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 




올해는 광복 70년이다. 한국은 해방 이후 빠른 속도로 달려왔다. 경제적 발전 뿐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등 여러 영역에서 커다란 발전을 이룩했다. 경제발전의 측면을 보자면 구매력평가(PPP) 기준으로 환산한 1인당 GDP(2014년 기준 3만 4,356달러)에서 일본, 영국, 프랑스와 비슷한 수준을 달성했고, 명목 GDP로만 봐도 다른 선진국과 큰 차이가 나지 않은 수준으로 발전해 왔다.



그러나 우리의 정신문명이 다른 선진국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발전했는지는 의문이다. 특히 작년 세월호 사건 당시 선장과 선원들이 보였던 태도, 세월호를 소유하고 있는 기업과 그 배후에 있는 종교집단 및 종교집단과 기업을 감시하고 관리해야 할 정부 기관 등의 무책임하고 비이성적인 태도는 우리를 충격과 실망에 빠트렸다. 그리고 금년 메르스 사태 과정에서 정부 당국의 무능한 대처와 공공의식이 결여된 국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한국 사회가 국민의식, 정신문명의 측면에서의 업그레이드가 절실한 시점에 와 있다는 심각한 문제의식을 가지게 됐다.





1. 공공의식의 부족



공공의식 부족은 여전히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이다. 메르스 사태 당시 자택에 격리된 사람들이 지정된 거주지를 벗어나 무단 외출하거나 심지어 자기 멋대로 거주지를 옮겨버리는 일까지 벌어졌다. 격리대상자 중 한 사람은 자택에서 먼 지역으로 가서 골프까지 치고 온 사례도 있었다. 이 사람은 아마 자신이나 배우자가 사회의 모범을 보여야 할 지위에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사람들조차 이렇게 낮은 공공의식을 보여줬다. 메르스 사태 초기에 환자가 병원 내에서 멋대로 병실을 이탈한다든지, 병원이 요구하는 지시사항을 잘 지키지 않아서 사태를 확대시킨 사례도 찾아볼 수 있다.



평소 공적인 목적이나 공공의 이익에 관한 문제들에 대한 관심과 책임감 보다는 사적인 편의나 습관, 인간관계에 더 의존하는 사례들도 무수히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어떤 일을 추진하거나 결정을 내리는데도 공적인 동기보다는 사적인 동기에 의해서 결정을 내리며, 사람을 선출·선발할 때에도 공적인 기준보다는 사적인 관계, 즉 자신과 얼마나친한지, 자신과 어떤 인연이 있는지에 의존한다. 대규모의 선거나 소규모의 인적선발에 있어서도 학연, 지연, 기타 사적인 인간관계 등이 여전히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공공의식이 가장 강해야 할 법조계에서도 여전히 전관예우와 같은 것이 주요 논란이 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참담한 일이다. 전관예우가 있는지 없는지 판사와 사적인 인간관계가 있는 변호사를 선임하면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판사들은 한결같이 전관예우 같은 것은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의뢰인과 일반인 심지어 변호사들까지도 여전히 전관예우가 있고 사적 인간관계가 판사의 판결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판사들이 그런 영향을 받고 안 받고에 상관없이 사회 전반의 공공의식이 얼마나 문제가 많으면 가장 공정해야 할 재판조차 사적 인간관계에 좌우될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을까.



60~70년 전은 말할 것도 없고 20년, 30년 전 과거와 비교해보더라도 한국인들의 공공의식이 상당히 많이 개선됐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차량이나 보행자의 교통질서 준수라든가 공공장소에 쓰레기 버리지 않기, 침 안 뱉기 등 과거에 비해 공공질서 준수가 뚜렷이 개선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면에서는 일본, 독일보다는 떨어지지만 영국, 프랑스보다는 나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중요한 많은 부분에서 한국인들의 공공의식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



한국이 국민소득 뿐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 공공의식이라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아무리 공공의식을 가르친다고 하더라도 부모나 기타 가까운 사람들이 공공의식을 중요하게 여기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학생들도 공공의식을 무시하는 태도를 갖게 될 것이다. 모든 세대가 본인의 공공의식 수준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하겠지만 특히 자녀나 기타 어린 세대, 젊은 세대 앞에서는 공공의식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우선적으로 중요하다.





