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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보수동 책방 골목
책방 골목의 형성과 개황
6·25 전쟁과 부산의 임시 수도를 빼고 보수동 책방 골목의 형성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전쟁으로 30~40만 명의 민간인뿐 아니라 정부의 모든 기관이 부산으로 피난을 왔다. 전쟁 전에 비해 인구가 거의 2배가 된 셈이다. 피난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살 집과 생계 수단이었다. 피난민들은 부산항과 부산역 등을 통해 들어와 산비탈이며 다리며 가릴 것 없이 어디든 일단 가족이 살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판자 조각이나 미군 부대에서 나온 박스와 천, 가마니 따위로 바람과 비를 피할 수 있는 거처를 지었다. 부산항이나 역에서는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할 수 있는 하역 인부나 지게꾼을 하며 하루하루 생계를 이었고, 대규모 시장이었던 국제 시장에서는 장사를 하며 가족의 생계를 근근이 지탱했다. 1952년 2월 기준으로 국제 시장 상인은 시장 조합원이 운영한 고정 점포가 1,150점이었고, 그 외 무허가 노점상이 2,000여 명이나 되었다. 이 가운데 고정 점포의 50%가 월남 피난민이고, 20%가 서울 피난민이었다. 노점상의 90%가 월남 피난민이었고, 행상인의 95%가 피난민이었다고 한다.

6·25 전쟁 전부터 보수동 골목 옆에 있던 부평 시장과 국제 시장 일대에 형성되었던 도떼기시장에서는 몇몇 사람들이 노점에서 책 따위를 사고팔았다. 그러다 전쟁이 났고, 보수동 바로 옆의 부민동에는 임시 수도 정부 청사가 자리하게 되었다. 보수동에서 이어지는 대청동과 남포동·광복동 일대는 피난민 대열로 부산으로 밀려온 전국의 지식인들과 문화인들로 북적였다. 출판사와 인쇄소는 동광동과 보수동에 밀집하였다. 게다가 구덕산 일대와 보수동 뒷산에는 서울 등지에서 피난 온 대학들이 하나로 뭉쳐 ‘부산전시연합대학’이란 간판을 내걸고 운영하였고, 그 외 다른 학교들도 천막을 치고 임시 학교를 운영했기에 보수동 골목은 날마다 학생과 교사들이 수도 없이 지나다니는 곳이 되었다.

이런 보수동 골목 입구에서 맨 처음 책 노점상을 시작한 것은 평양에서 피난 온 청년 손정린과 전라북도 김제에서 피난 온 처녀 임씨였다. 임씨의 동생인 임춘근은 보수동 책방 골목의 유래와 형성 과정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임춘근은 현재 책방 골목 신천지서점의 대표이고, 자신도 33년째 책방 골목에서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6·25 전쟁으로 피난민이 복작거리던 시절, 누나는 부산에서 매형을 만나 결혼하고 보수동 골목 근처 판잣집에서 살았어. 보수동 사거리 입구[현재 글방쉼터] 골목 안 목조 건물 처마 밑에서 포장지를 깔아놓고 책을 팔았어, 호구지책으로. 처음엔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만화책 몇 권을 놓고 번역문을 오려붙여 빌려주다가 본격적으로 헌책을 모아 팔기 시작했어. 그럭저럭 장사가 제법 되는 거야. 그래서 두어 칸짜리 문간방을 빌어 가게를 열었는데, 그 뒤를 이어 비슷한 책방들이 죽 생겨나기 시작했고, 세월이 지나면서 책방 골목이 자연히 형성되었지.”

1955년에는 번영회가 결성되었다. 이렇게 형성되기 시작한 보수동 책방 골목은 이제 막 환갑을 넘기게 되었다. 그동안 1세대들은 거의 떠났고, 2세대도 후세들에게 일을 넘겨주고 있다. 그 가운데는 1970년대에 책방이 한참 번창하여 70곳이 넘을 정도로 잘 될 때 떼돈을 벌어 나간 이도 있고, 1990년대 책방의 거래량이 급격히 줄면서 문을 닫은 이도 있다. 그리고 대를 이어 꾸준히 책방에서 손님을 맞고 있는 이도 있다. 2013년 9월 현재 보수동 책방 골목에는 모두 45곳의 책방이 문을 열고 장사를 하고 있고, 그 중 15곳은 인터넷 보수동 책방 골목 쇼핑몰 운영에도 참여하여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보수동 책방 골목의 헌책방에서는 중고책, 즉 헌책이나 구간(舊刊)뿐 아니라 새 책도 취급한다. 사용하던 헌책은 물론이고, 발행된 지 기간이 좀 지났으나 새 책방을 거치지 않고 바로 이곳으로 들어온 책인 구간을 정가의 40~70%까지 싸게 판다. 그리고 참고서 전문 서점과 아동 전문 서점에는 새 책이 많고 값도 정가보다 좀 싸게 판다. 45곳의 서점은 크기와 역사, 분야가 제각각이다. 작게는 17㎡[5평] 남짓한 공간에서부터 크게는 198㎡[60평]가 넘는 곳도 있고, 1950년대부터 그 모습 그대로 진득하게 지킨 책방 주인이 있는가 하면, 여러 번 주인이 바뀌면서 현대식으로 개조한 곳도 있다. ‘학우서림’과 ‘대륙서점’은 한 주인이 50년 이상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고, ‘책의 마음’은 주인이 바뀌면서 현대식으로 거듭난 곳이다. ‘우리글방’과 ‘학문서점’도 북 카페로 재탄생하여 젊은이들도 거부감 없이 머물고 싶게 만드는 곳이다.

