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은 스스로 자란다



논둑길 산등성이 외롭게 살면서도

키 크고 화려한 꽃 부러워하지 않는

비바람 몰아쳐 괴롭고 힘들어도

맑은 얼굴 환하게 웃으며 살아가는

들꽃, 너를 닮고 싶구나

너를 닮고 싶구나

꽃가루와 꿀은 벌나비 너 가져라

조그만 향기마저 바람한테 나눠주는

아름다워라 들꽃

나도 너처럼 살아갈래



경남 거창군 샛별초등학교 주중식 교장선생님의 시다. 들꽃은 아이들이다. 가르치고, 야단치고, 밀고 당겨야 하는 나약하고 미숙한 존재가 아니라, 그 속에 무한한 우주를 담고 있는, 그래서 스스로 자라고 배우며, 말하지 않아도 답을 알고 있는 들꽃 같은 아이들.



5월 15일 스승의날을 맞아, 들꽃들이 스스로 자라는 왕징 라이광잉의 선샤인 몬테소리 유치원을 찾았다. 지난해 이맘때 취재를 하고 두번째 걸음이다. 1년전에 만났던 아이들이 몰라보게 자랐다. 그들과 함께 바닥에 앉아 허리를 숙여서 눈높이를 맞췄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카메라 렌즈에 클로즈업된다.



1년전과 마찬가지로 몬테소리 아이들의 눈빛을 보며 아름답게 피어나는 들꽃들을 재발견한다. 아이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고 정서적, 지적, 신체적으로 고루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몬테소리 교육법을 실천하고 있는 선샤인 몬테소리 유치원. 그곳의 아이들을 사진에 담아왔다.














 































각자 편하게 자리잡고 앉은 아이들이 지도 그리기, 수학, 감각, 언어 등의 교구를 가지고 자신의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아이들의 눈빛은 진지하게 연구하고 있는 과학자의 눈빛만큼이나 진지하다 못해 엄숙할 정도이다. 가까이서 카메라 셔터를 터뜨려대지만 집중한 나머지 이방인의 방문에 신경 쓸 겨를도 없어보인다.



어른들의 생각 속에 아이들은 감각적 존재이지 지적 존재가 아니다. 뭔가를 두고 스스로 골똘히 생각할 수 있는 습관은 자신의 두뇌를 개발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보통의 아이들은 부모가 던져주는 문제에 좀처럼 잘 집중하지 않는다. 모자지간의 줄다리기는 강제와 자율의 충돌이기도 하다. 이같은 충돌은 들꽃들을 시들게 하는 과정인 것을 부모들은 모르고 답답해하기만 한다.



몬테소리의 아이들이 진지하게 다루고 있는 교구들은 좀처럼 간단한 것만은 아니다. 그런데도 말 한마디 않고 한참을 집중해서 하나씩 해결해 간다. 던져준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문제를 선택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옆에서 도와줄 뿐이지 다른 유치원 선생님들처럼 목이 쉬도록 큰소리를 질러대지 않는다. 스스로 하기 때문에 소리 칠 일이 없는 모양이다.



인간은 창조성을 본성으로 타고난 존재이다. 아이들의 성장은 신체 발육만큼이나 인간으로서 타고난 스스로의 창조성을 길러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하지만 적지않은 부모들은 아이들을 외국어 하는 '앵무새'로 키우는데, 집중한 나머지 창조력의 성장을 막고 있다.














































아이들이 자신이 사용한 교구를 제자리에 가져다 놓고 있다. 암 말 않고 정리해서 제자리에 갖다놓는 모습이 아주 자연스럽게 보인다. 마치 당연한 것을 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스스로 생각하던 아이들이 스스로 해야할 일을 하고 있다. 책임감을 배우고 스스로 하는 자율성을 터득한 것이다.



동행한 동료 직원이 우리 회사직원들도 몬테소리에서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이미 성장한 성인은 이미 늦었다고 답했다. 자율적 책임감은 몇 마디의 말로 교육되는 것이 아니라 어려서부터 실천적으로 습득되는 것이다. 이미 꺼진 불을 다시 지피기 힘들듯 작은 생명의 불씨를 정성껏 살리는 과정이 없이 순식간에 살려놓을 '휘발유'와 같은 것은 없다.



자기가 벌인 일을 스스로 정리하고 제자리에 갖다놓는 아이들. 자기가 저지른 잘못도 회피하며 변명을 늘어놓는 어른들의 세계와 너무나 대조적이다. 세상사람들이 몬테소리의 아이들처럼 자율적 책임감을 갖고 생활한다면 그들의 교실과 같이 조용하고 평화롭기만 할 것 같다.
























































선생님이 아이에게 손을 잡고 가르쳐주고 아이가 스스로 영어 단어를 쓰고 나서 스스로 행복해 한다. 점심식사를 위해 아이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 선생님은 자리에 편안히 앉아서 밥을 퍼주고 있다.



행동의 주체는 아이들이고 선생님은 도우미 역할을 할 뿐이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말처럼 선생님은 권위의 상징이었고 지식을 내리먹이는 존재였다. 이렇게 성장한 아이들은 우르러 봤던 '지존'이 사라지면 질서가 무너지고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을 찾지 못하기 마련이다.



아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다는 믿음은 곧 인간에 대한 관점, 즉 철학적 문제이기도 하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스스로 질서를 지키며 더불어 생활하는 인간성을 키우는 과정은 곧 인간화의 과정이다. 이같은 인간성을 일깨우는 과정의 근본은 사람에 대한 믿음이다. 들꽃들이 스스로 자라듯 아이들 역시 스스로 할 수 있다는 믿음.










































아이들이 점심을 먹고 오리, 염소들과 놀고 있다. 한쪽에서는 아이들이 흙을 파며 흙놀이를 하고 있다. 또 다른 생명을 느끼고 땅의 기운을 받고 있다. 회색도시의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생명을 느끼고 있다.



디지털 문화의 포로가 된 요즈음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가상의 폭력과 살인을 경험하고 있다. 사이버 세계는 따스한 체온도 느낄 수 없으며 자신의 신경 체계를 자극하는 가상의 소재들만 가득하다.



생명에 대한 소중한 마음은 곧 사랑의 뿌리이다. 뿌리 깊은 사랑의 소유자가 가장 고귀한 생명체인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다. 세상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창작물은 사이버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 느껴지는 자연에서 얻을 수 있다.



누구나 자신의 자식이 특별하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기러기 부부가 되어 생면부지의 타국으로 날아가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이 학원을 보내니 따라 보내야 하고, 다른 사람이 유학을 보내니 따라 보내야 한다. 안 그러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에 못이겨 따라해야 마음이 놓인다. 자주성이 없는 부모가 들꽃들의 생명을 짓밟고 있다.


















스승의날,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감사의 편지를 썼다. 아름답게 피어나는 들꽃들의 고운 빛깔과 감미로운 향기가 묻어난다.



고교시절, 아무나 선생님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인격적으로 완성된 사람만 선생님이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누구나 아이들 낳기는 쉽다. 하지만 아이들 스스로 심신이 무럭무럭 성장하도록 하려면 부모들 또한 훌륭한 교육자여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군사부일체'의 의미를 재해석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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