인분에 3만엔 받는 곳도 있다. 그만큼 일본에선 음식 서비스의 깊이와 폭이 크고 다양하다. ④친절=일본에서는 고객에 대한 친절이 몸에 베어 있다. ⑤쇼핑=일본에선 상품이 풍부해 쇼핑 천국이다. 가격별로 다양한 모델이 있고 디자인도 차별화돼 있어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상품화할 수 있는 축제(마쓰리)도 수천 개에 달한다. 일본이 올해 세계 여행·관광산업 경쟁력 순위에서 아시아 1위를 차지한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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