2. 공적시스템에 대한 불신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많은 시민들이 정부의 발표보다는 사적인 인간관계에서 얻는 정보 또는 SNS에서 얻는 정보나 권고사항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부가 불필요하게 정보통제를 심하게 해서 문제를 더 키운 측면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사적으로 입수한 정보들은 부정확한 것들이 많고 어떤 것이 정확한지 어떤 것이 부정확한지 판단할 수 있는 근거도 없기 때문에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오히려 과도한 불안감과 공포만 증폭시킬 뿐이었다.



2008년 광우병 사태 당시에도 많은 시민들이 공적인 정보, 국가에서 발표한 정보에 대해서는 불신하거나 중요하지 않게 생각한 반면에 SNS나 인터넷 상에 유통되는 정보는 지나치게 신뢰하고 의존하는 모습을 보였다. 광우병 사태 초기에 인터넷에 올라온 정보의80~90%는 진실에서 많이 동떨어진 것으로 드러난 것을 본다면 이러한 식의 태도가 국가를 위해서나 개인을 위해서나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태도에는 몇 가지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거나 핵심 정보를 알려주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그런 사례들이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일반적으로, 특히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된 문제에서 정부가 거짓말을 하거나 핵심 정보를 알려주지 않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 그럴수록 문제가 굉장히 커지기 때문이다. 관료들은 가까운 미래에 닥칠 문제나 어려움을 회피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관심이 집중된 문제에서 핵심정보를 숨기고 있다가 문제가 될 확률이 높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러나 일반 국민들은 오히려 그 반대로 관심이 집중된 사건일수록 정부가 핵심 정보를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광우병 사태의 경우, 1주일 정도가 지난 다음에는 중요한 정보들이 밝혀질 만큼 밝혀졌고, 입증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핵심정보를 감추고 있다는 믿음이 오랜 시간에 걸쳐서 유지됐다. 여기에는 군사정부 시절부터 생긴 정부에 대한 오래된 불신이 배경이 되고 있을 뿐 아니라 핵심적이고 결정적인 정보일수록 은밀한 사적 통로를 통해 얻어야 한다는 전통적인 사고방식이 여전히 남아있는 측면도 있다.



실제로 지난 20여 년 동안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건에서 정부가 핵심정보를 숨기고 있다가 크게 문제 된 사례는 없었다. 사람들이 자신이 모르는 어마어마한 비밀이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이를 악용한 사기 사건이 자주 등장하곤 한다. 대통령과 극소수만 알고 있는 엄청난 금괴가 어디어디에 묻혀 있다느니 권력핵심 모씨가 관리하는 엄청난 양의 구권 화폐가 있다느니 등의 황당한 이야기로 사기를 시작하는데 꽤 교육받은 사람들조차도 이런 어처구니 없는 사기에 당하는 경우가 꽤 있다.



공적시스템을 통해서는 알 수 없는 어마어마한 은밀한 정보가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이런 사기에 당하는 것이다. 한국의 공적 시스템은 완전하지 않다. 모든 정보가 100% 투명하게 공개된다고 할 수도 없다. 그러나 명백한 것은 공적시스템에 주로 의존하는 것이 사적 시스템에 의존하는 것보다 몇 배 안전하고 믿을만하며 각 개인에게 이롭다는 것이다. 공적시스템에 주로 의존하고 공적시스템에 힘을 실어주고 공적시스템에 더욱 긴밀하게 다가가 감시할수록 공적시스템은 더욱 강해지고 공정해질 것이다.





3. 객관적 태도의 결여



광우병 사태 때 초기부터 광우병과 관련된 핵심 정보들이 언론 상에 많이 노출됐다. 언론에 나온 어떤 개별 정보들을 설사 100% 확신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 정보들을 종합한다면 광우병에 대한 문제제기가 아주 터무니 없는 것이라는 것이 아주 명확했다. 정보는 이미 충분했다. 문제는 정보가 아니라 객관적 태도였다. 많은 사람들이 편견에 가득한 출처도 불명확한 정보들에 매달리고 앞뒤가 맞지도 않은 논리에 집착했다.