보수동 책방 골목에서 각 책방마다 취급하는 책의 분야는 특화되어 있다. 고서나 동양학 관련 책을 중심적으로 취급하는 곳을 비롯하여 만화, 문학 소설, 사전류, 어린이 전집, 예술 서적, 외국 원서, 인문 과학, 잡지류, 전문 교재, 참고서와 교과서, 한국학 관련 분야의 책을 취급하는 곳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물론 대개 같은 책방에서 몇 개 분야의 책을 두루 취급한다. 터줏대감 격에 속하는 함일서점, 학우서림 등은 헌책과의 인연을 접고 주로 참고서와 새 책을 취급하는 책방으로 변신했다.
보수동 책방 골목에 들어오게 된 갖가지 사연
보수동 책방 골목의 역사가 긴 만큼 책방 주인들의 사연도 제각각으로 다양하다. ‘총각 때 시작해서 57년째’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김여만 대표[학우서림]는 보수동 책방 골목의 산 역사다. 책에 대한 그의 애정은 남다르다.

“옆에 있던 육군병원[현 광일초등학교]에 입원 환자 면회 온 사람들이 심심하니까 책방을 이용했고, 그 소문이 퍼진 것도 보수동 책방 골목이 알려지는 데 한 몫 했지. 6·25 때 배 타고 온 사람들이 부두에 버린 책이 모인 곳이 보수동[책방 골목]인데, 내 나이 팔십[이야]. 오십 년 책방하며 외솔 최현배(崔鉉培) 선생 같은 훌륭한 분도 많이 만났지. 지금이야 참고서나 전문 교재로 분야를 바꿨지만, 초창기에는 전국에서 희귀본을 구해 와 팔았지. 책만 보면 그렇게 좋아. 어려울 때도 많았는데, 책이 좋아서 그만둘 수 없었어.”

부부가 따로 책방을 운영하는 곳도 있다. 권영규 대표[보수서점]는 아버지가 운영하던 책방을 물려받아 뒤를 잇고 있으며, 그의 아내 이화정 대표[동화나라] 역시 책에 푹 빠져 사는 남편을 따라 15년 전에 맞은편에 책방을 열었다. 남편은 소설과 만화, 인문 과학 책을, 아내는 어린이 전집물을 주로 취급한다. 2대째 책방 골목을 지키는 이들 부부에게 책은 새 책이든 헌책이든 보물 같은 존재다. 권영규 대표의 말이다.

“1980년대 초반에는 책이 흔하지 않았지요. 그때에는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이니, 프로이드의 『꿈의 해석』이니 이런 것들은 없어서 못 팔았어요. 그 시절 사람들은 좋은 책 보는 안목이 있었는데… 그런데 지금은 양서 보는 눈이 없어요. 취미니 실용 도서, 이런 게 많이 나가고, 방송에서 한번 나오면 우르르 따라 사고….”

이화정 대표는 자신이 취급하는 책에는 자신의 손길이 하나하나 묻어 있다고 말한다.

“헌책이 도착하면 먼저 표지를 일일이 소독하지요, 그리고 본문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책의 상태를 봅니다. 낙서가 없는지, 혹시 찢어졌거나 훼손되어 파본이 있으면 곤란하니까 그걸 확인하고, 찢어진 곳은 풀이나 테이프로 일일이 붙여야지요. 그리고 책 손질이 끝나면 꾸러미마다 비닐로 꼼꼼히 포장하고, 몇 권이 파본인지, 훼손도는 어느 정도인지 책의 상태를 기입하지요.”

이화정 대표는 하루 종일 책을 닦느라 한의원과 정형외과를 번갈아 가며 다닌다고 한다. 그런 아내를 보는 권영규 대표는 걱정이 앞선다. 한편으로 권영규 대표는 보수동책방골목번영회 회장도 맡고 있다. 그는 책방 골목이 ‘밖에서 볼 때는 문화 공간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생계유지에 사활을 건 영세업자들의 모임’이라며, 최근 책방 골목이 북적거리는 데도 그것이 매출로 연결되지 않아 걱정을 하고 있다.

문옥희 대표[우리서점]는 “책은 나의 운명”이라고 말한다. 책을 사러 왔다가 책방 주인의 아내가 된 그는 남편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3년 전부터 이곳을 맡고 있다.

“책방을 맡기 전까지는 대학에서 여성학 강의를 했지요. 고등학교 졸업 직후 공장을 다녔는데, 월급날이면 어김없이 보수동 책방 거리를 찾아와 책을 한보따리씩 사갔어요. 독서를 통해 공부에 대한 강한 열망이 생겼고, 책에 파묻혀 살게 됐지요.”

아직도 그는 ‘대표 노상길’이라는 남편의 명함을 사용하고 있는데, ‘평생 책방 주인 할 거’라 다짐한 남편이 명함을 많이 찍어 둔 탓이다. 노상길은 책 수집 중독이다. 해남에서 요양 중인 그는 그 와중에도 80박스의 책을 주문했다고 한다. 단골 가운데는 손님들의 책 취향을 일일이 기억하는 남편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양수성 대표[고서점]는 아버지 양호석에 이어 2대째 책방 골목을 지키고 있다.

“아버님은 1950년에 보수동 피난민촌에 정착하여 1960년대에는 보수동 책방 골목에서 ‘고려서원’, ‘동방서원’을 열었고, 1979년에 ‘동방미술회관’을 개관하여 지금까지 운영하고 계시지요. 아버님은 보수동 책방 골목에서 골동품과 고미술품을 주로 취급하셨는데, 제가 만 24살 되던 1998년 저에게 ‘헌책방을 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셨어요. 그러자 저는 두 말도 안 하고 바로 ‘네,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했어요. 그게 다였어요. 그리고는 ‘고서점’을 열었지요. 고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제가 태어난 곳이 바로 이 고서점 바로 뒤의 슬레이트 단층집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헌책이 아주 익숙했습니다.”

