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中내수가 새 活路다] [1] 우회로 통한 성공사례

삼익악기 - 국내선 年1000대도 벅찬 피아노
中선 작년에만 1만6800대 팔아… 중소도시서 매출 60% 나와

식자재 유통업체 '해지촌' - 2006년 칭다오서 맨손 창업
중소도시 식당 찾아다니며 공략, 100여개 도시 3000여곳과 거래


[조선일보] 수출 부진, 주력 산업 구조조정 등 위기에 직면한 한국 경제에 중국 내수 시장 공략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급성장하는 중국 내수 시장이 한국 경제의 새로운 활로(活路)로 떠오르고 있다. 본지와 한국무역협회는 중국 현지에서 내수시장 공략에 성공을 거두고 있는 10여개 국내 기업을 찾아 그 성공법을 들어봤다.

지난달 10일 중국 산둥성 칭다오(靑島)시 최대 쇼핑몰인 완상청(万象城) 5층의 CJ CGV 칭다오점. 국내에서도 최신 시설인 4DX, IMAX 등 10개관(1878석)을 갖춘 대형 멀티플렉스이다. 작년 4월 30일 문을 연 이곳은 지난해 총 관람객 70만명, 수입 2900만위안(51억원)을 기록했고, 올해는 100만명 돌파, 매출 5000만위안 돌파를 목표로 하고 있다.

중국 경제가 심상찮다고 하지만 CGV 칭다오점은 고성장 중이다. 칭다오점만 그런 게 아니다. CGV 중국 사업 전체가 그렇다. 2006년 상하이에 1호점을 연 뒤 2012년 22위에서 지금 240여개 극장 사업자 중 7위이다. 할리우드 대표 선수 격인 워너브러더스가 손들고 나간 중국 시장에서 외국계 극장 사업자 1위이다. 작년 매출은 2200여억원으로, 전년(1150억원)의 2배로 증가했고, 중국 진출 10년 만에 첫 흑자도 기록했다.
처음부터 성공한 건 아니다. 2006년 10월 중국 상하이에 첫발을 내디딘 CJ CGV는 2호점은 베이징이라고 공언했다. 고급 극장 문화로 승부를 걸려면 대도시여야 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이징점 개점에는 4년(2010년 9월)이 넘게, 상하이에 2호점을 내는 데도 3년(2009년 4월) 가까이 걸렸다. 서정 CJ CGV 대표는 "중국 최대 도시에서는 목 좋은 곳을 잡기가 쉽지 않았고 워낙 경쟁이 치열해 시행착오를 거쳤다"면서 "2, 3선 중견도시로 가니 중국 업체들과의 경쟁이 줄고 베이징 등 1선 도시에 비해 임차료나 인건비 부담이 적어 손익 분기점까지 걸리는 시간도 절반으로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지금은 CGV 중국의 극장 80% 이상이 2, 3선급 도시에 있다.

대부분 어렵다고 손사래 치는 중국 내수시장에서 성공 신화를 만드는 한국 기업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중국 내에서 5위 피아노 업체로 급성장한 삼익악기, 중국 내 100여개 도시 3000여개 유통망을 뚫은 식자재 유통업체인 청도해지촌도 그렇다. 이들의 비결은 '우회도로 공략'이었다. 경쟁은 다소 덜하지만 성장 속도는 더 무서운 2선, 3선 도시에 한발 앞서 진출해 '제2의 차이나 드림'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2선급 이하 도시서 1000개 식당을 찾아다녔다

종합 상사를 다니다 외환 위기 여파로 회사를 그만둔 해지촌의 곽동민(47) 사장은 2006년 칭다오에서 여직원과 배송기사 한 명을 데리고 식자재 사업을 시작했다. 첫 달 매출이 2300위안(50만원)이었는데 지난해에는 3300만달러(약 393억원) 매출을 올렸다. 그의 회사 창고에는 삼양라면, 팔도라면, 한성게맛살 같은 대기업 제품은 물론 진영F&B, 삼해상사 등 우리에게 생소한 중소기업 제품도 많다. 30여개 업체의 800여개 품목이다. 이 제품들이 해지촌을 통해 한국 식당은 물론 중국 마트에서 중국 소비자들과 만난다. 직접 거래하는 곳만 100여개 도시의 3000여개 점포이다. 곽 사장은 "대도시에서의 경쟁은 어렵기 때문에 중소 도시 공략을 처음부터 전략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그는 우선 칭다오, 옌타이 등의 한국 식당과 중국 식당을 찾아 한국 식자재의 경쟁력을 내세워 문을 두드렸다. 이렇게 찾아다닌 거래처만 1000여곳이 넘는다. 2~3년도 안 돼 2, 3선 도시의 생활수준도 급격히 올라가면서 '믿을 만한 한국산 식자재' 수요가 늘면서 매출도 덩달아 뜀박질했다. 그는 수입을 할 때 '보따리 장사'를 통하지 않고 '통관 100%'를 고집했다. 그 결실이 2013년 나타났다. 시진핑 정부 들어서 통관을 대폭 강화하자 경쟁 수입 유통업체들은 안 내던 관세까지 물어야 해 가격을 20%씩 더 올려야 했지만 해지촌은 한 푼도 올리지 않았다. 곽 사장은 "우리는 아직 중국 시장의 30%도 못 먹었다. 나머지 70%를 먹으려면 한발 앞서 중소 도시로 달려가야 한다"고 말했다.

