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산우회가 야간 산행을 하자고 한다.



아니, 웬 야간 산행인가? 군 시절에 억지스런 야간 행군과 작고하신 어머니 상 치르는 것 외에는 날밤 세우는 것은 생각도 못해 봤는데..



아, 그런데 그 무덥던 여름의 기운이 한풀 죽으면서 밤에는 선선한 바람이 살갑고, 보름달이 찬연하다. 이 보름달을 벗삼아 밤새 걸어 보는 것도 참으로 즐거운 일일 것이다. 좋다. 한번 밤새 걸어 보도록 하자. 스스로 원해서..



2015년 8월 28일 금요일 저녁 9시, 북경산우회원 14명은 小五台山 야간 산행을 떠났다.



설레고 부담스런 마음 한 곁에 스멀거렸지만, 산행 동우 일행 중 초등학교 5학년생인 성환이가 합류했다. 그것도 지난주 해타산 15킬로를 종주하고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반짝이며 기대에 찬 모습을 보니, 불안했던 마음이 왠지 쑥쓰러워진다. 참, 성환이 너 대단하다.



14명을 태운 버스는 북경을 출발하여 張家口 소오대산을 향해 힘차게 질주한다. 최근 중국 전승절 행사 준비로 차량 2부제 때문인지 버스는 거칠 것이 없이 달리고 있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 환하게 비추는 달빛이 교교하다. 그리고 고향 떠나 타향에 있는 여행객들의 마음 한 곁의 쓸쓸함과 그곳에 가면 무언가 주고 받을 것과 같은 기대감에 마음 설레게 한다. 달리는 차 안에서 주고 받는 담화, 그리고 준비한 치맥의 정다움..



여행은 각자의 생각을 안고 스스로의 즐거움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누구는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고, 누구는 한 잔술에 회포를 풀고, 혹자는 창 밖의 달빛을 하염없이 쳐다보고.. 그냥 그렇게 자기 입맛에 맞게 흘러간다.



새벽 12시 30분에 현지에 도착했다. 소요시간은 3시간 30분, 순조로운 교통 사정으로 예정 보다 일찍 도착했다.



이제 본격적인 야간 산행을 앞두고 밤참을 챙겨 먹어야 한다고 한다. 저녁과 아침 사이에 한번 더 먹어야 한다는 것이 생경하지만, 밤새 걸어야 하기 때문에 밤참은 필수란다. 그래서 따뜻한 해장국에 밥 말아먹고 출발이다. 새벽 2시다.



현지 안내인이 준비한 삼발이 트럭에 14명이 종이 장처럼 접혀서 타고, 산행 포장도로를 30분 달렸다. 그리고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산촌에 깔린 여분의 포장도로는 야간 산행을 감상하기에 최적이다. 하늘은 청명하고 별들은 제 모습대로 반짝이고 보름달은 처연하며, 달빛에 빛이 나는 하얀 아스팔트 길, 길 따라 흐르는 콸콸 흐르는 시냇물 소리, 산기슭에 울려 퍼지는 가을 벌레들의 합창, 이름 모를 산새들의 한 두 번의 푸드덕거리는 소리, 누군가 이름 붙인 ' 별빛 소나타' 그 자체다.



습관상 머리에 두른 랜턴 불빛을 끄니, 희미했던 달빛이 하얀 보도를 선명하게 밝히고, 주변 풍경의 조화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



달빛이 저렇게 아름다웠단 말인가? 그래서 이태백은 달빛에 취해서 한잔, 또 한잔을 마시고, 그때 마다 시한 수를 읊었었나 보다. 그리고 어느 수필가는 " 한 점 구름도 없이 비치는 보름달을 하염없이 그저 바라보는 것 보다, 새벽녘까지 기다려 아스라히 떠오르는 달을 바라보는 것에서 보다 깊은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연한 푸르름을 띠고 있는 모습은 보다 정감을 불러 일으키며 이러한 달이 깊은 산의 나뭇가지에 걸쳐 있는 듯이 보이거나, 나뭇가지 사이로 달빛이 새어 나올 때에, 또한 비가 올 듯한 먹구름 사이에 숨어 있는 달의 모습은 다른 어떤 모습보다도 감동적이다" 라고 설파하였다.



