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통일에 유리하게 조성된 동북아 정세 [시대정신 논단, 김영환]















김영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



1. 동북아 정세 개관



동북아 정세는 아주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이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나라는 한국과 북한이다. 이러한 변화를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등 한국에 매우 불리한 상황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과연 그럴까? 우리의 전통적 우방인 미국, 일본과 우리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 사이의 갈등 요소가 커지면서 우리의 입지가 어려워진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동북아 정세의 변화는 종합적으로 따져본다면 부정적 측면보다 긍정적인 측면이 압도적으로 크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의 최대의 과제는 선진화와 통일이다. 선진화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전략을 제시하고 있지만 어떤 길로 가든 약간의 빠르고 늦은 차이만 있을 뿐 선진화의 길로 가는 데 큰 차이가 있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통일은 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계속 기다리다 보면 결국 통일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 현재 한반도에는, 특히 북한에는 통일적인 요소와 영구분단적인 요소가 동시에 성장하고 있다. 현재는 어떤 요소가 더 압도적이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일단 어느 요소가 압도적인 지위를 한 번 차지한다면 이를 뒤집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통일을 위해 과거 그 어느 때와 비교해서 보더라도 유리한 정세가 조성되어 있다. 북한은 1990년대 오직 체제방어에만 집중하며 잔뜩 움츠렸던 것과 달리 지금은 체제방어에도 신경을 쓰지만 그보다는 경제개발에 더 신경을 많이 쓰고 있고 방어적인 모습만 보이고 있지는 않다. 북한 주민과 북한 간부들의 사고의 다양성도 확대되고 있다. 김정은의 미숙한 리더십도 중요한 변수이다. 중국의 대북정책, 대한반도 정책은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고 근본적인 변화 가능성까지도 엿보이고 있다.



미국은 여전히 한국과 한반도를 포기하지 않고 중시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가 지속된다면 앞으로 몇 년 내로 통일을 위해 가장 유리한 정세가 조성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유리한 정세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무작정 기다리다 보면 통일을 위해 더 좋은 정세가 조성될 수도 있지만 그 반대로 불리한 정세가 조성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 김정은 정권의 리더십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많지만 이것이 반드시 더 악화되는 방향으로 갈 것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김정은이 경험을 쌓으며 실수를 줄이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 김정은에 대한 간부들과 주민들의 불만이 더 커지는 방향으로 갈 수도 있지만 그 반대 방향으로 갈 수도 있는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그리고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을 놓고 북한과 국제사회가 더 심각한 대립을 하게 될 가능성도 있지만 그 반대로 국제사회와 북한이 한 발씩 양보해서 어느 정도 수준에서 상황을 봉합하고 넘어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북한의 산업경쟁력이 극히 약하기 때문에 북한경제에는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북한의 경제규모가 워낙 작기 때문에 일부 부문에서만 성공하더라도 상당한 성공을 거둘 수 있다. 그리고 북한에는 지난 20년 동안 장마당 등에서 경제 마인드를 키워온 300~500만 명 정도의 시장 플레이어들이 있다. 그리고 김정은의 경제정책에 무조건 황당한 것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거의 성공가능성이 없는 정책들도 있지만 성공가능성이 있는 정책들도 있고 북한 특성상 일부에서만 성공해도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현재 북한에서는 최소한의 경쟁력이라도 있는 산업은 광업과 수산업에 국한되어 있고 그 단순한 광업조차도 상당 부분을 중국기업에 의존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북한정부가 앞으로도 지금처럼 경제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일 경우 10년 후 혹은 15년 후에는 몇 가지 새로운 경쟁력이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은 현재 심각한 재정압박을 받고 있고 미국의 방위범위를 줄여야 하는 처지에 임박했을 때 한반도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리고 미국의 전문가들은 중국과의 아주 긴밀한 경제관계를 절대 포기하지 않으려고 하는 한국에 대해 조금씩우려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기 시작했고 이는 조금씩 정치권으로 확대되고 있다. 한미관계가 10년 혹은 15년 후에도 지금과 같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아무도 장담하기 어렵게 되었다.



중국에는 현재 북한에 정상적 미래가 없고 한국 주도의 통일이 중국에 결코 불리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전문가들이 늘어나고 있고 이것이 정치권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추세가 무조건 계속 확대될 것이란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만약 북한이 경제개발에 어느 정도 성공하고 핵무기 등에서 국제사회와 어느 정도 타협하는 모습을 보이고 김정은의 리더십이 안정되는 모습을 보인다면 북한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는 전문가들과 정치인들의 입지가 더 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처럼 미래가 통일을 위해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도 있지만 그 반대 방향으로 갈 가능성도 꽤 있는 것이다. 따라서 무조건 기다리기만 하는 정책은 좋은 정책이 아니다. 한반도의 통일은 북한 주민들의 끔찍한 고통을 보더라도,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장기적 계획을 수립하기 힘든 한국의 상황을 보더라도, 안보불안에 시달리는 동북아 정세를 보더라도, 북한의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는 국제사회를 보더라도 이제 더 이상 미루기 어려운, 미뤄서는 안 되는 과제이다. 현재, 그리고 앞으로 5~10년 이내의 기간의 정세는 지난 70년 그 어느 때에 비해 한반도 통일을 위해 유리한 정세이고, 앞으로 이런 좋은 정세가 다시는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는 이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현재 미국, 일본, 러시아 이 3국은 한국 주도의 통일에 대해서 큰 거부감을 갖고 있지 않다. 일각에서는 이 나라들이 내심 통일을 반대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러나 개별적으로 그런 의견을 가진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국가적 차원에서 통일에 대한 반대를 적극적으로 표현한다든지 혹은 가까운 장래에 적극적 통일 반대로 돌아설 나라는 없다는 것이 확실하다. 중국은 그동안 한반도 상황의 급변이 중국에 여러 가지 측면으로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동북아시아 균형을 파괴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 때문에 노골적인 반대를 하지 않았지만 내심 적극적 반대 의견을 갖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기류에 변화 조짐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아직 중국 정부가 입장을 완전히 바꿨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빠른 속도로 입장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항상 역사 발전이 한 방향으로만 이뤄진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북한이나 중국 더 나아서 미국, 일본, 러시아도 현재와 같은 입장을 앞으로도 계속 유지하리라는 장담은 할 수 없고, 10년 후에 혹은 20년 후에 미국이나 중국 둘 중 어느 한 나라가 혹은 심지어 두 나라 다 통일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반대해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기회는 있을 때 확실히 잡아야 한다. 현재 중국 태도의 변화 추세로 볼 때 앞으로 짧으면 2년에서 길면 5~6년 이내에 중국의 대북한 정책, 대한반도 정책은 근본적 질적 변화를 추구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이러한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적극적인 통일을 추구하는 대북전략 및 동북아 외교를 전개해야 한다.





