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귀비가 있는 천지
▲ 백두산 천지에 핀 양귀비꽃


자유롭게 떠나는 백두산 여행…

아무것에도 걸림 없이 노니는 것이 <소요유(逍遙遊)>이다.
걸림 없이 노닐자면 스스로 자유로워야 한다. 자유와 자연은 같은 것이다. 자연은 스스로 그렇게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에서 부딪히게 되는 번뇌는 자연을 따르지 못하여 생기는 미혹의 병이다”라는 채근담(菜根譚)의 절구가 생각난다.

무엇을 생각하고 얻으려고 여행을 떠나는 것은 아니다. 그냥 온몸의 좀이 쑤시고 무엇인가 부족한 듯한 느낌, 갈증, 자연의 생기가 부족한 듯하여 어디론가 떠나긴 해야 하는데…

마침 한국에서 인터넷 들꽃애호가들의 동호회인 “들꽃마을”의 백두산 종주계획이 딱 들어 맞는다. 같이 가보도록 하자. 사실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과 4박5일을 함께 한다는 것이 조금 어색하고 불편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서로의 자유를 지켜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 아니지 않겠는가?








▲ 메발톱이 있는 백두폭포. 사진 : 찬찬찬
▲ '메발톱'과 백두폭포


초록이 어울린 만주 벌판의 낭만


7월6일 오전 12시 40분 선양(沈阳)행 기차다.
베이징역에서 열차를 타고 선양을 가는 데는 4시간 반 정도가 소요된다. 최근에 신설된 동차(動車)는 참으로 편안하고 즐거운 열차 분위기다. 베이징을 벗어나서 산해관을 지나 진저우(錦州), 후루다오(葫蘆島) 등 잘도 달린다. 그리고 잠시 숨돌리고 나니 선양이다. 사실 4시간 정도의 열차 여행은 조금은 지루할 수 있는 여정이지만, 몇 년 전 티벳 라싸행의 72시간 기차 여행 이후 지루함이 사라졌다. 여행의 즐거움은 기다림과 무료함 속에서 자신의 즐거움을 찾는 일종의 자기와의 게임이다.

선양에서 지인들과의 만남, 그리고 서탑가 뒷골목에서 막걸리와 순대로 인생을 얘기하는 즐거움, 참 집에서 빚었다는 아줌마의 막걸리 맛은 일품이었다.

7월 7일 아침 4시 반에 버스 정류소로 향한다.
창춘(長春) 가는 첫 버스는 오전 7시 반에 있다. 먼저 표를 사야 버스를 탈 수 있지 않은가? 기다리고 기다려서 표를 사고 여유 있는 시간에 콩 국물 한 사발, 옥수수 2개, 맛있는 아침 식사다. 확 트인 평야,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 밭, 그리고 친숙한 시골의 풍경들, 고향 길로 달려가는 듯한 기분 좋은 상상 속에서 눈떠보니 창춘이다. 이렇게 4시간의 버스 여행은 너무나 빨리 지나버린 듯 하다.

창춘에서 오랜 지인을 만나 시내의 북한식당으로 향했다.
12시가 아직 20분이나 남았음에도 손님이 북적거리고 있다. 10분 이상 기다려야 자리가 있다. 현지에서 10년 이상 영업 중 이라는데 항상 호황이란다. 성공 비결은 현지화된 메뉴라고 한다. 아닌게 아니라 익히 먹어왔던 평양식 음식이 아니다. 전통과 변화의 과정에서 실사구시를 찾고 있는 모습에 찬사를 보낸다.

오후 2시 반에 연길(延吉)행 버스다.
그런데 하필 버스 타는 시점에 장대비가 쏟아진다. 연길 행 버스는 야속하게도 꼭꼭 숨어 있어서, 아! 온 몸이 폭삭 젖었다. 혹자는 3시간이면 충분하다고 했는데, 왠 걸 6시간이 소요됐다. 이번 버스 여행은 고난의 행군이다. 폭 젖어버린 몰골에 버스 제일 뒷좌석에서 6시간을 견뎌야 하는 인내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시간은 흘러 갔고 결국 연길에는 밤 8시에 도착했다.

여행이 항시 즐겁기만 하다면 여행의 즐거움은 반감 될 것이다. 조금은 번거롭고 불편하지만 본인이 원해서 선택한 자유로움이 있지 않은가?

7월 9일, 백두산 종주를 위한 들말 친구들이 한국에서 도착하는 날이다.
오전 12시에 합류하고 백두산으로 향한다. 연길에서 버스를 타고 4시간 만에 백두산 서파(西坡)지역의 여관에 여장을 풀었다. 계절은 한 여름이지만 선선한 가을날씨의 기온에 밀린 잠을 실컷잤다.








▲ 만병초가 있는 풍경
▲ 산 위의 벌판에 만병초가 만발해 꽃밭이 됐다.
 