너무나 섬세한 수필가의 감성과 표현에 절절한 공감이 간다.  딱, 오늘 밤의 달빛이 그렇다.



자연의 친근함, 소오대산의 정다움..

포장 길을 지나서 본격적인 东台 능선의 산길을 따라 걷기를 어언 2시간 반, 천천히 여명이 밝아 오고 있다.



새벽을 알림은 산새들의 부산한 움직임과 들짐승들의 조용한 들썩거림 속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동녘은 서서히 붉은 빛으로 물들어 간다.

자연의 위대함을 글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하다. 그냥 보기에 아름답고 가슴이 먹먹해 올 뿐이다.



주변이 환해 지고, 태양이 떠오르니 햇빛에 반사되는 동대 정상 봉의 모습이 너무나 선명하고 아름답다. 오늘도 날씨는 쾌청하여 멀리 있는 산과 능선이 눈앞에 펼쳐 진 듯하고, 몇 발자국 물러서서 뜀뛰기라도 하면 저 먼산에 단번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1시간이면 충분하다고 여겨 진 눈앞의 소오대산 능선간의 거리는 실제 2~3시간이 소요되어 고생 바가지였다. 세상에 좋은 것이 꼭 좋기만 한 것은 없다.



자, 그럼 소오대산에 대해 소개해 보도록 하자.



주변에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 소오대산을 모르는 사람이 있겠는가?  그런데 필자는 가볼 곳은 그런대로 다녔는데 이곳은 처음이다. 이제서야 인연이 시작 된 셈이다. 소오대산은 트래킹을 좋아하는 산악인들이 선호하는 1위 코스라고 한다. 왜냐고 하면 '백문이 불여 일견' 이다. 소오대산 코스 곳곳마다 한국의 등산 구락부 들의 기념 리본이 걸려 있다. 마치 한국의 어느 산야를 걷고 있는 느낌이다.



소오대산은 河北省 张家口市 蔚县 경내에 위치한 명산으로서, 다른 이름으로는 东五台山, 雪山이라고도 불렸다. 소오대산은 동대, 북대, 중대, 서대, 남대 등 5개의 봉우리가 있다 하여 오대산으로 불리였으나, 산서성에 위치한 불교의 성산인 오대산 (주봉이 해발 3450 미터)에 비해 고도가 낮기 때문에 소오대산 (주봉이 해발 2,882 미터)이라고 명명되었다. 소오대산은 하북성의 넓은 평야 지대 한가운데 우뚝 솟은 명산으로서, 인근 평야 지대는 중국 고대 전설의 황제와 치우천황의 한판 승부가 펼쳐 졌던 '탁록전쟁'의 역사적 현장이기도 하다.



소오대산의 매력은 고산 지대로서 2천 미터 이상의 능선에서는 삼림이 전혀 없이 저 멀리 까지 한 눈에 조망 할 수 있는 탁 트인 전망과, 기기 묘묘한 봉우리와 기암괴석 사이로 능선을 따라 오르락 내리락 끝없이 이어지는 소로길의 묘미, 그리고 소오대산의 최대의 아름다움인 능선 길의 초원 속에 지천으로 피어 있는 야생화다.  6월말부터 피기 시작하는 야생화는 9월 초쯤에 마무리 되는데, 금련화, 은련화는 소오대산의 상징이며 범꼬리 꽃, 백리향, 개 양귀비 꽃, 분홍 바늘 꽃, 매 발톱, 어수리를 닮은 하얀 당귀 꽃, 제비곶깔꽃, 에델바이스 (솜 다리), 솔 패랭이, 솔 체, 이질 풀 꽃, 곰취, 투구꽃, 민들레, 물매화, 이제야 만개하기 시작한 용담, 구절초 등 평소에는 보기 어려운 야생화가 이곳에는 총집합 하였으나, 8월 중순 이후의 야생화는 한철 지난 모습이다.



