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구자
작사:윤해영 작곡:조두남

1.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
한줄기 해란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
지난날 강가에서 말 달리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2. 용두레 우물가에 밤새소리 들릴 때
뜻 깊은 용문교에 달빛 고이 비친다
이역하늘 바라보며 활을 쏘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3. 용주사 저녁종이 비암산에 울릴 때
사나이 굳은 마음 길이 새겨 두었네
조국을 찾겠노라 맹세하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가곡 '선구자'의 배경이자, 윤동주 시인의 고향, 용정.... 용정은 20세기 초반 민족의 운명이 일제 침략에 신음하던 시절, 지각과 실력을 갖춘 애국청년들이 모여 나라 잃은 설움을 한탄하고 독립을 꿈을 품고 심신을 갈고 닦았던 곳이다.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은 지린성(吉林省) 동부에 자리잡고 있다. 전체 인구는 26.13만명이며 그 중 조선족은 전체 인구의 67.1%를 차자하고 있다. 또한 조선족 인구가 중국에서 제일 많은 도시로, 우리 민족 전통을 완전하게 보존하고 있다. 

특히, 용정은 일제 하에서 독립운동의 중심 도시 역할을 해, 반일운동의 역사적 유래가 깊은 곳이기도 하다. 가곡 '선구자'의 무대 역시 용정이며, 윤동주, 문익환 목사의 고향도 용정이다. 연변을 찾는 많은 한국인은 용정을 찾아 일송정에 오르고, 용두레 우물가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대성학교 박물관을 찾아 역사 답사를 하기도 한다.



1. 용두레 우물







▲ 용정지명기원지우물







▲ 용드레우물

19세기말 조선에서 이민해 온 우리 선조들이 이 우물을 발견하고 정자를 세운 후, '용정촌'이라고 이름을 붙혔는데, 현재 용정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바로 이 우물에 있다. 비록 작은 우물 하나에 불과하지만 용정 조선족 역사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2. 일송정







▲ 왼쪽 비암산 정상에 우뚝 서 있는 일송정이 용정시와 평강벌을 내려다 보고 있다.







▲ 가까이서 본 일송정








▲ 일송정에서 내려다 본 해란강과 평강벌


연길에서 용정으로 차를 타고 가다보면 용정에 들어서는 길목 우측에 비암산이 있다. 비암산 정상 소나무 옆에 정자가 세워져 있는데, 이것이 바로 "일송정 푸른 솔이 늙어 늙어 갔어도"로 시작하는 노래 선구자의 '일송정'이다. 

60여년전 항일혁명근거지의 비밀 회의 장소로 활용하는 등 많은 애국인사들과 애국청년들이 모여 활동한 곳이다. 일송정은 당시 일제가 소나무 껍질을 벗기고 말려 죽이고 정사를 파괴했는데, 1990년에 복구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3. 대성중학교







▲ 용정제일중학교 안에 있는 대성중학교







▲ 대성중학교 건물 안. 안내원이 역사 자료를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다.







▲ 대성중학교 출신의 애국인사들






현재 용정제일중학교 교정에는 과거 대성중학교 건물이 그대로 보존돼 있으며,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박물관 앞에는 윤동주 동상이 세워져 있으며 안에는 대성중학교 출신의 윤동주, 문익환 등 유명인사와 항일운동가들을 소개하고 있다. 



4. 윤동주 시인 생가








▲ 윤동주가 다녔던 명동학교의 옛 터







▲ 윤동주 시인의 생가







▲ 다소 쓸쓸해 보이는 윤동주 시인 생가의 가구들



민족시인 윤동주의 생가. 이 집은 1900년 경 그의 조부 윤하현 선생이 지었다. 10칸의 방과 곳간으로 구성됐으며, 기와를 얹은 조선식 전통구조로 된 집이다.

윤동주는 1917년 12월 30일 이곳에서 태어났으며, 1932년 4월 그가 은진 중학교로 전학하게 되자 다른 사람에게 팔린 후 1981년에 허물어졌던 것을, 1994년 8월에 다시 복원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1993년 4월, 용정시 정부는 그 역사적 의의와 유래를 고려하여 명동촌을 관광지로 지정하였다.

[온바오 연변 김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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