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지역신문 베이징천바오(北京晨报)는 지난 14일 '왕징의 진화사(望京的进化史)'라는 제목으로 베이징 한인 밀집거주 지역인 왕징이 코리아타운에서부터 중국의 새로운 실리콘밸리로 부상하기까지의 과정을 조명했다.

온바오닷컴은 베이징천바오가 게재한 '왕징의 진화사'를 4차례에 걸쳐 한글로 나눠 실어 왕징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고 향후 발전 전망에 대해 독자들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왕징(望京), 상디(上地), 이좡(亦庄), 궈마오(国贸)와 금융가(金融街)...

각기 다른 지역은 다양한 업종의 기업을 끌어들인다. 입주 기업은 지역의 상권을 형성시키며 심지어 분위기까지 만든다. 이같은 요소가 한데 모이면 베이징 경제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최고가 땅'과 대표 기업이 손을 잡자, 왕징에는 한편의 '진화사'가 상영된다. 왕징의 '진화사'는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속도로 끊임없이 갱신되고 있다.

미래의 IT 감각을 어느 정도 지닌 예비창업자들은 왕징소호(望京SOHO)로 무수히 들어가고 있다. 소호차이나 판스이(潘石屹) 회장은 종종 이곳에 나타나 그들을 위한 무대를 만들어준다.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그린랜드(绿地)빌딩에는 이미 알리바바의 주홍색 영어 간판이 걸려있어 마치 새로운 랜드마크처럼 보인다.

앞서 '베드타운'으로 불리며 잊혀져가던 왕징은 이제 '중국의 실리콘밸리'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빛나고 있다.
산초밭에 세워진 코리아타운

2000년 왕징으로 이사온 리(李) 씨는 이 곳의 토박이라고 할만하다. 그녀가 처음에 이곳에 와서 방을 봤을 당시만 해도 "너무 멀다"는 말이 끊임없이 나왔다. 당시에는 이 곳에 아무것도 없었고 곳곳에서 흙먼지만 날렸다.

왕징 거주지역의 초기 모델은 지난 90년대 지어지기 시작한 화자디(花家地) 주택단지(사진)이다. 이 곳은 당시 산초(花椒)가 무성한 지역에 세워져 유명해졌다. 이후 인구, 건물이 점차 확장되기 시작했지만 기초 인프라, 부대시설 등이 상대적으로 낙후됐고 주변 교통 역시 불편해 왕징은 '베드타운'으로 불렸다.

리 씨는 "왕징 도로는 모두 이리저리 휘어져 마치 미로와 같았다. 날이 어두워지면 몇 바퀴를 돌아도 집을 찾을 수 없었다. 지하철도 없어 마을에 오기 위해 버스를 두시간 타야하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또한 "왕징은 상대적으로 폐쇄돼 있어 당시에는 '자동차, 우편 모두 느리다'는 느낌이 강했다"고 덧붙였다.

이같이 상권은 그리 발달하지 않았지만 이 곳에는 '코리아타운'이 있었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가 지나간 후 한국의 원화는 대폭 평가절하됐고 갈수록 많은 한국인이 생활물가, 노동비용이 상대적으로 낮은 중국을 택해 창업을 하고 생활했다.

수도(首都)공항과 가까웠고 집값도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했기 때문에 일부 한국기업은 한국 직원들의 숙소를 이 곳에 마련해주기도 했다. 산초가 무성한 지역이었던 왕징은 그렇게 점차 베이징 최대 한국인 밀집 거주지역이 되어갔다.

리 씨는 "왕징 영화관에서는 한국어 자막을 삽입하는 직원을 모집했고 수많은 음식점, 상점에 한국어를 볼 수 있었다"며 "이 때부터 떡볶이, 부대찌개를 좋아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신흥 상권과 랜드마크로 둘러싸이다

이전의 무성했던 잡초들은 현재의 왁자지껄한 소음으로 인해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 중국 부동산 시장의 급속한 발전은 왕징의 발전에 스위치를 눌렀다.

"줄선 지 2시간이나 됐어요."

어느 토요일의 오전 10시, 사환(四环) 순환도로 동북쪽에 위치한 이케아 왕징 매장 입구(사진)에는 이미 긴 줄이 서 있다. 요 며칠 이케아는 겨울철 대바겐세일을 하는 기간이었고 '50% 세일'이라는 홍보문구가 어디서든 보였다. 사람과 차량이 주변 도로를 꽉 채웠고 이케아는 인파를 통제하기 위해 시간을 두고 고객의 입출입을 통제하는 조치를 취했다.

사실 2006년 이케아가 마뎬(马甸)에서 왕징으로 이사온 이후 매주 주말마다 입구에는 축제를 연상시키는 긴 줄이 서 있다. 이케아 외에도 왕징국제상업센터, 왕자오(旺角) 상업 보행가, 왕징 화롄(华联) 신세계(新世界), 까르푸(家乐福), 월마트(沃尔玛) 등 대형 상점이 잇따라 들어오며 왕징은 최근 몇년 새 가장 빨리 발전한 신흥 비즈니스 구역이 됐다.

사업의 기회는 새로움과 익숙함이 부딪치면서 생겨난다.

이케아는 왕징에 자리잡기까지 3년간의 부지 조사연구를 거쳤다. 당시 조사연구에는 왕징이 당시 중국 내 최대 주택거주지역이 여기에 거주인원 중 3분의 1인은 옛 거주자, 3분의 1은 새로 방을 구입한 젊은이, 3분의 1은 유동성 높은 월세 거주자였다. 현지의 생기 있는 분위기와 소비 잠재력은 상점들이 떼지어 몰려들게 했다.

여기에 부동산개발상들은 옛 건물들을 쓰러뜨리고 새로운 건물들을 만들었다.

2010년 3월 15일, 위안양(远洋)부동산은 84차례의 입찰 끝에 당시 첫 입찰가였던 15억위안보다 1.72배나 높은 40억8천만위안(7천361억원)에 다왕징촌(大望京村)의 깨끗한 환경의 토지를 사들였다. 당시 왕징의 중고주택 평균 가격은 1평방미터당 2만위안(370만원)으로 무려 35%나 비싼 가격이었다. 그런데 이틀만에 바오리(保利)부동산이 무려 50억4천만위안(9천93억원)에 왕징에 진출했다.

홉슨(合生), 소호차이나, 위안양부동산, 바오리부동산 등 유명 브랜드는 왕징에서 최고가 땅 타이틀을 놓고 경쟁하기 시작했다. (계속...)

[번역 온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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