东台는 소오대산의 주봉으로서 해발 2882미터의 고지다.



청명한 날씨는 东台에서 주변의 北台, 南台, 中台, 西台 등을 한눈에 조망 할 수 있으며, 인근의 평야 지대가 눈앞에 펼쳐 지고, 저 멀리 茶山마저도 너무도 가까이 보인다. 이곳을 자주 찾은 산행 객들은 보기 드문 행운이라고 한다.



东台에서 아침 식사를 마치고, 약 1시간 동안 꿀 맛 같은 단잠을 취한 후, 북대로 출발하였다. 东台에서 바라본 北台 봉우리까지는 불과 1시간 거리면 충분할 듯 하였지만, 아!  알고 보니 넉넉한 2시간 거리다. 그래도 산보하기에는 아름다운 코스다.



北台에서 점심을 마치고, 오후 1시 반 경부터 편안한 마음으로 북대의 계곡 길을 따라 하산하는 코스다.



이 또한 가시거리가 명쾌하여 산 아래 곧 닿을 듯 한 마을까지 불과 2시간이면 될 듯한데, 경험자들은 5시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하고, 계곡의 하산 길은 난코스라고 은근히 겁을 준다. 과연 그럴까? 믿어 지지 않지만 설마 거짓말이야 하겠어...



내친김에 한 달음에 산길을 내려온다.



수풀 속의 산길, 내리막길이지만 자갈이 바닥에 깔려 있어서 조금만 방심하면 미끄러질 수 있는 위험한 길이다. 다리에 힘을 빼고, 산토끼처럼 유연하게 구르듯 산길을 내려오니, 시원한 석간수가 반긴다. 발을 담그고 보니, 아, 10초 견디기가 어렵다. 깊은 산속에서 우러나오는 내공의 표상이다. 시간은 눈앞이 마을 인 듯하고, 이 정도면 거의 도착 할 듯 한데, 경험자들이 조금 세게 겁을 준건가?



아, 그런데 깊은 산은 물만 차가운 게 아니다. 끝난 듯 끝나지 않은 산길, 잡목과 시냇가를 왕복하면서 끝없이 걸어야만 하는 여정이 대단하다. 벌써 시간은 오후 6시가 넘었다. 그리고 마을 초입에서 우리의 버스 하차 장 까지는 한참이라니.. 과연 그들의 경고는 허언이 아니었다.



14명이 마을까지 전부 도착한 시간은 오후 8시 근방, 다들 막판 코스에 당한 느낌이다. 마을이 보이고, 순간 긴장이 풀리고 나서 추가로 1시간 정도를 더 걸어야 하는 蛇足에 넉 다운 된 것이다. 체력의 안배와 지혜가 필요한 경험의 산물이다. 그래도 초등 학생인 성환이는 건재하다. 대단한 아이..



민박집에서 준비한 닭백숙과 쌀 죽은 일품이다. 수년간을 훈련시키고 교육 시킨 보람이라고 한다. 어찌되었던지 교육의 결과는 훌륭하였다.

저녁 9시에 북경으로 향하는 버스는 출발하였다. 그리고 새벽 1시에 도착하였다.



총 27시간의 여정, 산행 거리 26킬로미터, 산행 시간 17시간 이었다. 하루가 이렇게 길고, 많은 추억을 한꺼번에 담을 수 있다 라고 하는데 새삼 경의 감이 든다. 기나긴 하루를 보내면서, 마음속에 남은 것은 무엇인가?  채근담의 한마디가 생각난다.



"고요한 속에서 고요함을 지키는 것은 참다운 고요함이 아니며, 움직임 속에서 고요함을 얻어야만 참된 경계이며, 즐거운 곳에서 즐기는 것은 참된 즐김이 아니니, 괴로움 속에서 즐거움을 얻어야만 마음 바탕의 기틀을 본다"



과연 나의 즐거움은 어디에서 얻을 것인가?  고달픈 산행의 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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