일부 시위대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여론조사를 본다면 과반수의 시민들이 그런 비합리적인 논리에 동조했다. 1~2주도 아니고 몇 달간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객관적으로 문제를 보려는 태도를 계속 거부하는 태도를 보였다. 한국 사람들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한 번 편견이 형성되면 명백한 증거가 나와도 잘 바뀌지 않고 자기가 취해왔던 태도를 합리화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어디에서나 목격할 수 있다. 사이비종교에 빠져 그 종교에 이런저런 문제가 있다는 것이 명백히 드러나는 데도 이에 눈을 감고 끊임없이 자기합리화 논리를 만들어내며 객관적인 사고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어느 나라에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엄청난 다수의 사람들이 장기간 객관적 정보를 거부하고 객관적 태도를 거부하는 사례는 찾기가쉽지 않다.



어떤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는데 관심이 있다기보다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 정치 그룹에 대해 공격하려는 데 더 관심을 두고 문제의 핵심이 어디 있는지, 문제의 합리적인 해결방식이 무엇인지 대해서 객관적 판단을 하려는 태도를 완전히 접으려는 현상들이 나타났다. 이런 현상은 단순히 광우병 사태 뿐 아니라 다른 경우에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작년 안대희, 문창극 총리 후보의 잇단 낙마사태를 들 수 있다. 물론 그 사람들에게 일부 흠결이 있었고, 문제를 삼을 수도 있는 내용들이기도 했지만, 총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서는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한국사회에서 빠른 속도로 개발을 하던 시대에 대부분의 국민들이 속도를 중시하고 이런저런 편법을 용인했던 삶에 익숙해져 있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안대희, 문창극 두 사람은 비교적 깨끗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까다로운 사전검증을 통과하여 총리후보가 되었을 것이다. 문창극 후보는 도덕성이 문제되었던 것이 아니고 역사관이 문제가 되었는데 만약 문 후보가 역사관에 분명한 문제가 있었다면 메이저 언론사에서 그렇게 오랫동안별 문제없이 일하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종교집회에서 자기들 화법으로 말하는 것은 외부에서 보기에 이상한 것들이 많다. 객관적인 관점을 가진다면 종교집회에서 종교적 화법으로 말한 것을 문제 삼을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총리뿐만 아니라 다른 공직이나 대통령 후보를 볼 때도 객관적인 기준이라는 것이 있느냐 하는 의문을 갖게 만든다. 특정 부분에서는 지나치게 엄격하고, 특정부분에서는 지나치게 관대하다. 그나마 그것이 시기와 상관없이 대상자와 상관없이 일관성이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일관성도 없다. 4대강이나 자원개발 문제에 대해 논쟁할 때도 객관적 태도에 기초해서 열린 토론을 추구하기보다는 각종 개별 정보를 보기 전에,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듣기 전에 미리 어느 한 쪽의 입장을 굳게정해 놓고 모든 정보를 자기가 굳게 정해놓은 입장에 맞춰서 받아들이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계급적 당파성을 엄격하게 추구하기 때문에 객관적 태도를 배제하는 나름대로의 탄탄한 이론적 기초를 갖추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객관적 태도를 배격하는 나름의 논리라도 있다.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면 객관적 태도를 갖추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국민이 객관적 태도를 가져야 국가를 극단으로 몰아가지 않는다.





4. 공격적이고 감정적인 태도



한국인의 장점은 모든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이고 공세적이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장점은 동시에 단점이기도 하다. 공격적인 성격이 빠른속도의 경제발전이나 빠른 일처리를 가능하게 했지만 단점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많다. 모든 문제에 있어서 지나치게 공격적이어서 너무 급하게 그리고 감정적으로 처리하는 케이스도 많다. 광우병 사태만 보더라도 한 발 물러서서 사태의 본질이 무엇인지, 진행과정이 어떻게 되는지를 살펴보고 나서 행동에 나서도 되는데 전혀 살펴보지도 않고, 당장 행동으로 나서서 감정적이고 폭력적으로 반응한다.



