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日·몽골인 '미스터리 쇼퍼' 동원해 연말 바가지 요금 집중단속






















[조선일보] "첫째, 지금부터는 절대 한국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둘째, 택시나 콜밴에서 내릴 때 반드시 영수증을 받으세요. 셋째, 바가지를 씌우면 그대로 내린 뒤 번호판을 확인하세요."







서울 중구청 교통행정과 직원의 설명에 하얼빈 출신의 중국어 강사 리징(가명·36)씨와 톈진에서 온 한양대 대학원생 궈징징(가명·28)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 거주 10년차인 리씨와 한국어 과정을 수료한 궈씨는 구청 직원과 우리말로 대화를 나눴다. 두 사람의 임무는 처음 한국을 찾은 요우커(遊客)로 가장해 바가지요금을 씌우는 택시기사들의 행태를 적발하는 외국인 '미스터리 쇼퍼(mystery shopper·키워드 참조)'.







교통비 20만원을 받아든 이들이 거리로 나선 것은 지난 11일 오후였다. 6일간의 APEC회담 임시공휴일을 맞은 베이징에서 몰려온 중국인들로 서울 도심은 북적거렸다. 리징씨와 궈징징씨는 오후 3시 20분쯤 명동 롯데영플라자 앞에서 "동따먼(東大門)!" 하며 택시를 잡았다. 기자도 동승했다. 리씨가 중국어와 영어를 섞어 "동따먼 디자인플라자"라고 목적지를 말했다.







리씨와 궈씨는 뒷좌석에서 중국말로 너스레를 떨었다. 50대로 보이는 택시 기사가 "혹시 메이드 인 차이나?(중국인이냐는 뜻)"라고 농을 던졌지만 두 사람은 못 알아듣는 척했다.







서울 명동~동대문시장은 요우커들 사이에서 최악의 바가지 구간으로 손꼽히는 곳. 뻥 뚫린 퇴계로를 따라 동쪽으로 3㎞ 남짓 직진하면 될 거리를 택시는 북쪽(동호로)→서쪽(청계천로)→U턴→동쪽(을지로) 식으로 맴돌기 시작했다. 돌아간다는 걸 눈치 챈 리씨가 뒤에서 '동따먼~! 동따먼~!' 하고 수차례 외쳤지만, 택시는 30분 가까이 헤매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건너편에 도착했다. 제대로 왔다면 13분이면 도착할 거리였다.







궈씨는 1년 전 동대문 두산타워 앞에서 바가지를 쓴 경험이 있다. 자정 넘어 중국인 친구들과 쇼핑을 마치고 명동으로 넘어가려는데 택시 기사는 손가락 네 개를 펴들었다. 궈씨는 "4만원이 아니면 한 발짝도 못 간다고 하는 통에 그 뒤에 선 택시로 갔는데 역시 손가락 네 개를 폈다"고 말했다. 줄줄이 서 있던 택시들이 다 마찬가지였다. 궈씨는 "결국 바가지를 썼다"고 말했다.







이날 리씨와 궈씨는 명동과 동대문, 이태원, 중구청을 오가며 5차례 택시를 탔다. 가까운 길을 빙 돌아간 기사, 영수증 달라고 아무리 말해도 마이동풍인 기사 등을 구청에 통보했다. 지난해부터 10여 차례 미스터리 쇼퍼를 해봤다는 리씨는 "낮엔 덜한 편이지만 심야에는 십중팔구 미터기를 끈 기사들과 흥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에 온 지 18년째인 일본인 미도리(가명·51)씨는 7번 미스터리 쇼퍼를 했다. 그는 "택시 기사가 유창한 일본말로 '(택시 색깔이) 오렌지는 3만원, 실버는 4만원, 검은색은 5만원' 하며 흥정을 걸어올 때가 가장 황당했다"고 했다.







그는 "일본 야후 재팬에도 '한국의 택시'로 검색하면 명동·동대문 가는 데 요금을 3만~4만원 냈으니 당하지 말라는 후기가 올라와 있다"고 했다. 몽골 출신의 미스터리 쇼퍼 채모(35)씨도 "처음 한국에 와서는 미터기를 끄고 가는 게 이 나라의 문화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중구청은 10월부터 중국·일본·몽골의 미스터리 쇼퍼 6명을 동원해 바가지요금을 잡아내고 있다. 지난달에만 미터기를 켜지 않은 15대의 택시를 적발했다. 콜밴 4대는 외국인 관광객에게 접근, 태우기 전에 요금을 흥정했다. 적발된 택시 기사들은 "기억이 안 난다"고 잡아뗀다고 한다. 외국인에게만 비싸게 받은 식당 4곳도 행정지도 및 행정처분을 했다. 명동 식당가에서 미스터리 쇼퍼로 나섰던 몽골인 이모(40)씨가 한 보쌈집에서 물을 시켰더니 "우리 집은 물 말고 술을 시켜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1인분을 내오고 2인분 가격을 받는 식당도 있었다.







이씨는 "한국말을 못하는 척하니까 종업원들이 '외국인이니까 그냥 (없는 메뉴도) 다 있다고 해'라고 쑥덕거리더라"며 "식당 계산대에 가보면 10곳 가운데 2~3곳은 외국인에게 받는 금액이 따로 있었다"고 말했다. 중구청 관계자는 "외국인 미스터리 쇼퍼 이야기를 들을 때면 우리가 아직 이런 수준인가라는 생각에 얼굴이 화끈거린다"고 말했다.







☞미스터리 쇼퍼(mystery shopper)



신분을 감추고 평범한 고객으로 가장, 직원들의 친절도나 청결 상태 등의 서비스를 점검하는 모니터 요원. 소비자의 서비스 만족도가 기업 매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면서, 생겨난 직업군(群) 가운데 하나. 서울 중구청은 콜밴과 택시는 2012년 6월부터, 음식점은 올해 10월부터 외국인 미스터리 쇼퍼를 운영하고 있다. 미스터리 쇼퍼들은 적어도 5년 이상 국내 거주한 외국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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