2. 북한의 정세와 입장



북한은 지난 10여 년 동안 경제 개발에 상당히 적극적인 태도를 갖고 있었고 상당한 성과도 있었다. 특히 지난 7년여 동안은 중국과의 적극적인 관계 개선과 시장에 대한 정부의 호의적인 태도에 힘입어 모든 영역에서의 경제 상황이 빠른 속도로 호전되었다. GDP도 그에 따라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2013년 기준으로 북한의 무역의존도는 40% 정도에 달하는데, 이는 1990년대 초반의 한국 수준과 비슷하다. 이는 물론 북한의 경제규모가 워낙 작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북한이 무역에 매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고 무역이 빨리 늘었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북한은 인력 수출에도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서 현재 15만에서 18만 명 정도의 인력을 해외에 수출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는데, 이는 중동 등으로 인력 수출이 가장 활발하였던 1970년대 후반의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남북한의 인구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북한의 인력수출이 매우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북한은 외부 세계의 사상적, 정치적 영향을 극히 꺼려서 인적 교류에 극히 소극적이고 폐쇄적인 입장을 견지해 왔다. 북한 체제가 전반적으로 허약해진 이후 북한 정권의 이러한 우려는 더욱 증폭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인력수출을 이렇게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북한이 경제개발에 매우 적극적으로 매달리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중국을 제외하고 한국, 미국, 일본을 포함한 모든 다른 나라들의 경제제재가 더욱 심화된 조건에서도 빠른 속도로 무역을 확대시켰고 경제를 개선시켜 경제제재와 압박을 거의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북한 경제가 지난 7,8년 동안 빠른 속도로 개선된 것은 명확하지만 한편으로 여러 가지 한계를 뚜렷이 드러내왔다. 북한이 여러 가지 형태의 특구를 지정하고 특구를 중심으로 경제를 발전시키려고 했지만 개성공단을 제외하고는 정상적으로 개발되고 있는 특구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의 산업은 상업, 광업, 농수산업, 인력수출 이외에 특별히 내세울 만한 것이 없다. 무역을 확대하고는 있지만 광물과 수산물, 특히 광물에 집중되어 있다. 그런데 이 광물 생산조차 상당 부분을 중국 기업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북한의 공업은 철저히 망가져서 대외 경쟁력이 뚜렷이 있는 품목을 한두 개조차 꼽기 어려울 지경이다. 그리고 북한경제의 중국에 대한 의존과 편중이 지나치게 심하다. 따라서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된다면 북한 경제 전체가 뿌리부터 완전히 흔들릴 정도로 어려워 질 수밖에 없고 이러한 중국에 대한 의존은 애초에 북한의 지정학적 조건상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지만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면서 얻게 된 경제제재로 더욱 심화되었다.



현재 김정은의 리더십이 안정되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당장 뚜렷한 외견상의 문제가 드러나고 있지는 않지만 장성택이나 현영철 숙청을 지나치게 잔인한 방식으로 한다든지 아니면 군 장성들의 별을 뗐다 붙였다 하는 식으로 모욕을 준다든지 고위 간부를 여러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준다든지 하는 등의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북한 일반 주민들이 동요하고 있는 조짐은 뚜렷이 없다. 주민들의 충성심이 과거에 비해서는 약화되었다는 것이 명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부나 지도자에 대한 반발감이 형성되고 있다는 증거는 없다. 그러나 엘리트들은 고위 인사들에 대한 잔인한 숙청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공포심을 느끼면서도 또 한편으로서는 내심 반발심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북한의 특성 상 불만을 품고 있는 엘리트들이 당장 어떤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북한의 경제, 사회, 정치 상황이 일시적으로 불안정해지게 된다면 그런 기회를 틈타 모종의 행동을 벌일 가능성도 있다.



특히 북한의 엘리트들에게 있어서는 중국의 입장과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 중국이 김정은 정권에게 아주 비판적이고 거리를 두려는 태도를 가진다면 이는 북한 엘리트들에게 체제 붕괴의 아주 강력한 신호로 읽힐 가능성이 높다. 그 뿐만 아니라 중국이 본격적인 압박을 가하기 시작한다면 북한 경제는 곳곳에서 구멍이 생기게 되고 주민들의 생활수준은 급격히 어려워져서 주민들의 충성심은 아주 가파르게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주민들의 이러한 태도 변화도 엘리트들의 행동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봐야 한다.



중국이 북한에 본격적으로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을 때 북한이 다른 대안을 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북한이 만약 핵무기와 장거리미사일을 포기 한다면 미국이나 한국 등 다른 대안을 구하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지만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하기가 극히 어렵다.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미국이나 한국에 기존 중국이 했던 역할을 대신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설사 핵무기를 포기하더라도 미국과 북한이 긴밀한 관계를 갖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고 유일한 대안은 한국이지만 한국과의 관계를 깊게 가지면 가질수록 북한 주민들의 사상동요를 가져올 수 있고 체제가 불안정해진다는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없다. 북한에게 러시아나 일본도 중국의 대안이 될 수 없다.



이런 북한의 정세를 종합해 본다면 현재의 북한의 경제 상황은 아주 호조를 보이고 있고 시장화도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지만 모든 것이 아주 불안정한 정치적 기반 위에 서 있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북한에 대한 중국의 태도가 변한다면, 아니 중국의 태도가 적극적으로 변하기 이전부터라도 그런 신호가 분명히 읽힌다면 북한의 정치 정세는 빠르게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한다.