10년 전에 인천공항에서 중국으로 가는 항공편을 기다리다 탑승이 4시간 정도 늦춰진 적이 있었다. 항공사 직원이 처음에 30분 늦어지겠다고 했다가 또 30분 더 늦어지겠다고 했다가 결국 4시간 늦춰진다고 했다. 중국 공군의 요청으로 인해 현지 공항이 통제됐기 때문이라는 항공사 직원의 설명이었다. 사실 중국 공항에서 어떤 문제가 있다고 해도 항공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데, 공군의 통제에 대해 항공사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20~30명 정도의 사람들이 항공사 직원에게 가서 큰 소리로 욕을 하고 항의를 했다. 대부분 한국인이었다.



항공사도 어쩔 수 없는 일인데도 직원에게 고성부터 지르는 것은 앞뒤 사리를 따져 보지도 않고 4시간이나 공항에서 기다린다는 것이 화가 나서 소리부터 지르고 보자는 마음이다. 우리 일상 생활에서 이런 사례는 무수히 많이 목격할 수 있다. 고객을 직접 상대하는 서비스 업종 종사자들의 경우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일을 경험할 것이다.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이런 사례는 있을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빈도가 훨씬 높아 보인다. 2002년 월드컵 응원 같은 모습에 많은 외국인들이 매력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일상생활이나 업무나 정치활동에서도 이런 식으로 대한다면 우리 국격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은 요원한 것이 될 것이다.





5. 정부와 대통령에게 책임을 넘기는 태도



한국의 고속 성장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컸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주변국들과 정부의 역할을 비교했을 때, 한국 정부의 역할은 중국이나 러시아보다는 월등히 적고 일본과 대만과는 비슷한 수준이다. 유럽 국가들과 비교해 보더라도 한국 정부의 역할이 적으면 적었지 우리가 더 크지는 않다. 정부와 대통령이 국가운영이나 국가발전 등에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기는 하지만 그 정도가 과거에 비해서 월등히 줄었고, 다른 나라에 비해서도 크지 않다는 것이 확실한데도 불구하고 어떤 일이 생기면 모든 책임을 정부와 대통령에게 넘기려는 태도가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일단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중요한 사태는 다 대통령의 책임으로 돌린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성수대교 붕괴사건 등이 발생했을 때 무조건 대통령에게 책임을 돌렸다. 물론 대통령에게 완전히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시설에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를 관리하고 점검하는 것의 궁극적인 책임은 정부에 있고, 정부를 책임지는 것은 대통령이기 때문에 책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직접적 책임의 정도가 크지 않음에도 무조건 일만 터지면 정부와 대통령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은 문제다. 메르스 사태도 초기 발생이나 중간에 사태 확산을 막는 과정에서 정부의 무능이나 시스템 상의 문제가 분명히 있었다. 세월호 사태의 경우 운행 회사와 정부 기관 사이의 모종의 커넥션도 있었고, 과적이나 선박 구조상의 문제를 평소에 잘 점검하거나 관리하지 않은 문제, 초동 구조 과정에서 어느 정도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그 역시 책임의 정도에 비해서 과도하게 정부의 책임을 추궁하는 측면이 있다.



심지어 세월호 사태가 발생했을 때 대통령이 어디에 있었는가라는 비본질적인 문제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세월호 사태의 경우 책임이 어느 쪽에, 어느 정도 있는지가 구체적인 검증을 통해 명확하게 드러난 문제다. 정부에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는지도 명확하게 드러난 문제다. 물론 정부와 대통령에게 실제보다 조금 더 큰 책임을 물을 수는 있다. 그러나 이것이 지나칠 경우에는 문제를 객관적으로 보기 어렵게 만들 수 있다. 문제를 객관적으로 보기 어렵게되면 문제해결 방법도 합리적으로 이끌어낼 수 없다. 모든 것을 마치 대통령을 잘못 뽑아서 문제가 생긴 것처럼 애기하면 시스템을 개혁하는 것도 필요가 없어진다. 이것은 사회 발전이나 시스템 개혁, 그리고 사람들이 각 위치에서 책임 있는 태도를 갖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6. 마녀사냥



