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부산공동어시장 사람들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새벽 4시 무렵, 부산광역시 서구 남부민동 691-3번지에 있는 부산공동어시장 하성상회 96번 중도매인 김영수[남, 55세] 씨는 새벽의 상쾌한 바람을 가르며 일터로 출발한다. 경매를 시작하는 시간은 새벽 6시이다. 그러나 그 시간에 딱 맞춰 나올 수는 없다. 미리 나와서 밤새 배에서 내린 생선들의 상태가 어떠한지 잘 봐둬야 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만 경매에서 빨리, 좋은 물건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여름철에는 새벽에 집을 나서도 해가 빨리 뜨기 때문에 덜 힘들지만, 한겨울 댓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출근하는 길은 정말이지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는다.
어제 배가 많이 들어왔다고 하는데 물량이 많을까? 괜찮은 생선이 들어왔을까? 손님들에게 주문 받은 물량이 어느 정도였더라? 그는 오늘 하루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면서 부산진구 주례동의 집에서 남부민동의 부산공동어시장까지 15분 만에 달려온다. 위판장에는 밤새 작업한 고등어며 갈치며 오징어 등이 나란히 진열되어 있다. 부산공동어시장에서는 ‘현장’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다고 한다. 선주들이 수산물을 위탁 판매하는 곳이기 때문에 위판장, 또는 그것을 줄여 판장이라고 부른다. 위판장은 밤이 새도록 분주하게 돌아간다. 하긴 부산공동어시장은 전국 수산물의 60% 이상을 위판 처리하는 곳이 아니었던가.
그는 일단 사무실에 들러 오늘 들어온 물량을 확인한다. 그리고 검은색 바탕에다 금색의 테를 두른 96번 모자를 쓰고 판장으로 나가 ‘부녀반’이 작업 중인 선어들을 지켜본다. 6시 5분전, 경매를 알리는 방송이 흘러나오고 부산공동어시장 판매과의 경매사들이 일제히 위판장에 모습을 드러낸다. 경매사는 3명이 한 조가 되어 움직인다. 위판장에 경매사, 속기사, 안내사 이렇게 3인 1조가 모두 나와야 비로소 경매를 시작할 수 있다.
6시 정각, 정문에서 왼편에 있는 판장에서부터 경매가 시작된다. 쉴 새 없이 흥정을 붙이는 경매사, 더 좋은 물건을 좀 더 싼 값에 사려고 하는 중도매인, 그리고 그들 뒤에서 이것저것 훈수를 두는 소매상, 뒤늦게 접안한 배에서 내려진 생선들을 상자에 정리하고 있는 부녀반, 경매가 끝난 생선들을 리어카로 옮겨 싣는 인부, 그리고 구경꾼까지, 새벽의 부산공동어시장은 혼을 빼놓을 듯이 바쁘게 돌아간다. 여기저기에서 들리는 고성들, 그리고 욕설이 오고가는 위판장……, 다소 거친 듯한 말투와 행동이지만, 이 또한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만 볼 수 있는 우리들의 살아 있는 모습이 아니겠는가.