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바오 2024-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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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부산공동어시장 사람들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새벽 4시 무렵, 부산광역시 서구 남부민동 691-3번지에 있는 부산공동어시장 하성상회 96번 중도매인 김영수[남, 55세] 씨는 새벽의 상쾌한 바람을 가르며 일터로 출발한다. 경매를 시작하는 시간은 새벽 6시이다. 그러나 그 시간에 딱 맞춰 나올 수는 없다. 미리 나와서 밤새 배에서 내린 생선들의 상태가 어떠한지 잘 봐둬야 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만 경매에서 빨리, 좋은 물건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여름철에는 새벽에 집을 나서도 해가 빨리 뜨기 때문에 덜 힘들지만, 한겨울 댓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출근하는 길은 정말이지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는다.

어제 배가 많이 들어왔다고 하는데 물량이 많을까? 괜찮은 생선이 들어왔을까? 손님들에게 주문 받은 물량이 어느 정도였더라? 그는 오늘 하루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면서 부산진구 주례동의 집에서 남부민동의 부산공동어시장까지 15분 만에 달려온다. 위판장에는 밤새 작업한 고등어며 갈치며 오징어 등이 나란히 진열되어 있다. 부산공동어시장에서는 ‘현장’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다고 한다. 선주들이 수산물을 위탁 판매하는 곳이기 때문에 위판장, 또는 그것을 줄여 판장이라고 부른다. 위판장은 밤이 새도록 분주하게 돌아간다. 하긴 부산공동어시장은 전국 수산물의 60% 이상을 위판 처리하는 곳이 아니었던가.

그는 일단 사무실에 들러 오늘 들어온 물량을 확인한다. 그리고 검은색 바탕에다 금색의 테를 두른 96번 모자를 쓰고 판장으로 나가 ‘부녀반’이 작업 중인 선어들을 지켜본다. 6시 5분전, 경매를 알리는 방송이 흘러나오고 부산공동어시장 판매과의 경매사들이 일제히 위판장에 모습을 드러낸다. 경매사는 3명이 한 조가 되어 움직인다. 위판장에 경매사, 속기사, 안내사 이렇게 3인 1조가 모두 나와야 비로소 경매를 시작할 수 있다.

6시 정각, 정문에서 왼편에 있는 판장에서부터 경매가 시작된다. 쉴 새 없이 흥정을 붙이는 경매사, 더 좋은 물건을 좀 더 싼 값에 사려고 하는 중도매인, 그리고 그들 뒤에서 이것저것 훈수를 두는 소매상, 뒤늦게 접안한 배에서 내려진 생선들을 상자에 정리하고 있는 부녀반, 경매가 끝난 생선들을 리어카로 옮겨 싣는 인부, 그리고 구경꾼까지, 새벽의 부산공동어시장은 혼을 빼놓을 듯이 바쁘게 돌아간다. 여기저기에서 들리는 고성들, 그리고 욕설이 오고가는 위판장……, 다소 거친 듯한 말투와 행동이지만, 이 또한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만 볼 수 있는 우리들의 살아 있는 모습이 아니겠는가.
중도매인,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직업
김영수 씨는 군대를 제대하고 28살 되던 해 봄에 부산공동어시장으로 들어와서 이곳에서만 27년 넘게 일하고 있다. 이미 부친이 중도매인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을 시작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보통 중매인들은 부친으로부터 승계를 받아 하는 경우가 많다. 혹은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서 물려받을 수도 있는데, 중매인 사무실에서 같이 일을 하던 대리가 이어 받는 경우가 그것이다. 중매인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일을 못하게 되었을 때 다른 사람을 찾기보다 자기 밑에서 일하던 대리에게 승계를 해 주는 것이 단골 소매상들에게도 더 낫다고 한다. 물론 대리는 몇 년 동안 중매인과 함께 실제 경매에 참가하며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야만 한다.

중도매인은 일종의 자기 사업과도 같은 곳이기에 여기는 정년퇴직이 없다. 그래서 건강이 허락한다면 본인이 원하는 만큼 일을 할 수 있다. 이 부산공동어시장에는 30년 이상 된 사람도 많고, 40년 이상 이곳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77~78세 정도 되는 분들이시지만 아직도 현역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왜정 시대 때 일을 시작한 아버지
김영수 씨는 아버지에게서 업을 물려받았지만 아버지께서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아버지의 연세가 올해 99세로, 살아 계시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한 번도 중매인 일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물어본 적이 없었다. 다만, 당시 중매인 모집을 통해 시작하지 않았을까 추측만 할 뿐이다. 지금은 중매인협회든지 부산공동어시장이든지 규정이 있고 조례가 있지만, 그때는 제대로 된 규정이 없었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왜정 시대 때 누가 뭐 힘쓸 사람이 있습니까? 식민지인데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지요. 그런 자료는 아마 진짜 찾기 어려울 것 같아요. 자세히 알려면 아버지한테 물어봐야 하는데 연세가 워낙 많으셔서 그거 다 기억할 수 있을까?”