양수성 대표가 보수동 책방 골목에서 책방을 열게 된 것은 아주 자연스러워 보인다. 골동품과 고서 수집에 인생을 걸고 고미술품에 조예가 깊었던 아버지 양호석은 현재도 ‘고서점’ 바로 옆에서 ‘동방미술회관’을 운영하고 있다. 작은형도 중앙동에서 갤러리를 하고 있다. 15년째 책방 골목에서 젊은 열정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 양수성 대표는 “아버님의 문화적인 끼를 물려받아서 그런지, 책방이고, 문화 기획이고 즐겁기만 합니다.…… 아버님처럼 평생 이 일을 할 겁니다.”라고 말한다.
취급하는 책 종류와 양은 얼마나 될까
보수동 책방 골목의 책방에 있는 책을 다 모으면 얼마나 될까? 책방에 책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으면 책방 주인들은 대개 고개를 가로 젓는다. 현재 보수동책방골목번영회 회장인 권영규 대표[보수서점]에게 책방 골목의 책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다.

“글쎄, 일일이 세어 보질 않아서…. 책방에 나와서 진열되어 있거나 쌓여 있는 책들이 모두가 아닙니다. 대부분의 책방들이 2~3개씩의 책 창고를 따로 보유하고 있거든요. 대략 작은 책방은 3만~5만 권, 큰 책방은 20만~30만 권씩의 책을 갖고 있다고 보면 될 겁니다.”

몇 년 전 ‘책방골목번영회’가 책방 골목 전체 책방이 보유하고 있는 책을 추산한 적이 있는데, 그에 따르면 대략 400여 만 권에 이른다고 한다. 이는 국회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일반도서 357여 만 권[2013년 8월 31일 기준]보다 많고, 부산의 국가기록원 분관[역사기록관]이 보존, 관리하는 중요 기록물 130여 만 권의 세 배에 이르고, 부산광역시립시민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67만 권[2013년 1월 1일 기준]에 비해서는 무려 여섯 배에 달한다.

6·25 전쟁의 후유증을 점차 극복하고 사회가 제 모습을 갖추는 과정에서 이른바 ‘베이비 부머’[전후 세대]로 태어난 이들이 1952년 「초등학교 의무 교육법 시행령」이 제정된 영향 등으로 1960년대에 거의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그 중 상당수는 1970년대에 중학교나 고등학교 등으로 진학을 했다. 그리고 1970년대 이후 우리 사회는 부자나 가난한 자나 할 것 없이 거대한 교육열에 휩싸였다. 그리하여 광범위한 교육 교재 시장이 형성되었다. 이렇게 형성된 상황은 보수동 책방 골목 주인들에게는 큰 기회로 다가왔다. 헌책방으로 흘러들어온 교과서, 참고서, 문제집 등은 없어서 못 팔 지경이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1980년대까지 이어졌다. 1970년대 중반부터 책방 골목을 지킨 남명섭 대표[충남서점]는 그 시기를 이렇게 말한다.

“전쟁의 참화를 겪고 경제가 피폐했던 50년대, 60년대에는 출판물의 발행 종수나 부수가 형편없이 저조했어요. 그러니 책이 아주 귀하던 시절이었지요. 그때는 책을 내놓으면 금방 팔렸어요. 물자가 넉넉잖은 시절이고 보니 헌책방에는 자연히 학생들이 몰려들었지요. 대학생들의 책을 맡아주고 전당포처럼 돈을 내주던 시절도 있었어요. 책방 주인들은 1970년대가 보수동 책방 골목의 거래가 가장 활발했던 때였다고들 말해요.”

그런데 1990년대에 책방 골목은 다시 전환기를 맞았다.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 중반까지 출판계에서는 생산 과정에서 엄청난 기술 혁신이 이루어진다. 출판사들은 손작업에 의존하는 활자 조판과 기계식의 활판 인쇄 방식에서 컴퓨터를 이용한 전자 출판과 전자식의 옵셋 인쇄 방식으로 생산 방식을 바꿈으로써 책 한 권을 생산하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을 크게 줄였다. 『2010 한국 출판 연감』[대한출판문화협회]의 「광복 이후 65년간 출판 통계(1945~2009)」등을 보면, 발행 종수가 1981년에 7,181종이고, 1991년에는 2만 2,769종으로 10년 사이에 3배 이상 늘었으며, 2005년 이후 폭증하여 2011년에는 발행 종수가 4만 종에 이르러 30년 사이에 5.5배나 증가했다. 하지만 책방 골목은 ‘풍요 속의 빈곤’을 맞이했다.

“90년대 뒤로는 헌책 교재에 대한 수요가 점차 줄어들면서 간판을 내리는 책방들이 늘어났어요. 책방 골목이 가장 활발했을 때는 책방이 70여 곳에 이르렀는데, 폐업하는 곳이 생겨나기 시작했지요. 이런 서점을 다른 서점이 통합하기도 해서 2013년 현재는 45곳이 영업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도 책방 골목이 보유하고 있는 전체 책의 수량은 줄어들기는커녕 꾸준히 늘고 있어요. 참 아이러니하지요?”

양수성 대표[고서점]의 말이다. 문옥희 대표[우리글방]의 말이 이어진다.