3. 중국의 정세와 입장



중국은 몇 년 전부터 경제 성장이 둔화되어 가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연착륙을 준비해 왔기 때문에 경착륙 가능성은 낮다고 봐야 한다. 중국이 과거와 같은 수준의 초고속성장을 계속 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경제적 혼란으로 돌입하거나 심각한 침체에 빠질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중국이 평균 4~6% 정도의 안정적인 성장을 10여년 더 지속한다고 하더라도 농촌에서 쏟아져 나오는 농민공들과 고임금으로 고용을 꺼리는 기업들 때문에 실업 문제가 심각해져서 사회불안이 심각해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성장속도가 어느 정도 떨어지게 되면 임금상승 속도도 꺾이게 되고 도시로 나올 준비가 되어 있는 농민의 수도 이미 많이 소진되어 크게 줄어든 상황이다. 성장 속도가 줄어들면 어느 정도의 실업문제는 감수해야 하지만 심각한 사회불안을 조성할 정도라고 보기는 어렵다. 금융의 낙후성과 부실채권, 지방정부의 부채, 불안정한 부동산 등 여러 문제가 있지만 이런 문제들은 오래 전부터 알려졌고 대비되어 왔던 문제들이며 중국경제에 치명적 영향을 줄만한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중국의 성장률이 어느 정도 떨어지더라도 여전히 다른 주요국들에 비해 최소 2배에서 4~5배 더 높은 성장률이기 때문에 중국의 경제비중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한국 등 주변국들에 대한 경제적 영향력은 이미 매우 커져 있는 상황이지만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정치, 외교를 관통하는 일관되고 명확한 가치관이 뚜렷이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중국은 형식으로는 공산주의를 내세우고 있지만 공산주의에 실질적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공산당 간부들 중에서도 공산주의 이상에 관해 연구하거나 토론하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다. 시장 사회주의를 통해 공산주의로 가는 길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도 찾아보기 어렵다. 공산주의가 아니라면 다른 어떤 가치관이 뚜렷한가 하면 그런 것도 없다.



그나마 다른 대부분의 개도국에서 가장 보편적인 성향인 민족주의적 성향은 뚜렷이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이 다른 사상 성향이 특별히 없기 때문에, 그리고 중국이 초강대국이기 때문에 민족주의가 특별히 도드라져 보이지만 중국이 그렇다고 해서 다른 개도국들에 비해 민족주의가 아주 강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중국이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하면 민족주의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 분명하지만 중국을 선진국들과 비교하는 것은 온당한 것이 아니다. 중국은 지금은 중진국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아직 중진국에 도달하지 못했다고도 말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중진국에 도달하기 전에 초강대국이 된 거의 유일한 케이스다. 제정 러시아나 소련도 당시 기준으로 본다면 중진국 수준이었다. 중국이 개도국 상태에서 초강대국이 된 특이한 케이스이기 때문에 이런 점이 가끔 무시되는 경우도 있다. 초강대국이라는 측면이 부각되는 경우가 훨씬 많은데 이런 경우 주로 선진국들하고 비교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중국의 민족주의에 대해서도 개도국들보다는 주로 선진국들과 비교하면서 아주 유별나게 강한 것처럼 과장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중국의 민족주의는 비슷한 소득 수준이었을 때의 한국이나 일본의 민족주의보다 특별히 강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리고 주변의 다른 개도국들보다 더 강하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중국이 초강대국이기 때문에 현대사회에서 초강대국에게 요구하는 덕목들을 잘 지키기 위해서는 민족주의를 일정 수준 이하로 억제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중국이 비정상적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 민족주의가 강한 것처럼 묘사하는 것은 적절치도 않고, 또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다. 중국이 팽창주의적 성향과 노선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중국이 영토 문제와 관련 구소련, 인도, 베트남 등과 무력분쟁이 있었고, 티베트, 위구르, 대만 등과는 독립 문제와 관련해서 분쟁이 있으며, 최근 일본과는 센카쿠 열도(중국명 釣魚島댜오위다오), 동남아 여러 나라들과는 남중국해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주장이 확산되었다.



그러한 각각의 사안에서 누구 주장이 더 합리적인지 따져보는 것은 매우 복잡하거나 거의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그것이 중국 팽창주의의 증거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주장이다. 그 분쟁지역들 중 중국이 새롭게 자기들의 영토라고 주장해서 목록에 추가한 경우는 단 한 건도 없다. 팽창주의는커녕 제국주의의 침략 아래 온 국토가 신음하던 시절부터, 아니 그 이전 근대적 영토개념에 대해 초보적인 눈을 뜨기 시작한 시기부터 일관되게 자기 영토로 주장해온 것들이다. 대만, 티베트, 위구르, 조어도, 남중국해 등 모두 청조(淸朝) 시절부터 중국이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해 왔던 곳이다. 서태후, 위안스카이, 쑨원, 장제스, 마오쩌둥, 덩샤오핑 가릴 것 없이 일관되게 중국 영토라고 주장해 왔던 것이다. 중국이 끊임없이 새로운 영토 목록을 등록하면서 확장을 추구한다면 팽창주의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청조부터 봉건체제, 근세 반공체제, 공산주의 체제, 개혁개방 체제 가릴 것 없이 일관되게 중국 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을 팽창주의라고 평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근대 미국의 영토 형성 과정을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것에 얼마든지 합리적인 논리적 근거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청나라의 영토형성과정이나 청나라가 주장하는 영토들에 대해서 얼마든지 다양한 합리적 논리를 가지고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 대부분의 나라들의 영토는 단일한 기준이나 어떤 뚜렷한 합리적인 논리적 근거에 기반 해서 형성된 것이 아니다. 몇몇 나라를 제외한다면 대부분 나라들의 영토는 극히 비합리적인 기준과 비합리적 과정을 거쳐서 형성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메리카 대륙과 아프리카 대륙 여러 나라들의 아주 비합리적인 영토들을 우리가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그런 영토에 대한 적극적인 인정이 평화를 비롯해서 여러 가지 커다란 효용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개별적인 영토 주장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은 얼마든지 합리적 근거를 갖고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중국이 제국주의 국가들의 참혹한 침탈을 받고 있던 청조 말이나 근세 중국 초기 때부터 일관되게 주장해 온 영토 주장들을 근거로 중국이 팽창주의라고 평가하는 것은 지나친 과장이다. 중국은 과거 소련과 대립하면서 미국과 적극적인 친선 협력 관계를 유지해 왔지만 소련이 패망하면서 미국과의 관계가 애매하게 되었고, 지금은 미국과의 다양한 갈등이 부각이 되면서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서 러시아 및 중앙아시아 국가들과의 친선 관계를 확대 강화해 왔다. 그리고 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한 영향력을 계속 강화해 왔다.



