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골목의 형성과 개황
6·25 전쟁과 부산의 임시 수도를 빼고 보수동 책방 골목의 형성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전쟁으로 30~40만 명의 민간인뿐 아니라 정부의 모든 기관이 부산으로 피난을 왔다. 전쟁 전에 비해 인구가 거의 2배가 된 셈이다. 피난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살 집과 생계 수단이었다. 피난민들은 부산항과 부산역 등을 통해 들어와 산비탈이며 다리며 가릴 것 없이 어디든 일단 가족이 살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판자 조각이나 미군 부대에서 나온 박스와 천, 가마니 따위로 바람과 비를 피할 수 있는 거처를 지었다. 부산항이나 역에서는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할 수 있는 하역 인부나 지게꾼을 하며 하루하루 생계를 이었고, 대규모 시장이었던 국제 시장에서는 장사를 하며 가족의 생계를 근근이 지탱했다. 1952년 2월 기준으로 국제 시장 상인은 시장 조합원이 운영한 고정 점포가 1,150점이었고, 그 외 무허가 노점상이 2,000여 명이나 되었다. 이 가운데 고정 점포의 50%가 월남 피난민이고, 20%가 서울 피난민이었다. 노점상의 90%가 월남 피난민이었고, 행상인의 95%가 피난민이었다고 한다.
6·25 전쟁 전부터 보수동 골목 옆에 있던 부평 시장과 국제 시장 일대에 형성되었던 도떼기시장에서는 몇몇 사람들이 노점에서 책 따위를 사고팔았다. 그러다 전쟁이 났고, 보수동 바로 옆의 부민동에는 임시 수도 정부 청사가 자리하게 되었다. 보수동에서 이어지는 대청동과 남포동·광복동 일대는 피난민 대열로 부산으로 밀려온 전국의 지식인들과 문화인들로 북적였다. 출판사와 인쇄소는 동광동과 보수동에 밀집하였다. 게다가 구덕산 일대와 보수동 뒷산에는 서울 등지에서 피난 온 대학들이 하나로 뭉쳐 ‘부산전시연합대학’이란 간판을 내걸고 운영하였고, 그 외 다른 학교들도 천막을 치고 임시 학교를 운영했기에 보수동 골목은 날마다 학생과 교사들이 수도 없이 지나다니는 곳이 되었다.
이런 보수동 골목 입구에서 맨 처음 책 노점상을 시작한 것은 평양에서 피난 온 청년 손정린과 전라북도 김제에서 피난 온 처녀 임씨였다. 임씨의 동생인 임춘근은 보수동 책방 골목의 유래와 형성 과정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임춘근은 현재 책방 골목 신천지서점의 대표이고, 자신도 33년째 책방 골목에서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6·25 전쟁으로 피난민이 복작거리던 시절, 누나는 부산에서 매형을 만나 결혼하고 보수동 골목 근처 판잣집에서 살았어. 보수동 사거리 입구[현재 글방쉼터] 골목 안 목조 건물 처마 밑에서 포장지를 깔아놓고 책을 팔았어, 호구지책으로. 처음엔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만화책 몇 권을 놓고 번역문을 오려붙여 빌려주다가 본격적으로 헌책을 모아 팔기 시작했어. 그럭저럭 장사가 제법 되는 거야. 그래서 두어 칸짜리 문간방을 빌어 가게를 열었는데, 그 뒤를 이어 비슷한 책방들이 죽 생겨나기 시작했고, 세월이 지나면서 책방 골목이 자연히 형성되었지.”
1955년에는 번영회가 결성되었다. 이렇게 형성되기 시작한 보수동 책방 골목은 이제 막 환갑을 넘기게 되었다. 그동안 1세대들은 거의 떠났고, 2세대도 후세들에게 일을 넘겨주고 있다. 그 가운데는 1970년대에 책방이 한참 번창하여 70곳이 넘을 정도로 잘 될 때 떼돈을 벌어 나간 이도 있고, 1990년대 책방의 거래량이 급격히 줄면서 문을 닫은 이도 있다. 그리고 대를 이어 꾸준히 책방에서 손님을 맞고 있는 이도 있다. 2013년 9월 현재 보수동 책방 골목에는 모두 45곳의 책방이 문을 열고 장사를 하고 있고, 그 중 15곳은 인터넷 보수동 책방 골목 쇼핑몰 운영에도 참여하여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보수동 책방 골목의 헌책방에서는 중고책, 즉 헌책이나 구간(舊刊)뿐 아니라 새 책도 취급한다. 사용하던 헌책은 물론이고, 발행된 지 기간이 좀 지났으나 새 책방을 거치지 않고 바로 이곳으로 들어온 책인 구간을 정가의 40~70%까지 싸게 판다. 그리고 참고서 전문 서점과 아동 전문 서점에는 새 책이 많고 값도 정가보다 좀 싸게 판다. 45곳의 서점은 크기와 역사, 분야가 제각각이다. 작게는 17㎡[5평] 남짓한 공간에서부터 크게는 198㎡[60평]가 넘는 곳도 있고, 1950년대부터 그 모습 그대로 진득하게 지킨 책방 주인이 있는가 하면, 여러 번 주인이 바뀌면서 현대식으로 개조한 곳도 있다. ‘학우서림’과 ‘대륙서점’은 한 주인이 50년 이상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고, ‘책의 마음’은 주인이 바뀌면서 현대식으로 거듭난 곳이다. ‘우리글방’과 ‘학문서점’도 북 카페로 재탄생하여 젊은이들도 거부감 없이 머물고 싶게 만드는 곳이다.
보수동 책방 골목에서 각 책방마다 취급하는 책의 분야는 특화되어 있다. 고서나 동양학 관련 책을 중심적으로 취급하는 곳을 비롯하여 만화, 문학 소설, 사전류, 어린이 전집, 예술 서적, 외국 원서, 인문 과학, 잡지류, 전문 교재, 참고서와 교과서, 한국학 관련 분야의 책을 취급하는 곳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물론 대개 같은 책방에서 몇 개 분야의 책을 두루 취급한다. 터줏대감 격에 속하는 함일서점, 학우서림 등은 헌책과의 인연을 접고 주로 참고서와 새 책을 취급하는 책방으로 변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