“80년대엔 민주화 운동이 벌어지면서 출판사 등록이 자유화되었지요. 그 과정에서 폭발적으로 늘어난 출판사들이 수많은 신간을 발행했지요. 근데 얼마가 지난 뒤에는 그 책들이 모두 헌책이 되어서 책방 골목으로 들어왔어요. 그래서 또 다시 책의 종류가 넓어졌지요.”[문옥희 대표].

주거 환경이 바뀐 것도 책방 골목에 책이 많아진 이유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주택에서 아파트로 주거를 바꾸면서 아파트에는 책을 보관하거나 쌓아두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양수성 대표는 자신의 헌책 수집 경험을 이야기한다.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책방 골목으로 책이 쏟아져 들어왔어요. 그 전에 노교수님들은 주로 개인 주택에 많이 살았지요. 우리 아버님 세대에 속하는 이런 분들 집에 책 수집한다고 가보면 책이 굉장히 많았어요. 이런 분들이 돌아가시고 나면 유족들이 책을 내다 팔기를 하는데, 개인 주택의 경우는 정말 책이 많아요. 그보다 밑의 세대의 교수님들은 거의 아파트에 사시는데, 그런 집에 가면 책이 좀 적다고 느낍니다. 지금은 나올 만큼 다 나왔다고 봅니다.”

한편, 책방 골목에서 취급하지 않으려 하는 책들도 있다. 교과 과정이 바뀐 참고서나 자습서는 책방 주인들이 좀처럼 사들이지 않고 세로쓰기로 된 전집류도 꺼리는 편이다. 컴퓨터 서적도 찬밥 신세이다. 『윈도우 95 완전 정복』이나 『PC 통신 따라잡기』 따위의 책을 지금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겠는가.
책방 주인은 폭우 피해나 화재 따위에 민감하다
책은 물에 아주 취약하다. 일단 책이 물에 젖으면 사용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수동 책방 골목에는 큰 비로 인한 물 피해 따위가 없었다. 큰 비가 오면 골목이 자연스럽게 배수로가 되고 책방 골목이 인근의 도로보다 약간 높은 지대에 위치하고 있어서 물 빠짐이 좋아서 그렇다고 보인다. 하지만 다닥다닥 붙어 있는 책방 골목의 구조와 가연성 높은 종이로 된 책들로 인해, 보수동 책방 골목은 화재에 매우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일단 불이 나면 책방 골목 전체가 화마에 휩싸일 가능성이 아주 높은 것이다. 그래서 책방 골목의 서점 주인들은 책을 사고팔 때에는 서로 경쟁자이지만 재해에 대해서는 서로가 서로에 기대어 있는 운명 공동체이다. 책 도둑이 없다는 것도 책방 골목 주인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내용이다. 책방 주인으로서는 젊은 세대에 속하는 양수성 대표의 말이다.

“보수동 책방 골목은 한 번도 태풍이나 폭우로 피해를 본 적이 없습니다. 물이 잘 빠져 그런 거죠. 또 책방 골목과 가까이 있는 국제 시장은 1953년, 1956년, 1960년, 1968년에 큰 화재가 난 적이 있지만, 책방 골목 서점에는 한 번도 화재가 난 적이 없어요. 그러나 이건 잘 말하지 않는 건데, 책방 골목에 있는 지하 만화책방에서 불이 난 적이 있긴 하거든요. 그런데도 책방 골목에서는 누구도 하나같이, 화재를 입에 올리지 않습니다. 화재에 대해서는 말을 서로 하지 않는 거죠. 뭐랄까…, 금기라 할까? 아마 그만큼 화재는 책방 골목에서 예민한 재해라서 금기시 되고 있는 걸 겁니다. 그리고 도둑…, 없어요. 돈을 만들 목적으로 책을 훔치면 훔친 헌책을 팔 수 있는 곳은 헌책방뿐인데, 팔 수 있는 곳도 녹록치 않은 데다 헌책은 팔아봐야 크게 돈이 되지도 않으니 절도 대상이 안 되는 거예요. 한번은 이런 적이 있었어요. 책방 문을 안 잠그고 퇴근한 적이 있었는데, 다음 날 와보니 책은 전혀 손대지 않고 컴퓨터 모니터만 가져갔더라고요.”
이 많은 책을 어떻게 다 기억할까
책방 골목의 헌책방에 가면 누구나 한번쯤 궁금한 것이 있다. 안쪽 깊은 골마루에는 전집 책도 쌓여 있고 여러 가지 책이 그득하여 ‘저렇게 쌓인 책 더미 뒤에는 어떤 책이 있을지 궁금하다’는 생각이 뭉게뭉게 든다. 책 더미를 치우고 구경할 수 없는 일이 참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 책이 이리저리 쌓여 있거나 책으로 꽉 차서 책 사이를 들어가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은 책들이 있는데, 도대체 이 책들을 진열하는 규칙은 뭔지가 참 궁금하다. 현재 보수동 책방 골목 안의 점포 두 곳과 책방 골목과 좀 떨어진 다른 곳에 세 곳의 책 창고에 도합 30만 권 가량의 책을 보유하고 있는 양수성 대표의 말이다.

“책방 주인마다 독특한 진열 방식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 어떤 책방 주인은 나는 몇 천 원짜리 책을 한꺼번에 꽂아놓겠다, 또 어떤 주인은 분야별로 꽂아놓겠다, 누구는 새로 들어온 날별로 꽂아놓겠다 등등. 여러 가지 방법별로 다 다르신데, 저 같은 경우는 분야별로 꽂는 셈이에요. 대부분의 경우 분야별로 꽂는 주인이 많고, 책방이 협소한 분들은 그냥 대충 꽂아놓고, 대충 참고서는 참고서끼리…. 그런데 그것도 다 책방마다 중점적으로 취급하는 분야가 있기 때문에, 같은 과목별로 꽂기도 하고[합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집에서 책 보시는 분들이 편하게 보시기 위해 책장에 꽂듯이 하는 거죠.”

