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gto.org]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스님은 4박 5일 간의 일정으로 요하문명(배달문명) 유적 답사를 떠났습니다. 첫날인 오늘은 인천공항을 출발해 선양공항에 내려 푸신시를 경유하여 8,000년 전 유적인 사해(차하이) 유적을 둘러보았습니다. 이어서 중국 요녕성 조양시에 있는 요나라를 대표하는 조양북탑과 남탑을 살펴보는 등 약 400km를 이동하는 일정을 가졌습니다.

‘요하문명’이라고 하니까 무엇을 말하는 것이 궁금해 하실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스님이 답사를 하러 떠난 요하문명은 중국의 요녕성 서쪽, 하북성 동쪽, 내몽고 자치주 남쪽에 속하는 요하강 상류와 대능하 일대에서 발굴되고 있는 새로운 문명을 말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이집트문명, 메소포타미아문명, 인더스문명, 황하문명을 역사상 가장 이른 세계 4대 문명으로 배워왔습니다. 그러나 이들 4대 문명에 손색이 없고 더 이른 시기의 새로운 문명권이 1980년대 중반부터 발굴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요하문명입니다. 기원전 3500년 경에 이미 ‘초기 국가 단계’에 들어서는 제5의 문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요하지역의 신석기 문화는 황하문명 보다도 2,000년 이상 앞서는 것입니다.

그러나 스님은 오래전부터 “요하문명은 중원의 황하문명과는 이질적이며, 주도세력 또한 고조선, 부여, 고구려 등으로 이어지는 한민족의 선조들”이라고 역사 강의를 통해 강조한 바 있습니다. 스님은 몇 해 전에 이미 이 지역 일대를 답사했었는데, “그 때 자세히 둘러보지 못한 곳이 많았다”며 이번에 특별히 시간을 내어서 답사에 나섰습니다.
▲ 인천공항
아침 8시에 인천공항을 출발하기로 한 비행기는 일부 중국 승객들의 탑승 지연으로 약 1시간 가량 늦게 출발했습니다. 1시간 50분을 비행하여 중국 현지 시간으로 10시에 선양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선양공항에 도착하자 지난 20여 년 동안 스님과 함께 동북아 역사기행을 함께해 온 조춘호 선생님이 반갑게 마중을 해주었습니다.
▲ 마중을 나온 조춘호 선생님
차를 타고 2시간 남짓 아스팔트 위를 달리니 푸신시가 나타났습니다. 도로 양쪽으로 백양나무가 빼곡이 심어져 있었는데, 그 이유를 물어보니 바람을 막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이곳은 건조 지대라 봄에는 마치 사막과 비슷하게 바람이 불면 먼지가 아주 많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 바람을 막기 위해 길가에 심어 놓은 백양 나무
푸신시에서 작은 식당에 들어가 점심 식사를 하면서 오늘 답사 일정에 대해 조춘호 선생님과 의논했습니다. 사해 유지를 본 후 흥륭와 유적을 거쳐 내몽고 자치주 오한기에서 하룻밤을 머물기로 하고 식당을 나왔습니다.
▲ 오늘 답사 코스를 짜고 있는 스님
푸신시에서 사해 유적까지는 약 40km 남짓 떨어져 있었습니다. 마을 입구에는 ‘사해 마을 방문 환영’ 이라고 적힌 철제 아치가 이곳을 찾는 이들을 반겨주고 있었습니다.
▲ 사해(차하이) 마을 입구
이 사해 마을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주거지, 옥기, 용의 형상이 발견되어 지금까지 ‘중화 제1촌’, ‘중화 제1옥’, ‘중화 제1용’이라고 지칭 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흥륭와 유적에서 이곳보다 더 오래된 옥기와 주거지가 발견되면서 ‘중화 제1촌’, ‘중화 제1옥’ 자리는 넘겨주고, 지금은 중국 아니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용의 형상을 발견한 곳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용의 형상을 한 돌무더기가 발견되었는데 약 7600년 전의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박물관이 보이자 스님은 “바로 저기예요!”라며 손가락으로 가리켰습니다. 수년 전에 이곳을 한 번 방문했던 스님은 기억을 더듬으며 곳곳을 다시 살펴보았습니다.