아버지에게서 들은 바에 의하면, 일제 강점기에는 중도매인조합이 아닌 ‘사고조합’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아마 ‘사상조합(卸商組合)[일제 강점기 도매상 조합]’을 사고조합이라고 부르지 않았을까 한다. 당시 자갈치에 위판장이 있었고, 조선인들은 일본인들 밑에서 그들이 부여한 일본식 이름으로 중매업을 하였다.

“왜정 시대에는 자기 이름을 쓸 수 없었지요. 하야시니 마리케니 뭐 이런 식으로 일본인들이 주는 이름을 그대로 썼어요.”

이렇듯 식민지 상황 아래서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현실적 고민과 갈등을 반복하며 현실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지만, 김영수 씨의 아버지는 한국인으로서 자존심을 단 한 번도 버린 적은 없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를 이어 지금까지 이 자리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냐고 그는 생각한다.

해방이 되고 1963년 지금의 세관, 즉 중앙 부두에 부산 종합 어시장 위판장이 생겼다. 김영수가 대여섯 살 때의 일이었다. 당시 아이를 맡길 곳이 없던 어머니는 중앙 부두 위판장까지 꼬맹이를 업고 가서 허리에 줄을 매어 전봇대에 묶어 놓고 장사를 했다. 하루 종일 전봇대 근처만 맴돌며 놀다가 배가 고파 울면 어머니는 그제 사 먹을 것을 입에 넣어 주셨다. 그렇게 부모님과 함께 바다 바람과 비린내 물씬 풍기는 위판장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던 중 부산 종합 어시장은 1971년에 부산공동어시장으로 이름을 바꾸고, 1973년도에 지금의 위치에 건물을 신축하여 이전했다. 현재 김영수 씨의 사무실이 있는 건물은 40년이나 된 것이지만 여전히 튼튼하다며 한껏 자랑을 한다.
중매인, 혼자서는 하기 힘든 일
보통 중매인 사무실은 중매인, 대리, 서기, 경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중매인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면서 중매인들이 물건을 사 주는, 이른바 중매인의 손님인 소매인이 있다. 쉽게 말하면 소매인은 일반적으로 자갈치 시장에서 볼 수 있는 장사하는 사람들이고, 이 소매인에게서 각 동네 시장에서 좌판을 깔고 장사하는 사람들이 물건을 사서 간다.

한창 성업일 때는 한 중매인 밑에 대리가 2~3명, 서기 2명, 경리 아가씨까지 있었는데, 지금은 수산물이 고갈되고 물량이 없다 보니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어 중매인 혼자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 곳이 50% 정도 된다.

중매인 수도 규정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더 늘릴 수 없다. 현재 중매인들은 약 100명 남짓. 부산공동어시장 본관 3층의 1㎞는 족히 될 것 같은 긴 복도에 중매인 사무실들이 늘어서 있다. 19.8㎡ 남짓한 사무실을 하나씩 가지고 있으면서 중매업을 한다. 중매업도 경쟁이 심하다 보니 잘 되는 사무실이 있는 반면 밥 먹고 살기 힘든 사무실도 있다.
부산 지역에서 점점 사라지는 어종
부산공동어시장은 처음 5개 조합에 의하여 설립되었다. 선망, 저인망, 기선 저인망, 안강망, 유자망 등이 그것이다. 이 5개 조합이 공동으로 어시장을 만들었고, 그 운영권을 가지고 있었다. 다양한 어종이 일정한 양만큼 잡히던 때에는 동시에 5군데에서 경매가 시작되었다. 각 조합에서 잡아 오는 어종이 다 달랐기 때문이다. 선망은 바다 중간에서 수직으로 직사각형의 그물을 둘러친 다음 물고기 떼를 가두고 차차 그 범위를 좁히어 고기를 잡는 방법을 말한다. 기선 저인망은 커다란 자루 모양의 그물을 한 척 또는 두 척의 선박으로 바다의 저층을 끌어 고기를 잡는 어구(漁具)이다. 저인망은 바다 밑에서 그물을 끌어올리는 배, 안강망은 참조기, 유자망은 주로 상어를 잡아 오는 배였다.

그래서 호황기 때는 중매인 밑에 대리가 2~3명 없으면 안 되었고, 경리도 꼭 필요했다. 동시다발로 경매를 보니까 그렇다. 중매인이 1번 경매에 가면 대리는 2번, 3번에서 경매를 했다. 그리고 한 경매가 끝나면 바로 다음 경매가 이어지기 때문에 정신없이 자리를 옮겨 다녔다.