책방 주인들은 찾고자 하는 책을 귀신같이 찾는다. 그 많은 책 중에 어떻게 그 책이 있는지 없는지,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아는 걸까? 대부분의 주인들은 거의 감각적으로 기억한다. 머릿속에 일종의 ‘책 지도’를 그려 놓는 식이다. 이 때문에 손님이 책을 보다가 다른 곳에 꽂아두면 주인이 그 책을 영영 못 찾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리고 책방 업무의 관리 효율을 높이는 한편, 인터넷을 이용한 주문과 판매가 늘면서 책 목록을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서점도 늘고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책방 주인들은 ‘책 지도’의 감각을 잃어가고 있다. 이 일에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는 양수성 대표의 말을 계속 들어보자.

“온라인이 발전하면서, 인터넷 헌책방을 활성화시키는 과정에서, 제가 ‘디지털 바보’라고 명명했는데, 저와 몇 명은 요즘 ‘디지털 바보’가 되어 갑니다.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놓으면 지정된 그 곳에서 벗어나 있는 책은 못 찾아요. 책이 있는 거는 아는데 어디 있는지를 찾지 못하는 거지요. 그런데도 아직 갖고 있는 책의 10분의 1도 데이터베이스화 하지 못했어요.”
책은 어떤 경로로 매입하고 판매하나?
책방 골목에는 개인이 책 몇 권씩 가져와서 팔거나 필요한 책을 사가는 오래된 전통적인 방식을 비롯하여, 책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경로가 몇 가지 있다. 양수성 대표의 말을 통해 헌책 구입과 판매 방식을 들어봤다.

“고물상이나 폐지 수집상을 찾아다니면서 전문적으로 헌책만 수집해오는 이른바 ‘나까마’라고 불리는 중개상들이 있는데 이런 상인들한테서 뭉치로 사기도 하고, 서울 등지의 도매상에서 헌책이나 재고 책을 보내오는 경우도 있어요. 그리고 가끔은 고인의 유족이 집에 소장하던 책을 한꺼번에 넘기겠다고 하여 가서 보고 적당한 가격을 치루고 싣고 오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새로운 흐름이 생겨나고 있는데, 인터넷을 통한 책 구매가 점차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인터넷 경매나 현장 경매를 통해 보수동 책방 골목에서 찾아보기 힘든 책들을 구매하기도 합니다. 파는 방식은 크게 보면 온·오프라인[on·off-line]으로 이루어지죠. 여기 직접 오시는 손님들에게 파는 경우 말고는 저는 가끔 학교나 박물관 등에 납품을 하기도 하고, 또 위탁 판매를 하기도 하는데…, 이런 일이 있었는데,… 제 손님이 팔려고 책을 가져왔는데, 저는 그 분이 산값의 10% 밖에 줄 수 없어 결국 위탁을 받아 판매하기로 하였는데, 마침 판매가 이루어져서 위탁 판매 대가로 판매 가격의 30%를 받았죠. 이런 때는, 수수료를 받을 수 있을 때는 손님과 주인이 다 같이 이익이 되니까 위탁 거래가 좋죠.”

보수동 책방 골목에서 큰 규모에 속하는 ‘대우서점’ 김종훈 대표는 대규모 책 거래에 대해 말한다.

“어떤 때는 출판사에서 자금 사정 때문에 떨이 식으로 트럭에 가득 한 차 싣고 와서 팔고 가기도 합니다. 아동 도서의 경우에는 책 보상 교환 판매 때 영업 사원들이 헌책을 많이 수거해오지요. 반대로 아파트 내에 도서관을 짓거나 논술 학원에서 서고를 만들 경우에는 한꺼번에 몇 만 권씩 납품합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보수동 책방 골목에 있는 책방 중 개별적으로 온라인 판매를 하는 곳도 있지만, 책방 골목 내 15곳의 서점이 참여하여 인터넷 보수동 책방골목 쇼핑몰(http://www.bosubookstreet.com)을 열어 전국적으로 판매를 하고 있다. 이 인터넷 쇼핑몰에 참여한 황도영 대표[남양서점]는 인터넷 판매 비중이 아주 높고 점포 판매 비중이 차츰 떨어진다고 말한다. 남양서점의 경우 인터넷 판매와 점포 현장 판매의 비율이 9 대 1 정도라고 한다.

시대를 초월하여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고전은 헌책이 돼도 여전히 고전이다. 누이를 따라 보수동 책방 골목에 자리를 잡아 올해로 32년째 접어드는 임춘근 대표[신천지서점]에겐 이 골목 안의 일상이 작은 역사다.

“책방 골목에서 『삼국지』와 『성경』은 꾸준히 팔려. 조정래(趙廷來)의 『태백 산맥』, 『아리랑』, 또 최명희(崔明姬)의 『혼불』, 박경리(朴景利)의 『토지』 같은 대하소설도 인기가 있지. 전집으로 사면 싸게 사는 셈이거든. 아, 물론 『성문 종합 영어』나 『수학의 정석』은 세월이 지나도 학생들이 찾는 필수 참고서고. 그런데 50, 60년대 초반만 해도 가장 인기 있는 책은 법률 서적이었어, 출세하려면 고시 공부 해야지. 덕분에 이 보수동 책방 골목을 거쳐 간 이들 중에 유명한 판검사들이 적지 않아.……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 경제 개발을 시작하면서는 기술과 공업 계통의 책이 늘었지.…… 요사이는…, 단연 영어책이야.”