어느 사회나 마녀사냥을 좋아하는 경향은 있다. 자신의 무료함을 달래고 싶은 욕구,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면서 누군가를 비난하고 싶은 욕구, 나보다 나은 사람을 깎아내리고 싶은 욕구는 어느 사회나 있다. 그러나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이런 현상이 훨씬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주로 연예인이 마녀사냥의 대상이 되기는 하지만 일반인이 대상이 되는 경우도 꽤 있다. 대표적인 것이 최근의‘ 세모자 사건’이다. 남편과 시아버지의 강요로 본인과 두 아들을 십수년간 집단윤락을 시켰다는 내용의 발표를 어머니와 두 아들이 직접 나서서 한 것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본다면 세모자가 말한 내용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극도로 억압된 사회에서도 있기 어려운 일인데 한국처럼 개방적 사회, 치안이 발달된 사회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이런 논리적 결함은 무시하고 명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해보지도 않고 세모자의 말을 믿고 남편과 시아버지의 실명을 거론하고 엄청난 비판을 퍼부으며 여기저기 퍼 날랐다. 극소수의 사람들이 아니라 수 만 명의 사람들이 여기에 동참했다. 경찰 수사결과의 일부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반전이 생겼고 결국‘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남편이 최대의 피해자라 는 것이 드러나게 되었다. 그 동안 네티즌들은 최대의 피해자인 남편을 욕하는 데 열을 올렸던 것이다. ‘채선당 임신녀 폭행 사건’도 비슷한 예다. 임신한 여성의 배를 채선당의 종업원이 발로 찼다는 내용이 인터넷에 올라오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그 종업원에 대한 비방과 채선당 불매운동에 나섰다. 추후 폐쇄회로(CC) TV 화면을 분석한 결과 그런 사실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채선당은 엄청난 매출 손실을 봐야 했고 결국 해당 지점은 폐쇄되었으며 해당 직원은 일자리를 잃었고 며칠간의 지옥 같은 경험은 덤이었다.



이 몇 가지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다. 이런 일이 무수히 많이 일어나고 있다. 위의 사례들은 시시비비가 명확히 가려져서 그나마 다행이지만 시시비비가 명확히 가려지지 않은 사건들은 오랫동안 마녀사냥에 시달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마녀사냥을 하고자 하는 욕구는 어느 사회에나 있지만 한국에서는 유독 더 심한 듯하다. 이런 것으로 명예훼손죄나 모욕죄로 고소를 하거나 민사소송을 하는 경우가 아주 드문것도 이런 행동을 더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법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회발전의 일정 기간 동안에 법을 엄격히 적용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사회를 업그레이드하는 데 분명히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7. 순혈주의



한국은 순수한 혈통을 지닌 단일민족이라는 것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하나의 신화다. 사실 우리가 순혈의 단일민족일 가능성은 전혀 없다. 이미 몇 천 년 전에 다양한 민족과 혼혈이 됐을 가능성이 크지만, 그렇게까지 거슬러가지 않아도 900년 전 거란이 멸망하고 나서 거란인들이 각지로 흩어질 때 고려에 들어와 살았던 거란인이 100만에 달한다는 기록도 있다. 여진족이 국경지방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깊숙이 들어와서 살았다는 기록도 많다. 왜구가 우리나라를 침략하여 식량을 약탈하고 부녀자들을 강간한 것도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과정에서도 혼혈이 나타났을 것이 명확하다.



