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 11:00, 삶이 준 달인의 시간
손님이 적다. 이 시간부터 점심이 조금 지나는 시간까지는 대개 가정주부들이 찬거리 한두 개를 사 가는 것이 고작이다. 그럴 때 대부분의 난장 상인들은 어패류를 손질하거나 정리한다. 자갈치 시장에서는 대부분 정해진 품목만을 취급한다. 쉽게 말하면 전문 분야가 따로 있다는 뜻이다.
한순지씨의 경우 주로 패류만을 취급한다. 그러나 요즘 같은 여름철에는 어패류 소비가 다른 계절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다. 덥기 때문에 시원한 마트를 이용하니 시장 출입 빈도가 낮고, 외식이 잦은 것도 이유라면 이유다. 하기야 더운데 불 옆에 땀 흘리면서 음식 장만하고 싶은 주부가 얼마나 될까 싶기도 하다. 그래서 상인들은 여름 시즌 3~4개월 정도는 적자를 각오한다. 가을, 겨울이면 어패류를 사다가 국이나 찌개로 해 먹으니 그나마 만회가 된다고 위안하면서.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갈치 시장 내 상인들은 웬만한 전문 수산학자의 수준을 뛰어넘는다. 한순지씨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어패류, 특히 패류 전공이다. 패류는 식품으로서의 조개 종류를 이르는 말이다. 연체동물이 여기에 속한다. 패류는 주로 바위나 모래, 개펄이나 해초 위와 나뭇잎, 낙엽 속, 돌담 속에서 서식하는데, 한국에는 약 560종이 있다고 한다. 그녀가 옛날에 가장 많이 팔았던 것은 홍합이다.
“지금은 개조개나 홍합살이지만, 옛날 홍합과 지금 홍합은 차이가 많이 난다. 크기도 다르고 가격도 열 배 차이가 난다. 옛날 10원이 지금 100원이니까. 지금은 홍합이 적게 팔리는 편이지. 요즘은 제사용이나 쓰지 어디 쓰나? 울산 사람들은 홍합이 보약이라고 다려도 먹고 죽으로도 쓴다고 하더라. 전복 다음이 홍합이다. 영양가가 그만큼 많다는 얘기지. 지금은 양식 담치 알 깐 게 많이 나간다. 홍합은 원래 붉은색이라고 생각하는데 흰색도 있다. 보기에는 붉은 것이 좋아 보이지? 근데 맛과 영양은 흰색이 더 많다. 삶아서 먹어 보면 흰색이 맛있다는 거를 단박에 알게 된다.
홍합은 지금은 충남에서 내려온다. 예전에는 여수, 삼천포에서 왔는데 지금은 거의 나지 않고 태안에서 오는 홍합이 알이 좋다. 거제나 통영에서 나오는 건 크기가 잘다. 홍합은 수입산이 거의 없다. 자갈치 시장에서도 국산을 취급한다. 나는 수입산은 아예 쓰지도 않고. 개조개는 수입이 많다. 중국에서 많이 수입되는데 국산은 여수, 충남, 삼천포, 거제 등지에서 많이 들어온다. 개조개도 역시 충남에서 들어오는 게 제일 좋고, 거제나 삼천포, 여수는 알이 별로 없다.
전복은 완도에서 주로 온다. 구입할 때 몇 백 킬로미터씩 차로 오는데 주로 양식장에서 가져온다. 옛날에는 자연산 전복도 많았는데 요즘은 아주 귀하다. 특별히 작정하지 않으면 구하기도 어렵고 비싸서 잘 팔리지도 않는다. 옛날에는 전복을 육지에서 키웠는데, 지금은 전부 바다에서 키우니까 양식이 자연산이나 다름이 없다고 보면 된다. 전복을 셀 때 쓰는 말은 ‘미’다. 그러니까 상자에 숫자가 많다는 것은 크기가 그만큼 잘다는 뜻이겠제? 전복은 5미, 6미가 제일 크다. 6미는 1킬로에 5~6마리 들어가고, 보통 5~10미는 선물용으로 나가고 13~15미는 마트용이다. 라면에 넣어 먹는 것은 40~50미지. 우리 상회에서는 주로 20~30미 정도까지만 취급한다.
150킬로 주문하면 미에 따라서 다양하게 가져와야 한다. 5미, 10미, 20미 등이 주고, 40~50미는 필요 없어도 구색을 맞추어야 하니까 가져오는 편이다. 보통 1톤에서 1톤 반 정도 싣고 온다. 양식장이 한정되어 있어서 더 가져올 수도 없다. 모자라면 주변에서 변통하고 남으면 물에 담가 놓는다. 활어는 금방 죽지만 전복은 조금 다르다. 전복은 여름 때 복날에 특히 많이 팔린다. 가리비는 홍합, 개조개, 전복 외에 특별히 팔리는데 일본에서 들어올 때가 있고, 중국산도 있다. 국산은 통영에서 어쩌다가 가끔 나오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참소라는 제주도에서 보름에 한 번 들어온다. 이외에 소라, 바지락 등이 있다. 우리 상회는 패류 이외는 전혀 취급 안 하는데, 멍게는 패류가 아니지만 주문이 들어오면 구해 준다.”
우리 속담에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라는 말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자갈치 시장 상인 50년차인 한순지씨는 패류 취급학 박사에 버금가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수련이란 정형화된 행위의 반복을 통해서 자신만의 미묘한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순지씨의 삶의 노정은 수련으로 빛나는 진주를 잉태한 그녀가 취급하는 조개일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