아버지를 이어 15년째 고서를 위주로 취급하는 양수성 대표는 최근 손님들이 ‘고서점’에 와서 찾는 책의 분야가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매 시기마다 그때그때 인기 있는 것들을 사 가지요. 20년 전만 해도 한적(漢籍)[한문으로 쓴 한지 책]만 구매했는데, 지금은 거의 안 합니다. 요즘은 문학 계통의 비중은 줄었고, 잡지나 어린이 관련 책 등 잡서 비중이 늘었습니다. 옛 어린이 잡지를 보는 분들이 있어요. 수집하는 분도 있고. 재미로 모으시는 분도 있고요.”

김영춘 대표[청산서적]는 신학기면 아르바이트생을 7명씩 두고 장사했는데, 이제는 옛말이라고 말했다. 참고서는 안 보고 학원에서 주는 문제지만 푸는 시절이 되면서 ‘신학기 특수’가 사라졌다는 얘기다.

“『성문 종합 영어』, 『맨투맨』은 없어서 못 팔았는데 이젠 안 나간다. 집집마다 장식용으로 뒀던 수십 권짜리 『대백과 사전』들도 그렇고. 대신 만화 잡지 『보물섬』 창간호처럼, 소장용 책을 찾는 손님이 늘고 있어. 관광객도 늘고 있고.… 다른 지방에서 구경 차 놀러오는 사람들이 책을 다량으로 사기도 해. 이런 손님들에게는 택배로 보내주지.”

책을 매입하고 판매하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일을 겪는다. 남명섭 대표[충남서점]의 말이다. 그가 골목에 자리 잡은 지 올해로 벌써 36년이다.

“옛날엔 재미있는 일이 많았지. 그때 얘기하면 책 한 권으로도 다 못 쓸 거야. 우리들은 헌책이 들어오면 책을 하나하나 다 들쳐봐. 그러면 예전엔 책에서 비상금이랑 학생 회수권도 보이고, 우표도 나왔어. 중간업자가 가지고 온 책들이랑 뒤죽박죽 섞이니 누가 주인인지도 알 수 없는 물건이지. 제일 재미있는 건 연애편지야. 서로들 돌려보고 그랬어. 어디 요즘은 연애편지를 볼 수가 있나? 다 컴퓨터랑 휴대폰으로 하잖아. 보수동 책방 골목은 향수 어린 책의 백화점이지. 여기에 있으면 책은 죽은 거야. 좋은 독자에게 시집을 가서 잘 읽혀야 그때 비로소 책이 살아나는 거지.”

양수성 대표[고서점]도 자신이 들었던 일화를 소개했다.

“몇 년 전의 일입니다. 제 가게에 오신 손님이 하신 이야기인데, 책방 골목에서 십 몇 페이지짜리 잡지를 샀데요. 몇 년 치 분량의 잡지 뭉치였는데, 사다가 집에 갖다놓고 며칠 지나서 챙겨보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유심히 보니 이상하게 묶음별로 책의 가운데 부분이 약간 불룩하게 되어 있어서 풀어봤답니다. 책 속에 습기가 찼나 하고 풀어본 거지요. 근데 아! 그 속에 잡지책 한 권마다 오백 원짜리 지폐가 대여섯 장씩 꽂혀 있었답니다. 예전에 오백 원짜리가 지폐였잖아요. 책이 이백 권이 넘었으니, 근 백만 원이 넘는 돈이 그 속에, 책 속에 있었다는 거지요. 아마 책방 주인은 고물상에서 넘어 온 책 뭉치를 풀어보지도 않고 있다가 판 것이겠지요.”

한편 헌책방에서는 구입한 책 수량만큼 책이 팔려나가지 않는다. 대략 10권의 책이 들어오면 나가는 책은 3권 안팎이다. 이 때문에 책방 골목에는 오늘도 무수한 ‘책탑’들이 쌓여 간다. 버리자니 아깝고 무작정 쌓아 두자니 더 이상 공간이 없다. 책방들 간에 필요한 책들끼리 ‘물물교환’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여의치 않으면 책을 찢어서 폐기 처분한다. 헌책방계에도 ‘새 피’가 돌아야 하기 때문이다.

헌책 값은 어떻게 결정할까
헌책방에서 매겨지는 책값은 책이 시중에 얼마나 돌아다니는지, 사고자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보수동책방골목번영회 권영규 회장[보수서점 대표]은 헌책도 값이 매겨지는 일정한 규칙이 있다고 하였다.

“통상적으로 시중 서점에서 판매되고 있는 요즘 책은 보통 정가의 40~50%에 팝니다. 나온 지 10년가량 지난 책은 20~50%선에서 판매됩니다. 그런데 20년 이상 지난 책은 오히려 정가보다 비싸게 팔리는 일이 많습니다. 책이 나온 당시와 지금의 물가 수준 차가 크기 때문이지요. 한편, 책방 주인이 헌책을 사들일 때는 통상 헌책 판매 가격의 25% 정도를 쳐주는 것이 이 골목의 산출 기준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그러나 이렇게 비교적 쉽게 값을 매길 수 없는 책이 헌책방에는 허다하다. 특히 고서는 값을 매기기가 아주 어렵다. 양수성 대표는 책방을 운영하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 토쿄[東京]의 간다[神田] 고서점 거리도 여러 번 가봤단다.