일본으로부터 해방되면서 민족의식이 강조 되었는데, 신생독립국으로서 민족의식을 강화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민족의식을통해 독립국으로서의 지위를 강조하고 우리가 빨리 발전할 수 있는 기본 동력을 민족적 단결력으로부터 찾으려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그 시대에서는 민족적 순혈주의를 강조하는 것이 어느 정도 필요한 측면이 있다고 보지만,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다. 지구촌 시대가 도래 하면서 수없이 많은 인적인 이동, 교류, 통신, 교역, 기타 국제적 협조가 매일 같이 어마어마하게 이뤄지는 시대가 됐다. 경제 시스템 자체도 한국의 독자적인 경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국제적으로 연계되어 있을 뿐 아니라 동북아 3국은 특히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래도 여전히 순혈주의적인 태도가 강하게 남아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롯데 사태다. 롯데 문제를 객관적으로 보자면, 일본에서 성공한 기업가가 한국에 투자했는데 그 투자를 오랫동안 유지했고 투자가 성공을 거둔 케이스다. 우리가 그 해외교포의 투자를 받을 때 그 사람의 국적이 한국인지 일본인지를 문제 삼지 않았다. 그 사람이 주로 한국어를 쓰는지, 일본어를 쓰는지 역시 문제 삼지 않았다. 그 아들들이 한국어를 잘하는지 일본어를 잘하는지, 대화를 할 때 한국어를 쓰는지, 일본어를 쓰는지가 궁금할 수는 있다. 그리고 한국에서 경영활동을 하려면 한국어를 잘하는 것이 물론 필요하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것에 대해서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재일교포가 아니라 순수 외국 기업도 한국에 들어와서 투자와 교역을 한다. 예를 들어 홈플러스 역시 롯데처럼 우리 일상소비생활과 밀접한 기업이고, 내수에 치중한 기업이지만 100% 외국 자본 기업이다. 롯데가 일본 기업이니까 불매 운동을 해야 한다, 배척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한국의 국가발전을 위해서 결코 적절한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 한국에는 외국인 유학생, 관광객, 근로자들이 많다. 서울 시내 곳곳에서 이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이 사람들은 한국 경제 유지와 발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에 대한 거부감이 최근 확산되고 있다.



물론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에서도 나타나고 있지만 다른 측면이 있다. 한국과 일본은 아직 외국인 비율이 아주 낮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민자 비중이 일정 수준 이하일 때는 그런 문제들이 크게 불거지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은 그 비율이 아주 낮은데도 그런 거부감이 확산되고 있다. 그것이 한국인과 일본인의 순혈주의적인 태도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외국인 근로자나 유학생, 결혼 이민자를 포함한 외국인 이민자를 더 많이 받아들이자 라든지 받아들이지 말자라든지 등의 정책적 주장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현재 한국에 있는 유학생, 근로자, 이민자들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우리는 다른 나라와 적극적으로 교류하고 교역하는 전략으로 큰 성공을 거뒀고 앞으로도 그러한 길로 가야 한다. 우리가 한국에 있는 외국인이나 이민자들을 존중하지 않는데 주변 다른 나라들이 부처님과같은 넓은 마음으로 그런 것을 늘 포용해줄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개방적인 전략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개방적인 마음을 가져야 하고 외국인과 이민자들을 존중하는 태도로 받아들여야 하며 해외교포기업이나 외국기업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8. 조급증



한국이 빠른 속도로 경제 발전을 할 수 있었던 데는 한국인들의 공격적인 태도와 빨리빨리 문화가 긍정적으로 기여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뭐든지 빨리빨리 하는 태도는 장점일 뿐 아니라 단점이기도 하다. 바로 조급증이 문제이다. 식당에서 식사를 주문하고 기다릴 때 가장 빨리 짜증을 내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한국인이라는 통계도 있다. 일을 추진할 때도 결과가 빨리 나타나기를 원하고, 또 어떤 정책을 결정할 때도 조급하게 판단하고 결과를 기다릴 때도 조급해 하는 경우를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대표적인 케이스 중 하나가 4대강 사업과 해외자원개발 문제다. 정책적인 측면에서 이명박 정부 시절의 4대강 사업과 해외자원개발에 대해 객관적으로 맞다, 틀리다를 특별히 언급하고 싶지는 않다. 4대강 사업 같은 것을 추진하기 전에 찬성과 반대 의견을 낼 수 있다. 그러나 일단 결정이 이뤄졌고, 집행과정을 거쳐 완공까지 했다. 그러나 소규모 홍수나 가뭄이 나타날 때마다 4대강을 문제 삼는 사람이 많다. 뿐만 아니라 전적으로 다 없애고 원상회복해야 한다는 사람까지 있다. 지금까지 보이는 현상만으로는 이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4대강 사업이 잘못됐다고 비판할 수는 있지만 일단 완공된 이상 종합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을 위해 조금 더 시간을 갖는 것이 올바른 접근이고 합리적 자세가 아닌가 생각한다.