그런데 세월의 흐름에 따라 예전에 성업했던 5개 단체 중에서 먼저 유자망이 없어졌다. 동해안 쪽에서 그 배는 상어만 잡는 배였는데 상어가 점점 없어졌으니까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15년도 전의 일이다. 안강망도 없어졌다. 당시 안강망은 참조기, 갑오징어를 주로 잡던 배였다. 안강망과 유자망은 현재 서해 쪽에서 참조기, 먹갈치 등을 잡는 데 활발히 이용되고 있지만, 부산을 중심으로 한 동해와 남해에서는 이제 별로 볼 수 없는 어망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지금은 선망, 저인망, 기선 저인망만 운영되고 있다.
한 달에 20일 이상 배에서 사는 사람들
배의 경우, 3개의 배가 하나의 선단을 이룬다. 1인조는 있을 수 없다. 일단 바다에 나가면 본선이 있고, 그 옆에 불배가 있다. 불배는 말 그대로 본선이 작업할 때 불을 비춰 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운반선이 있다.

일단 본선이 나가서 어구 형성을 탐색하는 등의 작업을 한다. 주로 야간을 이용하여 그물을 치고 걷기 때문에 칠흑 같이 어두운 밤에 뭐가 잡히는 지도 알아야 하겠지만, 선원들의 안전을 위해서도 불배는 꼭 필요하다. 그 불빛을 보고 고기가 많이 모여 어장이 형성될 수도 있다.

보통 작업은 24시간 이루어진다. 본선은 계속 바다 한가운데서 작업을 하지만, 잡은 고기는 선도를 유지해서 빨리 팔아야 하기에 운반선이 필요하다. 이에 운반선이 나가서 본선이 잡은 고기들을 옮겨 항구로 들여온다. 물론 이때에도 본선과 불배는 바다 한가운데서 계속 작업을 하고 있다. 거의 한 달에 20~25일 작업을 하는데, 태풍이 온다거나 파도가 높다거나 하면 제주 서귀포 쪽으로 피항을 간다. 그러다 좀 잠잠해지면 또 나가서 작업을 반복한다.
주로 우리 해역 내에서 조업한 것만 위판
부산공동어시장에서는 우리 해역 내에서 조업된 것이 주로 위판 된다. 따라서 목포나 전라도에서 잡힌 것도 여기서 위판을 할 수 있다. 물론 부산 근처에서 잡은 것을 목포에서 위판 할 수도 있다. 배는 위판장이 있는 곳마다 다 들어가서 위판을 할 수 있다. 그건 선주 마음대로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규정은 없지만 나름의 규칙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부산, 내일은 목포, 다음엔 여수 이렇게 들쑥날쑥하면 그 배는 다음부터 부산공동어시장에서 입항을 시키지 않는다. 아예 접안 자체를 할 수 없게 만든다. 그래도 부산공동어시장 쪽은 답답할 것이 없다. 전국 위판물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부산공동어시장에서 왔다 갔다 하는 배 한 척을 입항시키지 않는다고 손해 볼 것은 없다. 들어오겠다는 배가 넘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망 같은 경우 거의 다 부산으로 들어온다. 선망은 주로 고등어와 갈치를 취급하는 선단이다.

부산공동어시장은 배가 한꺼번에 30척이 들어와도 위판 처리가 다 된다. 그런데 다른 곳은 배 하나만 들어가도 위판장이 작아서 제대로 처리를 할 수 없다고 한다. 물량이 많을 때는 4만 3058.4㎡의 위판장이 발 디딜 틈도 없이 생선으로 가득 찬다.
씨를 말리는 싹쓸이 조업
어종이 다량하고 물량이 많아야 중매인들도 재미를 볼 텐데 줄어드는 어종과 물량에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김영수 씨는 이런 현상에 그물이 한몫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주종이 고등어에요. 그런데 고등어를 잡다 보면 그물에 들어오는 거 놓칠 수는 없고 다 잡아 오는 거죠. 우리나라가 잘못된 것이 조업 방식이 잘못됐어요. 일본은 기르는 조업을 하는데 우리는 싹쓸이 조업을 하거든. 이게 우리나라가 수산업 선진국이 안 되는 이유에요. 중국 나무랄 것 하나도 없다고. 그물이 완전 스타킹이에요. 여자들이 신는 그 스타킹 있죠? 스타킹은 물에 담그면 물도 잘 안 빠져 나가거든요. 그물이 그 정도니……, 정부에서는 그물코를 늘리라고 하는데 선주들은 안 합니다. 스타킹 그물은 어치도 못 빠져 나가고 사그리 다 올라와요. 씨를 말리는 거지.”

정부에서는 그물을 안 바꾸면 벌금을 매긴다고 하지만 선주는 바꾸지 않는다. 벌금은 몇 백만 원이지만 그물을 다 바꾸려고 하면 수천만 원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가 그물을 바꾸겠는가. 그는 어종 보호는 물론이고 더 나아가 수산업계가 계속해서 살아남으려면 법이 좀 더 엄격해질 필요가 있다고 거듭 강조한다.
3위 1체의 위판 과정
배가 제일 크고 제일 많은 생선을 잡아 오는 선단은 선망이다. 운반선이 배 밑 선창 탱크에 고기를 가득 채워서 온다. 그물로 고기를 잡아서 탱크에 넣을 때 얼음과 고기를 같이 넣게 되는데 그때엔 고기가 살아 있다고 한다. 고기를 산 채로 가져오면 제일 좋겠지만, 물을 같이 넣으면 무게가 많이 나가기 때문에 고기를 많이 못 잡아 온다. 그래서 살려서 올 수가 없다. 고기를 많이 넣고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배에서부터 얼음을 넣어 급랭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위판장에 올 때는 다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선도가 좋아 살아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가 볼 때는 살아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거라. 우린 아주 좋은 것은 회로도 먹거든요. 일반 사람들이 볼 때는 저 죽은 것을 어떻게 회로 먹느냐고 하겠지만 그게 아니야. 우리가 볼 때는 수족관에서 살아 있는 것과 다를 게 없어요. 오히려 수족관보다 더 깨끗하지.”

