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엔케이 ㅣ 최송민 기자] 최근 북한은 ‘대량살상용 생화학무기를 보유했을 것’이란 세간의 의문을 깨고 그 실체를 드러냈다. 승객들로 붐비는 다른 나라(말레이시아) 국제공항에서, 그것도 백주에 최고존엄(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을 암살할 때 생화학무기 중에 최고의 독성을 지닌 ‘VX’를 사용한 것이다.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는 이미 “생화학무기를 우리(북한)만큼 가지고 있는 나라는 아마 없을 것”이라는 말이 나돈 지 오래됐다. 일각에서는 약 5,000t의 유독성 물질을 보유했을 것이라고 추정하지만 이는 ‘2010년 초부터 시작’을 염두에 둔 숫자라고 생각한다. 그보다 앞선 1970년대부터 본격 생산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양은 우리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라는 얘기다.

북한의 화학공업 발전을 거론할 때면 반드시 이승기 박사가 뒤따라온다. 그는 석회석과 무연탄을 원료로 하는 가볍고 질기며, 자연섬유에 가까운 ‘비날론’을 개발함으로써 섬유산업에 취약했던 북한에 그야말로 의복혁명을 일으켰던 유명한 화학박사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모습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김일성은 이승기 박사에게 ‘생화학무기 개발’을 은밀히 지시했고, 그는 어쩔 수 없이 ‘무시무시한 살인무기 개발자’라는 오명을 뒤집어 쓸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승기 박사도 김 씨 일가의 필요에 따라 ‘생화학무기 개발 선구자’가 되는 운명에 이르게 된 것으로, 북한 주민들에게 나라경제 발전에 기여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보다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돼야 한다”는 부정적 여론에 휩싸인 채 사망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됐다. 왜 그런 걸까?

때는 19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여름 평안남도 순천시에서 길거리를 오가던 수천 명의 주민들이 죽거나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되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필자는 그 이튿날 순천 땅에 들어서서 참변을 면했지만 당시 순천시 크고 작은 병원은 물론 인접도시인 평성시 병원에까지 부상자들로 차고 넘쳤고 일부는 평양으로 이송되는 사례가 빚어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순천역 조차장에 액체용 방통을 실은 열차가 정차해 있었는데 이를 디젤유로 착각한 현지 주민 몇몇이 새벽에 몰래 방통 위에 올라가 뚜껑을 빠끔 열었던 게 발단이 됐다고 한다.

그 잠깐으로 인해 이른 아침부터 허공엔 구름 모양의 누런 기체가 떠다녔고 그 아래를 지나는 사람들은 영락없이 쓰러져버렸다. 단 몇 시간 동안에 현장에서 숨진 사람이 수백 명, 병원에서 목숨만 부지한 부상자가 수천 명에 달했지만, 북한 당국은 주민들 입소문 단속에만 몰두했었다.

그로부터 벌써 30여 년이 흘렀다. 이와 관련 북한 평성과학원 산하 함흥과학원 분원 등지에서는 지금도 생화학무기와 마약 연구제조에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 주민들도 모두 알고 인정하는 생화학무기 수준을 우리만 애써 외면해온 건 아닌지 뒤돌아 봐야 할 것이다.

이처럼 북한 김 씨 일가는 화학공업 분야를 체제유지를 위해 대량살상무기 분야로 전변시킨 장본인들이다. 우리는 이복형을 살해하는 데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물질’(VX)을 너무나 손쉽게 사용하는 김정은과 어떻게 맞서 싸워 이겨야 한단 말인가. 점점 고민이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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