그러나 중국은 오랜 세월에 걸쳐서 소련 및 소련 위성 국가들과 적극적으로 대립해 왔던 역사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러시아 및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협력을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협력 관계가 뿌리 깊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그 뿐만 아니라 러시아를 제외한다면 나머지 국가들은 국제 정치나 국제 경제에서 존재감이 아주 미미한 국가들이다. 그 뿐만 아니라 러시아까지도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국제적인 고립이 심화되어 가고 있고, 유가 하락으로 심각한 경제난에 봉착해 있다. 중국과 우호관계에 있는 아프리카 국가들도 국제적으로 중요한 국가는 거의 없다. 그런 측면들을 고려해 본다면 중국 입장에서는 상당히 신뢰할만한, 그리고 국제적인 위상이 정상적이고 어느 정도 지위를 갖고 있는 국가와 깊은 우호 관계를 맺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시급한 실정이다. 그 1차적 대상이 바로 한국이다.





4. 미국의 정세와 입장



미국의 적지 않은 전문가들은 한반도가 통일된 이후 친중의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지금도 이미 중국에 대한 한국의 경제 의존도가 매우 높은 상황에서 만약 중국과 육로로 연결이 된다면 중국에 대한 경제의존도가 훨씬 높아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런 긴밀한 경제관계가 긴밀한 정치외교적 관계로 발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둘째 현재 한미관계를 공고하게 엮어주는 실질적인 끈은 북한이었는데, 북한이 사라지게 되면 한미관계를 강력하게 이어주는 끈이 없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셋째 한반도 통일 과정에서 중국의 협조는 필수적인데 한반도 통일 과정, 초기 통일국가 운영 과정에서 한국과 중국의 긴밀한 대화와 협력이 수시로 이뤄져야 하고 그런 과정에서 한국과 중국의 관계는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미국은 한반도의 통일을 그렇게 달갑게 생각하는 입장은 아니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미국은 자신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한국인의 염원으로 알고 있는 통일을 반대해 나서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은 지금까지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무시하지는 않았지만 무조건 이해관계만 내세워서 외교를 해오지는 않았다. 이해관계가 크지 않거나 불확실하다면 공명정대함이나 역사적 순리도 중시해왔다. 그 뿐만 아니라 이해관계를 놓고 보더라도 통일을 반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통일을 반대한다고 해서 통일을 막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데 통일을 반대하는 순간 오랜 우방 국가였던 한국과의 관계가 급격히 악화될 수도 있는 만큼 미국에 더 큰 손실을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미국 정부는 기본적으로 한반도 통일은 지지하는 입장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반도 통일이 미국의 국익에 유리하기 보다는 불리한 방향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기 때문에 흔쾌한 마음에서 동조하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북한의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문제가 해결되고 한반도는 통일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상태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북한 체제가 패망하지 않는다면 핵문제와 장거리미사일 문제를 해결하기는 극히 어렵고, 북한 체제의 패망은 곧바로 통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많은 만큼 미국이 진정으로 북한 핵문제와 장거리미사일 문제 해결을 바란다면 한국의 통일에 대해서도 조금 더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것이 현명한 태도라고 본다.





5. 일본의 정세와 입장

일본은 중국과 상당 정도 수준 이상의 갈등과 대립을 하면서 미국과 공동 운명체로 가기로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본은 한국과도 입장이 많이 다르다. 일본은 경제적 대중 의존도가 그렇게 높지 않을 뿐 아니라 육지로 중국과 연결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북한 문제처럼 중국과 긴밀하게 협력해야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전략이 과연 현명한 전략인가 하는 것은 재고해 볼 필요도 있지만 한국 입장에서는 일본식 대중국 정책은 시도하는 것조차도 적절하지 않은 전략이다.

일본은 오랜 경제적 침체로 국민의식에 별로 여유가 없어 보인다. 일본이 추구하는 정상국가화는 그 취지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측면도 있지만 근현대사에 대한 지나치게 우경적인 접근과 맞물리면서 주변 국가들의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일본은 센카쿠 갈등 과정에서 중국과 확실하게 선을 긋기로 마음을 먹은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중국인들의 대일 적대성이 노력한다고 해서 쉽게 해결되기 어려운 것으로 보고 있는데, 사실 그런 측면이 있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국과 같은 거대한 나라와 지나치게 거리를 두는 방향으로 혹은 지나치게 적대적인 방향으로 간다는 것은 결코 현명한 일이 아니다.



동아시아 3국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적으로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현대사회는 근대사회와 달리 북한과 같은 극히 특수한 나라를 제외하고는 울타리를 친다고 해서 울타리가 처지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어떤 형태로든 긴밀한 관계가 유지될 수밖에 없다. 한국인과 중국인들이 일본 혹은 일본인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기본적으로는 역사적인 이유에 기인한 것이다. 그것이 몇 십년동안 노력해서 잘 안 된다고 해서 포기하고 적대화 하는 길을 선택하는 것은 일본을 위해서나 동북아를 위해서나 올바르지도 않고, 현명하지도 않은 일이다. 일본이 센카쿠 등의 갈등 과정에서 느낀 압박감과 공포는 충분히 이해한다. 그 과정에서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려는 전략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한국, 중국과 지나치게 거리를 두려는 정책은 바꿔야 한다. 만약 현 정부에서 바꾸기 어렵더라도 새로운 행정부가 등장하면 빠른 시일 내에 이런 전략을 수정하는 것이 동북아 안정을 위해서 바람직하다고 본다.



