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1년 MBC에서 방송된 36부작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에서 주인공을 열연한 배우 최재성(왼쪽)과 채시라.
[Korea.net]1991년 10월 7일부터 이듬해 2월 6일까지 안방극장을 독점했던 ‘국민 드라마’가 있었다. 바로 MBC 36부작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김성종 작가의 총 10권으로 구성된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드라마는 단순히 남녀간의 사랑이야기가 아닌 한국의 역사적 사실을 담아내면서 그 속에 살아남았던 이들의 사랑을 그린다.

드라마 제작기간 2년 4개월, 총 제작비 72억 원, 총 출연자 2만 1천명, 평균 시청률 44.3%, 최고 시청률 58.4%. 이 기록적인 숫자는 ‘블록버스터 드라마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는 일제 강점기부터 한국전쟁까지 험난했던 한국의 현대사를 배경으로 여자주인공 윤여옥을 사랑하는 최대치과 장하림, 두 남자의 삼각관계를 그린다.
▲ 1991년 MBC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는 최고 시청률 58.4%를 기록하며 안방극장을 사로잡았다. 주인공 최대치를 연기한 배우 최재성(사진 위, 왼쪽), 윤여옥을 연기한 채시라(사진 위, 오른쪽), 그리고 장하림을 연기한 박상원(사진 아래).
윤여옥은 17세 나이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다. 최대치는 중국에서 대학에 다니던 중 한국에 들어왔다가 일본 육군 15사단에 학도병으로 강제 징병된다. 우연히 여옥은 중국 남경에 있는 15사단에서 지옥 같은 위안부 생활을 하던 중 대치와 만난다. 둘은 사랑을 키워가며 삶의 희망을 얻는다. 아이의 임신은 살아 남고자 하는 의지를 더욱 불태운다.

그러나 두 사람 앞에 시련이 찾아온다. 대치의 군대는 중국을 떠나게 되고, 두 사람은 생이별을 하게 된다. 일본군이 사이판으로 보낼 위안부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한 여옥은 혹시나 대치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사이판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일본군 의무병으로 복무 중인 조선인 장하림을 만난다. 하림은 여옥이 임신했다는 것을 알고 그녀를 보호하면서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일본군이 세균전을 준비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된 하림은 탈영하여 연합군에 가담한다. 두 사람은 美 정보국 요원이 되어 조국으로 돌아와 각종 작전에 투입된다. 그리고 두 사람은 결혼을 약속한다. 그러나 어느 날, 이들 앞에 대남공작원이 된 대치가 나타난다. 여옥은 갈등 끝에 대치와 함께 하기로 결정한다. 여옥은 美 정보국의 정보를 대치에게 제공하며 그를 돕는다. 그녀는 하림에 대한 가책으로 괴로워한다.
이때 한국전쟁이 발발한다. 여옥은 전쟁 중 아들을 잃고 홀로 고향으로 돌아와 전쟁고아를 돌보며 산다. 대치는 지리산 남부군 대장으로 후방교란 작전을 벌이고, 하림은 그 남부군 토벌 작전에 투입되면서 대치와 하림의 운명적인 대결을 벌인다. 그러던 중 여옥은 부상 당한 대치와 마주하게 된다. 결국 대치와 하림이 바라보는 가운데 여옥은 총에 맞아 삶을 마감한다. 부상을 입은 대치 역시 그녀의 뒤를 따른다.

살아남은 자, 하림의 독백으로 드라마는 막을 내린다.

“그 해 겨울, 지리산 이름 모를 골짜기에 내가 사랑했던 여인과 내가 결코 미워할 수 없었던 한 친구를 묻었다. 그들은 가고 난 남았다. 남은 자에겐 남겨진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희망일 것이다. 희망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만이 이 무정한 세상을 이겨 나갈 수 있으므로…”
▲ MBC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에서 여주인공 윤여옥이 최대치의 품에 안겨 숨을 거두는 마지막 장면.
‘여명의 눈동자’의 엄청난 인기는 20부까지는 중국, 사이판 등에서 촬영된 웅대하고 이국적인 장면이다. 20부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드라마가 전개되면서 속도감 있는 진행과 뛰어난 영상미로 끝까지 긴장감을 잃지 않은 것이 성공요인으로 평가됐다.

이 작품은 당시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위안부 문제를 알렸다. 방영 당시 비극적인 한국의 근현대사를 주인공들의 삶과 사랑으로 오롯이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드라마의 명장면은 최대치가 철조망을 밝고 올라가서 윤여옥의 머리를 당겨 키스하는 ‘철조망 키스신’으로 꼽힌다. 이 장면은 하얼빈 군부대에서 촬영됐고 무려 3천명의 중국인 군중들이 보는 앞에서 촬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군으로부터 탈출한 최대치가 미얀마의 황량한 초원에서 살아있는 뱀의 껍질을 입으로 물어뜯어 벗겨내 뱀의 살을 씹어 먹는 장면 역시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시청자들의 기억 속에 깊게 남아있는 장면이다.

여주인공을 맡은 배우 채시라는 당시 24살이던 신인배우였다. 이 작품으로 연기력을 인정받고 스타반열에 오른 채시라는 당시를 회상하며 “’여명의 눈동자’가 없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채시라가 있을 수 있을까? 아마 없을 것 같다”며 드라마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남주인공 최대치를 연기한 배우 최재성도 “이 드라마를 통해 성인 연기자가 되는 가장 중요한 계기가 됐다”며 “내겐 베스트(best) 작품이다”고 회상했다.
‘여명의 눈동자’ 속 경상북도 포항 구룡포
▲ 경상북도 포항시 구룡포 장안동 골목에 80여 채의 일본식 가옥들이 모여있는 근대문화역사거리.
-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
신라 진흥왕 때 동해의 용 아홉 마리가 하늘로 올라간 포구라는 뜻에서 이름 붙여진 경상북도 포항시 ‘구룡포’. 이곳의 장안동 골목에는 1910년 1천여 명의 일본인들이 거주했던 집들이 남아있다. 총 457m에 이르는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다. 해방 후 일본인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일본가옥들이 남아있다. 1백 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일본 가옥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일본풍이 물씬 풍기는 포항 대표 관광지다. 이곳의 후지산 문양의 창문이 있는 집에서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의 장면이 촬영됐다.
▲ MBC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가 촬영된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의 한 가옥에는 드라마의 주요 장면들이 담긴 사진들이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1906년 가가와현 어업단 오다구미(小田組) 80여 척이 고등어 등 어류 떼를 따라 구룡포에 정착하면서 시작됐다. 선박 경영, 선박운반업, 통조림 가공공장 등으로 부유해진 일본인들은 이곳에 집을 짓기 시작했고, 1932년 3백여 가구, 1천1백61명이 거주하는 일본인 집단거주지역으로 자리잡았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일본식 가옥들로 당시 구룡포의 부흥기를 엿볼 수 있다. 현재 80여 채의 가옥이 남아있다. 이곳에는 일본식 냉면, 차(茶) 등을 맛볼 수 있는 음식점들도 있다.

※ 찾아가는 법: 서울에서 KTX로 포항역으로 이동. 포항역 정류장에서 간선버스 210번 승차 후 구룡포근대화거리 정류장에서 하차. (약 1시간 30분 소요)
손지애 코리아넷 기자
사진 MBC, 한국관광공사
jiae5853@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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