위판 과정의 1단계는 접안으로 시작한다. 일단 운반선이 어시장에 보고를 하고, 어시장은 배가 접안해서 물건을 풀 수 있는 곳을 지정해 준다. 대개 밤 10시가 되면 물건을 풀기 시작한다. 일단 탱크에 들어 있는 고기들은 꽁꽁 언 상태이기 때문에 물을 뿌려서 얼음을 녹인다. 그 다음에 그물로 고기를 떠서 리어카에 붓는다. 리어카로 운반하는 사람들은 항운노조 소속의 사람들이다. 보통 ‘노조’라고 불리는 이들이 물건을 위판장 바닥에 부어 놓으면 ‘아지매’들이 물건을 정리한다. 하지만 여기서 ‘아지매’라 불렀다가는 혼쭐이 날 수도 있다. ‘아지매’가 아니라 ‘부녀’라는 정식 명칭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판장은 깨끗하다. 보통 위판이 끝나고 나면 바닷물을 정온수해서 위판장을 깨끗이 씻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계자들 눈에는 깨끗한 곳이지만 외부인이 봤을 때는 그렇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그는 설명한다.

“외부인이 보기에는 뭐 더러울 수도 있겠지요. 고기를 발로 막……, 사람 먹는 건데 발로 막 한다고 하지요. 그런데 바빠 죽겠는데, 정신이 없는데 그걸 일일이 손으로 어떻게 치우겠어요. 한 마리 두 마리 같으면 손으로 하지만 수만 마리를 일일이 손으로 어느 세월에? 밤새도록 해도 절대 못 담지요. 삽으로 퍼고 발로 막 문지르고 그런 건 어쩔 수 없어요.”

부녀들이 고기를 정리하면 노조들이 상자를 가지런히 정돈한다. 그리고 경매가 끝나면 리어카로 또 물건을 옮겨 주는 사람들이 나타나는데, 여기서는 그들을 ‘인부’라고 부른다.

이렇듯 위판장에도 3위 1체로 모든 일이 돌아간다. 중매인이 ‘중매인’, ‘대리’, ‘경리’로 되어 있고 경매인들이 ‘경매’, ‘서기’, ‘안내’로 되어 있는 것처럼 위판장에도 ‘노조’, ‘부녀’, ‘인부’의 3위 1체이다.
부녀반의 손에 달린 그날의 물건
위판장에 마구 늘어놓은 생선들을 정리하는 부녀반의 임무가 막중하다. 그녀들이 정확하게 분류해서 잘 담아야지 중매인들이 물건을 믿고 사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녀반들의 일이 보통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다.

보통 10시에 배에서 물건을 내리면 부녀반들이 우르르 몰려서 작업을 시작한다. 옛날에는 부녀반들도 많았다. 물량이 많아 하룻밤을 일해도 꽤 짭짤한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그러던 것이 위판이 점점 적어지니까 이에 따라 사람도 줄어들고, 게다가 젊은 사람은 비린내 나는 일을 잘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은 피하는 일이기도 하다. 보통 40대 이상이 많이 하는데 60대가 제일 많다. 이들 또한 손이 빨라야 하고 기술이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네들의 규율도 다른 곳 못지않게 세서, 잘못하면 욕만 잔뜩 얻어먹는다. 김영수는 여자들의 욕하는 소리가 더 무섭다고 한다. 빨리빨리 일을 해야 돈이 생기는 곳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물량이 적든 많든 아침 6시 경매 전까지는 일을 다 마쳐야 하기 때문에 정신없이 돌아가는 것이다. 어떨 때는 그들 사이에서 난무하는 욕과 잔소리들에 머리에 쥐가 내릴 정도라고 한다.

보통 고등어는 크기별로 5종류로 나눠서 담는다. 보통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이런 일들을 오차 없이 해내야 하기 때문에 밤새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부녀반이 밤새 담은 물건들은 수량이 작은 것부터 경매에 들어간다. 왜냐하면 큰 것 팔다 보면 작은 것은 묻혀서 엉망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건 부산공동어시장에서 경매를 도와주기 위해 나온 ‘안내’가 요령껏 보고 파는 수밖에 없다.
매일 달라지는 어가, 신경전을 펼치는 위판장
“배추 같은 것은 한 달 가본들 크게 차이가 안 나잖아요. 그런데 어시장 같은 경우에는 바다에서 어획을 해 오기 때문에 물량이 많을 때도 있고 적을 때도 있고. 일기 차이에 의해서 굉장히 어획량에 차이가 많고, 파도가 높다든지 태풍이 온다든지 비가 온다든지 하면 작업이 안 되고, 수온이 높아서 어구가 형성이 안 되고, 아니면 큰 고기가 와 버리면 작은 고기는 다 도망가 버리고 없고. 이렇게 들쑥날쑥 하기 때문에 어가, 즉 생선 가격의 차이가 하룻밤 사이에 몇 천만 원이 날 수도 있어요.”