▲ 사해 유적 박물관
박물관은 수리 중이어서 문이 닫혀 있었고, 주요한 유물들도 모두 다른 곳으로 옮겨 간 상태였습니다. 대신 박물관 뒤쪽에 용의 형상을 한 돌무더기가 주변과는 어울리지 않게 신주 단지 모셔지듯 보호되어 있었습니다. 스님은 환하게 웃으며 돌무더기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이게 용 형상의 돌무더기야. 7600년 전의 것이지. 여기가 머리, 여기가 꼬리 부분이야.”
▲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용의 형상.
스님의 설명을 들으며 주변을 한 바퀴 돌면서 자세히 들여다보자 드디어 용의 형상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용은 머리를 쳐들고 입을 벌리고 있으며 몸을 뒤틀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1982년 발굴 조사를 할 때 주거지와 함께 이곳이 발견되었는데, 탄소연대측정법으로 확인한 결과 지금으로부터 7,6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졌다고 습니다. 이는 중국학계에 엄청난 소용돌이를 불러왔습니다. 이곳 사해 마을 사람들은 7,600년 전부터 이미 용을 형상화하고 신성시했다는 추정이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이때까지 알려진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용형상은 허난성 푸양과 후베이성 황메이룽에서 발견된 것이었는데 이는 6,000년 전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2,000년이나 앞선 8,000년 전에 대륙의 동북쪽, 즉 한족이 오랑캐의 소굴이라고 폄훼했던 발해연안의 동이 지역에서 용이 발견된 것입니다. 이 발굴 하나로 황하문명을 계승한 한족 중심의 세계관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자부심을 갖고 있던 중국학계는 크게 술렁거렸습니다. 중국 사상의 원형인 ‘용신앙’이 중원이 아니라 발해연안 동이의 땅에서 시작되었다는 유력한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 사막과 같은 건조 기후를 보여주는 요하 지역 일대
이렇게 사해 유적을 둘러본 후 다음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원래는 흥륭와(싱룽와)로 가려고 했으나 기사가 길을 잘못 들면 해가 저물어 있을 것 같아서 곧바로 조양시로 향했습니다. 사해 마을에서 서쪽으로 100km 떨어진 흥륭와(싱룽와)는 ‘중국 최초의 마을’ 자리를 놓고 사해 마을과 경쟁을 벌이고 있는 곳입니다. 대규모 주택 단지를 방불케 하는 싱룽와 유적이 무척 기대가 되었지만 내일 답사하기로 하고, 해가 지기 전에 무사히 조양시에 도착했습니다.
▲ 운전기사가 길을 잘 모르자 드디어 지도를 펼쳐든 스님.
조양시에서 가장 눈에 뛴 것은 시내 한 복판에 엄청나게 큰 두 개의 탑이 우뚝 솟아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조 선생님은 이것을 “요나라(916∼1125) 때 만들어진 탑” 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북탑과 남탑 중에 북탑을 먼저 참배했습니다. 스님은 탑 앞에 서자 마자 “우와, 황룡사 9층탑보다 더 큰 것 같다” 며 그 규모에 감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 요나라시대를 대표하는 탑, 조양북탑
요나라는 동아시아에 살던 유목민족인 거란족이 최초로 정착해 세운 나라로 불교를 국교로 숭앙했으며 왕실의 적극적인 후원에 힘입어 수많은 사찰과 탑을 조성했습니다. 요나라와 고려의 문물교류도 활발하게 이뤄졌으며, 탑 속에 사리를 대신해 경전을 안치하는 우리의 전통이 요나라에 전래 되기도 했습니다.

