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서 별세 이맹희 CJ 명예회장의 파란만장했던 일생]







20세때 밀항 日서 유학생활, 부친 부재시 한때 총수 역할



삼성과 결별후 해외 떠돌아… 2012년 폐암 수술, 中서 칩거



서울대병원서 CJ그룹葬… 손경식 회장, 운구 위해 출국







고(故)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에게는 '비운(悲運)의 황태자'라는 말이 따라다녔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자(長子)로 삼성을 잠시 맡아 총수 역할도 했지만, 후계자 자리는 동생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낙점받았기 때문이다.







이 명예회장은 1993년 6월 펴낸 자서전 '묻어둔 이야기'에서 자신의 성격을 "불칼 같다"고 표현했다. 급하고 불덩이처럼 뜨겁다는 것이다. "앞뒤 재지 않고 고집을 피우고 자존심이 상상할 수 없도록 세다"고도 했다. 조용하지만 냉철한 아버지와 성격이 정반대인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것이 후계 지위를 박탈당한 이유 중 하나라는 해석이 나온다.







◇일본 밀항해 도쿄대 입학







고인은 1931년 경남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수창초·경북중(6년제)을 다녔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동네 친구였고 노태우 전 대통령, 정호용 전 국회의원, 고 김윤환 국회의원 등이 중학 동기생이다.



1987년 11월 23일 열린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장례식에 이맹희·이명희·이건희·이창희(사진 앞줄 오른쪽부터) 남매가 나란히 서 있다.



1987년 11월 23일 열린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장례식에 이맹희·이명희·이건희·이창희(사진 앞줄 오른쪽부터) 남매가 나란히 서 있다.



스무살 때 친구 4명과 함께 밀항해 대마도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대 농과대학에 입학했다. 그는 "불법 유학생이었지만 아버지의 후광과 대사관의 도움이 있었다"고 했다. 도쿄대 대학원까지 마치고 귀국해 결혼한 다음 미국 미시간주립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2년 안국화재에 입사한 그는 생전에 "당연히 후계자가 되리라고 믿고 정열을 불태웠다"며 "삼성코닝 공장을 짓고 확장할 때는 새벽 6시만 되면 집에서 나와 단 하루도 밤 12시 이전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고, 아내와 아이들은 잊어버리고 살았다"고 회고했다.




















▲ 1987년 11월 23일 열린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장례식에 이맹희·이명희·이건희·이창희(사진 앞줄 오른쪽부터) 남매가 나란히 서 있다.






◇한때 삼성그룹 경영… "불칼 같은 성격"으로 父親과 충돌







고인이 삼성그룹의 후계자가 못 된 데 대해 이병철 회장은 자서전인 '호암자전'(1986년 2월 발간)에서 "장남 맹희에게 그룹 일부를 맡겨 보았지만 6개월도 채 못 되어 맡겼던 기업체는 물론 그룹 전체가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며 "본인이 자청하여 물러났다"라고 썼다. 반면 이맹희 명예회장은 자서전에서 "아버지는 6개월을 맡기셨다고 쓰셨지만 사실은 1967년부터 1973년까지 7년 동안 삼성을 내가 맡았다"고 했다.







이병철 회장은 이른바 '사카린 밀수' 사건이 불거지자 1967년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총수 대행' 역할을 했다는 이맹희 회장은 자서전에서 "당시 직함을 세 보니 17개였다"고 했다. 삼성전자, 중앙일보, 삼성물산, 제일제당, 신세계, 동방생명 등에서 부사장, 전무, 상무, 이사의 직책을 갖고 있었다는 것.







그러나 1973년 이병철 회장이 경영에 복귀하면서 이맹희 회장의 직함을 줄여나갔고, 이맹희 회장은 "아버지에게 쉬겠다는 의사를 표현하니 바로 허락을 했다"고 밝혔다. 고인은 "아버지가 '사카린 밀수 사건'에 대해 청와대에 투서한 것이 TK 출신 정치인 친구들이 많았던 나인 것으로 오해하신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부자(父子) 사이는 시간이 갈수록 악화했다. 고인은 "경영을 떠난 뒤 도쿄에 머물러 있는 동안 일본에 오시는 아버지를 공항으로 마중 나가지 않는다든가, 아버지 말씀에 토를 단다든가, 지방에 가서 생활하며 아버지 옆을 비운 것이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회고했다.







결국 1976년 9월 이병철 회장은 위암 수술을 받기 위해 일본으로 떠나기 전 가족 앞에서 삼남(三男) 이건희 회장을 후계자로 한다고 밝혔다. 고인은 "그때 충격은 말할 수 없었다"며 "그러나 이를 받아들였고, 동생(이건희 회장)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 아버지가 돌아가신 1987년 한국을 떠나 아프리카, 남미, 미국, 일본 등 해외에서 5년을 살았다"고 했다. 이병철 회장은 재산을 나눌 때 이맹희 회장에게는 주지 않았고 아내인 손복남 여사와 장손인 이재현 회장에게 물려줬다.







◇10년 넘게 중국에서 은둔생활







그는 삼성과 결별 이후 가족과 떨어져 지방과 해외에서 살면서 세간의 오해를 너무 많이 받았다고 했다.







그는 자서전에서 "수렵에 필요한 총을 정식으로 가져오다가 통관에 문제가 생겼더니 '이맹희가 누굴 쏘려 총기를 밀수했다'는 소문이 퍼졌다"며 "이상한 정신병을 가졌다거나 교통사고 때문에 어색한 걸음걸이를 놓고 '술 잘 먹는 양녕대군'이라고 한다는 소문도 들었다"고 썼다. 고인은 "내 실제 주량은 맥주 한 컵"이라고 밝혔다.







1990년대 초반에 제일비료를 세워 재기(再起)를 꿈꾸다가 좌초한 고인은 2000년대 초 중국 베이징에 거처를 마련하고 요양에 가까운 은둔 생활을 해왔다. 2012년 말 폐암 2기 진단을 받고 도쿄에서 오른쪽 폐(肺)의 3분의 1을 떼는 수술을 받는 등 항암(抗癌) 치료에 전념해왔다. 그러나 암세포가 2013년에 부신(콩팥 위쪽의 내분비 기관)으로, 지난해에는 림프절로 각각 전이(轉移)됐다. 그는 10여년간 중국에 지내면서 한국을 좀처럼 찾지 않았고 자녀인 이재현 회장이나 이미경 부회장과도 이따금 전화통화만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명예회장의 장례식은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에서 CJ그룹장(葬)으로 진행된다. 장례 시기와 발인 일정은 유동적이다. CJ그룹 측은 "고인의 처남인 손경식 CJ 회장과 차남 이재환 대표 내외가 출국해 중국 현지에서 운구 절차 등을 협의할 것"이라며 "장례는 1주일 쯤 뒤에 치를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건강이 좋지 않은 이재현 회장을 대신해 고인의 장손(長孫)인 선호(25·CJ제일제당 사원)씨와 차남인 재환씨가 조문객을 맞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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