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일본 뒤바뀐'제조업 운명'
50억엔 들여 네트워크장비 양산
소프트뱅크 등 일본 기업에 판매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던 중국
인건비 뛰면서 일본과 격차 줄어
일본 고급기술·인재 흡수 전략도
세계 최대 통신장비업체인 중국 화웨이가 일본에 공장을 짓고 생산에 나선다. 중국 기업이 일본에 공장을 건설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의 앞선 기술과 인재를 활용함으로써 5세대(5G) 사물인터넷(IoT) 등 신기술을 개발해 미래를 대비하려는 것이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9일 화웨이가 올해 일본 도쿄 인근 지바현에 대형 통신장비 공장을 설립하고 생산에 들어간다고 보도했다. 화웨이는 생산공장뿐 아니라 통신장비를 연구개발(R&D)하는 연구소도 올해 도쿄에 짓기로 하고 준비 작업에 나섰다.
화웨이는 지바현 후나바시(船橋)시에 있는 공장 터를 공작기계업체 DMG모리정밀기계로부터 매입했다. 화웨이는 이 부지에 50억엔(약 507억원)을 투입해 라우터 등 네트워크 장비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LAN(근거리통신망)과 LAN, LAN과 WAN(광역통신망)을 연결하는 네트워크 장비인 라우터는 정보기술(IT) 제품에 필수적인 중간재다. 화웨이는 여기서 생산된 제품들을 일본 소프트뱅크 등 통신사에 판매할 예정이다. 일본뿐 아니라 SK텔레콤 LG유플러스 등 한국 통신회사에까지 판매할 계획을 세워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니혼게이자이는 또 화웨이가 새 공장에 생산관리 인력을 대거 채용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중국식 저비용 대량 생산 방식으로 품질과 가격 경쟁력 둘 다 얻겠다는 의도라는 것이다. 양국 간 인건비 격차가 크지 않다는 점도 화웨이가 일본 투자를 감행한 이유 중 하나로 분석된다. 일본 인건비가 중국보다는 높지만, 최근 중국 인건비가 급등해 그 격차가 대폭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화웨이는 세계 통신장비 시장 1위 기업으로 매출의 10%를 R&D에 투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최근에는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약진을 거듭해 삼성과 애플을 추격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화웨이는 점유율 9%를 차지했다. 화웨이는 중국 인도 등에 통신장비 공장을 갖고 있다. 연구소는 독일 뮌헨 등의 10여 곳에 이른다. 지난해 매출은 751억달러에 달한다.

중국 기업의 일본 진출은 2000년대 후반부터 시작됐다. 시작은 인수합병(M&A)이었다. 거품경제 붕괴 뒤 장기 불황이 이어지며 어려워진 일본 기업이 매물로 나오자 중국 기업이 인수하는 사례가 증가했다. 2009년 일본 가전유통업체 라옥스가 중국의 가전유통업체 쑤닝에 팔렸고 혼마골프, 의류업체 레나운도 중국 기업에 인수됐다.

최근에는 중국 기업들이 우수한 인재가 많은 일본에 연구개발거점을 설치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지난해 중국의 창청자동차가 전기자동차 및 자율주행차 연구거점을 일본에 마련했다. 전자업체 ZTE도 IoT 연구소 등을 도쿄에 설립해 운영 중이다. 일본에서 인재들을 구해 기술을 개발한 뒤 이를 중국으로 이전해 상품화하는 방식이다.

그동안 동북아 분업구조에서 일본은 기초 소재를 만들고 한국 기업은 중간재를 생산하며 중국은 최종 조립을 담당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분업구조가 파괴되면서 앞으로 중국 제조업체가 일본을 생산거점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늘어날 수 있다고 니혼게이자이는 전망했다.

일본 재무성에 따르면 2016년(2016년 4월~2017년 3월) 외국 기업의 대일본 투자액은 전년 대비 두 배 급증한 3조130억엔(약 30조7700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오춘호 선임기자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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