일본은 한반도 통일에 대해서 그동안 중립적인 입장을 어느 정도 유지해 왔지만 최근 들어 조금씩 부정적인 방향으로 생각을 바꿔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통일한국은 지금보다 훨씬 친중적인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은 한반도 통일과 관련해서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도없고, 특별한 발언권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한반도 통일을 반대하는 듯한 태도를 표명해서 자신들의 입지가 난처해지는 것도 바라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통일 과정에서 큰 변수가 되기는 어렵지만 일본의 지지를 이끌기 위해 노력할 필요는 있다. 통일로 한중 관계가 더 긴밀해질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곧 한중이 손을 잡고일본을 적대시하는 정책을 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한반도 통일이 북한의 핵무기와 장거리미사일로 공포에 떨고 있는 일본의 안보부담을 크게 덜어줄 수 있다. 북한이 없어지면 동북아 전체가 재편될 수밖에 없는데 이 과정에서 일본의 새로운 입지를 모색해볼 수도 있다. 이미 동북아에서의 입지가 아주 협소한 일본으로서는 잃을 것이 특별히 없는 것이다.





6. 러시아의 정세와 입장



러시아는 현재 우크라이나 문제 등으로 많은 서방국가들과 대립하고 있는 상태다. 러시아가 과거 공산주의 시절에는 서방국가들과 대립하면서도 기본적인 이념적인 명분이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러한 이념적 명분도 없고 그냥 국가적인 욕심으로밖에 이해되지 않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러시아의 고립은 과거 공산주의 시절보다 더 악성인 측면도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러시아는 현재 국제유가 하락으로 커다란 경제적 어려움까지 겪고 있다. 중국 및 일부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외교 관계를 강화하고는 있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진정으로 신뢰하는 동맹관계로 발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로 판단한다.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동아시아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았다. 러일전쟁에서 패한 이후 동아시아에서는 손을 거의 떼었다. 과거 소련이 공산주의 종주국이었을 때 많은 공산주의 국가들에 관여하듯이 북한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관여했지만 현재 러시아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은 극히 제한적이다. 북한의 러시아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를 포함한 종합의존도는 중국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북한이 중국과 관계가 악화되었을 때 러시아를 대안으로 선택한다는 것은 거의 가능성이 없는 일이다. 러시아가 중국처럼 적극적으로 북한과 무역을 하고 북한에 투자하려고 할 가능성도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만한 경제력이나 행정력을 갖추고 있지도 않다.



러시아는 한반도 통일과 관련해서 기본적으로는 중립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 뿐만 아니라 한반도 통일을 적극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다. 그러나 러시아가 안보리 상임이사국이기 때문에 일본과는 달리 어떤 형식으로든 굳이 개입하려면 개입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러시아가 한반도 통일 관련해서 어떤 식으로든 자신들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려는 제스처는 취하겠지만 대세에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북한이 본격적인 패망의 길에 들어서게 되면 통일한국과의 우호관계 형성에 더 신경을 쓰지 공연히 통일을 반대해서 한국과의 관계를 어색하게 만드는 엉뚱한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7. 한반도 통일과 중국의 이해관계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한반도 통일에 가장 적극적인 반대를 할 나라로 중국을 꼽았다. 그러나 지금은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다. 아직까지는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멀지 않은 장래에 중국이 통일에 가장 적극적인 국가로 바뀌게 될 가능성도 꽤 있다고 판단한다. 중국은 북한에 대한 전략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첫째는 북한이 전략적 완충지대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고 둘째는 북한이 중국의 유일한 동맹국이라는 점이고 셋째는 중국이 아시아, 아프리카의 다른 우호적 개도국들에게 중국이 우호국이나 동맹국을 쉽게 버리는 나라라는 이미지를 주기 싫다는 것이다.



현재 중국이 미국과 어느 정도 대립하고 있는 측면이 있지만 북한이 미국과 적극적으로 대립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은 상대적으로 미국과의 관계에서 약간은 자유로워진 측면이 있다. 미중 대립의 요소를 북한이 어느 정도는 흡수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북한이 완충지대의 역할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갈등과 문제를 일으키는 문제아적인 역할을 훨씬 더 크게 하고 있다.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개발, 극단적 인권탄압, 외교관례를 무시한 무례한 외교, 마약거래나 위폐유통이나 무기밀매 등의 범죄에의 정부 개입 등 문제아의 요소가 훨씬 크고 그로 인해 북한의 후견국으로 알려져 있는 중국의 위신을 크게 갉아먹고 있다. 핵무기 등의 국제 갈등이 현재 크게 증폭되고 있지 않지만 언제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서 커다란 사태로 발전할 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그 때문에 안보에 도움이 되는 측면이 안보를 위해하는 측면보다 크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그리고 북한의 미래를 길게 예측할 수 없다는 점도 중국 입장에서는 장기적인 동북아 전략을 짜는데 아주 골치 아픈 요소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의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중국의 동북아 전략도 여러 가지 측면에서 많은 것들을 불확실한 미래로 설정해 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종합적인 이해관계를 본다면 중국 입장에서는 북한이 긍정적 역할보다는 부정적 역할을 더 많이 하고 있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북한을 대신해서 어느 정도 중립적인 통일 한국이 들어서게 된다면 중국 입장에서는 훨씬 평화롭고 투명하고 예측 가능한 동북아 전략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통일한국은 설사 미국과의 우호관계를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객관적인 조건 상 중국에 조금 더 기울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러나 설사 그렇지 않고 미국에 조금 더 기울어진다 하더라도 통일한국이 대중국 적대시 정책만 펴지 않는다면 한반도 통일이 중국에 손해 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통일 한국이 미국과 손을 잡고 대중국 포위정책을 편다든지 한반도를 적극적인 대중 전진기지로 제공을 한다든지 하는 것은 거의 가능성이 없는 일이다. 한국 국민들의 대다수는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감수할 마음이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런 식으로 해서 한반도가 또다시 대립의 핵심적인 진앙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 한반도가 미중 사이에서 미국에 약간 기운다 하더라도 극단적으로 미국에 기울 가능성이 거의 없는 조건에서 그 어떤 경우의 수를 보더라도 중국에는 이익이 훨씬 많을 것이다. 중국은 한반도가 한국에 의해서 통일된 이후에도 한국이 친미 일변도의 정책을 펼치고, 또 주한미군을 한반도 전역에 걸쳐서 계속 유지하고, 미국이 한반도를 중국을 견제하는 전초기지로 삼으려고 할 수 있다는 경계심을 오랫동안 갖고 있었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따져본다면 한국이 통일 이후에도 친미 일변도의 정책을 펼칠 것이라는 것은 근거가 없는 것이다.



