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달 초 취재진이 우수리스크 지역에서 접촉한 한 북한 건설 노동자는 “4월에 내야 했던 계획금이 무려 6만 루블(약 950달러)에 달해 미처 다 못 낸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이 때문에 2주 전부터는 직장일과 청부받은 일을 합해 하루 22시간씩 일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월급의 2, 3배에 달하는 계획금이 너무 많다고 생각해 본 적 없냐는 물음에 이 노동자는 “모르겠다. 당이 내라고 하면 내야 한다”며 말을 아꼈다.
이어 그는 “3년 전 처음으로 청부를 받아서라도 계획금을 채워오겠다고 했을 땐 무조건 2인 1조로 다니라고 했지만, 얼마 지나자 혼자 돌아다니며 러시아인들 집에서 일하고 와도 아무 제지를 안 하더라. 돈만 모아서 가져다 내면 된다”면서 “청부를 받기 위해 밤새 러시아어 책을 암송해 공부하고 벽 바르고 색칠하는 것도 익혀야 했다. 밤에도 일을 하려면 재주라도 있어야지, 할 줄 아는 게 없으면 빚(밀린 계획금)만 늘어난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해당 노동자를 소개시켜 준 현지 협조자는 “얼마 전 목격한 한 북한 노동자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몸을 하도 혹사 당해서 치아가 거의 다 빠져 있었다”면서 “하루 20시간 이상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에게 ‘그렇게 일 하다가 가족들에게 돈도 못 쥐어주고 죽을 수도 있다’고 이야기해줘도, 이들은 그저 밀린 계획금 갚아나가는 데만 혈안이 돼 있다. 그마저도 갚지 못하면 돈 한 푼 받지 못한 채 본국으로 송환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소식통에 의하면, 계획금은 북한 당국이 정해 지시를 내리지만 현지 간부들이 중간에 돈을 가로채기 때문에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가령 계획금이 1000달러라면 이중 500달러가 북한 당국에 송금되고 나머지는 기업소 간부들이 나눠 갖는다는 것이 소식통의 설명이다.
블라디보스토크 지역서 북한 노동자들과의 접촉이 잦은 한 소식통은 “상납해야 할 계획금 액수를 당(黨)에서 어느 정도 정해주기는 하나, 지배인들이 중간에서 가로채기 위해 더 크게 부풀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면서 “심지어 지배인들은 ‘머리가 길면 500루블’ ‘복장불량 500루블’ ‘난동 피우면 5000루블’ ‘청파지 입으면 1000루블’ 등 말도 안 되는 규칙을 만들어놓고 노동자들을 트집 잡아 돈을 뜯어내기도 한다”고 소개했다.
소식통은 또 “북한 노동자들은 계획금을 채워오라는 독촉에 잠도 못 잔 채 청부를 받아 야간작업에도 나가야 하는 실정인데, 이렇게 야간작업을 허가 받기 위해선 직장장이나 지배인들에게 뇌물을 바쳐야 한다”고 전했다.
그는 또 “당 간부들은 지배인들의 계획금 횡령을 눈치 채고 있지만, 지배인들이 돈을 빼돌린 뒤 그 중 일부를 당 간부에게 뇌물로 쥐어주기 때문에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라면서 “다단계 형태로 이뤄지는 부정부패 가운데서 결국 가장 밑에 있는 노동자들만 죽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