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LG 난징공장
▲ [자료사진] LG 난징공장
 
중국 초여름 날씨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26일 오후, 중국 난징경제기술개발구역에 자리한 LG디스플레이 공장 앞마당에선 300여명의 중국 근로자들이 뭔가를 가운데 두고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무리 한가운데는 굵은 동앗줄이 길게 펼쳐진 모습이 눈에 띄었다.

5월 중순 열릴 법인장 주최 체육대회를 앞두고 작업조별로 팀을 이뤄 줄다리기 예선전이 펼쳐진 것이다. 팀별로 색을 맞춘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남녀 근로자들은 삼삼오오 마당으로 나와 경기와 응원전을 펼칠 준비를 했다. 8시간 조업을 마치고 다음조와 교대를 한터라 피곤이 역력해보였지만 20~30대 초반의 앳된 얼굴을 가진 근로자들의 눈빛은 사뭇 진지해 보였다.

잠시후 호각 소리가 울리며 경기가 시작되자 응원단 곳곳에서는 “짜요. 짜요(파이팅의 중국어 표현)”라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힘껏 목청 높여 응원을 하던 한 중국 근로자는 한층 상기된 얼굴로 “한국 전통 놀이인 줄다리기를 처음 해본다”고 했다.

이현건 LG디스플레이 중국 난징 법인 경영지원팀장은 “중국 직원들의 일체감과 회사에 대한 소속감을 높이고 소통 채널을 확대하는 취지로 한국 전통 놀이를 시도하게 됐다”고 말했다.

올해로 설립 10년째를 맞은 난징 공장은 지난해말 처음으로 큰 복병을 만났다. 상여금 지급에 불만을 가진 중국인 직원들이 항의하며 3일간 파업이 일어났다. 당시 중국인 직원들은 현지의 한국 직원과 본사 직원들이 훨씬 많은 상여금을 받게 된다며 공장 앞에 설치된 크리스마츠 트리와 회사 간판을 부쉈다. 오해에서 비롯돼 처음 수십명에서 시작된 사태는 삽시간에 8000명으로 눈덩이처럼 불었다.

파업 소식이 중국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QQ와 최대 포털인 바이두를 통해 급속히 번지자 현지 중국 언론과 외신들도 파업 사태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 [자료사진] 당시 파업 현장
▲ [자료사진] 당시 파업 현장

노동자 권익을 중시하는 중국 정부도 해결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시간을 가지고 원만히 해결하라”는 원칙적인 입장만을 반복했다.

사측은 결국 3일만에 손을 들었다. 100억원을 긴급 투입해 중국인 직원들에게 상여금으로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사태가 끝난지 4개월이 됐지만 현지에서 근무하는 40여명의 한국 직원들은 당시 상황을 중국 진출해 처음 겪은 혹독한 신고식으로 기억했다. 언제 다시 같은 상황이 다시 발생할지 또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LG디스플레이 난징 법인은 2002년 중국 중앙정부와 난징시 정부로부터 부지와 건물 등 파격적인 지원을 받아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다.

현재 LG디스플레이가 생산하는 연간 1600만대의 LCD모듈 가운데 절반이 이곳에서 만들어진다. 올해 1월에는 누적 생산량 4억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곳에서 생산된 노트북과 태블릿PC용 LCD모듈은 인근의 LG전자를 비롯해 델 등 인근에 진출한 국내외 전자제품 공장으로 팔려나간다.

계속해서 승승장구할 것 같은 LG디스플레이 난징 공장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LG디스플레이가 액정디스플레이(LCD) 업황이 부진에 빠진 2010년 4분기부터 6분기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올해 1분기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2% 증가했고 영업손실은 25.5% 줄면서 그나마 실적이 개선되고는 있지만 중국을 비롯한 LCD TV시장의 성장세가 둔화되면서 마음을 놓을 수는 없는 실정이다.

업친데 덥친격으로 중국 정부는 경제 구조를 내수 중심으로 바꾸기 위해 지난해부터 2015년까지 진행 중인 ‘제12차 5개년 경제계획(12·5규획)’기간에 근로자 임금을 2배 올리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이는 해마다 최저 임금이 13%씩 올라가는 셈이다.

소득수준이 향상되면서 임금 처우에 대한 중국 근로자들의 인식도 빠르게 바뀌었다. 한국 직원과 비교해 차별받지 않기를 원하는 기대감도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다. 난징 법인의 한 직원은 “중국인 직원들도 한국 본사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금방 알아차릴 정도로 정보 격차가 없다”면서도 “하지만 이로 인해 때때로 오해가 빚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 들어 야근이나 상여금 등 처우부터 임금까지 한중 근로자간 의식격차는 현격히 줄고 있다. 게다가 최근 3~4년새 생산규모와 인력이 2배 가까이 늘어나면서 현장 인력과의 소통이 상대적으로 허술해진 것도 한가지 원인으로 지적된다.

결국 지난해 파업 사태는 이런 복합적인 요소가 얽히고 설키면서 발생한 불상사였던 셈이다.

중국에 공장을 짓고 10년간 운영해왔지만 지금까지 급격히 변화하는 현지 노무환경에 대한 방안은 아직까지 내놓은 적이 없었다. 사측은 사태가 끝난 뒤 현장 관리를 맡고 있는 중국인 관리자들을 통해 회사의 주요 결정 사안들을 늘리는 횟수와 채널을 대폭 늘렸다.

사소한 사안이라도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본사 차원에서도 중국 진출 법인의 노무 관리 체계에 대한 대폭적인 점검과 커뮤니케이션 정책을 더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하민용 LG디스플레이 난징 법인 관리담당(부장)은 “앞으로 중국 진출 국내 기업들에게 가장 큰 위기 요인은 사람에게서 나타날 가능성이 많다”며 “파업 사태를 통해 현지 직원들의 소통의 강화의 필요성이 매우 중요한 숙제로 떠올랐다”고 말했다. 중국 근로자를 고용한 한국 기업들은 급격히 변화하는 현지 상황에 맞춘 노무 관리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한다는 것.







▲ [자료사진] 줄다리기 하고 있는 LGD 직원들
▲ [자료사진] 줄다리기 하고 있는 LGD 직원들

중국 진출 국내 기업들은 최근 근로자들의 높은 이직율로 구인난을 겪고 있다. 상당수 기업들도 완벽한 현지화를 위해서는 현지인 전문가와 장기 근속자들을 계속해서 남겨둬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들어 올라가고 있지만 LG디스플레이의 연간 이직율은 3~8%에 수준에 머물고 있다. 평균 10% 이상인 다른 외국계 기업보다 낮은 수치다.

LG전자 중국 법인과 LG디스플레이에서 18년 가까이 근무한 허쥔 부장은 “LG디스플레이를 비롯해 한국계 기업들은 타이완 등 다른 외국계 기업보다 근무 환경이 훨씬 여유롭고 자율성이 많이 보장된다”며 “중국인 근로자들도 이를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설립 10년째가 되면서 변화의 조짐도 보인다. 외국계 회사는 언제든 사업을 접고 빠져나갈 수 있다는 선입견도 조금씩 해소되고 있다.

설립초기부터 9년째 이 회사에 다니며 네살짜리 아이까지 낳았다는 왕타오 씨는 “처음 한국 회사를 선택한 이유는 회사가 계속해서 성장하고 발전한다는 비전을 줬기 때문이었다”며 “20대를 바친 회사라 가능한 한 앞으로도 계속해서 근무하고 싶다”고 말했다. [기사제공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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