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로(捕虜)와 박정희 대통령 (1)

------------------------------------------

박정환 중위는 1968년 베트남전에서 포로로 사로 잡혔던 한국군 3명 중 유일한 태권도 교관으로 장교 출신이다. 그는 1967년 10월 베트남전에 태권도 교관으로 파견될 당시에 최연소 태권도 공인 5단이었다고 한다.

그는 1968년 1월 전투 중 베트콩에게 잡혀 캄보디아 군형무소에서 수감생활을 하다 1969년 6월에 502일 만에 풀려났다. 그가 한국에 돌아와 보니 병적기록부가 말소되아 있었다면서 이는 전사로 처리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시 국방부는 베트남전에 사망자나 부상자는 있어도 포로나 실종자는 있을 수 없다는 군의 방침 때문이었다고 한다.

박정환 중위의 귀환으로 군당국이 베트남전 포로를 인정하면서 그는 국방부에서 인정한 첫 베트남전 포로로 인정됐다. 살아 돌아온 박정환 중위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포로생활을 4회에 걸쳐 게재한다.

*박정환 회장은 현재 탬파시내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서부플로리다한인회장과 플로리다한인회연합회장을 역임했다.*

--------------------------------------------



#1



1968년 2월 초순,

주월 한국군 사령부 소속으로 월남군 7사단 태권도 교관(校官)인 내가, 베트콩 소위(所謂) 베트남 민족 해방 전선군(越南民族解放前線軍)의 포로가 된지 10여일쯤 되는 날,



광활한 [메콩델타]지역 ㅡ



그 열대의 작렬하는 태양볕에 숯불처럼 벌겋게 달구어진듯한 땅위를 맨발로 꽁꽁 묶이고 눈까지 가리어진채, 1백여명의 포로들과 함께 끌려가고 있었다.

지열(地熱)로 발이 쇼빵처럼 부풀어 오르고 가시가 발톱사이에 박혀들어, 한 발자욱 옮길때마다, 칼로 난도질 하는듯한 아픔이 온 전신을 자지러지게 했다.



깜깜한 밤이 되어도 낮의 열기는 식지않아, 눈가리개가 풀려진 얼굴에서는 이미 짠 맛을 잃은 콩죽같은 땀이 입 안으로 흘러들어 오고, 온 몸은 비를 맞은듯 땀으로 흠뻑 젖었으며, 등 뒤로 결박된 두 팔과 손목은 감각마저 마비된듯 했다.

별들이 총총히 빛나는 밤 하늘에는 포로들이 내뱉는 거친 호흡의 발걸음이 지축을 울리고, 대부분의 포로들은 맨발인 탓으로, 발을 헛디뎌 나무나 돌부리에 채일땐 비명을 지르며 불평을 터뜨려 사위가 조용한 밤의 적막을 깨뜨리었다.



"짜이! 짜이!"(도망이다. 도망친다!)



새벽 2시경 맨 선두에서 집중감시를 받으며 끌려가는 내 행렬 뒷켠에서 갑자기 고함소리가 요란스레 울렸다.

순간, 온통 탈출할 궁리와 기회만 엿보던 터라, 이때다 싶어 다급한 마음으로 묶인채로 인솔병 세명을 발로 차 쓰러뜨리고, 좌편 사탕수수 밭으로 뛰쳐들어 숨이 턱 밑까지 치밀어 올라 가슴이 터질것 같을 만큼 뛰었다.

그러나 2시간도 채 못되어 다시 붙잡혔다. 탈출에 실패한 것이다.



#2



태권도 공인 5단인 스물다섯의 내가, 평생 그렇게 모질게 몰매를 맞은적은 없었다. 거의 초죽음이 된것이다.

쇠사슬에 칭칭 묶여진채로 이틀이 지나니, 흙 바닥에 실내가 넓직하고 천정이 높은 큰 초막으로 끌려갔다.

월맹군(越盟軍) 대령을 위시한 베트콩 간부및 20여명에게 둘러싸인채, 실내 한가운데 놓여진 투박한 나무의자에 앉혀진후, 양팔걸이에

양쪽 손목과 팔이 살이 패이도록 묶이고, 몸은 의자 등받이에 칭칭 감겼다.

주위의 냉랭한 분위기가 옥죄이듯 압박해와 전신을 얼어붙게하는듯한 공포감 속에 빠져들게 했다.

고문당하는것이 차라리 죽는것보다 더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의 여유를 갖기위해서



" 나는 전쟁포로다. 제네바 국제협정에 의한 처우를 바란다." 라고 영어로 말하자 바로 앞 커다란 의자에 앉은 대령의 눈빛이 흉흉해졌다.



"너희 군대는 아무런 명분도 없이 우리땅에 침범해 와서 양민을 학살하고 부녀자의 유방을 칼로 도려내는등 온갖 만행을 저지른다.

더불어 너희군대가 우리 해방군을 포로로 했을때 잔혹하게 처우하는데 왜 우리가 너에게 국제법에 의한 처우를 해줘야 하는가?"



그는 천정이 내려앉을것같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윽박질렀다.



우리 한국군이 양민학살하고 유방 운운은, 이건 도저히 말도 안되는 음해라는 생각이 불쑥들어, 나는 볼멘소리로 "우리 군대가 양민학살하거나 더욱이 부녀자에게 그런 잔혹한 짓을 하는것을 나는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라고 말하자,



대령의 얼굴은 야차같이 일그러져 시뻘게 졌다.