백두산에는 들꽃이 만발하여 꽃멀미에 취해…

7월10일 백두산의 서쪽, 노호배 산행이다.
여관에서 출발하여 버스를 타고, 국립공원 매표소에서 표를 사고나니 아침 7시30분이 지났다. 공원내의 환보 차를 타고 40여분, 그리고 30분을 올라가니 백두산 서쪽 천지이다.

날씨는 짙은 안개가 오락가락하여 천지를 감상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내일의 본격적인 백두산 종주가 있음으로 오늘은 천지에서 노호배 등성이를 따라 백두산의 꽃 잔치에 참여해 보기로 했다.

들말 회원님들은 들꽃을 사랑하여 꽃송이 하나하나를 카메라 렌즈에 담는 것이 사명인 사람들이다. 그분들은 남녀노소 연령에 관계없이 아름다운 꽃의 자태를 담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다. 엎드리고, 눞고, 그리고 기기묘묘한 자세로 꽃을 향해 돌진 한다. 그리고 이름 모를 꽃 한 송이에 담겨있는 의미들…

김춘수 시인은 일찍 이를 터득한 듯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중략 –

꽃쟁이의 기본은 꽃의 이름을 불러 주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지금껏 알고 있는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거론 됐던 몇 가지 꽃 말 외에는 그저 노란꽃, 빨간꽃 그리고 기껏해야 조금 발전된 불그수레한, 연노랑, 연분홍, 크고 작고 등, 이 정도로는 꽃과 친구가 될 수는 없다. 꽃쟁이의 기본은 꽃의 이름을 불러줘야 한다. 그리고 온몸으로 그들을 카메라로 그리고 가슴으로 담아야 한다.

그렇다. 백두산은 꽃쟁이들을 당황시키고 어쩔 줄 모르게 한다.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내려가는 백두산 초원에는 온통 들꽃 천지다. 구름국화, 눈빛승마, 노루발톱, 금혼초, 바이칼바람꽃, 담자리꽃나무, 장백제비꽃, 하늘 메발톱, 새둥지란, 가솔꽃, 좀참꽃, 패랭이 등등….. 참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꽃, 꽃밭이다.

이곳은 하늘이 내려준 천상의 꽃 향연이 한창이다. 이렇게 꽃에 취해 백두산의 선녀님들과 인생을 만끽한 하루였다.








▲ 백두산 천지
▲ 백두산 천지
 

이렇게 맑은 천지를 가슴에 안고…

7월 11일 ‘꽃멀미’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백두산 종주행이다.
서쪽 천지를 끼고 오솔길을 따라 북쪽 천지를 경유하여 천지폭포를 향해 트래킹 하는 약 10시간 코스다.

오늘의 관건은 날씨다.
과연 천지는 우리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 줄 것인가? 아! 그런데 행운이다. 옅게 낀 구름, 선선한 바람, 그리고 천지의 모든 모습이 일목요연하다. 파랗고 선명한 천지 속에 비친 또 다른 백두산이 우리를 반긴다.

백두산 산보 길은 참으로 아름다운 길이다. 그냥 걷는 것 만으로도 행복하다.
황량한 바위와 암석 사이 사이에 피어난 각양각색의 들꽃 , 산과 산이 첩첩이 어울린 곳에 하얀 구름이 쉬엄쉬엄 넘나드는 정다움, 이리저리 끝날 듯 말듯한 오솔길을 따라 정답게 흐르는 천지의 시냇물, 넓게 펼쳐진 푸른 초원 속에 피어 있는 야생화 군락, 저 멀리 장군봉의 산정에는 아직도 녹지 않은 설산의 위용이 우리를 아늑한 동화 속의 신비감과 고향의 뒷동산에서 노닐고 있는 듯한 그리움으로 마음 설레게 한다.

“아! 너무 좋다.” 이 단어만이 가장 적절한 표현이다.

점심을 먹고 나니 이제 백두산의 위용을 보여 줄 때 인가 보다.
갑자기 우박이 내리고 바람이 불고, 바지가 젖고 등산화에 물이 고이고, 몸이 춥다. 남은 여정이 불편하다. 방금 전의 행복감은 어디로 가고 종착점이 그리워진다. 왠지 준비 부족에 대한 자책감, 그리고 남들에 비해 폭삭 젖은 내 모습에 대한 실망감, 그래도 힘을 내자. 자연은 정직하다. 그냥 인정하고 최선을 다하자.

비에 젖은 천지는 또 다른 맛이다.
백두산은 누구라도 쉽게 접근 할 수 없는 위대한 성인의 모습이다.

아, 그래서 장장 10시간의 종주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리고 편안한 한잔 술, 너무 행복한 하루였다.

백두산 종주를 마치면서 옛 선인이 말씀한 명산 감상법이 생각난다.

“바람이 세차게 불고 소나기 퍼 붓는 곳에서는 다리를 꼿꼿이 세워야 하고, 꽃향기 무르익고 버들가지 짙은 곳에서는 눈을 높은데 두어야 하며, 길이 위태롭고 험한 곳에서는 머리를 빨리 돌려야 한다.”

내년에도 7월이면 백두산에 가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다.(jgkim122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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