이 조양북탑은 요나라를 대표하는 불탑으로 손꼽힙니다. 1043년 완성한 전탑(흙으로 구운 작은 벽돌을 촘촘히 쌓아 올린 벽돌탑으로 가운데는 텅 비어있는 구조)으로 높이 42.6m의 거대한 규모를 자랑합니다. 1984년부터 1996년 사이 이뤄진 발굴 작업을 통해 금제 사리탑 등 다량의 유물이 나왔으며 이를 보존관리하기 위한 별도의 박물관이 탑 근처에 지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황룡사 9층탑은 기록에 의하면 227척(67m)이 된다고 하니 이 탑보다는 25m나 더 높은 셈입니다. 그러니 스님의 소원 중의 하나인 황룡사 9층탑을 복원하면 정말 대단할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님은 탑을 한 바퀴 돌며 자세히 들여다 보았습니다. 탑 1층 동, 서, 남, 북 4면에 조양북탑과 같은 모양으로 소형화 한 8개의 불탑을 새겨 넣었고, 이 불탑 안에 또 다시 앉아 있는 부처님을 부조한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탑 속에 또 다른 작은 탑을 장엄함으로써 소탑들이 무한히 증식하고 있다는 것을 머리속으로 상상할 수 있었는데, 자료를 찾아보니 이 탑을 설계한 선연대사는 우주 속에 작은 우주가 존재하는 화엄의 우주관을 탑에 표현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아마도 요나라가 화엄사상으로 사회를 통합하려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짐작을 해보았습니다.
북탑의 한쪽 귀퉁이에는 요나라 시대 때 만들어진 우물도 있었습니다. 무심코 지나칠 뻔 했는데 향과 꽃이 놓여 있어서 잠시 발걸음을 멈출 수 있었습니다. 구멍 속을 들여다 보니 물은 마르고 없었습니다.
▲ 요나라 시대 때 우물
북탑을 참배하고 다시 뒤를 돌아보니 남쪽에도 이만한 큰 탑이 우뚝 솟아 있었습니다. 북탑과 남탑 사이에는 ‘모당지’ 라는 상점 거리가 있었습니다. 갖가지 수석과 골동품들을 판매하는 가게들을 볼 수 있었는데, 스님은 “진짜라고 하는 것은 대부분 가짜이고, 오히려 가짜 중에 진짜가 섞여 있을 확률이 높다”고 귀뜸해 주어 다같이 웃기도 했습니다.
▲ 모당지 거리
남탑에 가까이 다가가니 북탑보다 조금 더 높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큰 탑 두 개가 서로 마주보고 있는 모습은 이곳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흥미로운 볼거리를 주고 있었습니다.
▲ 남탑
참배를 하려고 가려는 찰나에 스님은 탑 앞에 큰 절이 하나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절 앞에는 ‘우순사’ 라고 비석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문이 닫혀 있어 아쉽게도 경내를 둘러보지는 못했습니다.
이렇게 조양북탑과 남탑을 모두 둘러보니 해가 다 저물었습니다. 가까운 곳에서 숙소를 잡고 오늘 답사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숙소에서는 지도를 펼쳐놓고 내일부터 4일 동안의 답사 일정에 대해 조춘호 선생님과 운전기사에게 스님이 자세히 브리핑을 해주었습니다.
▲ 지도를 펼쳐놓고 내일 답사 코스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는 스님
요하 지역에는 신석기 문화가 많이 발굴되었는데, 소하서문화(기원전 7000년 경), 흥륭와문화(기원전 6200년 경), 사해문화(기원전 5600년 경), 부하문화(기원전 5200년 경), 조보구문화(기원전 5000년), 홍산문화(기원전 4500년), 동석 병용기시대 문화로 소하연문화(기원전 3000년), 청동기시대 문화로 하가점하층문화(기원전 2000년)가 그것입니다.
내일은 이들 지역을 둘러보기 위해 새벽 5시 30분에 숙소를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모두 시골길이라 길을 찾기가 쉽지 않아서 계획한 대로 답사를 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 민족의 역사를 올바르게 정립하고, 연해주 독립운동의 성지인 '신한촌'의 역사 회복과 재건을 위해 대중 여러분들의 후원금을 받습니다. 소정의 기금 출연으로 역사 회복에 동행하는 마음과 정성을 함께 담아 주시기 바랍니다.

- 계좌번호 : 국민은행 578601-01-272869
- 예금주 : (사)좋은벗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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