한국이 미국에 군사적, 외교적으로 의존하게 된 것은 미군정의 영향도 약간 있기는 하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북한 때문이다. 북한의 침공과 북한과의 군사적 대립 때문에 한미동맹이 형성되었고, 이후 북한의 강력한 군사력과 남침 위협 때문에 한미동맹은 아주 굳건하게 유지되어 왔다. 아직까지도 북한의 남침 위협이 있기 때문에 한미동맹을 굳건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 한국 정부 및 한국 국민들 사이에 압도적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북한 때문인 것이다. 북한이 패망하고 한반도가 통일된 이후에는 상황이 완전히 바뀌는 것이다. 통일 한국이 굳이 친미 일변도의 정책을 펴야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물론 일부 지식인들과 일부 언론인들은 중국이 매우 거친 나라고 팽창주의적 정책을 펴고 있기 때문에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통일 이후에도 주한미군이 필요하고 굳건한 한미동맹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한 주장이 완전히 근거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러한 논리로만 따진다면 중국을 둘러싸고 있는 대부분의 나라들, 몽골,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네팔, 부탄 등은 우리나라보다 군사력이 월등히 약한 나라들이 대부분이다. 몇몇 나라들은 아예 비교 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군사력이 극히 미미한 나라들이다. 그런 나라들이 중국에 대항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미국하고 동맹을 추구한다는 얘기는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물론 남중국해 문제 때문에 필리핀과 베트남 등이 미국의 힘을 적극적으로 빌리려는 태도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특히 중국과의 특별한 영토분쟁이 없는 나라들 중에 그런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나라는 없다. 현대 세계는 근대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이다. 19세기와 비슷한 방식의 영토침탈이나 팽창 등이 거의 불가능해졌을 뿐 아니라 근대와 비슷한 방식의 국가방위나 동맹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보지도 않는다. 한반도 상황이나 북한과 같은 경우는 워낙 특수한 경우니까 예외라 하더라도 현재 지구상에 있는 대부분의 나라들은 그리고 강대국, 초강대국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나라들은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아주 평화롭게 잘 지내고 있다. 특별한 갈등 요소가 등장한다고 하더라도 아주 강력한 국제적인 압력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고, 만약 그런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경우에도 여러 가지 유형·무형의 국제적인 협력과 연합, 군사행동 등 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만약 중국이 미국과 비슷한 수준의 혹은 미국을 능가하는 국력을 갖게 된다면 유형·무형의 국제적 압력이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기 어렵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만약 그렇게 된다면 한미 동맹 역시 큰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그리고 한반도의 안보를 중국이든 미국이든 특정 강대국의 선의에 주로 의존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다. 미국이든 중국이든 어느 한 나라라도 한국을 작정하고 공격한다면 이를 막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이런 극단적인 가정을 하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다. 그럴 가능성이 0%인 것은 아니지만 설사 아주 약간의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대비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미국이든 중국이든 어느 누구든 하해와 같은마음으로 영원히 우리 편에 있어주며 영원히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는 환상을 가져서도 안 된다. 그런 것은 현실 사회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부문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외교에 있어서 지나치게 균형을 잃은 외교는 매우 위험하다. 미국은 아주 오랜 기간 동안에 매우 큰 규모의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를 겪고 있다. 지금은 미국이 기축통화인 달러화를 발권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그러한 발권 지위를 이용해서 이러한 문제의 누적을 어느 정도 회피하고 있지만 그러나 문제가 계속 조금씩 더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은 명확하다. 미국이 국방비를 비롯해서 모든 영역에서 예산을 삭감해 가고 있는 중인데, 앞으로도 언제까지 한국의 방위를 더 나가서 한반도의 방위를 책임지려고 할지는 매우 의문이다. 최근 한국방위비 문제와 관련한 미국 공화당 대통령후보 트럼프의 발언들이 화제가 되고 있지만 이를 단지 아주 기이한 사람의 기이한 주장일 뿐이라고 치부하기 어렵다. 이런 주장들은 쉽게 미국의 다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특히 현재 한국 무역의 중국 편중이 매우 심한데 앞으로 무역과 서비스산업을 포함한 모든 영역에서의 중국 의존도는 더 심화될 가능성이 높지 더 줄어들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다른 많은 시장을 개척하면 된다고 쉽게 말을 하지만 그런 것은 1970년대나 1980년대에는 가능했을지 모르겠지만 현재의 한국과 같은 어마어마한 무역규모에서, 그리고 무시무시한 경쟁자들이 도처에서 활약하고 있는 조건에서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우리가 중국의존도를 줄이려고 한다면 엄청난 경제적 후퇴를 감수해야 한다. 과연 한국 국민 중에 몇 명이나 이런 것을 감수하려고 할지 의문이다.



이런 조건에서 미국이 과연 많은 예산 부담을 감수하고 한반도의 안보를 자기들이 언제까지나 계속 책임지려고 할까. 그리고 중국의 경우에도 현재 한미동맹을 이해 해주고 있는 것은 북한 때문인데, 북한이 붕괴되고 한반도가 통일된 이후에도 한미동맹을 우호적인 눈으로 계속 보려고 할지도 의문이다. 만약 미국이 자신들의 국익이나 혹은 경제적 한계 때문에 한반도에서 철수하려고 하고 한 편으로는 중국도 한반도 통일 이후에도 미국에게 한반도를 대중 전진기지로 빌려주려고 하는 한국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과 태도를 지닌다면 한국의 처지는 매우 어려워 질 수도 있다.