예를 들어, 오늘 들어온 생선 중 제일 좋은 고등어 한 상자가 15만 원에 나갔다고 했을 때, 내일 만약 어황이 많으면 똑같은 품질이라도 10만 원에 나갈 수도 있고, 어황이 적으면 20만 원이 될 수도 있다. 한 상자에 5만 원 이상 차이가 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침에 경매되는 것이 수천 상자인데 한 상자에 5만 원의 차이가 난다고 한다면, 10상자면 50만 원, 100상자면 500만 원, 1,000상자면 5,000만 원의 차이가 나게 된다. 즉 매일매일 가격의 폭이 굉장히 커질 수 있는 것이다. 폭이 이렇게 많이 나니까 경매할 때는 보통 신경전을 벌이는 것이 아니다. 매일 긴장한 상태로 경매에 들어가야 하는 것은 물론, 눈과 귀가 밝아야 하고 머리 회전이 빨라야 한다. 이것이 중매인이 가져야 할 첫 번째 자격이다.
중매인은 눈이 보배
경매는 6시에 진행되지만 대부분의 중매인들은 한 시간쯤 일찍 나온다. 미리 와서 물건을 점찍어 놓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물건을 보는 보배로운 눈을 기르는 것이 중매인으로서의 기본 덕목이다. 일찍 나는 새가 먹이를 먹는다고, 일찍 나와서 드넓은 위판장을 다 둘러봐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매일 그렇게 하겠는가. 매일 하다 보면 지겹고 끔찍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럴 때 경력이 필요하다. 경력이 쌓이다 보면 감으로, 느낌으로 물건을 살 수 있다. 그렇게 해도 크게 실수하거나 틀리지 않는다. 감으로 물건을 사도 거의 80% 정도 확실하다. 이런 것이 돈 주고도 못 사는 세월의 힘일 터이다.
예쁘고 재빠르게 손을 내라
부산공동어시장 경매는 아직 전자 경매가 도입되지 않았기에 수화로 모든 경매가 진행된다. 보통 사람들은 그들이 하는 말과 수화가 무슨 뜻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부산공동어시장 정문으로 들어가면 왼편에 수화하는 방법이 그려져 있지만, 보통 사람은 백 번을 고쳐 봐도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손 그림일 뿐이다.

김영수가 처음 일을 배울 때에도 수화가 어떤 뜻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아버지께 배워 보려고 했지만 현장에서 직접 경험해 보지 않은 채 수화를 배우려니 실력이 늘 리가 없었다. 처음에는 현장에 서 계신 아버지의 등 뒤에서 수화를 익혔다. 말 그대로 눈치껏 몸으로 익힌 것이다.

다른 사람이 수화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현장에서 쓸모가 없다. 내가 직접 부딪혀야 했고, 보고 듣고 몸으로 익히는 것이 중요했다. 단, 아버지가 가르쳐 주신 것은 지시를 할 때, 어떻게 하는 것이 더 좋은지 그 요령을 가르쳐 줄 뿐이었다.

위판장에는 굉장히 물건이 많기 때문에 빨리빨리 경매를 진행해야 선도를 유지할 수 있다. 한여름에는 더욱더 그러하다. 그래서 남들보다 손을 더 빨리 내고 예쁘게, 모양 있게 내는 것이 중요하다. 어설프게 손을 냈다가는 허탕을 치는 경우가 많다. 손님, 즉 소매인이 사 달라고 하는 물건을 사 줘야만 먹고 살 수 있는 직업인데 그렇게 허탕을 치면 돈벌이를 못하는 것은 고사하고 자칫하면 손님을 잃을 수도 있다.

중매인은 손님이 원하는 물건을 사 주고 그에 대한 중개 수수료로 먹고 산다. 그래서 첫째로 서비스가 제일 중요하다. 그런데 경쟁자가 너무 많다. 중매인이 100명 정도이고, 그 집에서 고용한 대리가 각 1명씩이라 해도 100명, 그러면 기본 200명이 경매에 들어간다. 그 200명 중에 1, 2, 3등 안에는 들어가야 물건을 살 수 있다. 그래서 경매사가 잘 알아볼 수 있도록 손을 낼 때 정확하고 재빠르게 내는 것이 중요하다. 빨리 알아듣고 익혀듣고 정확하고 신속하게 손을 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확하고 빠른 판단이 중요하다.

