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성이 취약한 마그네틱 신용카드를 겨냥, 위조카드를 만들어 백화점 등에서 고가의 물건을 매입해 내다 파는 외국인들이 늘고 있다. 황금연휴를 앞두고 입국한 외국인들이 서울의 한 백화점 면세점에서 쇼핑을 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ㅣ 박상익 기자] #‘남한 신카(신용카드) 300개, 18일 국제택배로 인천공항 도착 예정’. 지난 1일 중국 지린성 A시의 허름한 주택가 골목. 밤 12시가 넘은 시각에 K씨는 지하창고에서 어딘가로 휴대폰 문자를 보냈다. 창고 중간에 놓인 칠판만한 탁자 위에는 낯선 기기들과 플라스틱카드 수백장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한쪽에선 금방 작업을 마친 듯 토시를 낀 남자와 여자 서너 명이 모여 앉아 간식을 먹고 있었다.



“서둘러 작업을 마치자.” K씨가 문자를 보내고 피워 물었던 담배를 비벼 끄며 작업을 독촉하자 간식을 먹던 작업자들이 탁자 앞으로 모여 앉았다. 한 명이 리더 앤드 라이터(일명 스키머)라는 기계로 플라스틱카드에 사들인 개인정보를 입력한 뒤 옆 사람에게 넘기면 다른 또 한 명이 플라스틱카드에 은행에서 발행하는 것과 똑같은 모양의 그림을 카드 프린터로 입혔다.



마지막으로 볼록글자 제조기(일명 엠보싱기)로 카드번호와 사용자 이름을 새기자 위조 신용카드가 만들어졌다. 빈 플라스틱카드 수백장이 신용카드로 둔갑하는 데는 채 3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새벽 3시가 넘어서자 K씨는 이렇게 만들어진 위조신용카드 300개를 챙겨 지하창고를 나섰다. K씨는 위조 신용카드 총책이었다.



#지난 3일 서울의 한 호텔 면세점에 50대와 30대의 중국인 여성 두 명이 들어섰다. 개당 500만원이 넘는 명품시계를 고른 뒤 신용카드를 내밀었다. 한도초과 메시지가 떴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는 얼굴로 다른 카드를 내밀었다. 두어 장의 카드를 사용한 끝에 결제가 난 순간, 신용카드사 감시팀에 알림이 떴다. ‘위조카드 사용 중’. 감시팀은 경찰에 바로 신고했고,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 경찰들이 현장으로 달려갔다. 지난 2월 제주도 면세점에서 3억9000만원어치의 면세품을 위조 신용카드로 구입해 달아났던 퐁모씨(50) 일당이 검거되는 순간이었다. 이들은 한류 관광객이 아닌 신용카드 사기단의 사용책이었다. 중국에 있는 총책 K씨에게서 받은 위조 신용카드 100여장으로 한국에 들어와 닥치는 대로 물건을 샀다. 지난 1일 재입국해 3일간 구입한 물건도 2억2000만원어치에 달했다.



해외에서 신용카드를 위조해 국내 백화점이나 면세점에서 명품을 사들여 되파는 위조 신용카드 사기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기단은 복제가 손쉽고 물건을 살 때 보안성이 취약한 마그네틱 스트라이프카드(MS·마그네틱카드) 사용률이 높은 국내 신용카드 시장의 허점을 파고들고 있다. 금융당국이 2004년부터 보안이 취약한 마그네틱카드 대신 중앙처리장치(CPU)와 메모리가 들어간 IC카드로 전환을 서두르고 있지만 기계교체 비용 등의 문제로 IC카드로 교체시점이 2015년 이후로 미뤄졌다.



하지만 국내 신용카드를 전부 IC카드로 바꾼다고 해서 외국인의 신용카드 위조범죄가 줄어들지는 미지수다. 외국인이 마그네틱 신용카드로 물건을 사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연간 피해액 100억원



금융감독원이 파악한 2011년 신용카드 위·변조 피해 금액은 95억원이었다. 2007년 32억원에 비해 5년 새 세 배 늘었다. 국내 신용카드 위조사건이 늘고 있는 것은 복제가 수월한 마그네틱 신용카드가 많이 사용되고 있어서다.



신용카드 위조 범죄단은 크게 총책, 모집책, 사용책으로 구성된다. 총책은 신용카드 위조사기단에 여왕벌 같은 존재다. 외국에서 위조카드를 만들어 전달하는 등 사기행각 전반을 조율한다. 위조카드를 사용할 나라에 절대 들어가지 않는다. 체포시 조직이 와해되기 때문이다.