'아차....가만있을껄...내가 왜 이러지....?' 하고 속으로 후회했으나 이미 늦었다.



"싸울람! (나쁜놈 새끼!) 그럼 내가 거짓말 한다는 건가?"



그는 벽력같은 소리를 지르며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다가와 주먹으로 얼굴을 치고 발길질로 가슴을 찼다.

나는 의자와 함께 뒤로 벌렁 넘어졌다.

두명의 베트콩이 의자를 바로 세우자마자 또 걷어차여 뒤로 넘어졌다. 바로 세워지고, 이번에는 오른쪽에 섰던 녀석이 손바닥으로 면상과 뒷통수를 후려치고 다리를 들어 발길질했다.

이번에는 좌편으로 쓰러졌다.

여러차례 반복되자 천정과 온 실내가 빙글빙글 돌아가는듯 하고

코와 입에서는 피가 줄줄 흘러내려 죽음의 맛과 냄새를 풍기었다.



"네놈은 우리 해방군이 제대로 처우 해주었는데도 불구하고 해방군 3명을 걷어차 한명은 턱이 부서지고 다른 한명은 창자가 터진것같은

중상을 입었다. 만약 그가 죽으면 네놈의 목을 자르겠다."



'오 ㅡ 하나님! 제발 그녀석이 죽지않게 하소서!' 하고 죽으라고 찼을때완 달리 속으로 빌었다.



그리고 불현듯 지난해 봄,

서울 이태원 육군 본부 태권도 도장에서 육군 태권도계의 주축인 장성 (將星)들과 영관급 고급장교및 육군태권도 대표선수단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나와 겨루던 4단(段)인 신중위가 뛰어 360도 회전 옆차기에 차여 두 눈을 감고 마루바닥에 쓰러졌었던 창백한 얼굴이 떠올라 가슴이 저미었다.

그는 개복수술을 받고 6개월동안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본의 아니었는데-, 나는 지금 그 대가를 치루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3



인지 손가락이 비틀리고 담배불로 손등이 지져지고 단도로 인지가 뼈가 허옇게 보일만큼 짤린후, 그리고 몇차례더 두들겨 맞은뒤, "너희 군대는 미군의 대리전쟁을 하고있다. 네 놈을 전쟁포로로 인정할수 없다. 너희 정부와는 지금이나 종전이 되어도 협상따위는 없을것이며, 미군포로처럼 하노이 포로 수용소로 가는일은 없을것이다."



대령은 단호했다.

그리고는 "네놈의 군대는 미군보다 더 잔인해서 우리 해방군을 괴롭히고 아주 힘들게 한다.

미친듯 악착같이 싸운다. 너도 그 잔인한 [수도앙 망호](맹호사단) 소속이 아니냐?"



"아니다. 나는 태권도 교관이다."



전장(戰場)에서 싸우기 힘든 용맹스런 적을, 그 상대는 잔인하고 미친 군대라고 평가하는것은 당위성 있는 표현이며 비난이라 여겨져, 우리 전우들이 매우 자랑스러워 목숨이 풍전등화같은 내 신세도 잊고 내심 가슴 뿌듯한 자긍심을 느끼었다.



"너는 우리 해방군이 미제국주의 군대와 또 너희 군대와 싸우는것을 어떻게 생각하나?

누가 승리할것 같으냐?

그리고 너희 민족과는 아무런 원한도, 이해관계도 없는데, 더욱이 너희 나라도 분단되어 있는데 우리 국토에 침략해 와서 서로 살상하는것이 옳다고 여기느냐?

너의 의견을 말해보라."



#4



나는 이 대목에서 대답을 잘하면 어쩌면 살아남을수 있거나, 고문받는 이 위기만이라도 벗어나지 않겠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얼어붙는듯한 공포도 있었지만, 이제 당할만큼 당했고 어차피 죽을지도 모르는 이 판국에, 이왕 죽더라도 할말은 다 해야겠다는 무도인(武道人)의 오기가, 뚝뚝 무릎위로 떨어지고 흐르는 내 코피를 보면서 서러운 분노로 치밀어 올라왔다.



"당신들 해방군이 통일과 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애국심과 민족애에 대해서 분단된 국가의 군인으로서 공감하고 경의를 표한다.

그러나 나는 당신들의 반대편에서 당신들과 똑같이 애국,애족심으로 무장해서 싸우는 [따이한](대한인)의 전사(戰士)다.

나는 오랜 역사와 혜지를가진 민족의 군인이기 때문에 전쟁터에서 어떤 상대와 싸워도 승리해야한다는 군인정신을 배웠고, 솔직히 말해서 이 지구상에서 미군과 싸워 이길 군대는 없다고 본다. 미군은 세계에서 최강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나의 소신이다."



내 말이 통역이 끝나기도 전에,



"방보! 방보!" (총살시키자!총살시켜!)



주위의 베트콩들이 길길이 날뛰며 소총의 노리쇠를 철커덕 거리었다.



'아 ㅡ 이제 나는 죽는구나.....'



두 눈을 지긋이 감았다.



어머니와 어린 다섯 동생들과, 장손이라 끔찍이도 애지중지 하시던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아버지....

이미 세상을 떠나신 세분의 슬픈 얼굴이 떠오르고, 목에 걸고있는 십자가가 내 앞에 우뚝서는 환영이 보인다.

<다음호예 계속>
관련뉴스/포토 (12)
#태그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