경매는 정신없이 진행된다. 김영수도 처음 위판장에 나갔을 때는 뭐가 뭔지 하나도 몰랐고,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그리고 신기하기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중매인 중에서도 베테랑으로 손꼽힌다. 이 모든 것이 비린내 맡아 가며 위판장을 지킨 노력의 결실이 아니겠는가.
철저한 현금 거래
부산공동어시장에서는 모든 거래가 현금이다. 만약, 중매인이 오늘 새벽에 물건을 1,000만 원어치 샀을 경우, 그 돈은 내일 새벽 경매 전까지 부산공동어시장으로 입금이 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다음날 경매에 참가할 자격이 주어진다.

만약 입금을 하지 않을 경우, 경매에 나가서 아무리 열심히 손을 내밀어 봤자 경매사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부산공동어시장 쪽에서는 매일 경매에 나서기 전에 입금 현황을 조사하고 입금이 안 되어 있는 중매인은 체크해 둔다. 그래서 입금을 못시킬 경우 판장에 아예 나가지 않는 것이 더 낫다.

중매인들은 부산공동어시장에 수수료를 내지 않는다. 대신 위판을 부탁한 선주가 부산공동어시장에 수수료를 지불하는 방식이다. 대신 중매인들은 부산공동어시장 쪽에 담보가 들어가 있다. 현금 거래에 담보가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 이 담보는 중매인마다 조금씩 다르고, 담보에 따라 물건을 살 수 있는 양이 달라진다.
우리는 서비스 중개업
중매인은 자기 마음대로 물건을 사서 소매인들에게 안겨 주는 것이 아니다. 그날그날의 시세가 있기 때문에 물량이 적으면 물건이 비싸므로 적게 사고, 물량이 좀 많으면 양을 늘린다. 임의적으로 물건을 사서 소매인들에게 떠넘길 수 없다.

경매하는 장면을 보면 모자 쓴 중매인들 뒤에 사람들이 많이 서 있다. 중매인들 뒤에서 귓속말로 속삭이기도 한다. 그 사람들이 소매인, 즉 중매인의 손님들이다. 대개 소매인들은 단골 중매인이 지정되어 있다.

‘96번’이라는 모자를 쓰고 경매를 보고 있다고 해도 모르는 사람의 물건을 사 주지 않는다. 아니, 사 줄 수는 있지만 대금 지불에서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과는 거래하지 않는다. 경매는 전부 현금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중매인이 물건을 대신 사 주면 소매인들은 경매가 끝난 직후, 또는 그날 중으로 중매인에게 고기 값을 지불해야 한다. 그런데 모르는 사람의 고기를 사 주면 대금을 못 받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 경매사가 한 경매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고등어 경매가 끝나면 갈치로, 오징어로, 잡어로 계속해서 바쁘게 옮겨 다녀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 돈을 받으려고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 없다.

“손님마다 원하는 물건이 다 달라요. 시장에 가면 내 가게가 있지요? 고등어나 갈치만 팔 수는 없잖아요, 종류별로 구색을 갖춰야지. 예를 들어 가자미 같은 경우는 선망 쪽에는 없고 저인망에 있어요. 그래서 경매 장소가 좀 달라집니다. 선망 쪽에는 갈치, 고등어, 오징어 정도고, 저인망에는 잡어가 주로 경매되거든요. 저인망 경매에는 우리 집 대리가 참여를 하고 있어요. 소매들은 내가 산 물건, 우리 대리가 산 물건 이렇게 합쳐서 가지고 갑니다. 그리고 돌아가서 입금을 해 주는 식이에요. 1,000만 원치 사면 우리는 50만 원을 수수료로 받고 있어요. 5%를 받거든요. 그래서 아무나에게 사 줄 수 없는 거죠. 사줬는데 돈 안 주면 어떻게 해? 만약 10만 원치 사줬는데 오지도 않고 돈도 입금 안 하면 나는 10만 원 원금이 없어지는 거잖아요. 나는 다음날 경매 전까지 부산공동어시장에 고기 대금을 입금시켜야 하니까. 여기는 현금 거래에요. 아침에 다 현금으로 가지고 옵니다. 우리가 물건을 사서 주면 손님[소매상]들은 현금으로 그날이나 그 다음날 돈을 주는 방식이지요. 젊은 사람들은 텔레뱅킹으로 주지만 어르신들은 비린내 나는 돈을 그냥 아침에 들고 온다고요.”
외상 거래의 허점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이 소매상들의 지불 의지이다. 다음날 경매 전까지 부산공동어시장에 고기 값을 지불하려면 오늘 안으로 물건을 가져간 소매상들이 돈을 다 입금시켜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소매상들이 물건값을 제때 다 지불하면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우리는 며칠 돈을 모아서 선단에 직접 주는 게 아니고, 다음날 경매 전까지 꼭 공동어시장 측에 입금을 시켜야지 안 그러면 경매에 참가를 못하잖아요? 입금 못 시키면 그냥 하루 놀아야겠지. 자, 아침에 산 것은 소매가 이미 외상으로 다 가져갔잖아. 그게 애로 사항인거라. 돈이 들어와야 입금을 하는데……, 아침에 1,000만 원 어치 사서 소매한테 줬잖아요? 그러면 그 사람들이 다 가져오면 무슨 문제가 있겠어요? 그런데 안 가져오잖아. 오늘 장사가 안 되서 덜 팔았다, 애 학비 줬다, 연탄이 떨어져서 연탄 샀다, 그래서 돈 없다, 이러잖아요. 나중에 벌어 준다는 사람도 있고, 물건 다 팔면 돈 줄게 이런 사람도 있고. 나야 오늘 공동어시장에 입금을 안 하면 경매에 참석을 못하지만 소매상들은 답답할 게 있나. 입금을 늦게 하더라도 물건은 어떻게든 가져가니까.”

