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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열 수 (성신여대 국제정치학 교수)



3세대 로열 패밀리의 서구문화 사랑이 다시 한 번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김정일의 차남 정철이 런던의 로열 앨버트홀에 나타난 모습이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세계 3대 기타리스트로 유명한 에릭 클랩턴의 열렬한 팬으로 알려진 정철이 그의 70세 기념공연을 관람한 것이었다. 김정철이 클랩턴의 2006년 독일 공연과 2011년 싱가포르 공연도 관람한 것이 이를 증명해 준다.



공연에 참석한 김정철은 티셔츠에 가죽 재킷을 입고 파마를 한 헤어스타일에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현학봉 주영 북한대사와 같은 또래의 여성 1명 등이 참석한 단출한 모습이었지만 공연 중 그의 표정은 밝았고 클랩턴의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했다. 물론 2011년 싱가포르 공연 관람 때 경호원으로 보이는 건장한 남성들과 붉은 꽃을 든 여성 등 20여 명이 함께 공연을 관람했던 것과는 달랐다.  



3세대 로열 패밀리의 서구문화 사랑은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때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서구문화가 곧 ‘자본주의 날나리 풍’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정철・정은・여정 등 김정일과 고영희 사이의 자녀들은 스위스 베른에서 유학한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달랐다. 이들은 어린 나이에 서구문화를 직간적접으로 경험했다. 이들은 만화영화, 음악, 물놀이장, 스키장, 농구장, 심지어 소규모 디즈니랜드까지 모든 서구 문화를 두루 경험했다.

 

이런 경험이 권력에서 밀려난 김정철에게는 공연 관람으로 표출되었고 권력을 움켜 쥔 김정은에게는 ‘사업’으로 나타났다. 김정은의 서구문화 북한 이식 사업은 크게 3가지다. 우선, 그의 등장 다음해인 2013년 7월, 그는 모란봉 악단으로 하여금 파격적인 공연을 선보이도록 하고 이를 TV로 방영하도록 했다. 이 공연에서는 미국 문화의 상징인 월트디즈니의 미키마우스 캐릭터가 등장했다. 미국 영화 ‘록키’의 주제가인 'Gonna Fly Now'도 등장했다. 모란봉 악단은 어깨를 드러낸 드레스와 짧은 치마를 입고 나와 한국의 소녀시대를 연상시킬 정도였다. 공연이 끝난 후 김정은은 모란봉 악단원을 일일이 악수하면서 격려했다.

 

두 번째는 김정은의 미국 농구선수에 대한 사랑이다. 김정은은 NBA의 농구 스타였던 로드맨의 왕 팬이었던 관계로 그를 4번이나 북한으로 초청했다. 2013년 초, 순안공항과 농구 경기장에 나타난 로드맨의 모습은 파격적이었다. 로드맨은 50이 넘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코와 귀에 피어싱을 하고 있었다. 김정은의 옆자리에 앉아 경기를 관람한 로드맨의 테이블에는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인 코카콜라가 놓여 있었다. 또한 로드맨은 검은색 정장에 ‘USA’라고 크게 쓰인 검은색 모자를 쓰고 선글라스도 벗지 않은 채 경기를 관람했다.

 

세 번째는 김정은의 물놀이장, 승마장, 스키장 건설이다. 수영, 스키, 승마가 서구문화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런 시설들이 비교적 잘 사는 서구에서 주로 건설되어 스포츠로 즐긴다는 점에서 서구적이다. 그의 어린 시절 경험이 북한에 이런 시설을 건설하도록 만든 배경이 될 것이다. 김정은은 문수대 물놀이장, 미림 승마장, 그리고 마식령 스키장을 건설했다. 그리고 그 개관식장에서 파안대소하면서 이것이 인민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미키마우스가 등장하고 록키의 주제가가 흘러나오고 코카콜라와 USA 모자가 등장할 때만 해도 세계는 조심스럽게 북한의 개혁개방을 기대했다. 그러나 현재의 모란봉 악단은 군복 차림으로 김정은 찬양가 부르기에 매진하고 있고 로드맨은 더 이상 북한에 초청되지 않고 있다. 럭셔리한 스포츠 시설은 일반 주민을 위한 대중적 시설이 아니라 1% 지배계급만의 전유물이 되고 말았다.  

 

로열 패밀리가 어렸을 적 접했던 서구 문화는 서구 사회의 산물이었다.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한 서구 사회가 여유로운 삶을 즐기기 위해 만든 문화였다. 김정은이 늘 입버릇처럼 말하던 북한 주민들에게 이런 삶을 즐길 수 있도록 하려면, 그것이 그림의 떡인 현실을 생각한다면 세계로 향하는 개혁개방의 문을 두드리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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