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우 문화스포츠부 차장 seeyou@hankyung.com

"돈은 얼마든지 댈 테니 지분·지적재산권 넘겨라"
'울며 겨자먹기' 투자 유치

중국 정부 규제 피하려면 치밀한 현지화 전략 필수

[한국경제신문] “시나리오가 좀 된다 싶으면 어김없이 중국 투자 제안이 들어옵니다. 돈은 얼마든지 댈 테니 지분을 내놓으라는 통에 고민이 큽니다.”

최근 만난 한 국내 드라마 제작사 대표의 푸념이다. 대박을 터뜨린 ‘태양의 후예’(이하 ‘태후’) 종영 이후 가속화된 현상이란 점이 흥미롭다.

중국 투자사의 요구는 간단하다. 합작법인이든 조인트벤처 설립이든 콘텐츠의 지식재산권을 통째로 달라는 것. 중국 투자사들이 자국 내 콘텐츠 유통에 대한 영향력을 내세우며 작품에 대한 리메이크 권리와 중화권 상품화 권리까지 갖겠다고 주장한다는 얘기다. 말이 좋아 합작법인이지 일종의 ‘하청’ 구조나 다름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중국 정부의 규제 강화도 이런 현상에 한몫했다. 중국은 지난해 4월부터 한국의 방송통신위원회 격인 국가신문출판방송위원회를 통해 수입 드라마에 대한 규제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에 따라 인터넷 등 통신매체에서 방송하는 모든 외국 드라마와 영화는 정부가 주는 전파권을 취득해야 한다. 이를 위해 방영 전 전편을 심사하기 때문에 반드시 사전 제작된 완성품이어야 송출이 가능하다.
‘태후’ 신드롬의 결정적 계기가 된 중국 내 ‘온라인 조회수 30억뷰 돌파’ 등의 성적도 중국 투자사가 자국 시장의 송출 규제를 피해갈 수 있도록 현지화 전략을 펼쳤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국 기업에 대한 중국 투자사의 재산권 행사 범위도 커졌다. 지난해 발효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르면 중국 자본이 국내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지분을 49%까지 소유할 수 있어 최대주주 등극은 마음만 먹으면 가능하다. 게다가 중국 드라마 콘텐츠 시장은 최근 6년 새(2010~2015년) 연평균 15% 이상 성장하고 있어 ‘울며 겨자먹기 식’의 투자 유치는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중국 자본을 바라보는 국내 제작사들의 시각은 두 갈래다. 잘나가던 홍콩영화가 미국 자본에 밀려 지식재산권과 인력 유출 등 문제로 ‘한순간’에 무너진 선례로 봤을 때 지식재산권과 인적 자원, 글로벌 유통망은 절대 양보해선 안 된다는 측과, 지식재산권과 유통 권리 등을 넘겨서라도 더 좋은 작품을 잘 제작해 납품하는 게 서로 ‘윈윈’하는 길이라는 의견이 팽팽히 맞선다. 중국의 화책미디어와 손잡고 ‘태후’를 제작해 대박을 터뜨린 제작사 뉴(NEW)는 후자의 경우다.

문제는 누구도 우리의 드라마 기획력과 제작 능력, 콘텐츠 제작시스템에 대한 권리를 보장해 주지 않는 데 있다. 애써 키워온 국내 제작사가 중국 회사로 둔갑해 원천 저작권 이양과 제작 인력 유출 등의 문제를 겪는다면 짧게는 몇 년 안에 한류 드라마의 경쟁력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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