◇내수 침체로 존폐 위기 피아노 업체 중국서 돌파구 찾아

삼익악기는 1990년 한국 시장을 석권하며 성장 가도를 달렸다. 하지만 저출산에다 아파트 주거문화가 확산되면서 피아노 수요가 급격히 줄어 요즘은 월 100여대 팔기도 벅차다. 새로운 돌파구가 중국이었다. 작년에만 1만6800여대를 중국에서 팔았다. 2008년 대비 1000% 이상 성장했다. 가격대가 높은 피아노를 팔려면 베이징이나 상하이 같은 대도시가 제격이라 생각하기 쉽다. 이형국 삼익악기 부회장은 "우리 매출의 60% 정도는 2선 도시 이하에서 발생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삼익악기의 피아노가 저가품은 아니다. 대당 평균 가격 3만위안(약 540만원)으로 중국 내 고가 피아노의 기준인 2만위안을 훨씬 넘는다. 중국 피아노시장의 70%가 넘는 저가 피아노 시장을 포기하면서도 중소 도시를 집중한 것이다. 이 부회장은 "중국 내 웬만한 중소 도시에서도 한 자녀 가정이 대부분이라 피아노 수요는 더 많았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 등 삼익악기 영업직원들은 지역마다 강한 사투리에 말도 잘 안 통하는 중소 도시를 찾아다니며 대리점 개설에 총력전을 펼쳤다. 중국 시장의 고질적인 외상 거래도 포기했다. 이 부회장은 "중소 도시의 대리점주는 30대 이하를 집중적으로 뽑았는데 대도시 사람들보다 순수하고 열정이 더 많아 매출 증대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中 성장률 6%대로 줄었지만 소비는 3년간 10%씩 급팽창
對中수출은 원·부자재 80%… 소비재 '제2 아모레' 키워야

지난달 5일 저녁 중국 상하이 팍슨-뉴코아몰. 한국 유통기업인 이랜드가 운영하는 한식 뷔페 '자연별곡'은 좌석 190개가 꽉 들어차 있었다. 대기자 명단에는 20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태영 점장은 "1인당 가격이 140위안(약 2만5000원)으로, 현지 젊은이들의 월급(약 100만원)을 감안하면 싸지 않지만 늘 이렇게 만석"이라며 "처음에는 한국 음식이 통할까 걱정했지만, 중국인들의 소비 수준이 높아졌다는 걸 확실하게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랜드는 중국 내 자연별곡 매장을 현재 2개에서 올해 10개로 늘리고 2020년까지 중국 전역에 200개 매장을 열 계획이다.

중국 내수(內需) 시장이 급팽창하고 있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소비가 기여하는 비율이 2012년 56.5%에서 지난해 66.4%로 치솟았다. 내수 척도인 소매 판매액도 최근 3년간 매년 10% 이상 급증세다. GDP 성장률은 '바오치(保七·7%대 성장)'가 무너지고 '바오류(保六·6%대 성장) 시대'로 접어들었지만, 소비는 폭발적이다. 중국사회과학원 산하 세계경제정치연구소 장위옌(張宇燕) 소장은 "제조업 중심이었던 중국의 산업은 이미 GDP의 50%를 넘어선 소비·서비스와 기술 혁신 관련 업종으로 재편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30년간 중국 경제는 제조업과 수출의 두 바퀴에 의지해 굴러갔다. 우리 경제도 중간재 중심의 대중(對中) 수출이 핵심 성장 엔진이었다. 실제 대중 수출에서 원·부자재 비중이 80%에 육박할 만큼 높았다.

그러나 앞으로는 중국 내수 시장을 선점하는 국가와 기업이 '제2 차이나 드림'을 이끌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미 우리나라에서는 아모레퍼시픽과 오리온처럼 중국 내수를 장악한 기업들이 실적과 주가(株價)에서 고공 행진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지난해 매출(5조6612억원)의 30% 가까운 1조6000억원이 중국 관련 매출로 추산된다. 오리온은 지난해 매출액(2조3800억원)의 절반 이상(1조3300여억원)을 중국에서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기업의 중국 내수 시장 공략은 아직 갈 길이 멀다. 한국은 현재 중국 내 수입 시장에서 10.9%를 차지하는 1위 국가다. 하지만 옷·화장품 등 소비재만 놓고 보면 5위에 그친다. 또 한국의 대중 수출 전체에서 소비재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 이후 5년째 5%대에 머물고 있다. 한국이 100원어치를 중국으로 수출할 때 중국 소비자에게 직접 전달되는 소비재는 5원어치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장상식 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통상연구실장은 "인구 5000만명의 좁은 국내 내수 시장만 갖고는 성장의 한계가 불가피하다.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이제 막 소비에 눈뜨는 수억명의 중국 시장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면서 "중국 내수 공략은 이제 더 늦출 수 없는 화급한 과제이며 정부와 기업이 힘을 모아 '제2의 아모레'를 만드는 데 총력전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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