8. 한중관계의 미래



한국 경제는 지난 20여 년 동안 여러 가지 형태의 경제적인 어려움을 중국 시장을 개척하는 방법으로, 또 중국을 이용하면서 극복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경제적인 중국 의존도가 매우 높아진 상태이다. 많은 지식인들과 언론인들이 한국 경제의 중국 의존도 심화에 대해서 비판하거나 걱정하고 있는데, 사실 이를 탈피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한국 경제의 중국 의존도 심화는 필연적인 과정이었고, 우리가 선택해서 걸어온 길이다. 그 길 이외의 다른 방향으로 한국 경제를 개척하는 것이 이론적으론 가능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현실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길이었을 것이다. 현재 한국 주력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은 그렇게 낙관적이라고 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 중국 시장의 요소요소를 공략해 나가는 방향으로 활로를 뚫는 것 이외에는 다른 확실한 길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모든 첨단 산업에서 앞서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이고, 그런 노력 과정에서 일부 분야에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지만, 전 세계 수많은 나라들이 첨단 산업에서 활로를 찾는 조건에서 한국이 많은 분야에서 우월성을 갖추기는 매우 어렵다고 봐야 한다. 우리가 전 세계의 다양한 시장을 모두 활용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지만 지리적 근접성, 사회 문화적 접근성, 기타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중국 시장에 대한 공략이 핵심적인 경제 전략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중 관계는 경제 이외의 다른 여러 가지 영역에서도 매우 중요하지만 경제 하나만 보더라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과거 1980년대 한국의 미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를 걱정하면서 미국이 기침을 하면 한국은 감기에 든다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현재 한국의 대중 경제의존도는 1980년대 한국의 대미 경제의존도에 비해서도 조금 더 심하다. 그리고 이는 앞으로 더 심화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는 구조에 있다. 이런 측면들에 대해서 우려를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고, 한중 갈등 과정에서 우리가 자유로운 발언권을 갖지 못하는 사태를 초래할 수도 있지만 미국과 캐나다 관계, 미국과 멕시코 관계,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관계 등을 비롯해서 수많은 나라들이 주변 대국과 극히 높은 수준의 경제적 의존도를 가지고도 오랜 기간 정상적인 정치, 경제,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이 중국공산당 1당 독재체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과 기본적인 정치적 가치를 공유하기 어렵고 그런 점 때문에 미국, 캐나다, 멕시코 관계와는 근본적으로는 다를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지난 3,40년간의 중국의 대외정책에서 다른 일반 국가들과 특별히 다른 이색적인 외교정책이나 이념을 앞세운 외교정책을 찾아볼 수 없다. 국내정치는 일당독재를 하고 있지만 외교적으로 공산주의를 지지하거나 지원하는 사례를 찾아볼 수가 없고 우파든 극우파든 중국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면 모두 손을 잡고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일시적인 정책이 아니다. 중국은 이미 공산주의 이념이 붕괴하여 국익이나 민족주의 이외의 다른 가치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과거식의 이념적 외교로 회귀할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된다.



다만 중국이 아직 선진국이라고 말할 수 없고 오히려 개도국에 가까운 나라이기 때문에 외교적인 측면에서 세련되지 못하고 거친 모습을 보여준 경우도 많이 있었다. 약간 거칠기는 하지만 기본적인 외교노선이 일반적인 길에서 많이 이탈한 것으로 판단되는 일은 발견되지 않았다. 일부 지식인들 중에서는 중국의 영토 야심이 매우 크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중국이 북한을 합병하든지 아니면 구소련 위성국가처럼 북한을 위성국가화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중국은 과거 자신들이 자기 영토라고 주장했던 지역을 잃는 것도 싫어하지만 새로 영토 목록을 추가하는 것에도 매우 커다란 거부감을 갖고 있다. 중국은 근대에 제국주의에 의해 침략 받아 온 역사적 트라우마가 매우 강한 나라이다. 중국은 오랜 기간 동안 미국, 소련의 패권주의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비판해 온 나라이다. 그런 중국이 소련식의 패권주의를 흉내 낼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중국이 북한에 대해서 영토적 야심이 있다고 판단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이해관계로 보더라도 북한을 합병하거나 위성국가화 하는것은 아주 어리석은 선택이다. 북한 사람들은 남한 사람들보다 훨씬 더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하다. 그리고 교육수준도 다른 개도국들에 비해서 상당히 높고 또 매우 적극적이고 거친 사람들이다. 이런 북한을 위성국가화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며, 합병한다는 것은더더욱 불가능하다. 1980년대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 군을 파견해서 영향력을 행사하려다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커다란 군사적, 외교적, 정치적,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 아프간 사태가 소련 패망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약 중국이 북한에 대해서 그러한 정책을 편다면 중국은 소련이 아프간의 수렁에 빠진 것보다 훨씬 더 심한 수렁에 빠지게 될 것이다. 손익계산이 매우 빠른 중국인들이 그런 어리석은 선택을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판단한다.



통일과 관련해서 중국이 여러 가지 역할을 해야 하지만 그 중 하나는 북한 붕괴 과정에서의 치안 회복이다. 만약 북한이 붕괴된다면 중국군 단독으로 혹은 유엔군 형태로 중국군도 참여해서 북한의 치안 회복에 나서게 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군의 외국 파견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북한이 패망하는 과정에서도 중국이 아주 쉽게, 그리고 아주 적극적으로 군을 파견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만약 미국이나 유엔이나 한국이 중국군의 북한 파견을 적극적으로 촉구해 나선다면 상당 수준의 병력을 북한에 파견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병력을 장기적인 대북한 영향력 확대를 위해 사용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 식의 정책은 수십 년 전에나 쓸 수 있는 정책이었지, 지금은 시대적 조건에 전혀 맞지도 않고 특히 한반도에서는 결코 쓸 수 없는 정책이다. 치안회복을 위해 군을 파견하더라도 통일한국의 필요에 따라, 그리고 통일한국과의 협의에 따라 적절한 시기에 군을 철수할 가능성이 높다. 완충지대로서의 한반도의 가치를 중시하는 중국이 직접 한반도에 군대를 주둔시켜 완충지대를 없애려 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봐야 한다.





