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제주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은 2010년 28만8425명에서 올해 8월 163만8680명으로 5.8배나 늘었다. 연동 지역의 중국인 거리인 '바오젠 거리'에 가면 한국인지 외국인지 헷갈릴 정도다.

제주도는 주5일제 정착과 제주올레길 조성, 이웃 중국의 급부상 등으로 휴양지로서 가치가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제주도의 장기 발전 계획인 '제주국제자유도시'가 지난 2002년 발표될 당시엔 주민들 사이에서조차 "뜬구름 잡는 얘기" "허황된 계획"이라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지금 이 플랜은 하나씩 현실이 돼가면서 제주도를 바꾸고 있다.


지난달 30일 제주시 아라동 제주첨단과학기술단지 내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 회의실. 제주도가 10년간 추진했다가 번번이 실패했던 '신화역사공원' 조성사업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계약식이 열렸다.

공원 사업자인 중국 란딩(藍鼎)그룹 양즈후이(仰智慧) 회장은 "2018년까지 사업비 1조8000억원을 투자해 아시아와 유럽 등 세계 3대 신화와 역사·문화를 테마로 한 공원으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란딩그룹은 지난달 이미 제주에 자본금 500억원 규모의 현지법인인 '란딩제주개발'을 설립했다. 사업계획 백지화를 되풀이한 공원 사업이 10년 만에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이처럼 제주국제자유도시 출범 11년을 넘으면서 '잠시 머무르는 관광도시'로 인식돼 온 제주도 곳곳에서 변화의 '과실(果實)'이 열리고 있다. 국내 유망한 IT 기업들이 앞다퉈 제주에 진출하고 해외 기업들의 투자 행렬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사업장 14곳 외자 유치 성공

지난 2002년 동북아 중심 관광휴양도시라는 비전으로 출범한 제주국제자유도시는 지난 2006년 특별자치도 출범에 맞춰 이른바 홍콩과 싱가포르의 장점을 살린 '홍가포르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이 '특별한 실험'은 무비자 입국, 면세(免稅), 규제 제로(0) 등이 그 핵심이며, 교육·의료·관광산업의 동북아시아 허브가 지향점이다.

◇국내 유학 붐 일군 영어교육도시

서귀포시 대정읍 제주영어교육도시는 예전에 소와 말을 방목하는 목장과 임야로 주민들 발길조차 뜸했던 곳이다. 지난 2009년 6월 국제학교가 들어서면서 이곳은 4년 만에 전국에서 주목받는 '뜨거운' 지역으로 변했다. 전국의 부유층 자제들이 몰려들면서 '제주판 기러기 아빠'라는 신조어가 생겼고, 고급 외제 차량이 넘쳐나게 됐다. 영어교육도시는 현재 영국과 캐나다 계열 등 3개 국제학교에 1700여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조기 유학 희망자를 끌어들여 국내에서 해외 명문 학교의 교육을 받게 한다는 목표가 이뤄지고 있다는 평가다.

김한욱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 이사장은 "영어교육도시로 인해 해외 조기 유학으로 빠져나갈 964억원이 국내에 머문 효과를 봤다"고 했다.







▲ 제주영어교육도시에 개교한 영국 계열‘NLCS 제주’에서 학생들이 수업을 듣는 장면(왼쪽)과 제주시 연동의 한 면세점 앞을 가득 메운 중국인들의 모습(오른쪽). 제주도는 최근 10년 사이에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제공

▲ 제주영어교육도시에 개교한 영국 계열‘NLCS 제주’에서 학생들이 수업을 듣는 장면(왼쪽)과 제주시 연동의 한 면세점 앞을 가득 메운 중국인들의 모습(오른쪽). 제주도는 최근 10년 사이에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제공


◇과학기술단지엔 70개 업체 입주

제주영어교육도시와 함께 제주국제자유도시를 이끌 핵심 프로젝트로 첨단과학기술단지·휴양형주거단지·신화역사공원·서귀포관광미항·제주헬스케어타운 등 5대 사업도 추진되고 있다. 이 가운데 첨단과학기술단지의 진척이 빠르다. 첨단과학기술단지는 총 사업비 4526억원의 투자 계획 중 2195억원이 투입돼 투자율 48.5%를 기록했다. 지난 2010년 부지 조성이 마무리된 뒤 불과 3년 만에 포털사이트 운영업체인 다음커뮤니케이션 등 70개 업체가 입주한 상태다.

의료 특구인 헬스케어타운은 세계 500대 기업에 포함된 중국 뤼디(綠地)그룹이 맡아 사업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최근 정부가 외국 영리병원 설립을 유보하면서 의료기관 유치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휴양형주거단지사업도 부지 조성 공사가 완료됐고, 1단계 건축공사 착공식이 지난 3월 열렸다. 사업자인 말레이시아(화교 자본) 버자야그룹은 지난 2008년 국내 관광 분야 최대 외자 규모인 18억달러(약 2조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히면서 큰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현재 사업비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고 사업 일정도 지연되고 있다.

제주도에 따르면 제주국제자유도시 종합계획이 시행된 2002년 이후 현재까지 외국인 자본 유치가 확정된 사업장은 14곳이다. 외자 유치 규모는 단연 중국(8개 사업장 3조349억원)이 1위다. 몰려드는 중국 관광객 때문에 "제주도가 중국 섬이 된다"는 말도 나오고 있지만 투자에서도 중국은 가장 적극적이다. JDC에 따르면 2008~2012년 제주도의 1인당 명목 지역내총생산(GRDP)은 연평균 7.42%나 상승했다.

◇제주 국제화 남은 과제들

제주도 다른 부문의 '국제화'에 비해 의료 분야 국제화는 아직 '바닥'이다. 제주도는 외국 의료면허 소지자의 종사를 특례인정하고 있으나 지금까지 종사자는 단 한 명도 없다. 또 외국인이 51% 이상 투자한 영리병원이 허용되나 지금껏 하나도 성사되지 않았다.

최근 중국 톈진화업그룹의 한국법인인 '차이나템셀'(CSC)이 서귀포시에 국내 1호 외국 영리병원인 '싼얼병원'을 설립하겠다고 신청했으나 보건복지부에서 불법 치료 등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았다. '싼얼병원'은 지상 4층, 지하 2층 규모(48개 병상)로 총 505억원을 투자해 2015년 개원할 예정이었다. '싼얼병원' 승인 잠정 보류로, 제주도 영리법인 설립이 큰 타격을 받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관광 분야에서도 정부의 규제가 여전하다. 제주를 찾은 국내외 관광객이 특산품과 기념품, 렌터카 등을 구입하거나 이용할 경우 부가세의 10%를 사후 정산해 돌려주는 제도인 '관광객 부가세 환급제'가 지난 2011년 5월 제주특별자치도특별법에 반영돼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정부가 이에 따른 후속 조치인 조세제한특례법 개정을 미루면서 2년이 지나도록 시행도 못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제주 지역 관광업계는 여야 합의 사항을 '수퍼갑' 정부가 저지한다고 반발한다.

제주도 관계자는 "중국은 20년 전 영리병원 제도를 도입해 현재 750개가 넘는 영리병원을 개설했고, 의료 서비스 사업에 공을 들인 태국은 연평균 150만명이 넘는 외국인 환자를 받고 있다"며 "영리병원 도입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뉴스/포토 (12)
#태그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