외상 거래라는 것 자체가 위험한 거래다. 그래서 떼먹히는 경우도 발생한다. 많이 사는 중매인은 하루에만 억대로 사는 집도 있다. 중매인들은 1억이 되든 5억이 되든 물건을 사야할 때는 사야만 한다. 5억 원 어치를 산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다음날 경매 전까지 입금을 해야 한다. 그래서 항상 5억 원 정도는 여윳돈으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내 돈을 먼저 밀어 넣어도 소매상들에게 회수해서 다시 채워 넣으면 다행인데 안 가져오면 5억에서 계속 까먹을 수밖에 없고, 소매상들이 한꺼번에 돈을 가져오지 않고 조금씩 쪼개서 돈을 갚으면 큰돈 나가고 잔돈 들어오는 식이라 손해를 보는 것 같다. 옛날에 물량이 많을 때는 보충이 쉽게 됐는데 요즘은 한번 ‘빵꾸’가 나면 복구가 힘들다.
확인하고 확인하고 또 확인하라
요즘은 어황 정보가 너무 빨라서 힘이 든다. 배가 들어오고 경매에 붙여질 물건이 부산공동어시장 홈페이지에 시간대 별로 공지되고 있다. 수산업 정보는 좀 어두운 곳이 있어야 중매업자들이 재미를 볼 수 있다. 이른바 ‘지갑을 주웠다’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돈 되는 것을 봤다는 이야기이다. 즉 경매를 잘 봤다는 얘기다.

그런데 요즘은 지갑은 고사하고 바가지나 안 쓰면 다행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수산물은 모두 수작업으로 하기 때문에 위에는 큰 고기가 있지만 밑에 작은 것이 있는 경우가 많다. 경매할 때 ‘안내’가 상자를 엎어서 속의 물건을 보여 주는 이유도 다 여기에 있다. 확인하고 물건을 사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많은 상자 가운데 2~3개 정도만 뒤집는다. 그러니 물건을 잘못 사는 경우가 충분히 생길 수 있다. 그럴 때는 부녀반에게 화살이 돌아간다. 일단 경매를 거치면 그 물건은 이제부터 내 책임인데 고기의 크기가 들쑥날쑥하고 좋은 것 나쁜 것 섞여 있으면 손해를 보기 때문에 부녀반을 욕할 수밖에 없다. 수작업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해도 화가 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럴 때면 혼자 욕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고함도 지른다. 지나가는 사람이 조금만 부딪혀도 시비가 붙을 정도이다. 그래서 중매인들은 항상 미리 나와서 손으로 상자를 뒤적여 본다.

만약 물건이 좋지 않으면 소매인들은 당연히 중매인들을 탓할 것이다. 그래서 소매인들이 사 달라는 대로 다 사 줄 수 없다. 아무리 소매인이 특정 물건을 찍어서 사 달라고 해도 중매인들이 매의 눈으로 물건을 잘 보고 사야만 한다. 현장에서 소매인들이 사 달라는 대로 사 줄 수 없다면 물건의 양은 어떻게 조절을 하는 것일까.

“예를 들어 7,500상자가 들어왔다고 하자고. 오늘 들어온 것은 내일 아침에 경매에 들어가겠지. 그런데 오늘은 4,000상자를 경매에서 샀단 말이지. 그럼 내일의 어가는 어떻게 될까. 당연히 물량이 많아졌기 때문에 오늘보다는 내려가겠지. 그렇다면 오늘 물건을 가져간 소매상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오늘 중으로 빨리 물건을 내다 팔아야 한다고. 내일 아침에 싱싱한 물건이 더 싼 값에 많이 풀리니까.”

소매상들은 물건을 다 팔았으니 내일 더 많이 가져가겠다고 전화를 하기도 하고, 물건이 남았으니 내일은 조금만 가져가겠다고 연락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물건이 남았다는 전화가 대부분이다. 만약 내일 물량이 적다고 하면 물건이 남은 소매상은 다행이다. 내일 더 비싸게 팔아도 되니까. 그런데, 오늘도 남았는데 내일 또 어황이 좋다고 하면 오늘 가져간 것은 마구 날려야 한다. 그래도 장사꾼들이라 절대 손해 보면서까지 물건을 팔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서 자갈치 상인들은 조금 유리하다. 부산공동어시장에서 물건을 가져가는 소매인들 대부분은 자갈치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자갈치에 오면 선도가 좋은 것을 싼 가격에 살 수도 있지만 남은 물건을 파는 사람들도 많다. 유명한 곳이어서 잘 깎아 주지도 않는다. 부르는 게 값이다. 그러니 외지에서 온 사람들은 가끔 바가지를 쓰기도 한다.
황금과 같이 빛나던 때
요즘은 예전에 비하여 물량이 적고 어종이 많이 바뀌어 수입이 좋지 않다. 그러나 김영수 씨가 처음 일을 시작했을 무렵에는 수입이 아주 좋았다. 수입이 좋았기 때문에 군대를 제대하고 아버지 밑에서 바로 일을 배웠다.