4대강 사업은 내가 그 시점에 그 자리에 있었다면 안 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해외자원개발은 그 시기적 배경 하에서는 누가 그 자리에 있어도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당시는 중국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자원소비를 급속히 늘려가는 시기였다. 중국 정부는 자원부족이 느껴지니까 국가의 돈을 쏟아 붓고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서 해외자원을 확보하고 개발하는데 집중했다. 이를 옆에서 지켜본다면 당연히 위기의식이 느껴질 것이다. 세계의 자원은 날이 갈수록 고갈될 것이고 가격은 폭등할 텐데 우리만 손 놓고 있을 수 없다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 누가 그 자리에 있든지 자원개발에 상당히 많은 역량, 인력, 자금을 투자할 수 없지 않았을까 싶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세계 금융위기가 터지고 중국도 자원소비가 줄어들거나, 확대 속도가 둔화되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대부분의 자원 가격이 폭락했다. 자원 가격이 폭락하니 자연스럽게 광산 가격이나 자원개발 회사의 가치도 많이 떨어졌다.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왜 이런 투자를 했느냐 이런 얘기들이 나올 수 있고, 개별적으로 보면 합리적이지 않은 투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종합적으로 봤을 때 그 시점에서 해외자원개발에 많은 돈을 투입한 것은 합리적 태도였다고 봐야 한다. 지금은 자원 가격이 하락세이지만 또 언제 상승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사실 이명박 정부 시기보다는 차라리 자원 가격이 약세인 지금이 투자의 적기일수도 있다. 결국 지금 당장 기준으로 판단하기 보다는 조급성을 버리고 길게 보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이 더 필요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9. 한반도 정세 불감증



남북이 분단된 채 70년이 흘렀고, 한국전쟁이 끝난 지도 62년이 흘렀다. 그 기간 동안에 전혀 분쟁이 없던 것은 아니고 대규모는 아니지만 소규모 전투들도 꾸준히 있었다. 그러나 소규모 전투들이 가끔 있다 보니, 소규모 전투들까지도 오히려 평범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한 측면이 있다. 천안함 사태 때나 연평도 포격 당시 한국에서 근무하는 외국인이나 유학 나온 사람들의 가족들이 위험하니까 당장 한국을 떠나야 한다는 전화를 많이 했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전화를 받은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이 너무 태평하고 여기는 평화롭게 일상생활을 하는데 불안감을 느끼고 돌아갈 필요가 있겠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물론 당장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날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태도도 잘못이지만 너무나 평온하게 일상적인 생활을 유지하며 별 일 아니라는 식의 태도를 보이는 것도 큰 문제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우리가 북한의 행로에 대해서 일희일비 할 필요도 없고, 과민 반응할 필요는 없다. 과민반응 하는 것은 오히려 북한의 술책에 넘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민 반응하는 것과 안보의식을 분명히 갖는 것은 다른 측면의 문제다. 어마어마한 군사력으로 늘 전쟁준비를 하고 있으며, 호전적인 성격의 북한이 우리의 지척에 있다. 엄청난 개수의 포신이 서울을 향해있다. 한반도는 언제라도 전쟁이 벌어질 수 있는 상태에 있다. 이런 것을 평소에 지나치게 강조할 필요는 없지만 잊어버려서도 안된다. 그러나 젊은이들 뿐 아니라 중장년층의 상당수도 이를 쉽게 무시하거나 잊고 살고 있다. 북한에 대해 얘기할 때 북한이 문제이고, 호전적이라는 것에는 수긍하지만 실제로 한국의 미래와 정책 우선순위를 얘기할 때는 안보 문제는 중요한 관심사에서 떨어져 있다.



대통령이 알아서 하겠지, 군에서 알아서 하겠지 라며 제쳐두는 경우가 많다. 통일은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가까운 일이다. 통일에 대해 실질적인 관심을 갖고, 우리의 일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아주 소수다. 앞으로 조기에 통일이 되든 안 되든 상관없이 앞으로 최소 30년에서 50년 간 우리나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가 바로 북한과 통일이다. 심지어 우리의 사소한 일상생활에까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 북한과 통일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를 잘 모를 뿐 아니라 평소에 생활하거나 생각할 때도 이를 주 고려대상에서 배제시킨다. 북한이나 통일에 관해 관심을 가진다고 하면 특이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사람들이 북한과 통일이 자기생활에서 직접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무시한다고 해서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존재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북한은 현존하는 명백한 주요 위험이고 통일은 분명히 존재하는 미래의 현실이다. 북한을 투명인간 취급하면서 존재하지만 실제로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태도이고, 이러한 태도가 미래를 더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10. 양보와 타협하려는 태도의 결여