9. 통일과 한미관계



통일 이후 한미 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것을 우리가 지금 명확히 하기는 매우 어렵다. 불확실한 요소가 너무나 많다. 현재 한국 국민 중에서 친미 성향을 가진 사람은 10% 미만이고 친중 성향을 가진 사람은 5% 미만이다. 따라서 한국민의 성향으로만 본다면 통일한국이 친미나 친중으로 갈 뚜렷한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한미관계에서는 북한이라는 절대적이고 결정적인 고리가 떨어져 나가고 다른 뚜렷한 새로운 고리가 없는 상태인 반면 중국과는 긴밀한 경제관계라는 상대적으로 강한 고리가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통일 이후의 한미관계를 우려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통일 이후에도 우리가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계속 유지해 나가는 것이 우리에게나 미국에게나 서로에게 매우 이로운 길이다. 중국과의 경제적, 외교적, 사회적 관계가 아주 높은 수준으로 긴밀해 질 수밖에 없는 조건에서 더구나 통일 과정에서 아주 높은 수준의 한중협력이 불가피한 조건에서 과연 통일 이후에도 우리의 희망대로 높은 수준의 우호적인 한미관계가 유지될 수 있을지 누구도 장담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먼저 쉽게 한미관계를 포기하는길로 가서는 안 된다. 한미관계가 조금 어려워진다 하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한미관계 유지 발전을 위해서 끊임없이 다양한 노력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10. 통일과정에서의 국제적 개입



독일 통일 과정에서 주변 강대국으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했던 것처럼 한반도 통일 과정에서도 그러한 승인 절차가 필요한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은 완전한 오해이다. 독일은 패전국으로서 패전 이후 연합군의 점령 상태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조건에서 통일을 추구했고, 그러한 통일은 형식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주변국들의 승인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는 상황이 다르다.한반도를 미국과 소련이 분할 점령하기는 했지만 그러한 점령 상태는 이미 완전히 해소된 상태이다. 따라서 구소련이든 러시아든 북한에 대한 그리고 한반도 통일에 대한 아무런 승인 권한도 갖고 있지 않다. 역시 미국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북한은 유엔이 인정하고 있는 합법적인 독립 국가이다. 한국 헌법은 한반도 전체를 하나의 국가로 규정하고 있고, 북한 헌법도 역시 한반도 전체를 하나의 국가로 보고 있으나 이것은 국내법일 뿐 국제적인 효력이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과 북한은 유엔이 인정한 합법적인 독립국이고 이러한 독립국을 어느 한 쪽이 합병하려고 한다면 일정 정도의 유엔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을 것이며, 특히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일정정도의 개입과 관여는 피하기 어렵다. 영국이나프랑스가 적극적으로 관여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미국, 중국, 러시아 3국은 어떤 형식으로든 적극 관여하려고 할 것이고 그 중에서도 중국의 입장과 역할이 결정적이다. 그러나 중국도 역시 독일 통일 과정에서 점령국들이 승인했던 것과 같은 그런 수준의 승인 권한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한반도가 통일 되는 과정에서 승인권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거나 남용하려고 하는 그런 국가가 나올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한반도 주변 주요 국가들, 특히 미국, 중국, 러시아 이 안보리 3국에 통일 이후 상황에 대한 우려를 충분히 해소해주는 그런 노력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11. 우리의 선택



현재 우리의 가장 중요한 국가적 과제는 통일이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식의 말을 그냥 반복하자는 것이 아니라 정말 통일을 미뤄서 불확실한 미래를 다음 세대, 또 그 다음 세대로 계속 물려주는 것은 이제 여기서 끝내야 한다. 통일은 대박이라는 말도 한 때 유행했지만 통일한국의 미래는 결코 낙관적이지 않다. 통일의 장점도 많이 있겠지만 우리가 노력하더라도 통일 이후 상당 수준 이상의 혼란과 어려움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통일을 선택하지 않고 분단을 선택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우리가 통일을 추구하지 않고 철저히 분단을 추구한다고 하더라도 한반도가 완전히 분단이 되려면 앞으로도 최소 50년 이상이 걸릴 것이다. 그 긴 기간 동안 유형·무형의 많은 갈등과 분단 비용, 고통을 감수해야한다. 그 뿐만 아니라 분단을 추구하는데 국민적 합의를 구하기도 어렵고 북한 사람들과의 합의를 구하기는 더욱 어렵다. 통일은 많은 혼란과 어려움을 가져 오겠지만 통일이 일정 수준 이상의 궤도에 오르게 된다면 우리가 충분히 예상하기 어려운 많은 숨어 있는 시너지 효과를 가져 올 것으로 기대할 수도 있다. 남북한 모두 통일을 추구하는 것을 헌법적인 가치로 그 동안 제시해 왔고, 국가의 핵심 목표로 해 왔던 만큼 남북한 모두 통일을 반대하고 분단의 길을 선택하는 것으로 노선을 변환하고자 한다면 많은 갈등과 충돌, 사회적 혼란을 피할 수 없다.



그 뿐만 아니라 가장 결정적으로 북한 체제가 패망했을 때 주민들의 압도적 다수가 통일을 염원한다면 사실상 통일을 막을 방법이 별로 없다는 점도 우리가 직시해야한다. 따라서 통일한국의 미래가 낙관적이지 않다고 해서 우리가 통일의 길을 버리고 분단의 길을 선택할 수는 없다고 생각된다. 결국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가능한 한 최대한 빨리 통일을 이룩해서 혼란의 기간을 최대한으로 줄이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이것이 남북한을 위해서나 통일 한반도의 미래를 위해서나 최선의 길이다.



현재(혹은 가까운 미래)의 정세는 통일을 위한 최적의 정세이다. 이 기회를 놓친다면 미래에 어떤 방향으로 기류가 바뀔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북한 체제가 의외로 더 안정화되는 방향으로 갈 수도 있고, 시진핑 지도부 이후 다음 중국 지도부가 북한 체제를 더 옹호하는 방향으로 나갈지 어떨지 아무도 예측할 수가 없다. 시진핑 지도부도 현재 북한에 대한 최종적인 입장을 확정한 것으로 보이지는않는다. 그러나 지난 몇 년 동안의 중국 정부의 북한에 대한 태도로 볼 때 그리고 북한, 한국, 한반도 통일에 대한 중국 정부의 이해관계로 볼 때 중국이 한반도 통일을 보다 적극적으로 응원하는 방향으로 정책 전환할 가능성이 과거 정책을 답습할 가능성보다 더 높아보인다. 만약 그렇다면 이것은 한반도 통일의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기회를 놓치지 말고 더 적극적으로 대중외교를 강화하고 더 적극적으로 대북정책을 전개해서 통일을 최대한 앞당기는 방향으로 정책을 펴야 한다. 기회는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관련뉴스/포토 (10)
#태그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