수입이 가장 좋았을 때는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 28살 봄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때는 물량도 많고 어종도 다양했을 때였다. 예를 들어 조기의 사촌 격인 부세조기라는 것이 있는데, 명절 때 주로 상에 올랐던 것으로, 지금은 전량 중국에서 수입해 들어오는 고기이다. 몇 해 전, 생선 몸통에 납덩이를 넣어 무게를 부풀린 사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부세조기가 한국 영해에서 사라진 지는 15년 정도가 된다.

당시 부세조기가 판장에서 경매될 때 복부인들이 현금을 싸 짊어지고 왔었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명절은 대단한 행사였기 때문에 꼭 부세조기가 있어야만 했다고, 부세는 겨울 3개월 동안 성어기이다.

“그때 깜깜한 밤에 판장 끝에서 끝까지 부세가 꽉 담겨 있는데, 불을 안 켜도 황금색 부세가 환하게 빛나더라고 진짜. 그땐 황금을 담아 놓은 것 같았어요. 금괴가 연상이 되는 거라. 처음부터 끝까지 상자를 켜켜이 쌓아 놓을 정도로 물량도 많았고. 진짜 놀란다. 아침에 나올 때마다 그만큼 겨울철 내내 부세가 있었어. 그때 사놓고 설에 팔고 냉동시켜서 추석에 팔고 그랬다. 복부인들이 돈을 싸 짊어지고 오고. 그때가 참 돈 많이 벌렸어. 진짜 돈 많이 벌었지. 내 생각에 그때 공무원 봉급이 13만 원인가 그랬는데 우리 하루 수입이 그 2, 3곱이라. 그런데 철없던 내가 매일 그렇게 벌리는가 싶어서 내일 생각 안하고 막 썼지. 한창 젊을 때 좋을 때. 그런데 지금은 번 돈 싹 다 빼먹고도 모자라죠 뭐. 하던 업은 계속해야 되고 안 할 수 없어요. 천직이라 생각하니까. 그런데 그런 시절은 두 번 다시 안 와. 지금 북극 남극이 녹고 있는데……, 그 어종이 아예 사라져 버렸다니까요. 그래서 문제가 된 게 중국에서 조기 안에 납덩어리를 넣어 와서 문제가 되는 거지.”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황금기였다. 당시 9급 공무원 월급이 대략 13만 원이었는데, 중매인들의 하루 수입이 그 2, 3곱도 넘었으니 실제로 황금을 쓸어 담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잘 되지 않는다. 현상 유지만 해도 선방했다고 할 정도로 불황이다. 그러나 김영수 씨는 이 일을 천직이라고 생각하고 있기에 아직도 매일 새벽 부산공동어시장으로 출근한다. 오랫동안 해 온 만큼 이 일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은 대단하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 날 황금과 같은 시대는 두 번 다시 올 수 없을 거라는 그의 말에 더 안타까울 따름이다.
아들에게 물려주지 않을 것
김영수 씨는 아버지에게서 중매인이라는 업을 이어받았지만 두 아들들에게 이 일을 물려줄 생각은 없다. 두 아들은 지금 좋은 곳에 취직해서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 그가 30여 년 전 중매업에 뛰어들었을 때는 하루 수입이 보통 사람의 월급을 뛰어 넘을 때도 있었지만 이제 그런 호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그는 잘 알고 있다.

아침에 잠깐 일하고 내 사무실에서 내가 ‘오야봉’이 되어 내 맘대로 일할 수 있다는 매력은 있지만 지금은 어종이 워낙 없다 보니 힘든 업이 되어 버렸다. 수온은 1도만 달라져도 어종이 확 바뀌고 사라진다. 사람에게 1도의 온도 차는 느낄 수도 없는 온도지만 바다 속은 그렇지 않다.

경매가 끝난 한가한 오후, 김영수 씨는 남은 일을 처리하고 있다. 주로 외상으로 물건을 가져간 소매인들에게 전화를 하는 일이다. 아침 일찍 일을 끝낸 후 보통 일몰 시간까지 자유롭게 근무하는 편이다. 일이 없는 중매인들은 12시가 되기 전에 퇴근하는 곳도 있지만 그는 보통 4~5시까지는 근무를 한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어김없이 어둠을 가르며 부산공동어시장으로 출근을 한다. 오늘은 좋은 물건이 많이 들어왔으면 하는 기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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