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관광객 特需'라지만 관광만 동대문, 돈은 명동에



인근 재래시장 극심한 불황… 생활苦 상인 흉흉한 소문도



상인들 "전기료 낼 돈도 없어 야간엔 아예 영업 접어… 차라리 IMF 때가 그립다"







[조선일보] 지난해 한국을 찾은 요우커(遊客·중국인 관광객)는 612만여명. 그들이 가장 많이 찾은 곳은 대형 면세점이 있는 서울 명동, 그다음이 패션타운인 서울 동대문이었다. 동대문을 찾는 요우커는 5년 새 3배가 돼 부산 인구와 거의 맞먹는 320만명 수준에 이르렀다. '특수(特需)'라는 말로도 모자랄 것은 같은 분위기다.







그런데 요즘 동대문에선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한 젊은 상인이 화장실서 목을 맸다" "상가 옥상에서 투신했다" "여성 상인은 매장에서 약을 먹었다"는 흉흉한 소문이 꼬리를 물고 있다. 동평화시장 상인 조모(28)씨는 "여기서 일한 지 1년도 안됐는데 벌써 대여섯 번 비슷한 소문을 들었다"고 했다. 동대문시장을 관할하는 서울 중부경찰서 등은 정작 "상인들 연쇄 자살은 금시초문"이라고 밝혔다. 어찌된 영문일까.



















▲ 2일 밤 서울 동대문시장의 많은 상가가 한창 영업할 시간임에도 문을 닫고 장사를 하지 않고 있다. 불야성을 이루던 동대문 재래시장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전기료도 감당할 수 없어 야간에 문을 닫은 가게가 태반이다.




동대문 일대 재래시장과 종합쇼핑몰 13곳에서 100여명의 상인과 경찰에 수소문한 결과, 동대문 상가에서 실제 그런 사건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지난달 동대문 C시장 옷가게 주인 임모(35)씨, 지난해 3월에는 동대문 A쇼핑몰 지하에서 점포를 하던 고모(66)씨 부부가 자택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일은 있었다. 지난해 9월 S시장 상인연합회 임원 정모씨가 숨졌지만, 자살이 아닌 돌연사였다.







상인들은 하나같이 "지독한 불황"을 괴담의 진원(震源)으로 지목했다. 동대문 D도매상가 상인 차모(56)씨는 "요우커들이 몰려와 유동인구가 늘면서 임대료는 여전히 비싼데 실제로는 장사가 전혀 안된다"며 "다들 그런 심정이라 이런 괴담들이 생기는 것 아니겠느냐"고 한숨을 쉬었다. 실제로 지난달 목숨을 끊은 임씨와 지난해 동반자살한 상인 부부가 그런 선택을 한 배경도 경제적인 이유였다. 임씨는 평소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다"고 말했고, 숨진 상인 부부도 빚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한다. 돌연사한 정씨도 불경기로 인한 스트레스가 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요우커가 한 해 한국에서 쓰는 돈이 8조(兆)원. 그들 2명 중 1명 이상이 들른다는 동대문에서 이런 일이 생긴다는 건 역설적이다. 상인들은 그러나 "엄살이 아니다. IMF 때가 나았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고 했다. 요우커 특수 속 불황이라는 '동대문의 역설'에 대해 M쇼핑몰 상인 최모(47)씨는 "요우커 호황은 동대문의 몇몇 대형 쇼핑몰, 명동 일대 대형 면세점에 한정된 얘기"라고 했다.







실제 동대문 평화시장 J상회의 매출은 2011년 2억원을 정점으로 계속 줄다가 지난해엔 반의 반토막인 5000만원 정도에 그쳤다. 반면 동대문의 대형 쇼핑몰인 '두타'의 매출은 2010년 3315억원에서 2013년 4120억원으로 급증했다. 매장 공사로 한 달간 문을 닫았던 지난해 매출액도 3850억원이나 됐다.







한 상인은 "중국인들이 찾아오는 건 엄밀히 말해 동대문이 아니다"라고 했다. 하루 130여대, 요우커를 태운 전세버스들은 전부 두타 앞에서 정차한다. 차에서 내린 이들은 두타 등 1~2개 대기업 계열 대형쇼핑몰에 우르르 들어갔다가 길 건너 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둘러본 뒤 1~2시간 만에 떠난다. 동대문 뒷골목의 다른 의류쇼핑몰이나 재래시장은 돌아볼 틈도 없는 것이다.







과거 동대문 상인연합회에는 야간에 불을 켜지 않는 가게들은 낮에 장사할 수 없다는 자체 규율이 있었다. '야시장 활성화'가 명분이었다. 장사 잘될 때는 모두가 그 벌칙을 두려워했지만, 최근에는 밤에 불 꺼진 가게가 태반이다. 한 상인은 "내수 침체에 인터넷 쇼핑몰의 득세, 엔저로 인한 일본인 관광객의 감소까지 겹치면서 밤새 영업해도 전기료도 안 나온다"고 말했다. 지난 4일 밤에도 동대문 평화시장 골목은 다섯 걸음에 하나꼴로 셔터를 내린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불황은 주변 음식점, 마네킹 가게뿐만 아니라 옷을 날라주는 '동대문 지게꾼'으로까지 번졌다.







요우커가 가장 많이 찾는 명동 역시 그들이 진짜 돈을 쓰는 곳은 인근의 대형면세점이다. 다만 명동은 화장품이나 음식점 위주여서 의류 위주인 동대문보다는 그나마 사정이 낫다고 한다. 요우커들의 30%정도가 찾는다는 남대문시장의 경우도 매년 매출이 줄기는 마찬가지다. 남대문 상인연합회 관계자는 "하지만 동대문 상인들은 과거 호황의 기억이 생생한 데다 요우커로 인한 착시현상이 커서 박탈감이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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