총책은 우선 위조 신용카드를 만들 때 사용할 개인정보를 사들인다. 인터넷에서 암거래되는 개인 신용정보는 개당 6000원에서 10만원을 주고 산다. 이후 마그네틱 카드에 정보를 입력하거나 빼낼 수 있는 스키머, 빈 플라스틱카드에 그림을 입히는 카드 프린터, 카드번호와 사용자 이름을 새기는 엠보싱기를 이용해 위조카드 수백장을 만든다. 위조카드에 들어가는 이름은 매장에서 의심을 피하기 위해 사용책들의 실제 이름을 쓴다.



사용책들은 위조된 신용카드를 들고 한국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총책과 모집책의 전화 지시를 받는다. 서울 시내 면세점이나 백화점, 명품 매장의 위치를 교육받는데, 지리에 익숙하지 않다면 모집책이 같이 입국해 일행을 이끌기도 한다. 면세점이 아닌 일반 매장에서 구입한 물건들은 하루 종일 쇼핑을 끝낸 뒤 다음날 국제택배를 이용해 중국으로 보낸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제품이기 때문에 암거래시장에서 70~90%의 가격으로 팔 수 있다. 면세점에서 물건을 구입할 때는 구매자 신원을 확인하기 때문에 신분 노출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범행을 저지른다.



사용책들은 현지 경찰에 잡힐 위험에 항상 노출돼 있다. 하지만 돈이 절실하다는 약점 때문에 모집책에 잡히면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 3~4일 만에 ‘성공사례금’ 2만위안(약 370만원)을 받을 수 있다. 이들이 사들인 명품은 중국에서 70~90% 가격에 되판다.



◆5초 만에 카드정보 복제



신용카드 위조 범죄는 신용카드 뒷면에 붙은 자기띠(마그네틱 선)를 통해 이뤄진다. 물리적인 방식으로 복제하기 때문에 특별한 보안 방법이 없어 카드복제가 쉽게 이뤄진다.



마그네틱카드는 CPU와 메모리가 들어간 IC칩과는 달리 자성을 이용해 정보를 기록하기 때문에 복제가 쉽다. 스키머(skimmer)라고 불리는 위조 장치에 카드를 긁으면 5초에서 20초 안에 복제가 끝난다. 언뜻 보면 보통 신용카드 결제 단말기와 비슷해 사람들은 자신의 카드가 복제되는지조차 눈치채지 못한다.



이렇게 빠져나온 신용정보는 컴퓨터에 저장된다. 많은 신용정보를 빼내려고 신용정보가 저장된 서버를 해킹하는 수법도 있다. 자신의 신용정보를 도난당한 사람은 미국 유럽 브라질 등 전 세계에 퍼져 있다. 이런 정보는 개당 5000원에서 10만원까지 인터넷을 통해 암암리에 거래된다. 여기에 아무 정보가 없는 카드, 카드 겉면에 그림을 입히는 카드 프린터, 카드에 숫자와 이름을 새기는 볼록글자 제조기만 있으면 복제 신용카드를 만들 수 있다. 위조 카드 사용책 퐁씨가 들고 왔던 카드의 원본 대부분이 IC칩이 부착된 신용카드를 위조한 것이었다.



신용카드용 플라스틱카드 제조업체인 코나아이의 홍석원 부장은 “마그네틱카드는 물건에 찍혀 있는 막대 모양의 바코드처럼 자성물질을 일정한 패턴으로 기록하는 방식”이라며 “스키머 같은 리더기로 읽으면 정보가 그대로 읽혀 다른 카드에 입힐 수 있다”고 설명했다. 쌍둥이 카드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정용희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2대 수사1팀장은 “신용카드 위조 범죄 100건 중 카드 실소유주가 피해 사실을 알고 신고하는 경우는 한 건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 팀장은 “자신이 범죄를 당했는지도 몰라 범죄사실이 파악되지 않은 것까지 계산하면 실제 사기 피해는 지금보다 몇 배에 달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 IC카드



Integrated Circuit Card. 카드 내에서 정보 저장과 처리가 가능해 마그네틱카드의 위·변조 위험을 최소화하고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차세대 결제수단이다. 신용카드와 같은 크기와 두께의 플라스틱카드에 마이크로 프로세서, 메모리, 운용 및 보안 체계가 내장된 중앙처리장치(CPU) 지능형 카드다. 전자화폐·신용·선불·직불·교통카드 등에 이용할 수 있고, 신분증 운전면허증과 같은 개인정보까지 한곳에 모아 보다 진보된 다기능 카드로 사용이 가능하므로 ‘스마트 카드’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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