“몇 년 전에 일본 간다 진보쵸[神保町] 고서점 거리를 갔던 적이 있어요. 간다에 있는 한 음악 잡지 전문점을 들어갔죠. 1960년대 음악 잡지가 있는데, 가격이 보통 500엔에서 1,000 엔 정도거든요. 그런데 똑같은 잡지인데 비틀즈 특집을 낸 어느 한 달의 특별호에 6만 엔이 붙어 있는 거예요. 여기 보수동에서 그랬다면 아마 미쳤다고 했겠죠. 주관적으로 가격을 붙여놓아도 거기는 아무도 시비 거는 이가 없어요. 그만큼 주인들이 자신이 있기 때문이에요. 무조건 책이 발행된 지 오래되었다고 비싸게 매긴다든지 하는 건 피해야 합니다. 그 책의 가치를 정확히 감정해서 가격을 결정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서지학적인 지식뿐 아니라 유통 상황과 책의 상태, 그리고 오랫동안 책을 다루면서 생긴 ‘감(感)’ 같은 게 필요합니다. 객관과 주관이 딱 만나는 지점이 책 가격인 거죠.”

절판된 책이나 희귀본, 또는 공공 기관에서 발행된 비매품 책이나 도록을 구하는 이들에게 보수동 책방 골목은 ‘엘도라도’다. 켜켜이 쌓인 옛날 책 사이에서 마릴린 먼로의 흑백 사진집을 발견할 수도 있고, 광복 직후 대한민국 성립 때까지의 어린이 잡지를 구할 수도 있다. 1980년대 금서 목록에 올랐던 시집을 만날 수도 있고, 불과 3개월 전에 발행된 비매품인 『임시 수도 기념관 개관 도록』을 찾을 수도 있다. 이러한 책들의 값을 매기는 것은 책방 주인의 몫이다. 양수성 대표의 말이다.

“최근에 운크라(UNKRA)[국제연합 한국부흥위원회] 교과서를 권당 10만 원에 팔았어요. 아마 이 책방 골목에서 가장 비싼 책은 제가 보유 중인 주시경(周時經) 선생의 『조선 말갈·대수학 연구본』[1904~1908년 발간 추정]일 거예요. 값으로 치면 200만 원을 호가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값을 매길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아버님[양호석 ‘동방미술회관’ 대표]이 보수동 책방 골목을 평생 지켜오며 평생을 골동품 수집에 바쳤는데, 『자명종 표독법(自鳴鐘表讀法)』 원본을 소유하고 있어요. 근데 ‘이건 천만 원을 준다 해도 안 팔아.’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책은 중국에서 1809년에 출간되었고, 자명종의 원리를 그림과 함께 설명한 책인데, 이런 건 가격이 없는 것이죠.”

그리고 양수성 대표는 몇 년 전 일본에서 1800년대 후반에 발행된 ‘딱지본’의 가치를 새롭게 밝혀내어 가격을 매긴 적이 있었다. ‘딱지본’은 책 표지가 울긋불긋하게 딱지처럼 인쇄된 소설에 붙여진 별명인데, 신식 활판 인쇄로 대량 발행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본 것을 본떠 1900년대부터 발행되었는데, 인기가 있었던 고소설을 비롯하여 창작 신소설, 개작 소설과 삼류 통속 [또는 애로] 소설, 각종 실용 서적을 발행하여 평균 20~30전에 팔렸다. 딱지본은 시내의 서포나 서점뿐 아니라 봇짐장사, 장돌뱅이들이 전국의 장을 돌면서 팔았다. 이 딱지본은 최남선(崔南善)이 1912년 기획하여 발행한 육전 소설이 나오는 계기가 된다. 그러한 딱지본의 문학사적 가치를 책방 주인들이 잘 모르고 헐값에 팔았는데, 30대의 양수성 대표는 그 가치를 발견하여 제값을 매긴 것이다.

“저는 책의 가치를 새롭게 규정하여 가격을 매기는 것도 책방 주인이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일본 딱지본이 우리나라 딱지본의 모델이었는데, 그걸 모르고 다른 서점에서 딱지본을 아주 싸게 팔았던 것이죠. 이 딱지본이 우리나라 대중소설책인 육전 소설과 관련이 깊고 그러한데, 그래서 제가 책의 가치를 새롭게 정리하고 새롭게 가격을 매겼어요. 그리고 얼마 뒤 그 딱지본은 임자를 만나 팔려나갔어요. 제가 매긴 가격이 맞았다는 생각을 했지요. 물론 이건 그 가치를 제가 익혔다기보다는 아버님에게서 배운 거지요.”

책방 주인은 자신이 매긴 책값을 받음으로써 경제적으로 충분히 보상을 받아 기쁘고, 자신이 매긴 책값이 그 책의 가치에 상응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셈이어서 보람을 느끼는 것이다.
잘 샀다고 생각하는 책, 잘 팔았다고 생각하는 책
책방 골목에서는 원칙적으로 책 판매 이후에 환불을 해주지 않는다. 헌책의 특성상 파본이나 낙장 등 책에 하자가 있어서 책을 사간 사람이 교환을 원할 경우 문제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신용카드나 도서 상품권은 통용되고 손님이 원할 경우 택배도 해준다. 책방 주인들도 상인이고 책을 사고파는 것이 기본적인 일이기에 그 과정을 통해 이문이 많이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에 못지않게 헌책 거래를 할 때는 ‘인연’도 중시한다. 남명섭 대표[충남서점]의 말이다.