우리가 정치를 하든지, 경제 활동을 하든지, 심지어 가족 내의 관계에서도 양보와 타협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은 명확하다. 양보와 타협이 없으면 부부 관계도 정상적으로 유지될 수 없고, 정치나 경제도 제대 로 돌아갈 수 없다. 경제활동에 있어서는 당장 눈앞의 이익이 달려 있으니까 반드시 필요하면 양보와 타협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영역에서는 문제가 생기거나 의견 충돌이 생기면 양보와 타협하려는 태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쉽게 타협하고 적절한 합의점에 도달해서 끝내버릴 수 있는 문제임에도 계속 극단적으로 치닫는다. 몇 년 전 한국의 민사소송이 인구비례로 봤을 때 일본의 6배, 고소는 일본의 155배라는 신문기사를 본 적이 있다. 서로 양보를 하지 않고 타협이 안 돼서 소송으로까지 치닫는 비율도 굉장히 높은 것이다. 정치와 관련된 문제에서는 훨씬 더 심하다. 정치는 다른 영역보다도 양보와 타협이 더 필요하지만 하지 않는다. 정당과 정치인들이 사실 몇 주면 처리할 수 있는 문제를 반년, 1년 씩 끌고 가는 건 예사이고, 그로 인해 국가적, 사회적 손실이 늘어나고 있다. 손실은 둘째 치고 전반적 국가운영이 정상적으로 되지 않은 문제도 계속된다.



이것은 정당, 정치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당과 정치인은 늘 유권자들의 영향을 받게 되어 있다. 유권자들 중에 적극적인 유권자의 다수가 양보하고 타협할 의사가 별로 없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다. 유권자들은 한편으로는 양보와 타협을 하지 않고 싸우는 정치인들을 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쉽게 양보와 타협을 하면 비난한다. 왜 여야가 매일 싸우기만 하느냐는 욕은 추상적이기도 하고 정치권 전체가 해당되니까 개별 정치인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양보와 타협을 주도 했다고 하면 일부 유권자들의 비난의 화살이 자신에게 집중되니까 정치인들도 양보와 타협을 쉽게 선택하기 어렵다.



새만금 간척사업이나 제주해군기지 공사, 천성산 공사의 경우 양보와 타협이 안 돼서 입은 손실이 어마어마하다. 직접적인 손실에 사회적 손실까지 더하면 각기 수천억 원에 달하는 피해 액수를 기록했다. 경제적 손실을 객관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사례 뿐 아니라 계산할 수 없는 일에도 무수히 많은 손실이 있었다. 모든 문제에 있어서 자기주장을 선명하게 반복적으로 제기할 수도 있지만 일정정도 시점에 이르러서 논점이 충분히 전달됐으면 특정 선에서 타협하고 양보할 수 있다는 태도로 빨리 전환되어야 한다. 그것이 잘 안 되면 경제적 손실 뿐 아니라 사회 발전이 전반적으로 지체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한국사회가 업그레이드되기 위해서는 논쟁할 때는 날카롭고 치열하게 하더라도 논쟁의 결과를 발전적으로 수렴해서 적절한 지점에서 양보하고 타협하는 사회로 나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한국의 선진화를 이야기하면 우리가 그렇게 빨리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 안달복달 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분들이 있다. 내가 그런 논리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명확한 것은 경제적 수준과 의식수준의 차이, 물질문명 수준과 정신문명 수준의 차이가 문제를 낳게 되고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 것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경제수준을 국민이 자발적으로 후퇴시키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현명한 선택도 아니다. 그렇다면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해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다. 우리의 의식수준을 빨리 발전시키는 길이다. 앞에서 한국인의 조급증을 비판했으면서 의식수준을 빨리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니 조금 어색하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에게 다른 선택의 길이 있는 것도 아니다. 불균형은 짧은 기간에는 발전의 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불균형이 오래 되면 온갖 문제와 갈등의 원인이 된다. 의식개혁, 의식발전에 집중적인 노력을 해야 할 때다.
관련뉴스/포토 (10)
#태그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