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자매결연한 광저우시에 정원 조성, 개장 8일 만에 나무 뽑히고 창호지 찢어지고

정원의 나무는 뿌리가 뽑혀 쓰러지고, 세종루라는 현판이 걸린 누각의 창호지는 찢어져 너덜대고 있었다. 건물 기둥은 피부병에 걸려 터진 살갗처럼 갈라져 나무 속이 들여다보였다. 지난 12월 20일 찾아가 본 중국 광둥성(廣東省) 광저우시(廣州市)의 한국 전통정원 ‘해동경기원(海東京畿園)’의 모습이다. 이 정원은 같은 달 12일 문을 열었다. ‘개장 8일째인 공원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동경기원은 경기도가 자매결연 관계인 광둥성과의 문화 교류를 위해 34억원을 들여 2년간 조성했다. 광둥성은 경기도 수원시 효원공원 안에 ‘위에화위엔(華苑)’이라는 중국 화남지방 양식의 정원을 꾸미고 있다.



해동경기원은 광저우 시내 한복판 26만평 면적의 대형공원인 웨슈공원(越秀公園) 안에 터를 잡았다. 웨슈공원은 별다른 유적이나 관광지가 없는 산업도시인 광저우의 대표적 명소로, 연 1500만명 이상이 구경하러 온다고 한다.



2570평 넓이인 해동경기원은 평지에서 완만한 경사를 따라 왼쪽으로 휘어 올라가는 형태의 정원이다. 입구에는 솟대가 서 있고, 누각과 정자 등 전통 건물 4채와 초당(草堂)이 평지의 입구부터 고지대의 출구로 이어지는 산책로를 따라 서있다. 땅엔 잔디를 깔고 길을 따라 도랑과 연못을 팠다. 건축물과 정원 곳곳의 나뭇가지에는 빨강·파랑 천을 이어붙여 만든 청사초롱을 내걸었다. 조선시대 고유의 정원인 별서(別墅·농장 부근에 별장처럼 지은 집) 양식을 좇았다고 정원 공사를 담당한 경기관광공사는 밝혔다. 건물 이름은 세종루 외에 율곡재, 다산정, 성호정 등 조선시대 학자의 아호를 따 붙였다.



12월 20일 오후 공원을 돌아봤다. 공원에 들어서면 처음 마주치는 세종루는 방과 마루를 갖춘 누각이다. 방문의 창호지는 세로로 죽죽 찢어졌고 방은 텅 비어 있었다. 누각 둘레에 푸른 띠로 통제선을 두르고 ‘들어가지 말라’는 안내판을 세워놓아서 관람객은 누각에 올라갈 수 없다. 정원 관리원은 “경기도에서 관람객을 누각이나 정자에 올라가게 하면 시설물이 훼손된다며 요청해 설치한 것”이라며 “통제선을 설치했지만 일부 관람객이 창호지를 손가락으로 뚫는 등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바람이 불자 구멍 뚫린 방문이 좌우로 흔들리고 텅 빈 방바닥에서 먼지가 일어 폐가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세종루뿐 아니었다. 자재와 기술인력을 모두 한국에서 공수했다는데 현지 기후에 맞지 않는 목재를 사용한 듯 누각·정자마다 기둥 표면이 말라서 나뭇결을 따라 세로로 죽죽 갈라졌다. 관리원들에게 “기둥이 왜 갈라지냐”고 묻자 “모르겠다”는 대답뿐이었다. 공원 한가운데에 심은 정원수 한 그루는 뿌리가 뽑힌 채 정원석 위에 쓰러져 있었다. 지붕과 정원 담장은 기와를 시멘트로 발라 이었는데 마무리가 엉성해 곳곳에서 시멘트가 기왓장 위로 튀어올라 굳어 있고 끝자락은 군데군데 떨어져 나갔다.



세종루뿐 아니라 모든 건축물이 ‘빈 집’이었다. 세종대왕과 율곡 이이, 다산 정약용, 성호 이익 등 선현을 소개하는 전시물과 옛날 양반이 정원에 나와 즐겼던 풍류를 느낄 수 있는 민속품이 가득 있으려니 생각했던 건 착각이었다. 건물만 지어놓았을 뿐 내부는 텅 비어 있었다. 누각·정자 안내판도 가로세로 30㎝ 정도에 불과한 데다 땅바닥에 설치해 눈에 쉽게 띄지 않았다. 발견해도 쪼그리고 앉아야 겨우 읽을 수 있었다. 관람객들은 건물마다 통제선 밖에서 목을 빼고 기웃거리다가 발걸음을 돌리곤 했다. 한류와 한국문화 자료를 전시한다던 정원 입구의 홍보관은 자물쇠가 잠겨 있었다.



중국관람객 “실망했다”



공원 곳곳에 설치한 스피커에서는 하루종일 중국·대만 가수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간간이 S.E.S 등 한국 신세대 가수가 부른 가요가 섞였다. ‘전통 국악을 틀어서 중국인에게 우리 가락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면 더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지난 12월 12일 열린 이 정원 개장식에는 손학규 경기도지사가 직접 참석해 황화화(黃華華) 광둥성장과 기념식수를 했다. 정원 입구에는 두 사람의 이름이 새겨진 기념패가 설치돼 있다. 광저우 현지 언론은 “지난 12일 개장 이후 이틀 동안 3만명이 정원을 구경하려고 몰려들어 30분씩 줄을 서서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었다”고 보도했다.



경기관광공사는 12월 20일 이 같은 내용의 보도자료를 국내 언론에 뿌렸다. 그러나 현지의 정원 관리원들은 같은 날 “개장 사나흘째부터 입장객이 뚝 떨어져 요즘은 하루 300~400명 정도”라고 말했다. 경찰복 비슷한 제복을 입은 경비원들이 다산재 등 건축물 통제선 안으로 들어가 마루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날 오후 가족과 함께 공원을 구경하던 40대 여성은 “TV 드라마에 나오는 한국 고궁은 화려하고 아름다운데 여기는 왜 볼 만한 게 없냐”며 실망한 눈치가 역력했다. 한국대기업 광저우지사 직원 J씨는 “정원이 빈약해서 거래처 사람들을 데려가 구경시키기가 꺼려진다”며 “정원을 고급스럽게 다듬고 볼거리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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