“책은 다 주인이 있어. 언젠가는 다 제자리를 찾아가. 그 시간을 기다리는 게 헌책방 주인이지. 어떻게 보면 헌책 장사는 신선놀음이야.”

양수성 대표[고서점]에게 이런 일들이 있었다고 한다.

“제가 해방 공간에 발행된 잡지를 샀는데, 어린이 잡지인데, 잡지 한 권이 30만 원이나 했죠. 전부 30권이 넘었는데, 근 천만 원 가까이 든 거죠. 잡지 한 권에 30만 원이면 비싼 거잖아요? 그래도 사고 나서 굉장히 기분이 좋더라고요. 내가 원하는 것을 샀으니까요.… 물론 그 뒤에 그걸 바로 그 책을 필요로 하는 곳에 납품하게 되었으니 내가 잘 샀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한번은 삼청교육대[1980년 전두환(全斗煥)의 5·17 쿠데타 직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가 설치한, 5공화국 초기의 대표적인 인권 침해 기관] 관련 책을 찾던 손님이 와서 이리저리 살피다가 ‘회장님, 찾았습니다.’라고 전화를 하더니 책을 사 간 적이 있어요. 그 책을 사 간 사람은 회장님의 비서인데, 그 책을 찾으러 전국으로 헌책방을 찾아다녔다는 겁니다. 그 책에 자기 회장님의 실명이 나오는데, 그 회장님은 삼청교육대가 사회적으로는 평가가 안 좋은데 자기 개인은 인생의 전기가 되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거절하는 데도, 2,000원 밖에 안 하는 책의 값으로 10만 원을 주더라고요. 안 그러면 자기가 회장님한테 혼난다고 하면서.”

그 외에도 책을 사고팔면서 ‘정말 잘 샀다’, ‘정말 잘 팔았다’고 생각한 경우는 셀 수도 없이 많았지만, 정말 사고 싶었는데 놓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타지에서 오신 어떤 손님이 다른 서점에서 부산 관련 고서적을 사서 우리 서점을 들렀는데, 총독부에 근무했던 일본인이 근무 당시 쓴 부산의 행정 일기 필사본이었어요. 자기는 10만 원도 안 주고 샀다고 했는데, 제가 200만 원을 준다 해도 안 팔아요. 필사본 원본이라서 유일본이고 부산에서 꼭 필요한 자료인데, 타 지역으로 나가는 게 안타까워서 자기 산 가격의 이십 배를 준다 했는데도, 결국 못 산 적이 있지요.”

책방 주인들이 맞이하는 손님들은 아주 다양한데, 책값을 흥정하면서 때로 기분이 상할 때도 있지만 늘 찾아주는 단골손님도 있기에 책방을 지키는 일이 그리 피곤하지는 않다고 한다. 온라인을 통해 거래하는 고객까지 합쳐서 20~30명 정도의 단골손님이 있다는 양수성 대표의 말이다.

“저 때문에 컬렉션 시작한 사람도 좀 있습니다. 부산에서 기업을 하시는 분인데, 예전엔 술도 먹고 그랬는데, 지금은 술도 안 먹고, 돈도 좀 있고, 시간도 있는데, 뭘 할까 하고 저한테 물어 오신 적이 있었어요. 그 분은 그림이나 작품 도자기도 좀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 때 제가 고서 수집을 권했지요. 책이 그림보다 환금성(換金性)은 떨어지지만, 보관하기에 좋고, ‘내가 책을 가지고 있다’는 소장하는 기분은 훨씬 좋다고 말했지요. 그 분이 최근에 고서 수집을 시작하셨어요.”
헌책방 골목의 장래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그렇지만 책 역시 시간을 초월하여 살아남는 것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것도 있다. 물론 대다수는 세월을 이겨내지 못하고 사라지고 만다. 헌책방 주인은 세월을 뛰어넘어 책이 생명을 유지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사람이다. 그리고 책의 내용을 터득하고 책의 가치를 파악하여 책 사는 사람의 마음에 들 수 있도록 단서를 제공하는 중계자이다.

영국에는 40여 개의 책방으로 마을을 이루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헌책 마을 헤이온와이(Hay-on-Wye)가 있고, 일본에는 180여 개의 고서점이 모여 세계 최대의 ‘책의 거리’로 불리는 간다 진보초 고서점 거리가 있다. 양수성 대표[고서점]는 보수동 책방 골목의 매력에 대해 “헤이온와이의 아기자기함과 간다 고서점 거리의 역사성을 함께 지닌 곳”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파주출판도시김언호 이사장은 부산상업고등학교를 다닐 시절 이곳을 들락거리면서 책을 꿈꾸었단다.

“보수동에서 50여 년 동안 묵묵히 한곳을 지키는 책방 주인들이야말로 인간 문화재감이다. 한국 전쟁기에 태동한 보수동 책방 골목은 이제 대한민국 최대이자 유일한 헌책방 골목이다. 45곳의 책방이 사라지지 않고 60년 이상을 버텨온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다. 서울 청계천의 헌책방 골목도 10여 년 전 개발 바람에 휩쓸려 속절없이 사라지지 않았는가. 우리나라 전후 지식사와 정신사의 고향 같은 곳인 보수동은 이제 부산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문화적 긍지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문화유산이자 보배이다. 이곳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새로운 시대를 엶으로써 보수동을 중심으로 부산에 책 읽기 운동이 들불처럼 번져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보수동은 잘만 활용된다면 전국적인 명소로 거듭나고 지역 경제에도 부수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한다.”

보수동 책방 골목의 현재적 의미를 말하는 김언호 이사장의 말은 보수동 책방 골목의 미래 전망과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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