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일 런던 웸블리 아레나 경기장에서 열린 배드민턴 경기를 관전하는 영국 관람객들이 차분하게 응원을 하고있다. 영국 팬들의 관람의식이 상당히 높다. 런던=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 2일 런던 웸블리 아레나 경기장에서 열린 배드민턴 경기를 관전하는 영국 관람객들이 차분하게 응원을 하고있다. 영국 팬들의 관람의식이 상당히 높다. 런던=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선수가 이기기 위해 뛰지 않고 지기 위해 뛰었다. 페어플레이해야 할 올림픽 무대에서, 그것도 배드민턴 종주국 영국 한복판에서…. 낯뜨거운 '셔틀콕 스캔들'이다. 메달에 유리한 대진을 위해 '져주기 게임'을 했다. 옳지 않은 선택은 철퇴를 맞았다.

세계배드민턴연맹(BWF)은 1일 2012년 런던올림픽 배드민턴 여자복식 조별리그에서 벌어진 '고의 패배' 경기와 관련해 한국(4명), 중국(2명), 인도네시아(2명) 등 8명의 선수를 전원 실격 처리했다. 이의신청 역시 기각됐다. 중국이 먼저 했고, 한국도 따라 했다.

현장에선 "세계 1위 중국이 하는데 어떡하나" "중국의 농간에 놀아났다"는 볼멘소리도 흘러나온다. 먼저 했든 나중에 했든 잘못은 매한가지다. 현장 선수들의 입을 통해 이번 대회가 처음이 아니라는 증언들도 속출하고 있다. 한국이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겸허한 사과와 자기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중국이 먼저 했다?

셔틀콕 스캔들의 시작은 지난달 31일 여자복식 조별리그 A조 최종전이었다. 세계랭킹 1위 중국의 왕샤올리-위양 조는 한국의 정경은-김하나 조를 맞아 성의없는 플레이로 일관했다. 왕-위 조는 세계랭킹 2위인 중국의 톈칭-자오윈레이 조와 준결승에서 만나지 않으려고 일부러 지는 경기를 펼쳤고 결국 0대2로 패했다.

성 감독의 항의에 주심이 경고까지 내밀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A조 2위로 8강에 오르며 자국팀과의 맞대결을 피했다. 중국이 원하는 바를 얻은 뒤 다른 팀들도 유리한 대진을 확보하기 위해 중국의 '져주기' 전법을 따랐다.

C조의 하정은-김민정(한국) 조와 멜리아나 자우하리-그레시아 폴리(인도네시아) 조 역시 대진을 의식해 맞대결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이들을 보기 위해 코트를 가득 채운 관중들이 알아채고 야유할 만큼 명백한 승부조작이었다.

"세계랭킹 1위 중국이 먼저 시작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그랬다면 똑같이 태업할 것이 아니라, 노골적인 태업을 자행하는 중국에 대해 경기후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했어야 한다. 선수들은 '봐주기 게임'에 대해 '메달 전략의 일환'으로 받아들였을 뿐 별다른 죄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궁극의 플레이를 보기 위해 비싼 티켓값을 주고 찾아온 관중들을 잊었다. 성난 관중들은 해당 경기에 대한 환불을 요구하고 나섰다.

▶2년 전부터 횡행, 죄의식이 없다

문제는 이것이 처음 있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중국 신화통신에서 26년째 배드민턴을 현장에서 지켜봤다는 진시오량 기자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2년전 중국 우한에서 열린 토마스 & 우버컵(세계선수권)에서도 승부조작이 횡행했다"고 증언했다.

경기운영방식이 바뀌면서부터다. 베이징올림픽 당시엔 1차전에서부터 지면 무조건 떨어지는 '넉아웃 방식' 토너먼트였다. 2010년부터 조별리그 방식을 도입했다. 16개 팀은 4개팀, 네 그룹으로 묶어 각조 상위 2개팀이 8강에 올라가 토너먼트를 치르는 방식이다. 보다 많은 국가가 출전하고, 한번의 실수로 탈락하지 않고, 관중들을 더 많이 끌어모을 수 있다는 면에서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이내 부작용이 나타났다. 세계랭킹 8위 안에 드는 국가는 최대 2개조까지 출전할 수 있다. 2개조를 출전시킨 국가는 '작전'을 통해 불편한 상대를 피하고, 원하는 상대를 입맛대로 올릴 수 있는 여지가 존재한다. 지난 2년간 세계선수권 등 각종 대회에서 암암리에 있어왔던 '조작 꼼수'를 올림픽 무대에서도 대담하게 가동했다. 줄곧 있어온, 이기기 위한 '작전'으로 인식했다. 죄의식이 없었다.

▶선수 개인 아닌 경기방식의 문제?

2일 새벽 진행된 배드민턴 단복식 경기 직후 각국 선수들의 입을 통해 증언이 쏟아졌다. 선수들은 사건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다. 예견된 인재였다.

남자단식에 출전한 인도네시아의 히다야트는 "이런 종류의 일은 빈번히 이뤄져왔다. BWF가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이유다. 중국은 한국에 진 적이 없기 때문에 실력으로 한국이 이겼다면 정말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우스운 일이 돼버렸다"고 평가했다. "인도네시아로서도 부끄러운 일이다. 배드민턴의 평판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 실격이 차라리 잘된 일"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이번 결정이 2016년 브라질올림픽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카루라랏네스(스리랑카)는 "내가 아는 스포츠는 배우고, 즐기는 것이다. 다른 토너먼트 때도 몇차례 이런 일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다른 선수들에게 불공정한(unfair) 일"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선수 개인의 문제가 아닌 시스템의 문제라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남자단식 선수 파루팔리(인도네시아)는 "국가를 위해 메달을 따고 싶었을 선수들을 비난해선 안된다. 과거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처음이 아니다. 포맷이 바뀌었고, 그 포맷에 문제가 있다. 국가당 1팀만 나가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의 린단은 "궁극적인 잘못은 선수가 아닌 제도 탓"이라고 규정했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예전처럼 지면 탈락하는 넉아웃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국 정부는 2일 '고의 패배'로 실격한 자국 배드민턴 선수들에게 공개사과 명령을 내렸다. '스캔들의 중심'에 서 있는 한국 역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1948년 첫 올림픽 정신을 기억하자던 런던올림픽에서 '올림픽정신'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국가적인 망신이다. 선수단의 겸허한 반성과 함께 재발방지를 위한 약속, 관중에 대한 사과가 뒤따라야 한다. [기사제공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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